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ep43.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1)
거인은 포효를 질렀다. 악에 받히고 증오로 가득한 함성. 고통과 분노, 그리고 대상이 없는 폭발적인 복수심을 입으로, 코로, 그리고 움푹 들어간 그 눈으로 뿜어냈다.
모두가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으나 강선후는 그 장면의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후드득 떨어지는 흙먼지를 배경으로 한 그 모습에서 장엄함을 느꼈다.
거인의 육체는 창백한 회색빛에 뼈마디가 다 드러날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하고 지하의 무덤 도시에 갇혀 있었던 거인은 과거 불멸자로 살아왔던 존재감을 잃은 듯 보였다.
하지만, 묘지기는 여전히 불멸자였다. 불명예스럽고 고개 숙이는 삶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나, 그 안에 품고 있던 호기와 폭발적인 열정은 불멸자의 형태를 온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저 오랜 기간 쓰지 않아 감정의 사용법을 잊고 영혼의 색이 바랬을 뿐이었다.
묘지기는 거인의 운명을 묶은 증오를, 분노를, 파괴하고자 하는 본능을 악마에게 뿜어냈다. 나약하고 겁에 질리기 쉬운 필멸자가 아니라 몇 시대 동안이나 신의 강림을 막아 낸 강대한 존재에게 정면으로 돌격했다.
갑작스럽게 발밑에서 튀어나온 거인의 등장은 이 고원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악마마저도.
땅 아래로 깊게 뿌리박혀 있었던 거대한 허수아비. 성벽과도 같은 그것이 묘지기의 손아귀에 단번에 휘청거렸다.
쿵- 쿵-!
아직 지하에 파뭍혀 있는 두 발을 꺼내어 땅에 지탱한 채, 묘지기는 악마를 밀어붙였다.
기긱- 기기기기긱—
악마의 넝마로 이루어진 얼굴이 괴이하게 떨리면서 묘지기에게 향했다. 그 눈과 입구멍에서 명계가 드러났으나 불멸의 존재에게 명계의 공포란 전혀 와닿지 않는 것이었다. 묘지기의 탁한 눈동자는 악마의 이목구비를 명확히 직시했다.
허수아비의 입이 벌어졌다. 실로 꿰매어져 있는 그 안에서 검고 진득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영혼 가진 존재를 뒤흔드는 독기에 거인은 비틀거렸다.
쿵!
두어 번의 뒷걸음질이었지만 땅이 뒤흔들렸다. 묘지기는 멀어져 가는 정신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조금 여유가 생긴 뒤, 우연히 돌린 시선에 고원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전부 묘지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진한 공포심이 서려 있었다. 묘지기는 그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눈을 감았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묘지기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
과거, 이 지하에서 유령들이 묘지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저런 감정이 담겨 있고는 했으니까.
그 순간, 다시 떠올렸다.
「우리가 너를 용서한다.」
「그것이 시대를 빛냈던 황금의 율법이니.」
묘지기는 다시 눈을 떴다. 그때 시야에 들어온 건 한 명의 인간이었다.
자신을 찾아왔던 그 인간이었다.
인간은 웃고 있었다.
묘지기는 다시, 인간들의 적에게 달려들었다.
“묘지기!”
그 사이에 강선후와 리리는 말을 달려 묘지기의 발치 아래까지 다가왔다.
“잠깐 몸 좀 빌릴게!”
흑마는 묘지기의 표면을 따라 달려 오르기 시작했다. 말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움직임과 역량.
순식간에 묘지기의 허리춤에 도착했고, 그 균형을 지탱하던 관성이 사라지는 순간, 강선후는 뛰어올랐다. 뱀파이어는 흑마의 비어 버린 앞자리로 옮겨 간 뒤, 고삐를 잡고 다시 땅으로 귀환했다.
그 사이에 허공에서 떨어지던 강선후는 허리를 비틀며 활을 쏘았다. 밧줄 화살은 묘지기의 팔꿈치에 박혔다. 강선후는 밧줄을 잡고 그 원심력에 몸을 실었다. 호를 그리며 빠른 속도로 활강하다가 기회를 맞춰 손을 놓자 그 몸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렇게, 강선후는 허수아비의 머리를 넘을 수 있었다. 비로소 그 뒤편을 보게 되었고.
