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ep41. 북서쪽, 먼 여행길 (2)
물론 당장 떠나는 건 아니었다. 자리를 오래 비울 테니, 어느 정도는 밑바탕의 준비는 필요했으니까.
그렇다면 그동안 내 집을 지켜 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무소야 평소에도 차소희나 서지아가 잘 지켜 주고 있지만, 이제는 베이스캠프에서 내가 관리해야 하는 게 하나 더 늘었잖아?
진서연과 정지훈에게 지하 무덤의 정보를 숨겨 달라는 요청을 해 둔 상황이지만, 그들이 아무리 OWIC 소속이어도 그 지위 자체가 높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까놓고 말해서 통제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는 셈이었지. 서지아가 딱 그 부분을 지적했다.
“그 본부장이라는 양반한테 부탁해 보는 건 어때? 와일드 헌트 사태 때 자기한테 신세도 졌잖아.”
“그런 곳이 있다는 걸 OWIC한테 말하고 싶지가 않아서.”
이내 서지아도 내 의도를 납득했다. 그 회사가 아무리 내 눈치를 본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는 길드원이 하나 있었지.
지금 내가 바위산의 뿌리로 와 있는 이유였다.
“무슨 말인진 알겠지? 셀피.”
「자리를 비우는 동안, 지하 묘지로 가는 입구를 지켜 달라는 말씀이신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식물로 가리면 충분할 거야. 적당히 겁도 좀 주고 하면 사람들이 따로 파고들진 않을 테니까.”
「북서쪽으로 가시는 거예요? 이번에는 힘든 여정이 되겠어요.」
“알고 있는 게 좀 있어?”
「지난번 남쪽 여정 중 우리와 동화한 생명의 정령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거예요. 그때 저의 세력권이 크게 확장되었어요.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이에요.」
“어떤 거?”
「북서쪽은 우리의 영향력이 닿지 않아요.」
“안 닿아? 그 남부 접경지대처럼? 그럼 거기도 죽음의 영역이라는 건가?”
셀피는 몸을 좌우로 물결치며 부정의 의사를 표했다.
「이건 다른 느낌이에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존재는 마주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의 힘이 느껴져요. 이 감정이 두려움이라면,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어요.」
“오.”
이걸로 오히려 확실해졌다. 엘리의 말대로 북서쪽에 이번 사건의 핵심 지역이며, 벌써 정령들이 신의 존재감을 느낄 정도로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이.
“그럼, 부탁할게.”
「우리 주인의 여정을 항상 응원할게요.」
셀피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렐릭시나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리리는 자기 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불과 4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여느 때처럼 몰려와 있었다.
“리리. 이번에는 렐릭시나에 같이 타고 가자.”
“응? 왜? 아니, 상관은 없지만.”
서지아가 서쪽 평야 지대에서 잡아 와 줬다는 뿔 두 개 달린 이계의 야생마 역시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렐릭시나에 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제일 고려하고 있는 게 있다.
“북서쪽은 산악지대라며. 평범한 말이면 오히려 발목을 잡을 거야.”
렐릭시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아니지?”
“컹!”
“……?”
이제는 존슨한테도 배운 건가?
나는 이제 얘의 정체성이 뭔지 잘 모르겠다. 상관은 없지만.
어느새 수호기사를 대동한 엘리는 머리가 복잡한 듯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수호기사단의 도움이 필요 없으신가요?”
“우리끼리 갈게요.”
고개를 끄덕였다. 주신교가 도움이 안 되지는 않겠다만은, 원정을 떠나는 데에 중요한 요소는 최소한의 인구다. 그 정도로 먼 거리를 갈 때는 식량 문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내 의도를 납득하며,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까지는 정말 먼 거리입니다. 지형의 문제도 있는 터라 단순히 말을 타고 가면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어요. 대신에.”
엘리는 내게 구깃하게 접은 천을 내밀었다.
“그 근처에 있는 비프로스트에 대한 정보입니다. 주신교의 재산이지만……. 포식자께서는 비프로스트를 작동시킬 기도문을 가지고 계시지요?”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빼곡하게 새겨진 기도문이 보였다.
“그곳에 신의 둥지가 있다고 했죠?”
“네.”
“그게 어디 있는지만 대충 알려 주실래요? 보통 큰 산맥이 아닐 텐데, 마냥 돌아다니기엔 좀 그래서요.”
엘리는 약간 미소를 지었다.
