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ep39. 개미의 집 (3)
나는 이제까지 정령 둘과 마주해 봤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정령은 태어난 곳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거다. 에드워드는 파도치는 사막에서 태어나 해적의 정체성을 가졌고, 셀피는 산의 뿌리에서 태어나, 그 산이 이름을 자기 것으로 했다.
고요한 시작의 대지.
셀피의 이름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 이름에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지구에서도 그런 식으로 이름을 짓는 문화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름이 이 문에 달려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체 왜 여기에 문이 있어?”
차소희가 내 의문 중 하나를 대신 꺼내 줬다.
“옛날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지형이 변해서 이렇게 된 건가?”
차소희의 의문에 진서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 거예요. 문 자체가 애초에 산에 달려 있어요. 지극히 우연의 산물일 가능성도 있지만, 상식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죠.”
나도 진서연의 말에 동감이었다. 문이 돌에 가려진 정도가 지형 변화의 흔적일 것이다. 어쩌면 융기한 산이 이곳에 있었을 건물을 잡아먹었을 수도 있지. 오래전의 일은 아무리 추측해도 의미가 없다. 답은 시간만이 알고 있으니까.
그냥 동네 마실 나가듯 방문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선 돌아가자. 서연 씨. 이건 회사에 말하지 말아 주세요.”
“원래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입을 열지 않더라도…….”
진서연이 고개를 돌렸다. 나무와 풀, 그리고 바위산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지만, 베이스캠프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훤히 보일 텐데.”
“셀피.”
셀피가 근처의 식물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급속도로 자란 식물이 입구를 막았다.
“조금 조잡하긴 한데, 최소한 바로 발견될 일은 없겠죠?”
“이제는 진짜 못 하는 게 없으시네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 줄 아는 것만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돌아갔다. 내 뒤를 따라오던 서지아가 질문을 던졌다.
“우선 지켜보려고? 지금 당장 들어가 보는 건 위험할까?”
“네가 나보다 더 조급해하는 거 같은데?”
“왕좌에 관련된 곳인 거 같고, 나도 너처럼 상의 계승자야. 아닌 척해도 관심을 버릴 수는 없어. 우리는 그런 운명을 타고났으니까.”
“음…….”
리리도 그렇고, 서지아도 마찬가지고, 벨라 비바치시모도 왕좌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지배자의 상을 타고 났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근데, 난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는 어떻게 할 거야? 우선 기다려 볼 거야?”
“가야지.”
“언제?”
리리가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 밤이겠지 뭐.”
이제는 정말 눈치가 빠르네. 나는 그저 웃으며 내 사무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에서는 별로 멀지도 않은 곳이다.
돌아가는 이유는, 그저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런 짐도 없이 맨몸으로 갈 곳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으니까.
그래서 사무소로 도착했다. 따라오기로 했던 세 사람의 입장이 조금 애매해졌는데, 내가 작업실로 들어가 짐을 꾸리는 동안 그들 나름대로 회의를 한 모양이다. 준비를 끝내고 잠깐 물 한잔하러 밖으로 나오자 차소희가 다가와 말했다.
“우리 따라가 보기로 했어. 너만 괜찮으면.”
나야 말릴 생각 전혀 없다. 리리도 따라온다고 했을 때 전혀 거부하지 않았으니.
“그런데 괜찮겠어?”
“대신에 약속할게. 판단은 네가 해. 만약에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하면 군말 없이 돌아갈게.”
그렇게까지 결의를 다질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거리 자체가 이렇게 가까우면 마음을 무겁게 먹을 필요도 없다.
탐험의 난이도는 대부분 복귀의 난이도로 귀결된다. 복귀가 쉽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 자체로 난이도가 높지 않은 탐험이다. 무슨 상황이 생기든 본진이 바로 앞이라면, 대부분 대처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차소희의 말대로 안 될 거 같으면 그냥 돌아가 버리면 그만이니까.
내 대답을 듣자마자 차소희는 신나서 가방을 들춰 맸고, 나머지 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자 이미 달이 떠 있었다. 운데라가 밝게 떠 있는 모습을 보니 좀 반가웠다. 남부 접경지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으니까.
운데라의 기운을 받아야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리리의 표정도 밝았다.
“가자.”
풀벌레 우는 소리와 새들이 나무 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베이스캠프 외곽을 타고 이동해서 이전의 그 바위산으로 다가갔다.
