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ep40. 무덤도시 (3)
강선후가 남쪽에서 돌아오기 닷새 전, 온 세상에 매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었다. 하늘이 진동하듯 울리는 그 소리는 돌발 상황이었으나 사람들은 이전만큼 당황하지 않았다. 모두가 날이 갈수록 이계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젯밤 당직을 섰던 통합 분석실의 오지혜는 정지훈이 아침 일찍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일찍 출근하셨네요? 퇴근한 지 겨우 네 시간 지나시지 않았어?”
정지훈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고서를 들어 올렸다.
“강선후가 별말 안 하던가요?”
“네. 오히려……. 지금은 다른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을 겁니다.”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그 양반 성격이면 흥분해서 발발 뛸 일 아닌가?”
“관심이 없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분은 은근히 비밀을 철저하게 숨기는 성격이라서.”
“프로파일에 그렇게 적혀 있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 인생 그냥 즐기면서 사는 사람처럼만 보이던데요. 예상했던 것보다 유쾌한 사람이어서 조금 의외였어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게 뭐예요? 다중인격도 아니고.”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
정지훈은 서면으로 도착한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 머릿속에 담은 뒤, 세절기에 넣었다. 단발적 기밀은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던 동료를 바라보았다. 대충 올려서 둘둘 감아 뭉쳐 털이 삐죽삐죽 나온 똥머리를 본 정지훈이 안쓰럽게 웃었다.
“고생 많으시네요.”
“이젠 별로 체감도 안 돼요. 통합분석실에, 게다가 1팀에 발령받을 때는 엘리트 코스 밟는다고 좋아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여기는 줄이 아니라 그냥 짬통이야 짬통. 좀 애매한 일이다 싶으면 다 때려 박는 곳.”
정지훈은 그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지혜는 그보다 후임이었으나 머릿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낼 정도로 깡다구가 있었다. 오히려 저런 성격 덕분에 통합분석실에 들어올 수 있었겠지. 별꼴을 다 보면서 멘탈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하는 곳이니까.
서면을 한 장씩 세절기에 넣으며 정지훈은 이런 생각을 했다. 마지막 장을 넣는 그 순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오지혜가 한숨을 쉬었다. 그와 동시에 정지훈의 휴대폰에도 알림이 도착했다.
<상황 ‘주의’ 단계 발령 – 이계에 변칙 현상 관측>
「(관측 장소)
베이스캠프 기준 서쪽, 추정 거리 100km 이상.
(내용)
높이 500m 이상으로 추정되는 깃털 형태의 물체 낙하. 베이스 캠프와 시민 측 피해는 없는 걸로 확인.
(특이 사항)
최소 한 명 이상의 통합분석실 인원을 포함한 조사원 파견 요망.」
“퇴근 못 하겠네.”
이런 내용을 보면서 한숨 정도로 멘탈 정리를 끝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통합분석실에 어울리는 인재라고 볼 수 있겠지. 정지훈은 의자에 걸려 있던 정장 재킷을 들며 말했다.
“윗선에 보고 부탁드립니다.”
“본인이 가시게요?”
정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에서 나갔다.
* * *
지평선 저편에 깃털이 수직으로 박혔다. 바로 옆에 산맥의 봉우리가 있어 그 크기가 훨씬 대비되어 보였다.
뒤늦게 흙먼지가 솟아올랐다.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리리는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을 연 건 리리 쪽이 먼저였다.
“……신이 가까이 오고 있어.”
망원경을 꺼내 본격적으로 그 깃털을 살펴봤다.
밤하늘처럼 검은 깃털의 표면을 따라 보랏빛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그 자체로, 우주를 띄워 놓은 거대한 모니터와 같았다.
다시 황금 지침을 바라보았다. 지침의 끝이 이전보다 더 크게 떨리고 있다는 건, 그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차소희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머리가 미역처럼 젖어 있었고, 수건이 대충 둘둘 말려 있었다.
“저게 뭐야……?”
“깃털.”
“아니, 깃털인 건 알겠는데, 세상에 저렇게 큰 깃털을 가지고 있는 새가 어디 있어?”