“아실 필요가 없을 거예요.”
“네?”
“보일 테니까요.”
약간 의문이 들었지만, 엘리가 그렇다고 하니 나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저게 최선의 대답이었던 모양이지. 종교라는 게 약간 추상적인 면이 있기도 하니까.
언제나처럼 가방을 안장에 매달고 렐릭시나의 등에 올라탔다.
진서연이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안 무서워요?”
“무섭다니요? 새삼스럽게.”
“……신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런 느낌이 드네요. 우리 세상에서는 신이 조금 두루뭉술한 게 있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의심 없이 믿기도 수월하고…….”
그렇긴 하다. 신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신비한 게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가장 신비해야 할 단어를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네.
“그런데 그 신이 실제로 우리한테 온다는 게 예견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소름 돋아요.”
“그래서 가는 거죠.”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도 안 가고 그러네요.”
진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코끝에 걸쳐 있는 그 금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손을 흔들었다.
“아홉 주신의 축복이 그대와 함께 걷기를.”
“엘리도 조심히 돌아가요.”
인사를 남기고, 박차를 가하고, 렐릭시나는 흥분한 듯 콧김을 뿜어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같은 시작이었다.
* * *
우리는 바로 북서쪽으로 가지 않고, 우선 서쪽 평야 지대를 경유한 뒤 직각으로 꺾어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셀피가 살고 있는 바위산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자갈 위주로 펼쳐져 있었던 지역을 지나 바위산의 작은 산맥을 넘어가니, 키가 작은 풀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초원지대가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했다.
“히히힝—!”
저 멀리에서 야생마 무리가 렐릭시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우르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서지아가 네 말을 여기에서 잡았나 보네.”
“크르릉—!”
“렐릭시나. 한눈팔지 마.”
“컹-!”
이계의 풍경은 극단적이다. 그 변화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황무지에 가까웠던 베이스캠프 주변을 지나자 순식간에 몽골 느낌이 물씬 풍기는 초원이 펼쳐졌다. 저 멀리 희미하게 산맥의 실루엣이 보였다.
“……노미나 산맥이야. 정확히는 그 외곽이겠지만.”
“저게 외곽이라고?”
충분히 본 봉우리라 느낄 정도로 큰데.
“저 산맥 규모가 그렇게 커?”
“대륙은 투신자살한 신의 시신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 만들어졌어.”
“그렇지?”
“그가 떨어지면서 생긴 상처 부분에서 자란 게 노미나 산맥이야.”
그 정도로 거대하고 압도적이라는 걸 신화적으로 해석한 거겠지.
아니, 이계의 신화는 어쩌면 실제로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불확실성이 이야기를 더 재밌게 만들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앞을 바라보던 리리가 내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신의 깃털.”
작은 바위 산맥을 넘어가자 저 멀리 다시 깃털이 보였다. 이제야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저건 노미나 산맥의 외곽 쪽 능선에 정확히 꽂혀 있었다.
저렇게 거대한 게 유성처럼 떨어졌으니 근처에는 재앙이 벌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야가 트이고 나서 망원경을 통해 자세히 보니.
“……아무런 피해도 없어 보이는데?”
크레이터가 생기지도, 화재의 흔적도 없었다. 그저, 땅에 깊숙하게 뿌리박은 나무처럼 깃털은 꼿꼿이 서 있을 뿐이었다.
저것 자체로도 충분한 관광 명소가 될 정도인데.
“말했잖아. 매는 악신이 아니야.”
“그럼 착한 신이야?”
“……사실, 몰라.”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리리도 진서연처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매가 오고 나서 지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
“악하지 않더라도 그 행동이 결론적으로 우리한테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의미지?”
“……신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니까.”
리리는 티를 내지 않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당신은 무섭지 않아? 신이란 게?”
“저거, 멋있지 않아?”
저 멀리 꽂혀 있는 깃털을 가리키며 말했다.
“매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저런 풍경이 만들어졌어.”
“…….”
“그럼, 그 매가 도착했을 때는 어떤 걸 볼 수 있을까?”
그건 굉장히 멋있겠지.
“다른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그 현장에 내가 같이 있었으면 하는 것뿐이거든.”
“소박한 건지, 무모한 건지 구분이 안 되네.”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그날 밤은 평야 한가운데에서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 보통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는 불을 피우지 않지만, 이계를 모험하면서 나를 위협할 실질적인 위협은 없다는 걸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존슨.”
“왕!”
