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ep43.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3)
나는 이계에 끌려오기 전에도 많은 여행을 했었다. 물론 산악 지대의 사람들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였던가? 사람의 문화와 성향은 살고 있는 지형과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난번 파도치는 사막에서 만난 종족, 베두헨들을 떠올려 봤다. 그들은 외부인에 익숙했고, 연회를 좋아했다. 상단을 꾸리고 방랑하는 민족이었기에 그랬다.
그에 비해서 카르칼 일족은 산악 지대의 사람들이었다. 평생 동안 외부인을 한 번도 못 보는 경우마저 있는 사람들은 타국의 인간을 경계하기 마련이고, 손님을 맞이하는 문화가 그다지 없는 경우도 왕왕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특히, 머리가 아직 덜 굳은 어린 사람일수록 더 그렇지.
“사막이요? 모래가 가득해요?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해요?”
“어, 어떻게 가능하냐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데. 너무 건조하고 땅에 양분이 없으면 흙은 모래가 되니까……?”
“물이 없어요? 그 동네 사람들은 물 없이도 살 수 있어요?”
“음, 우기 때 내리는 비가 모이는 지역이 있어. 자세히 설명하려면 말이 길어지는데…….”
“비가 내려요? 비가 내리는데 왜 건조해요? 물이 있으면 건조가 아니지 않나?”
“말리나!”
말리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상기나의 눈빛이 제법 난처해 보였다. 말리나는 기사단 내에서도 베테랑인 상급 기사의 날 선 호통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귀인께서 다 얘기해 준다고 하셨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전투에서 귀환한 사람한테 그게 예의냐!”
“나도 여기서 할 거 다 하고 있었거든! 다들 안 다치고 잘 왔으면 된 거 아니에요?”
“이 녀석이 한마디를 안 지고……!”
“메롱이다!”
말리나는 혀를 날름 빼물더니, 상기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펄쩍 뛰어 도망쳤다. 그사이에 껴 있으니 멋쩍게 웃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상기나는 눈을 부라리며 도망치는 말리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는 말했다.
“실례로군. 저 녀석은 마을에서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서…… 교육을 좀 시켜야 할 텐데 말이오.”
“괜찮아요. 귀엽잖아요.”
나는 말리나가 도망쳐나간 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다.
“저는 오히려 저런 대우가 편한 사람이라서.”
탐험의 장점은 사람을 자주 만나는 거고, 단점은 누구 한 명과 긴 유대를 만들기 힘들다는 거다. 그래서 매번 예의니 규범이니 따지는 건 조금 피곤한 일이 될 뿐이었다.
내 쪽에서 살갑게 다가가는 건 잘 못하는 편이니, 남이 먼저 그래 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지.
“바람 좀 쐬고 와도 될까요?”
“아, 그러시오. 혹시 부족한 게 있다면 주저 없이 말씀하시오. 여기는 외부인을 맞이할 준비가 잘 안 되어 있는 곳이라서.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잠자리와 먹을 게 있다면 원래 부족함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이니 애초에 요구할 것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리나가 나갔던 문으로 향했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다. 이전의 그 거대한 현상들이 마치 없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평화롭고 일상적인 이계의 하늘이었다.
그 풍경 속에서 말리나는 다른 오두막 뒤에 숨어서 머리만 내밀고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은 마을이 끝나는 지점, 즉, 농지로 사용되는 평야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는데, 말리나가 그 방향을 향해 올려다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곳에는 거인이 있었다.
무덤 도시에 있었던 이름 없는 묘지기.
그는 평야에 아무렇게나 앉아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디오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슬쩍 말리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말리나는 내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거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서워?”
“……거인은 사람을 잡아먹는댔어요. 북쪽 산악지대에는 거인이 지배하는 영지가 있는데, 절대로 그곳은 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직접 보니까 어때. 그렇게 보여?”
