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ep39. 개미의 집 (1)
집으로 돌아온 후의 일은 언제나와 마찬가지였다. 술판을 벌였고, 이번에는 일을 목적으로 정지훈도 참가했다.
리리는 예전보단 웃음이 많아졌다. 아직까진 그저 옅은 미소만을 입가에 흘릴 뿐이지만 처음에 비하면 저것도 많이 나아진 셈이었다. 예전에는 조소 이상의 무언가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차소희는 언제나처럼 초반부터 달리다가 인사불성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잔뜩 안겼다. 요즘 타깃은 서지아인 모양인데, 엘프 피부가 말랑해서 좋다든가. 취해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제발, 얘 좀 어떻게 해 봐.”
서지아는 아주 질색하는 표정으로 차소희를 밀어 놓더니 끝내 일어나서 저 멀리 떨어져 한숨을 쉬었다.
“왕!”
옆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존슨이 한 번 짖었다. 녀석을 쓰다듬었다. 이제 슬슬 소환하는 데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법칙이 있는 모양인데, 나중에 실전에서 조금씩 확인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반투명한 유령 강아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었다. 특히 서지아가 그랬다.
“……그거 알아 둬.”
“뭐?”
“우리 종족들은 본능적으로 유령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듣자 하니 생명과 가장 연관성이 깊은 종족이라 그렇다더라. 즉, 죽음과 연관이 높은 존재와는 대척점에 있는 셈이지.
“……내가 익숙해지도록 노력해 볼게.”
서지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거리를 벌렸다. 저 거부감이란 게 아마도 두려움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싫다기보다는 무서워하는 모양새였으니까.
조금 장난기가 동해서 존슨을 번쩍 들고 서지아에게 다가갔다.
“에비.”
“……너 진짜…….”
“헥헥헥헥!”
서지아는 입술을 깨물면서도 착실하게 뒷걸음질 쳤다.
우리가 유치하게 노는 동안, 정지훈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 복귀하시자마자 일 이야기를 꺼내서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정지훈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유사곤충종 습격 건에 대해서…… 우선 말씀하신 대로 일상 상태를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베이스캠프 관리 담당팀은 여전히 걱정이 많더군요. 저도 그들을 안심시킬 근거가 없는 상태고요.”
“그놈들 앞으로 일주일 이상은 안 움직일 거예요. 목표를 설정한 다음에는 준비 기간을 가지거든요.”
“준비란 언젠가 끝나니, 그 전에 대처하실 거라고 믿습니다만…… 저도 어떻게 하실지를 알아야 윗선에 설득할 수 있어서 말입니다.”
“이거.”
나는 술잔을 흔들었다. 정지훈은 이해하지 못한 듯 대답을 보류했다.
“알코올. 쟤네들 알코올에 엄청 약해요. 냄새만 맡아도 마비될 정도로.”
“짜쉭들…… 거 이 차소희랑 대작함 해야게꾸만…….”
내가 녀석들을 개미집으로 비유했지만, 사실 저 녀석들은 개미랑은 조금 다르다. 굴을 파 집을 짓기보다는 기존에 있는 빈 곳을 돌아다니는 ‘유목 종족’에 가깝다.
즉, 녀석들이 출몰했다는 건 이 아래 어딘가 셀피가 사는 곳 같은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충분한 양의 알코올만 이용하면 녀석들의 공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으니, 심지어 그곳을 탐험하는 건 안전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겸사겸사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놈들의 서식지에는 잘하면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으니 안 갈 이유도 전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진서연은 한 손에 컵, 그리고 다른 손에는 내가 찍어 준 사진을 들고 정신없이 훑어보고 있었다. 적어도 잔을 입에 댈 때는 조심했으면 좋겠는데, 끝내 입가에 잔뜩 흘리고 나서 호다닥 휴지로 훔쳐 내었다. 그러면서도 사진에서 눈을 떼는 법이 없었다.
“죽음의 땅이라니, 여기 그럼 지역 자체가 이렇게 다 새까만 거예요?”
“네. 근데 지구에도 비슷한 지형이 많잖아요?”