“……찾았다!”
악마의 심장은 그곳에 있었다. 밀짚모자 아래쪽, 뒤통수와 등이 연결되는 그 부분.
허수아비의 뒤쪽은 상상하지 못한 끔찍함이 있었다. 칠흑과 회색빛이 뒤섞인 빛깔과 더불어, 그곳에서 돋아난 수백 수천 개의 촉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강선후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새 기생체의 가죽과 천잠사의 망토를 뒤집어쓴 그는 다시 한번 밧줄 화살을 겨냥했다. 목표는 악마의 표면.
그 순간, 악마의 등에서 흐느적거리던 촉수 수백 개가 늘어지며 강선후에게 달려들었다. 그것들은 송곳같이 날카로운 촉을 내밀었고, 강선후는 서둘러 가죽 망토로 몸을 가리며 허리를 틀었다.
다행히 촉수는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충격에 튕겨 나갔지만, 관통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다. 기생체의 가죽 망토가 예리하게 갈라져 있는 걸 보고 소름이 돋았다.
그는 추락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외쳤다.
“묘지기! 악마 놈 심장은 뒤통수에 있어!”
그와 동시에 묘지기는 고함을 지르며 다시 허수아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었다. 강선후는 지금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으며, 그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다시 활을 꺼낸 뒤, 밧줄 화살을 조준했다. 그 순간.
“끄아아아— 아아아아— 아—.”
길고 음산한, 차분하면서도 고막이 찢어질 듯한 모순투성이의 비명. 퍼져 나가는 거대한 충격파에 거인마저도 튕겨 나갔다. 허공에 지탱할 것도, 막아 줄 것도 없이 떠 있는 강선후가 어찌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빠른 속도로 허공을 활강하며 추락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고원 가장자리의 비탈길에 처박히게 된다. 그 충격을 기생체의 망토가 버텨 줄 수 있을까? 강선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천운이 닿아 죽지 않더라도, 이번 건 좀 아플 예정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 거인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강선후에게 손을 뻗어서 부여잡았다. 길게 뻗은 그 팔의 앙상함이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났으나, 그 아귀가 가지고 있는 힘은 강선후를 단단히 부여잡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콰가강-!
거인은 저수지까지 날아가 측면에 있는 산에 부딪혔다. 이제는 물이 없는 저수지 구덩이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땅을 부여잡아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거인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저 멀리서 흑마가 푸른 불꽃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거인이 손바닥을 펴자 강선후는 그 안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리리는 말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달려갔다.
“당신! 괜찮아?”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었던 강선후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리리는 부딪힐 뻔한 머리를 간신히 뒤로 빼면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강선후는 잠시 멍 때리다가 고개를 돌려 리리와 눈을 마주쳤다.
“정신이 들어?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잘못된 거 아니지?”
“어, 귀가 아파.”
“귀……? 잠깐 봐 봐.”
“아니, 귀에 대고 그렇게 소리치니까 당연히 아프지. 머리가 울리네.”
“…….”
냉정과 침착함을 최대한 유지하던 리리의 눈빛이 크게 떨렸다. 강선후는 그녀가 참아 왔던 화를 터트릴 거라 눈치챘다.
“나 놀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강선후를 매섭게 째려보는 리리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거야? 여기에서 그냥 죽어 버릴 생각이었어? 이 나쁜 자식아.”
강선후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하게 말하는 법을 몰랐고, 사실 관심도 없었다. 리리는 그런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술을 살짝 벌렸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로.”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그 작은 목소리에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리리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켰다.
위를 바라보았다.
검은 허수아비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별과 달, 그리고 희미한 태양이 떠 있었다. 달과 나란히 위치한 새의 실루엣이 보였다. 매 기사단은 정령의 가호를 믿고 마수들을 물리치며 악마에게 전진하고 있었다.
거인이 몸을 일으켰고, 강선후의 손등에서는 송곳니 문신이 다시금 빛을 발했다.
아마, 역사 속에서 처음 있을 악마의 위기였다.
악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입을 찢어져라 벌렸다.
