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ep41. 북서쪽, 먼 여행길 (1)
도준혁은 서지아와 베이스캠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저런 상황에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지아는 지금 잔뜩 흥분한 도준혁의 모습을 신선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운드 꼰대들이 이 어린 하운드를 부협회장 자리에 앉힌 이유는 도통 흥분하는 법이 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반반한 얼굴과 고분고분 말을 잘 따르는 성격도 바지사장과 얼굴마담에 적합한 특성이었기도 했고.
그런 놈이 강선후와의 짧은 만남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아 나불대고 있었다.
“강선후 님은 이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겁니까?”
“꽤 하지? 직접 본 것처럼.”
도준혁은 서지아가 항상 끼고 다니는 헤드폰을 잠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선배님. 요즘에 업계에서 나오는 소식은 좀 들으십니까? 최근에는 일도 거의 안 받으시는 거 같아서.”
“거의 손 털었지.”
“강선후 님이 사실 지구인이 아니라는 소문이 돕니다.”
“이계 쪽 사람이다?”
도준혁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나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업계 전반에는 그런 소문이 돌고 있었다. 현대인이면서 서울보다 이계를 더 편하게 느끼는 듯한 태도, 그리고 명백하게 OWIC의 특별 취급을 받는 상황과 불과 반년도 되지 않아 만들어 낸 수많은 업적과 구설수들.
“처음에는 그냥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까 저도 생각이 좀 달라지네요. 어떤 지구인이 이계 사람과 저런 인맥을 만듭니까? 그냥 인맥도 아니고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라니!”
그 모습은 안 그래도 강선후의 소문을 동경하던 어린 하운드에게 환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을 마주친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으니 더 그랬다.
“소문이 정말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에이, 말도 안 되지.”
서지아는 그런 도준혁을 힐끗 보며 웃었다.
“이계 사람이 어떻게 지구인인 척하고 지구로 넘어와?”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은 없네요.”
서지아는 웃으며, 자신의 헤드폰의 볼륨 조절 버튼을 만지작거렸다.
* * *
맨 처음 순례자들과 함께 베이스캠프로 엘리가 찾아왔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뭔가 반가웠다. 이 사람은 성녀, 그러니까 벨라 비바치시모의 동생이었고, 제 자매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힘들어하는 착한 가족이었으니까.
“대주교의 추측대로 그대가 신의 강림을 대비한다면, 저희가 기꺼이 지식과 힘을 보태 드리겠습니다. 그런 명령을 받고 찾아온 거니까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지아와 도준혁은 잠시 여관에 가 있겠다고 하고 자리를 비웠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대의 의견을 말해 주세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밥이나 먹을래요?”
“네?”
“마침 식사 시간이라서요.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그쪽 언니는 꽤 잘 먹는 거 같더라고요. 입맛 비슷하지 않을까? 좀 편견인가?”
무릎을 꿇고 있는 엘라가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밤하늘 같은 그 눈동자에는 조금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수호기사들은 먼저 마당에서 대기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그리곤 리리와 함께 식사를 준비했다. 상을 차리고, 젓가락을 어색해하는 엘리를 위해서 포크도 하나 따로 준비했다.
엘리는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며 웃어줬다.
가만히 보니 벨라와 거의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는데, 벨라 쪽이 눈매가 더 날카롭다는 것과, 조금 곱슬머리인 벨라와는 달리 엘리는 완전한 직모라는 정도의 차이 말고는 없었다.
나는 낯선 음식을 조심스럽게 맛보는 엘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주신교회는 따로 음식 제한 없어요? 뭐, 고기를 못 먹는다든가. 제가 아는 종교 몇 개는 그런 게 있거든요.”
“항상 금지하는 건 없고, 시기별로 금지하는 건 있어요. 음식 자체가 금지되는 시기도 있고요.”
“어, 그걸 먼저 물어봤어야 했나?”
“수도자는 베품 받는 걸 거부해선 안 됩니다. 금제보다도 이게 더 중요해요.”
