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ep39. 개미의 집 (2)
우리는 저 앞에 있는 우량 곤충들에게는 이제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저, 나의 충직한 유령 사냥개가 가지고 온 정찰 결과를 보고 각자의 고민에 빠져 있었을 뿐이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진서연이었다.
“이런 형태…… 본 적이 있어요.”
“아는 대로 말씀해 보실래요?”
진서연은 조심스럽게 그 인공물을 들어 올렸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긴 수도관 같은 생김새였으나, 양쪽에 톱니가 달려 있는 게 어떤 기계의 부품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질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금속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계를 연구하는 사업체가 OWIC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죠? 그 회사 중에서는 이계에서 만든 공예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업이 있거든요. 물론 자체 인력이 없어서 외부 용역을 주로 쓰긴 하지만.”
“하운드 같은?”
“사실상 하운드 협회 사람들이 전부죠.”
그 이야기를 듣던 서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 덕분에 먹고 살았지.”
“그럴 거예요. 지아 씨는 기업 의뢰 위주로 받으셨으니까. 그 회사에서 찾아내는 공예품이나 각종 부품들이 대체로 이런 형태였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이 이야기의 결론은 간단하다. 베이스캠프가 지어진 이곳도 아주 오래전에 한때나마 어떤 문명이 자리 잡았을 거고, 그 문명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잔재들이 계속해서 발굴된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고대의 문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어쩔 거야?”
리리가 내 의도를 파악한 듯 먼저 물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방문해 볼 생각이었다. 이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하는 이계의 특별한 모습들을 보여 줄 재미있는 기회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다면.
“우선 복귀해야겠어.”
“복귀?”
차소희가 아쉬운 듯 말했다. 하지만 내 입장은 완고했다.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변수가 주어진다면, 나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최소한 변수의 정체가 뭔지 판단할 수 있기 전까지는.
“만약에 나 혼자였다면 그냥 신나서 들어갔을 수도 있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 멋대로 끌고 가다가 위험해지면 다 내 책임이니까.”
나는 통제할 자신이 있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나 혼자 감수하면 그만일 때나 통하는 이야기다. 남까지 그런 곳에 끌어들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이대로 돌아가면 좀 맥 빠지니, 나는 아직까지는 희망을 놓지 않기로 했다.
“내가 따로 알아볼게.”
“따로 알아봐? 자기 먼저 들어가 본다는 뜻이야? 어차피 먼저 들어갈 거면, 굳이 나올 필요 없이 볼일도 보고 끝내면 되잖아. 자기가 저 아래에서 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려가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서지아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령?”
그렇지.
셀피라면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들 사무소에 가서 좀 쉬고 있어요. 저녁쯤 해서 돌아올 테니까. 출발할지 말지는 그때 결정할게요.”
나머지 인원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리리는 나와 함께 서쪽 바위산으로 떠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왕!”
어느새 존슨은 강아지의 형태로 돌아와 내 뒤를 졸졸졸 따라왔다.
* * *
서쪽 바위산의 동굴에 들어가면 아래로 가파르게 내려가는 통로가 이어진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부분은 어느새 셀피가 그럴싸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뿌리를 자유자재로 뻗는 식물을 이용한 계단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풍경 같은 느낌을 주었다.
셀피는 언제나처럼 같은 공동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어두워서 모스의 불빛에 의존해야 했던 지하 동굴은 셀피의 연두색 빛이 가득한 넓은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오랜만이야. 셀피.”
「이번 여정은 즐거우셨나요?」
고개를 끄덕였다. 셀피는 이전보다 확실히 그 규모가 거대해져 있었다. 생명의 정령은 슬라임처럼 일정한 생김새가 없지만, 그래도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남쪽에서 만난 정신 나간 스프리건과 동화되어 한 몸이 되었기에 그만큼 세력권도 더 강해진 상황이었다. 이제 셀피의 세력은 이 근방을 넘어서 남쪽 마을까지도 뻗어 나가 있었다.
나는 셀피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지하 어딘가에 마을을 침범하는 곤충의 서식지가 발생했다는 점, 그 서식지 근처에서 인공 구조물의 잔해물이 발견되었다는 점.
“셀피. 너는 이 근방 지도를 만들어 줄 수 있을 만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
「우리는 산의 뿌리가 뻗어 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도달할 수 있어요.」
그럼 오히려 이상하다. 셀피가 베이스캠프의 지하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잖아? 숨길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공간일 텐데.
그 말을 들은 셀피는 슬라임 같은 몸을 여유롭게 흐느적댔다. 눈을 가지고 있지 않는데도 왠지 존슨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존슨은 헥헥 대며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몇 개의 빛을 따라다니느라 바뻤다.
「이걸 봐주세요.」
셀피를 이루는 수천 개의 빛이 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공기 중을 떠다니는 흙먼지 하나하나가 빛을 발한다면 아마 이런 풍경이겠지. 막간에 셀피가 보여 준 장관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나는 이 정령이 뭘 보여 주고 싶은지 깨달았다.