그 아가리 속 심연에서 하나의 검은 불씨가 하늘로 떠올랐다. 너무나 미약하여 어쩌면 신경 쓸 수도차 없는 그 불씨는 하늘에 닿았고.
거대한 검은 막이 펼쳐졌다.
두 개의 달과 두 개의 태양, 그리고 별이 사라졌다.
오직 암흑만이 하늘에 남았다.
리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떠올렸다.
신에 비하면 나약하기 그지없는 이 악마가 신의 강림을 방해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 * *
리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악마의 위협과 마수의 습격에 대비할 정신은 없었다. 이제까지 받았던 모든 전투 훈련조차 지금 넋이 나가는 걸 막아줄 수 없었다.
하늘은 온통 검었다. 항상 볼 수 있었던 별도, 달도, 태양도, 그리고 우주를 항해하는 여행자들이 타고 다닌다는 보라색 물결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이 차단되었다. 악마의 힘이 이 정도일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는데.
“이게 다 뭐야?”
리리는 손이 떨리기 시작함을 느꼈다.
이런 일이 가능한가?
가롯에 비해서 이 허수아비의 전투력 자체는 강한 편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그렇기에 다른 부분에 더 많은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리리는 과거 배웠던 한 문장을 기억해 냈다.
—신이 거대하고 거대한 존재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소리였다. 세상 위 피조물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는 존재. 그게 신. 고찰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 당연한 소리.
하지만, 역설적으로 악마가 신의 강림을 막을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신은 위대한 존재였다. 너무나 과하게 위대한 존재였다.
그에 비해서 우리는 나약한 존재였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마저도 우리의 영혼이 뿜어내는 빛은 신에 비해선 그저 미약했다.
그래서 아주 조금만 그 빛을 가리더라도 신은 우리를 볼 수 없었다.
그 위대함 앞에서 우리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작았기에.
신의 강림을 막고자 한 악마는 그 사실을 이용했다.
그저 세상의 빛이 신에게 닿지 않도록 가리는 행동만으로 신이 이곳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천 년마다 반복되어 온 신을 향한 기만.
이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다면 지금 일어난 이 현상 역시 그저 일시적일 뿐일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희망이 보였다.
신의 강림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도망쳐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그 나약한 감정이 한순간 리리의 마음속을 덮쳤다. 리리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 계속 싸울 거지?”
이 남자가 계속 싸우면 나도 그렇게 한다.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리리는 결의에 찬 얼굴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어둠만이 남은 하늘 아래에서는 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느낄 수 있었다. 강선후는 전혀 상관없는 지평선 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도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평선에서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미약하게 시작한 그 빛은 서서히 땅을 비추고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등대인가? 점차 밝아지는 그 빛을 보며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등대가 이런 빛을 낼 수 있어?”
리리는 참지 못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태양도, 달도, 별도 사라진 하늘. 그 누구도 빛을 희망할 수 없는 이 순간, 갑자기 지평선에서 시작된 황금색 빛이 온 세상을 밝히기 시작했다. 희망은 어떤 식으로든 꺼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끝을 모르고 찬란해지는 그 빛은 끝내 눈동자를 타고 들어와 마음을 밝혔다.
그 순간, 리리는 머릿속으로 저 빛의 정체가 스며들어왔다.
저건, 황금의 시대에 만들어진 유산 중 하나.
“엘 네르키오el nercio…….”
강선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왕의 무덤.”
황금을 실망시킨 이 시대마저 포기하지 않았던 왕이 후세를 위해 남겨 둔 유산.
「저건, 황금의 율법…….」
묘지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황금의 시대가 끝난 뒤 찾아온 기나긴 풍화의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의미했다.
이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은 황금왕에게 죄책감을 품고 살아갔다. 그가 쌓아올린 영광을 유지조차 못하고, 끝내 무너진 시대를 만든 책임자들이었으니 그랬다.
하지만 저 무덤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나는 너를 용서한다.
— 그것이 시대를 빛냈던 황금의 율법이니.
후손을 용서한 아버지의 빛은 신에게서 격리된 세상마저도 환하게 밝혔다.
리리는 그 따뜻함에 눈물을 흘렸다.