“현무암 기반 지질은 흔하긴 한데, 악마는 없잖아요! 세상에, 죽음의 땅과 그걸 연구하는 연구원이라니! 언제 한 번 만나 보고 싶은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별로 위험한 곳도 아니니, 언젠가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이계의 독기도 점점 약해져 간다고 하고.
“……항상 이럴 때마다 정말 부러워요. 우리는 이 근방에만 간신히 돌아다닐 뿐, 이런 이계다운 풍경은 거의 본 적 없다시피 했거든요. 당장 버뮤다 숲도 선후 씨가 오기 전까지는 외곽만 돌아다녔을 뿐이었고…….”
“맞아. 나도…… 사정만 되면 따라다니고 싶어 죽겠다니깐? 치사하다 치사해—.”
차소희와 진서연은 평소에 나를 많이 부러워하곤 했다. 둘의 공통점은 매일 출퇴근을 하며 같은 일상을 보낸다는 점이었지.
그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같이 갈래요?”
사진에 정신이 팔려 있는 진서연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하요. 저 곤충들이 출몰한다는 건 꽤 멋진 풍경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지하.”
“같이 갈래요?”
“그래도 돼요?”
옆에서 듣던 서지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위험한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마을을 습격하는 거대 괴물의 본거지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장담해. 그리고 위험하다 싶으면 돌아가지 뭐. 밑져야 본전이잖아?”
진서연은 사진을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차소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답은 차소희가 먼저였다.
“갈래!”
리리는 그저 술잔을 홀짝거리며, 불그스름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가끔은 내가 보는 걸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
* * *
그 뒤로 우리는 짐을 정리했다. 그러다 사진 중 하나에서 성녀가 찍혀 있는 모습을 찾아냈다.
“이름이 벨라랬지?”
“벨라 비바치시모. 원래 별의 자손들은 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 종족 전체가 일종의 일족인 셈이거든.”
“그런데?”
“비바치시모는 지배자의 상을 타고난 당사자와 그 친지들에게 붙는 성이야. 어마어마한 영광이지.”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성녀의 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이름이…….
“그, 성녀님 동생 이름이 뭐였지? 지난번에 여기 왔었잖아.”
“엘리. 엘리 비바치시모.”
리리의 기억력은 진짜 대단한 수준이다. 이것도 뱀파이어라 그런가?
어쨌든 벨라는 엘리를 꽤 아끼는 모양이었다. 동생이 죽는다는 계시를 받고, 예언을 거부하는 걸 계기로 예언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알았다고 했었지.
“주신들은 좀 악질적인 면이 있나 보네. 예언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하고.”
“악신들은 아니야. 우리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뿐.”
“그게 악한 거 아니야? 예언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데.”
“옆 나라의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들을 우리는 신경 쓰지 않잖아? 필요하다면 그걸 부추기기도 하고. 신의 입장에선 우리의 일이 그 정도인 셈일 수도 있지.”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다만…….
나는 역시 이런 생각은 별로 취향이 아니다. 리리는 귀족이라서 어린 나이에 그런 정치적인 문제에 많이 부딪혔다고 했었지.
어쨌거나 그렇게, 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들고 온 게 많이 없기에 짐 정리는 빠르게 끝났고, 그만큼 빠르게 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장 이틀 뒤, 진서연이 휴가를 낸 당일 날부터 지하 탐험을 할 생각이었다. 사람들에게 이계의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고, 이 세계의 동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단편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아무리 적이 없다고 해도…… 지형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잖아. 저 사람들이 밧줄을 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되는대로 해 볼 거야. 탐험이 로망이라는데, 현실도 좀 느끼게 해 줘야지.”
리리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그 사이에, 벌컥 하고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굿모닝!”
“모닝은 무슨 맥런치도 끝날 시간이다.”
“아무튼 내가 일어났으니 모닝임!”
그 사이에 지구에 갔다 온 차소희는 짐을 한 아름 가지고 왔다.
“그게 다 뭐야?”
“탐험 복장! 이거, 등산화고, 그리고 이거…… 뭐라고 해야 하지? 탐험 벨트인가? 이건 뭐야?”
“…….”
차소희는 저런 경향이 있다. 줄여 말하면 장비충의 기질이 좀 있단 말이지.