“이계잖아.”
진서연도, 서지아도 그 뒤를 따라 나와 각자의 표정으로 깃털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인에, 지하 묘지에, 거대한 깃털에…… 정신 나갈 거 같아……!”
“언제는 이계 탐험해 보고 싶다면서? 이계는 이런 곳이야.”
“웃음이 나와? 아니, 깃털이 저 정도면 새는 대체 얼마나 큰 건데? 오기만 해도 재난 상황 아니야?”
“새가 아니야.”
리리가 그렇게 말했다. 그 시선은 깃털을 향하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옅게 심호흡을 하는 게 느껴졌다.
“……신이야.”
“신?”
그때, 뒤늦게 따라온 진서연이 그 말을 이었다.
“……아홉 주신 중 하나, 끝없는 어둠 저편에서 날아오는 매. 예전에 지나가듯 이야기했던 그 신에 대한 내용 맞죠?”
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는 천 년마다 한 번씩 날아온다면서요. 그 천 년째가 지금인가요?”
“정확히는 새 시대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날아오는 거야. 그 종이 대략 천 년마다 한 번씩 울리고.”
서지아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 로크라 벨라el rokra bella. 자기가 그 종을 울렸지. 그렇잖아?”
한 네 달 전인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진서연 역시 깃털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 년마다 날아오는 매가 도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래.
저게 핵심이다.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
“뭐든 간에, 굉장히 멋있는 일이 일어나겠죠?”
진서연은 대답을 보류하고 그저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시선에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퍽 유쾌하지만은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관심사는 이런 사사로운 것들이 아니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연 씨.”
“…….”
“서연 씨?”
“아, 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던 진서연이 고개를 돌렸다.
“OWIC 쪽에 이계의 신화에 관련된 정보가 있나요?”
“어, 그건 찾아봐야 해요. 제 분야도 아니고 평소에는 크게 관심 없었던 거라서.”
그러면서 리리와 서지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계 출신들이 우리 회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은 맞긴 하지. 그래도 정보는 다다익선이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지훈이 다가오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협조하겠습니다.”
“그래도 돼요?”
“그래야만 합니다. 이게 제 일이거든요.”
그러면서 깃털 쪽을 바라본다.
“이 일을 규명하는 게 제 일이기도 하니까요.”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이해 관계가 맞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 나 역시 서둘러서 움직이기로 했다.
* * *
이주일 뒤.
하운드 협회의 부협회장이자 2급 패스파인더, 도준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베이스캠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의 품속에는 이제까지 조사했던 이계의 신화 자료가 한가득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은 꼭 만나고 싶었던 남자. 지금 이쪽 업계에서 그 이름을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을 정도인 남자.
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탓은, 그 사람이 집에 있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지아의 소개로 인해 비로소 기회가 생겼다.
“너, 잼민아. 신화에 대해서 좀 안다고 했지? 강선후 좀 만나 봐라.”
“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건 뭐야?”
“그분은 하운드를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나랑 술 먹고 밥 먹고 다 한 사이야. 내가 말했으니까 가도 돼. 그리고, 그 정보 가지고 오면 좋아할걸?”
서지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사람은 마음을 착하게 먹으면 어찌 되었든 기회가 되어 돌아온다는 자신의 지론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지아의 뒤를 따라가니 어느새, 2층짜리 아담한 나무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 마당에는 이런저런 문서를 펼쳐 놓고 뱀파이어와 이야기를 나누는 한 남자가 있었다.
강선후와 눈을 마주치자, 도준혁은 허리를 90도보다 아래로 접으며 외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누구?”
“4급 하운드 도준혁이라고 합니다! 서지아 선배님의 소개를 받고 이렇게 왔습니다!”
“아, 지난번에 말했던 사람?”
강선후는 서지아를 바라봤고, 서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신화에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하시다 해서 이렇게 염치를 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기합 넣고 와아악! 안 해도 돼요. 입대 다시 한 줄 알았네.”
하지만 강선후는 그 우렁찬 목소리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역시,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라면 이렇게 대하는 후배를 싫어할 리가 없다. 사실 경력으로 치면 강선후가 더 후배지만, 그 업적은 이런 관계를 아무런 의미가 없게 만들었다.