괜찮다니 다행이네.
남쪽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벨라는 예언이라는 이유로 기꺼이 목숨을 바쳐 악마와 동귀어진을 하려고 했었지.
입을 떼면 죽는 검을 물어 버린 이유도 예언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벨라는 잘 돌아갔어요?”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롯의 심장을 들고 돌아온 성녀를 더 이상 배척할 수 있는 사제는 없어요. 성녀께서는 자신이 교단의 중심이 되리라 선언하셨고, 모두가 그 지위를 받아들여 대주교가 되셨지요.”
“지도자가 되었다는 뜻인가?”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단검을 입에 물고 있고요?”
“콜브’랑데쥬는 한 번 잡으면 절대로 뗄 수 없는 검이에요. 가롯을 정화하신 분이 왜 그것은 그대로 두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성녀의 의지에 의문을 갖는 이들은 거의 사라졌으니까요.”
애초에 그 단검을 문 이유가 사람들이 예언에 욕심을 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지. 벨라는 그 단검이 정화되었다는 걸 숨기는 쪽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예언에 욕심부리는 걸 막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신의 장기말이 아니야.」
벨라가 가롯을 눈앞에 두고, 죽음을 각오하고 뱉은 유언이었다.
생의 마지막 말로 그런 말을 내뱉을 정도로, 벨라는 이 신념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다.
그런 말을 했으면서 기꺼이 대주교가 되었다니. 신앙에 대한 벨라의 생각이 어떤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중에 알 기회가 있겠지.”
잠깐 생각에 잠긴 나를 리리가 잠시 바라보다가는 다시 정신없이 숟가락질을 했다.
식사를 마친 뒤, 차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무슨 매라고 했지?”
“끝없는 어둠 너머에서 날아오는 매. 당신 바보야?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거야?”
리리가 옆에서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대충 부르면 신성모독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내가 그 신을 찾으러 간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인 거죠?”
“맞아요. 우리는 그걸 돕기 위해 왔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가 조금 의문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주신교회의 사람들이 날 어떤 식으로 도와줄 수 있는가. 이거 하나뿐이었다. 당장 우주에서 날아오는 매가 가지고 있는 유물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감조차도 오지 않았으니까.
엘리는 내 의도를 깨달았는지, 다른 이야기를 전부 패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곳으로부터 북서쪽에는 대륙을 관통하는 노미나 산악 지대가 있습니다. 실질적인 제국의 통치권이 시작되는 경계기도 하고요.”
“오…….”
“그곳에 끝없는 어둠 너머에서 날아오는 매의 둥지가 있습니다.”
“어?”
둥지가 있다고?
그럼 생각보다 이야기가 쉬워지는 거 아냐?
“그럼 미리 그곳으로 가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저는 솔직히 걱정되는 부분이에요. 언니는 어째서인지 포식자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으신 거 같긴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이제까진 뭐 쉬웠나.”
엘리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된다는 듯, 잠시 주저하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끝없는 어둠 너머에서 날아오는 매께서는, 단 한 번도 이 지상에 착지한 적이 없어요.”
“……네?”
착지한 적이 없다고?
“그냥 체크포인트 찍고 간다는 말?”
“체크포인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왔다가 갈 거면 왜 와요?”
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히는, 착지에 실패하는 거예요. 그래서, 매번 로크 벨라가 울려 하늘길이 뚫릴 때마다 찾아오는 거예요. 반드시 이 땅에 내려앉기 위해서.”
“……왜 실패해요?”
“악마가 매의 방문에 맞춰서 고개를 들어, 그의 착지를 방해하기 때문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엘리도, 리리도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침묵을 유지해 준 덕분에 머리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지금 내가 갈 곳이 곧 신하고 악마의 전쟁터가 된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온 이유도 그거인데, 그곳은 인간의 몸으로 함부로 갔다가는 자칫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리리.”
“응.”