나무 몇 그루와 수풀로 이루어진 작은 식물 군집. 아까 낮에 봤던 문 앞에 섰다.
“밀어서 잠금 해제?”
차소희가 다가와서 문에 손을 댔다. 당연히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장갑을 벗으며 문으로 다가갔다. 고대 유적에 있는 문의 공통점은 어떤 룬 문자가 적혀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물건을 작동시키는 건 간단했다.
왼손을 가까이 대자, 손등에 주홍빛을 발하는 문신이 생긴다. 그와 동시에 문이 반응하며.
따각—!
굳은 몸을 움직인다.
문에 댄 손에 힘을 주었고, 문은 거친 마찰음을 울리면서 열렸다.
“……뭐 해?”
뒤에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안쪽에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곳으로 향하는 문조차 없었다. 5평이 좀 넘어가는 정도의 원룸이 연상되는 공간이었다.
서지아가 먼저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어두워.”
나도 주변을 조금 둘러본 뒤에, 잠시 눈을 감았다. 차소희가 물었다.
“뭐 해?”
“냄새 맡아.”
“냄새? 왜?”
“불 피울 거거든.”
“불이랑 냄새랑 무슨 상관 있어? 아, 가스?”
나는 안전을 확인한 뒤에야 룬을 외었다.
“모스mohs.”
꽤 오랜만에 사용하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건 언제 봐도 신기하네요. 진짜 마법이라니…… 지구에서도 쓸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을 쓰는 삶을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진서연은 왠지 환상에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이해가 갔다. 이곳은 마치 바깥과 완전히 단절된,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여기가 특별한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고대 유적은 그 공기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지구에서도 느낄 수 있다. 변방에 남아 있는 쓸쓸한 폐건물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있겠지. 이건 경험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감정이다.
벽에는 무수한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아쉽게도 룬이 아닌 그저 장식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대며 그것을 관찰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진서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서연은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이리저리 돌려 가며 사진을 남겼다.
물론 여기도 그럴싸한 분위기를 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유적의 정체라면 솔직히 좀 실망할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벽을 둘러보았다. 각인에 뭔가 흔적이 있을까 싶어 하나씩 차근차근 음미했다. 조급할 거 없으니까.
그러다가 아무 생각 없이 리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리리는 이 공간의 정중앙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는데.
“……당신, 이쪽으로 잠깐 와 볼……!”
벽에 시선을 팔린 채 걷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더니, 지난번에 검 끝을 밟고 도약한 묘기를 다시 보여 주었다. 날아오르듯 땅에서 벗어나, 착지하며 몸을 돌렸다.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난데없는 곡예쇼에 사람들이 놀라서 리리를 바라보았다.
“……미친, 그런 걸 할 줄 알았어? 대박.”
이건 차소희의 반응이었고, 서지아와 진서연은 이미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챈 상황이었다.
“왜 그래요?”
“바닥이…… 눌렸는데.”
나는 리리가 마지막에 밟았던 바닥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아주 미세하게 원형의 균열이 있다는 사실을.
저건 아무리 봐도 압력판이었다. 압력을 감지해서 무언가를 작동시키는 버튼.
내가 흙을 손바닥으로 쓸어 균열을 보여 주자, 다른 사람들도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깨달았다.
“자기가 보기에는 어때? 함정일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대 유적에서 함정을 발견한 적은 없어.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될 일이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사람들을 내보낸 뒤, 천잠사의 망토로 입을 가리고 기생체 가죽 망토로 온몸을 방어했다.
이 정도라면 단순한 화살이나 독가스, 화염 정도로는 죽지 않겠지. 그리고, 몸에 밧줄을 걸어 사람들에게 잡아 달라고까지 부탁했다.
“……너 생각보다 막 들이박는 놈은 아니었구나? 멧돼지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알겠어?”
차소희가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저 웃으며 이전의 그 압력판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해서 눌렀다.
그러자.
드드드드드드—
땅이 흔들렸다. 역시 함정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밖에서 완전 호들갑을 떨었다. 서지아와 리리만이 내게 묶여 있는 밧줄을 잘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함정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여유롭게 그 자리에서 벗어났고, 내가 서 있던 방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아냐?”
리리를 제외한 모두가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이 문 안쪽에 있는 공간 전체가 아래로 내려가며 텅 빈 긴 통로가 펼쳐졌다.
이건 분명 엘리베이터였다.