도준혁이 강선후를 얼마나 동경했는가에 대해서 구구절절 늘어놓으려고 하자, 강선후는 서둘러 만류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실실 쪼개고 있는 서지아를 보며 헛웃음을 지은 건 덤이었다.
“이게 제가 조사했던 신화 관련 전문입니다.”
OWIC과 협조해서 꽤 멀리 있는 마을까지 방문한 귀중한 자료였다. 강선후는 그걸 보고 열정을 느꼈다며 칭찬 한마디를 얹어 주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표정은 덤덤했다.
“……이거 남쪽 마을 정보인가요?”
“네? 아, 네! 맞습니다.”
“그, 엘프 사는 마을이요?”
“앗, 아십니까?”
“……흠.”
묘하게 시큰둥한 모습이었지만. 도준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포기하지 않고 다음 장을 내밀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계에는 주신교회가 있고, 그 주신교회는 아홉 신에 대한 설화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 그렇겠네.”
“지난번에 주신교회 순례자들이 왔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와일드헌트 사태 때 말씀입니다만.”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순례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신교회는 이번 시대에 일어날 신화적 사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요.”
“……오.”
이번에는 강선후가 조금 놀랐다. 그 모습을 본 도준혁은 내심 기뻐했다.
이런 식으로 그의 마음에 든다면, 그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거의 준범죄자 취급받는 하운드의 타이틀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주신 교회에 관련한 자료는 이것 말고도 많습니다. 만약에 강선후 님의 마음에 드셨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서 그 정보를 취합하고 하운드 소식통을 이용해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올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네! 게다가 그 사람들 잘 구슬리면 조금 더 멀리 가서 인력도 구할 수 있을 거고요. 강선후 님께서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빠르게 정보를 취합할 수 있을 겁니다.”
도준혁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 정도라면 강선후가 혼자기 때문에 겪었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고, 꽤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도준혁은 이 일이 강선후와의 친목을 다지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랐다.
그 순간, 마을에서 사이렌이 짧게 울렸다.
이건, 외부에서 이계인이 마을을 방문했다는 경고 신호였다. 평소대로 행동하되, 지구의 정보를 밝히지 말라는 의미를 가진 신호.
대체 무슨 일인가. 요즘 들어 이계인의 방문이 왜 이렇게 잦은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 방문했다는 이계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강선후의 사무소로 곧장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리가 가까워졌고, 그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고, 모두가 말을 타고 있었다. 딱 봐도 보통의 여행객은 아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두꺼운 가죽 갑옷은 이들이 추운 지역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대표는 적색의 생머리를 가지진 수도자였는데, 아는 얼굴이었다.
“……성녀 동생이라고 했던가?”
성녀의 자매, 엘리 비바치시모는 미소를 짓더니, 강선후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일시에 그 뒤에 있던 모든 주신교의 수호기사들 역시 같은 자세로 예를 표했다.
“주신교의 성녀이자 남부 지부의 대주교, 벨라 비바치시모의 명을 받아 강선후 님의 여정을 돕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벨라가 보냈어요?”
“그렇습니다. ‘대주교’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대가 끝없는 어둠 너머에서 날아오는 매를 찾고자 한다는 걸.”
그러면서, 엘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언니를 슬픔에서 구원해 주셔서 고마워요.”
강선후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모습을 도준혁은 보았다.
별의 자손, 주신교의 수호기사, 순례자가 강선후 앞에서 무릎 꿇고, 예를 바치는 모습.
이게 뭘 뜻하는지는 자명했다.
방금 전까지 주신 교회에 대해서 잘 안다는 둥 운운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주신 교회의 사람과 친근한 표정으로 마주 보고, 심지어 수호기사들이 강선후의 앞에서 무릎을 꿇기까지 하는데, 내가 누구 앞에서 아는 척을 한 거지?
“……저.”
강선후는 그를 돌아보았다.
“아는 척해서 죄송합니다.”
서지아는 조소를 내뱉으며 도준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