내가 적당히 보고 걸러 줬다. 그렇게 대단할 걸 하지 않을 생각이라서 거창한 건 애초에 필요가 없었다.
“돈 아까워. 당근 마켓에 팔아야겠다.”
내가 쓸모없다고 말한 장비들을 바라보며 차소희는 그렇게 말했다.
이틀이 지난 뒤 아침, 문을 열고 나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각자의 장비를 가지고 심지어 무기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공기총이래. 세게 쏘면 늑대 정도는 쫓아낼 수 있다는데?”
“세게 쏘면……?”
좀 이상한 말인데 아무튼 그냥 넘겼다. 정지훈이 농담을 좀 한 모양이네.
활동복을 입은 진서연은 처음 보는데, 차소희도 아버지가 만들어 줬는지 멋들어진 재킷을 입고 있었다.
조금 의외였던 건, 서지아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는 왜?”
“오랜만에 좀 움직이려고. 요즘 너무 편하게 지냈어.”
“너네 종족은 히키코모리라며?”
“……그 정도는 아니야.
그들의 짐을 대충 점검한 뒤, 안전 경고도 좀 하고, 바로 서쪽으로 출발했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거리니 그저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렇게 군락, 그러니까 흰개미집을 수십 배 확대한 것 같은 모양의 집에 접근했다.
“……안전한 거 맞지?”
그제야 좀 현실을 자각했는지, 차소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그럴 것이, 군락 주변에 마치 시동 꺼진 로봇처럼 널브러져 있는 곤충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가방 속에서 큰 분무기를 꺼내서 하나를 꺼내 사람들에게 뿌렸다.
“으엑! 생강 냄새! 웩!”
“……이게 뭐예요?”
“라프나 확산초 뿌리네. 어디서 구했어?”
유일하게 서지아만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걸 알코올에 섞어서 이렇게 뿌리면 기존의 증발력이 상쇄되고 훨씬 오래 그 기운이 유지된다. 예전 도시에서부터 배웠고, 야생 생활을 할 때 항상 내 몸에서 생강 냄새가 났던 이유기도 했다.
“이제 저 개미들은 오히려 우리를 피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사자의 지팡이를 꺼냈다.
“탈레talle.”
“왕!”
“쉿!”
“……워!”
존슨이 나왔다. 여전히 창백하고 반투명한 형태.
서지아는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듯 거리를 벌렸다.
“으, 유령…….”
아무리 안전해도, 정찰은 필요하다.
나는 예전 존슨이 살아 있던 시절, 존슨의 정말 강력한 후각과 기동력을 거기에 썼었지.
“언제나처럼, 부탁할게.”
존슨은 잠시 날 빤히 바라보다가, 수풀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어린 강아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그 은닉 수준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리저리 바위와 수풀 사이를 통과해 가며 곤충들의 감각을 속였다. 아니, 애초에 유령이라서 더듬이 따위로는 제대로 감지할 수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존슨의 종이 저런 식으로 사냥하는 종이었다. 사냥당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카멜레온과 싸우는 기분마저 들게 만드는, 그림자와 같이 움직이는 늑대. 대충 섀도우 울프라고 하면 되려나.
그 사이에 군락 뒤편 거대하게 뚫린 동굴로 들어가는 존슨.
저 동굴이 이 지하에 있는 공간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두 시간이 좀 안 되었을까. 존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컹—!”
녀석은 내 앞에 앉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전의 강아지 모습이 아니니, 나도 조금은 압도감을 느낄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다. 특히, 이 눈매가 멋있었지.
존슨은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이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는 물건.
항상 이런 식으로, 존슨은 정찰 결과를 보고하고는 했었다.
예전의 기억 조각이 점차 맞춰지자 깊은 곳에서 기쁨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존슨이 물고 온 물건이었다.
그건, 어떤 기계장치의 부품 일부였다.
파이프 같은 모양이었는데, 사이사이는 황동빛의 톱니바퀴가 달려 있었다.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인가는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인공물이잖아.”
진서연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 한층 더 진지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베이스캠프 아래에 어떤 인공적인 구조물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