“……존슨?”
어느새 존슨은 얌전히 그저 앉아 있었다. 단순히 앉아만 있는 게 아니라 뭔가 조금 위축된 것처럼 보였다. 셀피가 보여 준 갑작스러운 모습에 놀란 걸까?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수천의 별들 사이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존슨의 주변에만 아무것도 없이 어두웠다. 별이 가득 뜬 밤하늘의 블랙홀과 비슷한 느낌마저 들었다.
존슨 역시 자신의 주변을 감싸는 셀피의 빛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스프리건, 생명을 상징하는 존재예요. 그렇기에, 생명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와는 서로 밀어내는 성질을 가진답니다. 마치 자석처럼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베이스캠프의 지하에 있는 공간을 네가 발견 못 한 이유도 이거랑 관련이 있을까?”
빛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 나무의 형태가 되었다.
「어떤 이유로든 제가 접근하지도, 인지할 수도 없는 기운이 흐르기 때문이겠지요.」
“셀피가 인지할 수 없는 공간이라.”
최소한 시시한 공간은 아니라는 뜻이지.
“셀피. 잠깐 베이스캠프로 와 줄 수 있어? 너 본체는 여기 오래 못 벗어나 있잖아.”
「최근에 우리의 세력이 강해진 후, 정기가 없는 곳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덕분이에요.」
“부탁할게.”
그렇게 말하며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에 잠길 좋은 시간이었다.
우선, 내가 남쪽으로 떠나기 전에 이곳에서 벌어졌던 유령 사태를 떠올렸다.
유령이야 이계에서는 그렇게 희귀한 현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저 나무 위 참새 바라보듯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이 많겠는데.”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 리리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리리가 유심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고민?”
“스프리건 말에 따르면, 너희 동족의 마을은 터가 그렇게 좋진 않은 모양인데, 주신교랑 교류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사제를 부를 수도 없잖아.”
“어…… 그런가?”
“뭐?”
리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런가라니? 이런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 듣고 나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건데?”
“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당장 길을 찾아봐야겠다?”
“……내가 아직 당신을 잘 모르는구나.”
“공부하고 오세요.”
“……하.”
나는 존슨이 찾아온 고대의 가공품을 들고 바라보다가는,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오래 걸리지 않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정 복귀 후에 처음 베이스캠프로 들어 본 건데.
맨 처음 느낀 건,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는 퍽 노골적으로 변했고, 조금은 부담스럽게까지 느껴졌다는 거다.
우선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마을 중앙으로 향했다.
“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젊은 남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
거절하면 너무 매정한 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날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섰다.
아니, 서려다가 다시 말하더라.
“저, 가능하면 저 뱀파이어 여성분도…….”
“……리리.”
“응? 나? 왜?”
리리는 딱 봐도 긴장 가득한 얼굴로 놀라기까지 했다.
“이리로 와.”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리리와 나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선 사람들이 리모컨을 누르자 카메라의 셔터음이 울려 퍼졌다. 리리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건 덤이었다.
“……대체 뭐야.”
“그, 우리 문화라고 생각해 둬.”
“영혼을 가두는 기계 앞에 나란히 서는 게?”
설명해 주기 귀찮아져서 그냥 마저 가던 길을 갔다.
그곳에서, 나는 존슨을 소환했다. 어느새 주변에는 구경꾼들로 가득 찼다. 솔직히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고,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냐는 생각이 강해서 그냥 막 움직이는 거지만, 역시 나는 시선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되더라.
사자의 지팡이가 남색으로 옅게 빛나고, 푸른 에너지가 모이는가 싶더니, 강아지가 되었다. 언제나처럼 복슬복슬한 꼬리를 가진 존슨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존슨에게 고대의 파이프를 내밀었다. 존슨은 코를 내밀어 킁킁댔다.
“이 냄새, 잘 맡아. 그리고 기억해.”
잠시 코를 씰룩대던 존슨이 다시 자리에 앉아서 입을 벌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헥헥대는 게 마치 기억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 주변에서 이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줘. 그리고, 찾으면 나한테 꼭 알려 줘. 알겠지?”
“왕!”
대답과 동시에 존슨이 뛰어갔다. 갑자기 거대한 성체 늑대의 형태로 변하면서 말이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라 뒤로 자빠지고 경비대에 신고가 들어갈 뻔한 헤프닝이 잠깐 일었다.
* * *
차소희와 진서연, 서지아를 만나 여관의 카페테리아에 그저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즐기는 여유가 나쁘지 않았다. 리리는 눈앞에 둔 커피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홀짝거리고는 인상을 썼다.
“……써. 으엑.”
“이계에는 커피가 없나?”
차소희가 재밌다는 눈치로 바라봤다. 진서연은 리리를 통해 이계의 문화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커피…… 어머니가 이런 비슷한 걸 마시는 걸 본 적 있는데…….”