* * *
강선후는 어느새 렐릭시나의 등에 타고 저수지로 다가갔다. 아슬아슬한 절벽에 선 채, 물의 정령이 떠나고 남은 휑한 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그저 물에 젖은 바위와 진흙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저수지 바닥 전체에 그려져 있는 거대하고 복잡한 문양이 룬을 의미한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빛을 비추는 마법.”
강선후는 순식간에 그 문자를 해독했다. 어느새 상급기사 상기나가 전장을 이탈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외부인!”
그는 호흡을 가까스로 가다듬으며 말했다.
“방법을, 방법을 찾았소?”
“저 아래를 보세요.”
강선후는 저수지 바닥을 가리켰다.
“룬?”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아시오?”
“신을 향해 비추는 거울. 이라고 적혀 있네요.”
“……거울?”
강선후는 왕의 무덤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황금색 빛.
“이 거울로 빛을 하늘로 보낸다면. 그렇게 신에게 닿게 할 수 있다면…….”
“신은 다시 우리를 볼 수 있게 돼!”
리리가 외쳤다.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난처한 눈빛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규모가 너무 컸다. 손상된 문자를 완성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으나, 저건 강선후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크기만 해도 거대한 운동장에 버금갔으니까.
그 순간.
“크아아아아!”
묘지기가 괴성을 지르며 강선후에게 달려들었다. 리리와 상기나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움찔거리는 그때, 묘지기는 강선후에게 달려들며 그를 낚아챘다.
묘지기는 강선후를 어깨 위에 태우고 저수지 아래로 뛰어들었다. 거대한 충격과 함께 진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묘지기는 삽을 거칠게 들어 올렸고, 그 신호를 깨달은 강선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직선.”
쿵!
그 명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묘지기는 룬 문자의 획이 끊어진 지점에 삽을 박아넣고 달렸다.
쿠그그그그그그!
진흙과 바위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그렇게 그어지는 선은 명확히 룬을 복구하고 있었다.
* * *
기사단장 파샹은 상기나에게 외부인을 도우라 명한 뒤, 선봉에서 전장을 지휘했다.
“뒤돌지 마라! 끝까지 싸워라!”
마수와 볏짚 병사들은 어느 순간 외부인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 행동이 너무나 노골적이었기에, 외부인이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서 막았다. 지금 이 전장에서 카르칼 일족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으니까.
몇의 단원을 희생하면서도 끝까지 지켜 낸 방어선.
외부인이 뒤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를 끝까지 믿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끝내 그 행동이 옳다는 게 증명되었다.
어느 순간 마수들이 멈췄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몇은 벌써 등을 보이고 추한 모습으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파샹을 포함한 기사단원은 검을 늘어트리고 뒤를 바라보았다.
저수지 상공에 거대한 거울이 떠올랐다.
그건 왕의 무덤에서 비추는 찬란한 빛을 반사해 하늘로 쏘아보내고 있었다.
파샹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황금색 빛은 구름 위에 아름다운 원형의 문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구름이 갈라졌다.
악마가 쏘아 올린 검은 장막이 못에 걸린 비단처럼 찢어져 흩어졌다.
그 뒤에는 매가 있었다.
외부인은 지금부터 볼 장면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소 지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셨네.”
뱀파이어도 입을 가린 채,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뜬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우주를 가득 채웠던 성운(星雲)이 매와 함께 날아와 온 하늘을 뒤덮었다. 그 날개와 몸은 성운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매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거대한 별의 구름이 따라 움직였다. 누구도 살아생전 저것보다 무게감 있는 구름을 본 적이 없었다.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빛은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 매의 날개에서 떨어져나온 깃털들이었다.
날개의 양쪽 끝은 지평선 너머에 걸쳐져 있었으며, 거대하고 날카로운 발이 움켜쥔 건 띠를 가진 소행성이었다. 강선후는 그것을 보며 토성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재앙이 될 것 같은 위대한 존재의 날갯짓은 역설적으로 평화로웠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늙고 고집 센 산맥도 지금 순간은 숨을 죽였다.
매는 그 검은 눈으로 지상을 내려다보았고, 강선후는 그런 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신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