얘가 주변을 경계하는 거로 충분할 테니까.
텐트 안에서 셀피가 만들어 준 지도와 엘리가 준 약도를 이용해서 조금 더 완벽한 지도를 그렸다. 리리가 가만히 지켜보다가, 삐뚤빼뚤한 선투성이인 내 스케치 위에 그럴싸한 지도를 완성해 주었다. 얘는 그림도 잘 그리네.
“됐다.”
고급스럽게 무두질 된 가죽 위에 그려진 지도.
“이거 완전 로망 아냐?”
“평범한 거 아냐? 집안 좋은 취미 모험가들은 다들 이런 거 들고 다닐 텐데.”
“우리 세상에선 아니야.”
“……당신들이 쓰는 종이가 훨씬 질이 좋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이런 낭만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안타깝구만.
그날 밤은 텐트에서 잔 것치고는 푹 쉴 수 있었다. 바람은 적당히 건조했고, 기분 좋게 차가웠으며, 모닥불을 스쳐 지나가며 따뜻하게 데워졌다.
라 시마가 지평선을 넘어가고, 태양신의 역할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는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평야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는 고대의 유적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있구나.”
비프로스트.
고대인들이 사용했던 차원문이다.
언제나처럼 비프로스트에 새겨져 있는 룬 언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시동어를 외었다.
그러자, 그 구조물 꼭대기에 박혀 있는 보석이 빛나며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표시된다.
“…….”
“멀다.”
리리가 단순하게 던진 말이 모든 걸 표현했다. 이곳에서부터도 여전히 북서쪽, 노미나 산맥의 한 봉우리 꼭대기를 가리키고 있는 비프로스트.
그곳은 딱 봐도 눈이 쌓여 있었기에 나는 방한복을 꺼내 입었다. 리리는 종족 특성상 추운 곳을 잘 견디니, 바람만 막으면서 활동성은 보장하는 외투를 꺼내 줬다.
“가자.”
“응.”
오른손을 내밀었고, 무지개가 모이며 차원문을 만든다.
리리는 내 손을 꽉 붙잡았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감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리리의 손을 끌며 안쪽으로 발을 내밀었다.
감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무지갯빛 소용돌이, 그리고 섬광.
섬광이 끝나면, 우리는 비프로스트의 반대편에 도착하게 된다.
맨 처음 느낀 건 차가운 바람, 살을 엘 정도로 차가운 바람.
그리고, 한층 더 가까워진 태양이 발하는 뜨거운 빛.
뽀드득—
발아래에 밟히는 눈.
그리고, 차가운 냄새.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물과 풀, 그리고 나무의 냄새.
풀 냄새?
나는 눈을 떴다. 리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으로 들어온 풍경은 우리가 품었던 기대감, 그리고 두려움을 압도하고 있었다.
예전에 알프스에 가 본 적 있었다. 수십 겹으로 중첩된 작고 큰 봉우리,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하늘을 자를 듯 솟아 있었던 거대한 산맥의 봉우리들.
평평한 땅이 능선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농경지가 되어 주는 소중한 땅.
그리고 계곡을 흐르는 물과, 추운 지방에서도 견뎌주는 고마운 풀들.
그 모든 것들을 다섯 배로 늘린다면 지금 내 눈앞의 풍경일까?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히말라야의 가장 높은 꼭대기보다도 높게 느껴졌다. 구름은 시야 아래에 있었으며, 푸르기만 했던 하늘이 지평선을 기점으로 거무스름한 빛을 띠었다. 스카이다이빙 할 때 겪었던 현상이다.
공기가 부족해서 숨이 차올랐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산을 둘러싼, 아니 어쩌면 산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신전들, 그리고 언제 지어졌을지 모르는, 어떻게 이 높이에 만들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금빛으로 빛나는 댐. 그곳을 채운 거울 같은 호수.
그리고.
“……거인?”
“……거인하고 악마야.”
그 산봉우리들을 잔디라도 되는 것처럼 밟고 선 채, 서로에게 죽일 듯이 달려드는 거인과 악마의 석상.
저건 누군가 만든 석상일까?
아니면 과거에 언젠가 싸움 중에 모종의 이유로 둘 다 한 번에 굳어 버린 걸까?
흥미 있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중요한 건.
“우리가 앞으로 모험할 곳이야. 리리.”
“……응.”
이곳이 앞으로 우리의 무대가 될 세상이라는 사실. 이거 하나뿐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