“아하, 그냥 애기 입맛인 거야?”
“누가 아기라는 거야.”
은근히 저연령 콤플렉스가 있는 듯한 리리의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차소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요즘 서울에서 내 이미지가 어때?”
“너 이미지?”
차소희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유튜브 시작하면 그냥 백만 찍고 시작할걸.”
“…….”
그 옛날에는 10만이 꿈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차소희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웃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 유튜브 안 해 볼래?”
“……유튜브?”
그 말에 무슨 대답을 떠올리기도 전에.
“컹—!”
여관 밖에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존슨이 찾아온 모양이다.
“활기찬 거 보니까, 뭔가 찾은 모양인데?”
“가봐요!”
가만히 듣고 있었던 진서연이 먼저 벌떡 일어나서 밖에 나갔다. 나가보니 사람들이 저 멀리 떨어져 웅성거리며 늑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SNS에 올리기 위해 유령 늑대의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나를 안내하는 존슨의 뒤를 따라 달렸다. 발밑에서는 녹색의 빛들이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르더니, 한 뭉치 빛으로 모여 나와 나란히 달렸다. 셀피였다.
“……대체 뭐야. 저런 건 어디에서 구해 온 거야.”
“사실 지구인이 아니라 이계 사람이라는 말, 진짜 아냐? OWIC에서 변칙개체로 지정했다며.”
누군가 수다스럽게 떠드는 말을 애써 무시하며 존슨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 방향이 이상했다. 마을 밖이 아니라, 오히려 안쪽으로 들어간다.
베이스캠프는 남쪽에 바위산을 등지고 세워진 마을이었다. 그 바위산 안쪽, 반지하 같은 지형에 이제 차원문이 있었고.
존슨이 향하는 방향이 바로 그 바위산이었다. 다행히 차원문 쪽으로는 가지 않아서 경비대도 딱히 리리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바위산에 도착하자, 빙 둘러 그 측면으로 향했고.
“컹—!”
존슨은 그곳에 있는 어떤 틈에서 멈췄다. 가로로 길게 나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틈이 아니라 그저 작은 균열처럼 보일 정도로 사소한 구멍이었다.
“…….”
존슨은 말을 하지 못하니, 그저 날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저 안쪽에서 희미한 금속 냄새를 품은 공기가 스며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 안쪽인 거야?”
차소희가 말하면서 다가왔다. 눈을 대 보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숴야 하나? 서연 씨. 다이너마이트라도 가진 거 있으세요?”
“그런 게 있을 리가…….”
나는 셀피를 바라보았다. 그런 게 필요하지도 않다.
“셀피. 부탁할게.”
「주인이 원하시는 대로.」
셀피를 이루는 연두빛이 조금 강해지는가 싶더니, 땅에서 스멀스멀 나무뿌리가 벽을 다고 올랐다. 그리고, 틈 안쪽으로 무질서하게 파고드는가 싶더니.
빠각-!
바위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정도 기다렸을까.
후드득—!
바위틈이 완전히 벌어지며,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흙먼지와 돌조각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보통 바위산이 금이 가더라도 이렇게 쏟아지는 경우는 없다.
이는, 안쪽에 공간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건…….
“문?”
“……성문 같은데.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 이런 스타일의 문.”
“세상에…….”
차소희가 저도 몰래 다가가려는 걸 가로막았다. 아직, 저게 뭔지 확실히 모르니 조심해야지.
지금 당장 내 머리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서연 씨.”
“……네.”
“OWIC은 이거 모르고 있었어요?”
진서연은 조금 뜸을 들였다.
“알았다면…… 먼저 개발하고 사람들 접근을 막지 않았을까요?”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기는 마을 경계선에서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다.
“저, 그, OWIC이요. 멍청이들이에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바위산에 뭐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힘들고, 또…… 이렇게 부수기도 뭐 그럴 거고. 물론 회사에는 지질 탐지기가 있긴 하지만…….”
그러다가 한숨을 쉬었다.
“머저리들인가 봐요.”
“……네.”
서지아가 제일 공감한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문에 다가갔다. 정말 조심스럽게, 문에 손 끝부터 천천히 댔다. 두텁게 쌓인 먼지가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치우자, 일렬로 각인된 룬이 느껴졌다.
중간부터 만져진 그것을 손끝으로 뭐라고 적혀있는지 느꼈다.
“인델라니, 아르메실라.”
“그렇게 적혀 있어?”
차소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리리는 이게 무슨 뜻인지 단번에 기억해 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셀피.”
「네.」
“스프리건은 그 지역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다고 했잖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너무 길다고 느껴서 처음부터 줄여 불렀지만, 왠지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셀피 인델라니- 아르메실라. 이 시대의 언어로는 고요한 시작의 대지. 오래전 황금의 왕이 붙인 이름이에요.」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