나는 뒤를 돌아 리리를 봤다. 나를 바라보는 리리의 눈빛에는 다채로운 감정이 담겨 있었는데, 뭔가 허탈한 미소와 자포자기한 한숨이 뒤섞인 오묘한 느낌이었다. 리리도 감정 표현이 꽤 풍부해졌단 말이지.
“본 적 있어?”
“뭐를.”
“신하고 악마가 싸우는 거.”
“……없지.”
“그럼 당장…….”
“보러 가야 한다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리는 ‘이놈 보소.’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엘리에게 말했다.
“순례자님.”
엘리는 이 반응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거리며 리리를 바라보았다.
“말 잘못 했어요. 이놈이 신중하게 움직이길 바랐다면 그곳이 얼마나 지루한 곳인지에 대해서 어필해야 했어요. 거짓말을 해서라도.”
“지루한…… 곳이요?”
“이 인간 완전 미친놈이니까요. 잘 봐요.”
요즘 탐험을 자주 떠나다 보니, 가방에는 언제나 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 짊어지고 떠나도 웬만한 모험은 다 소화할 수 있을 정도.
당장 탐험 준비를 떠나려는 내 귓등을 때리는 그 말들을 무시하려 애쓰며, 나는 이미 가방을 점검하고 있었다.
“어…… 제 말 이해하셨나요?”
“코즈믹 안드로메다 호크랑 악마랑 맞다이 까는 걸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참…….”
리리가 당장 달려와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 맞다. 종교인들은 싫어한댔지.
엘리가 못 알아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볍게 하면서도, 짐을 점검하는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 * *
엘리는 생각했다.
왜 언니가 이 사람을 이렇게나 믿는 걸까? 대단하고 훌륭한, 어디 왕국에서 태어났다면 영웅이라는 호칭마저 붙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태생적 한계 안쪽일 뿐이었고,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엄연한 한계가 존재했다.
엘리는 명령을 받은 뒤 그것에 대해서 되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언니…… 아니, 대주교께서는 남쪽의 인간에게 주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여정을 도우라는 명령을 내리신 거죠?”
“네.”
단검을 문 성녀와 유일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뱀파이어 수호기사,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간이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나요? 아니, 그 인간이 대단한 분이라는 건 잘 알지만…… 이건 신화적 사건입니다. 최대한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이로울 텐데요.”
이때, 엘리는 레베카를 보며 의문을 느꼈다.
레베카가 순간 여러 가지 감정을 담은 미소를 지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가 긴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이 한마디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거죠?”
“저 역시 그분을 뵌 사람으로서, 성녀님의 선택이 옳다고 판단합니다.”
엘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실행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 인간 역시 지배자의 상을 타고났고, 지배자의 상을 타고났다면 황금의 유물에 집착하는 건 당연하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황금의 유물을 얻어 왕좌를 향하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니까.
그들은 그것에 기꺼이 인생을 바칠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엘리는 떠나려는 준비를 하는 인간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바로 모든 짐을 싼 강선후는 말까지 대동하고 본격적인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잠깐, 지금 간다고?”
뒤늦게 찾아온 한 인간 여성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차소희? 뭐지. 어떻게 알고 왔어?”
“아니, 잠깐 집에 들렀다가 온 거지! 이제 나 일 여기서 하니깐. 아니 근데 이렇게 갑자기 출발한다고?”
“시간이 얼마 없다잖아.”
엘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두 명의 인간.
엘리는 그런 강선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황금의 유물을 찾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유물이요?”
강선후는 잠시 지침을 들어 바라보다가 말했다.
“못 찾으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왜 가시나요?”
“태어나서 한 번도 신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게 이유인가요?”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는 쪽은 뱀파이어였다.
“이 인간은 그게 이유가 되는 사람이에요.”
“이젠 익숙하지?”
“아니, 여전히 미쳤다고 생각해.”
“그럼 여기 있을래?”
“……갈래.”
불타는 갈기를 가진 흑마에 올라타는 둘을, 엘리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