말리나는 계속해서 거인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무섭게 생겼어요. 그런데…… 쓸쓸해 보여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은 그런 종족이지. 종족인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거인의 팔에 깊게 새겨진 상처가 보였다. 나는 어느새 왼손을 들어 거인에게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땅이 젖는가 싶더니 물방울들이 올라왔다. 흙에서 하늘로 오르는 여우비는 묘지기를 감싸 안았다.
묘지기의 팔에 새겨졌던 깊은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묘지기는 상처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내게 돌렸다. 우리 둘 다 별말은 하지 않았다.
말리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타인의 관심은 아무리 노출되어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디 공자님이세요?”
“아니.”
“그럼, 왕자님인가요?”
“나 같은 왕자가 있으면 나라가 곤란해질걸?”
“……기사단장님한테 들었어요. 셀 수 없는 시대 동안 실패해 왔던 우리 일족의 숙명을 외부인이 이루게 해 줬다고요.”
“그런 건 난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잘된 일이라면 아무래도 좋은 거네.”
“왜 해 준 거예요? 당신이 부동의 노인에서 내려온 신령님이 아니라 그냥 외부인이면……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따로 있었나요?”
왜 그런 짓을 했냐는 질문은 주기적으로 듣는다. 하지만, 나는 저 질문을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다. ‘왜’에 대해서 의미를 둔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신이 강림했을 때, 봤지?”
말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선은 산악지대 저편 허공에서 자전하고 있는 천체로 향해 있었다.
신이 지상에 두고 간 물건. 물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거대하다. 선물일지 다른 무언가일지는 직접 가 봐야겠지만 말이야.
“어땠어?”
“아름다웠어요. 산의 눈물이 흐르는 시기의 풍경보다도 훨씬.”
“그래서 온 거야. 그걸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그것뿐이에요?”
“어.”
말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 거 같아요.”
말리나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를 보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뭔가 늙은 생각 같긴 하지만…….
“말리나. 혹시 뱀파이어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
“저쪽이요.”
말리나는 작은 봉우리를 가리켰다. 산기라기보단 언덕에 가까웠다. 산악 지대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양치기가 머물 것 같이 생긴 그런 언덕.
나는 바로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덕 위에는 두껍고 키가 낮은 나무가 하나 있었다. 산악 지대의 나무들은 세찬 계곡의 바람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낮고 두껍게 자라는 경향이 있었다.
“리리.”
리리는 잠시 갈 데가 있다면서 대접해 준다는 카르칼 일족의 권유도 거절한 채 이곳으로 향했다. 나무 뒤에서 리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다 먹었어?”
“왜 여기 있어?”
“사람들이 놀랄 테니까. 그리고 인간들은 원래 뱀파이어를 좋아하지 않아.”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의 관계는 리리에게 뒤늦게 들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도 그토록이나 경계한 게 그 이유 때문이랬지. 나는 이제까지 감도 못 잡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제 카르칼 일족은 리리를 싫어하지 않을 텐데. 거인마저 받아들인 사람이 뱀파이어라고 배척하진 않을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리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최소한 이 모습은 그 사람들을 많이 놀라게 할걸.”
그제야 나는 나무 뒤로 돌아갔다. 리리가 일부러 내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래도, 절대로 숨기고 싶은 마음까진 없었는지, 내 접근을 딱히 제지하진 않았다.
어느새 리리는 처음 입고 있었던 뱀파이어 귀족의 드레스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뱀파이어의 외형 변화에 맞출 수 있는 옷은 뱀파이어의 옷뿐일 테니까.
내가 준 탐험가 복장은 거기에는 적합하지 않겠지.
리리의 허리춤에는 날개가 하나 돋아나 있었다. 박쥐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달빛을 받아 검은색 광택을 은은하게 발하는 날개.