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그것은 다시 올라왔다. 가운데에 있는 압력판이 눌려 있다가 원위치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하지만 동시에 안전하기까지 한 엘리베이터였다.
차소희와 진서연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간절함까지 담겨 있었다.
“가자. 조심해.”
“오예!”
모두 들어온 걸 확인한 뒤, 아래의 압력판을 발로 눌렀다.
드드드드드—
흔들림과 함께 방은 아래로 향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5분 가까이 내려가기만 했다. 얼마나 깊은 걸까?
“이 정도 속도라면…… 못해도 500m는 넘게 내려갈 거 같은데.”
“아뇨. 몰라요. 지금은 등속도로 내려가니까요. 맨 처음 가속할 때 생각해 보면 500미터는 이미 넘었을 수도 있어요.”
“무슨, 유전이야?”
모스의 불빛과 모두가 들고 있는 손전등 불빛.
거기에만 의존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불안감과 호기심, 그리고 거대한 기대감이 뒤섞여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빛을 반사했다.
쿠구구구—
엞리베이터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모두가 손전등의 빛을 올렸다. 의외로 위축되는 사람은 없었다. 서지아는 품속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뭐가 나올지 모르잖아.”
저런 준비성을 나는 싫어하지 않았다. 진서연이 나를 보고 말했다.
“선후 씨는 아직도 긴장감이 있으세요?”
“항상 새로워요.”
그게 탐험의 묘미다. 언제나 새로운 곳에 닿으면 처음의 기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초심이란 말이 진심으로 뭔지 알게 된다.
문이 열렸다. 우리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조명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조명을 내렸다. 모스의 불꽃도 없애 버렸다. 이 풍경을 그 자체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별?”
제일 처음 입을 연 건 리리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입을 조금 벌리고, 고개를 올려 드넓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별인 줄 알았던 건 별이 아니었다. 나도 맨 처음에는 그저 천장에 붙어 있는 발광성 식물이나 균류인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별처럼 보이는 저것은 지금 내 눈앞에도 있었다. 그저, 이곳에 떠다니는 의문의 발광체가 먼지처럼 이곳저곳을 떠다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조명은 필요 없었다. 이곳 전체가 달이 뜨지 않는 밤의 풍경과 같았다. 저 멀리, 천장과 바닥을 연결하는 거대한 종유석이 보였다.
우리가 보는 풍경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시인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10층도 넘어 보이는 높은 건물과, 낮게 깔려 있는 수많은 구조물,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대로 하나와, 대로에서 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수많은 골목들.
이건 고대에 남겨진 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풍경이었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알 수 있었다.
빌딩처럼 높은 구조물, 그보다 낮은 구조물, 그리고 땅 아래에서 버섯처럼 솟아 나와 서로 뭉쳐 있는, 현대예술과 같은 구조물까지.
그 모든 게 사실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서연은 어느새 품속에서 작은 망원경을 꺼내 더 자세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전부 묘비예요.”
“네? 뭐라고요?”
“진짜 미치겠구만.”
이건 하나의 거대한 무덤도시였다.
가롯이 죽고, 그 여파가 세상을 가볍게 휩쓸었다.
그리고 베이스캠프에는 그 시점부터 갑자기 지하에서 사는 곤충이 튀어나왔다.
우리는 당연히 그걸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공세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아니, 확실히 아니었다. 나는 저 멀리,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거대 곤충 한 무리를 목격했다.
곤충들은 공격을 위해서 지상에 올라온 게 아니었다.
단순히 쫓겨난 것뿐이었다.
그 순간.
쿠웅—!
“흐읍……!”
뒤에서 누군가 비명을 삼키기 위해 입을 막았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인간의 실루엣이 있었다.
아주 낡은 넝마 같은 걸 뒤집어쓰고, 뼈만 남은 앙상한 실루엣이었다.
그게 바로 옆에 있는 고층 빌딩 수준의 비석과 비슷한 크기라는 게 좀 문제였지만 말이다.
쿠우웅—!
계속해서 거대한 소리가 났다.
나는 그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다행히, 패닉에 빠진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이곳에 내려오기 전 나름대로 각오를 한 모양이지.
쿠우웅—!
세 번의 굉음.
그리고, 나는 이 소리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삽질을 하고 있나 본데?”
농담이나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정말로, 저 거대한 존재는 삽을 들고 땅을 파고, 또는 다듬고 있었다.
마치, 무덤을 관리하는 것처럼.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