쌍을 이루지도 않고 개별적으로도 보잘것없는 크기라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날개였다. 리리는 그저 지평선 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서 슬쩍 바라보았다. 살짝 삐져나온 송곳니, 그리고 어느 때보다 붉어서 피에 물들어 있는 듯한 눈동자. 그리고 이전보다도 훨씬 하얗게 보이는 피부. 이건 달빛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빤히 바라보면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
“덧니 난 거 같아. 그나마 좀 덜 밋밋해져서 잘 어울리는데?”
“하, 진짜…….”
리리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지금 누구 앞에서 분위기 잡으려고.”
“당신, 한 번쯤은 좀 분위기 맞춰 줄 수 없겠어?”
“절대 그럴 수 없지.”
나는 그 옆에서 나무에 기대 앉으며 말했다.
“잘못된 건 아니지?”
리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게 본모습에 더 가까워. 거짓말은 하기 싫으니까 말할게.”
“잘못된 게 아니라면 됐어. 늑대인간 같은 거야? 달 보면 변하고?”
“반대야. 우리는 운데라의 가호를 받은 종족이고, 운데라의 가호를 오래 못 받으면 이렇게 변할 수 있어. 허수아비가 운데라를 오래 가리기도 했고 또…….”
리리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피를 사용하고 나니 막을 수 없겠더라고.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왜 말 안 했어?”
“……부끄러워서. 언젠가는 밝혀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뭐가 부끄럽나 싶긴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좀 공감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지. 이럴 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는 게 좋다는 걸 잘 안다.
리리는 그렇게 지평선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부탁 하나 해도 돼?”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었는데, 수치심을 참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뱀파이어는 자제가 미덕인 종족이라지?
그 이유는, 자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추하다고 여겨서일 거다.
“피를…… 좀 부탁해도 될까? 싫으면 부담 가지지 말고 거절해도 되니까.”
“……솔직히 이제 와서라는 생각이 들거든? 처음 만날 때부터 자면서 한 번쯤은 물릴 각오는 했었는데.”
“내가 무슨 모기야?”
나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팔을 내밀어 줬다. 딱 한 번 느껴 본 리리의 송곳니는 예전과 같이 주삿바늘처럼 날카로웠다. 그래서 오히려 딱히 아픔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잠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어떤 감상에 빠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실용적인 이유에서, 그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쪽 끝에 그게 있었지?”
“엘 네르키오el nercio.”
왕의 무덤.
태양과 달이 모두 사라진 그 순간, 마치 그때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 왕의 무덤이 세상을 밝혔다. 그 빛은 너무 찬란했고, 오직 태양만이 가지고 있을 법한 따뜻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왕의 무덤.
그게 의미하는 건 아주 간단했다.
“황금의 왕국이 저기에 있어.”
“응.”
오히려 리리는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황금 왕좌에 대한 내 생각은 카르칼 일족이 악마를 대하는 거랑 다르지 않았어. 그냥 습관처럼, 달성 자체에는 의미를 두지 않고…… 도피하고 있었어.”
리리는 그렇게 나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 보이니까 느낌이 이상해. 어쩌면 진짜 닿을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하니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왕의 무덤이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내가 가장 처음 배웠던 룬 문자를 떠올렸다. 오랜 조난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미치지 않고 계속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줬던 그 문자를.
그리고 천천히 입으로 외었다.
『신에게 버림받은 황금의 왕국, 나는 그곳에 왕의 검을 묻었도다.』
『왕의 검을 손에 쥔 자.』
『영원한 왕좌에 앉으리라.』
눈을 떴다. 손등에서 주홍빛 문신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리리의 어깨 안쪽, 드레스 너머로 연보랏빛 광채가 희미하게 보였다. 저건 리리가 가지고 있는 지배자, 배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인도자의 문신이었다.
다시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왕의 무덤이 아주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대충 보면 지평선에 걸쳐진 별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왕의 무덤에서 발하는 빛은 우리의 문신과 희미한 선으로 연결되었다.
황금의 왕국은 예전부터 쭉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