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ep43.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4)
매 기사단은 주신교의 하위 집단 중 하나였고, 그들은 끝없는 어둠 너머의 매를 섬겼다.
그들의 신전은 최초의 전쟁터, 혹은 신의 둥지라 불리는 산악지대에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거주 구역이 쭉 늘어져 있었다.
여느 때처럼 운데라가 지상을 비추고 라 시마가 가로지르는 밤, 잔뜩 코 고는 아버지 곁을 살금살금 지나쳐 문밖으로 나간 말리나는 휘파람을 휙휙 내뱉으며 하늘로 손을 올렸다.
검은날개매가 날아와 그녀의 손에 가볍게 착지했다. 날카로운 발톱이지만 따로 팔 보호구는 필요 없었다. 카르칼 일족과 매는 단순히 주종 관계가 아닌,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친구였으니까.
“삐이이익—.”
“쉿! 조용히 해. 들킬라.”
말리나는 매의 턱을 조금 긁어 주고는 말했다.
“귀인께서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줘.”
매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고, 곧 조금 떨어진 곳, 이 마을이 있는 언덕 아래의 상공을 빙빙 돌았다.
그곳에는 좀 떨어져 있는 낡은 오두막이 한 채 있었다. 고산 지대의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저 오두막은 농사를 짓기 위해 임시로 지어 놓은 창고였다. 귀인은 카르칼 일족과 매 기사단의 대접을 사양하고, 자진해서 저 동떨어져 있는 낡은 오두막을 선택했다.
말리나는 내리막을 달려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무 뒤에 살짝 숨어 엿봤다. 뻥 뚫려 있는 창문은 임시 천으로 가려져 바람을 막고 있었으며, 안쪽에 밝혀져 있는 빛이 조금 세어 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오두막 바로 옆으로 다가간 말리나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았다. 자고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이 시간에 방문하는 건 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 말리나의 호기심이 훨씬 더 강했다.
“……계세요?”
“누구?”
뱀파이어의 목소리였다. 저 둘은 항상 같이 다니나? 잠도 같이 자는 건가?
……지금 내가 들어가면 들어가면 안 되려나?
“말리나예요. 잠이 안 와서 잠깐 와 봤는데, 죄송…….”
“들어와.”
귀인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말리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렇게 문을 열어 안쪽을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처음 보는 재질의 종이가 서로 겹쳐 거대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자신이 절대로 해독할 수 없는 문자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여기가 좀 시끄러웠나?”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말리나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퍽 이상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오히려 그런 이유였기에 납득했다.
“궁금한 거 못 참긴 하지. 그런데, 놀라지 마요?”
말리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 귀퉁이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다가, 조용히 외쳤다.
“루디나ludina.”
말리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인간의 혓바닥과 성대에서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 발음과 억양.
그와 동시에 허공에 빛이 번쩍였다. 말리나는 놀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바로 어길 수밖에 없었다. 비명이 나오는 걸 양 손바닥으로 꾹 눌러 막았다.
“모로스moros.”
사라지던 섬광이 허공에 고정되었다. 강선후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뱀파이어가 몸을 낮춘 채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섬광은 허공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느린 속도였지만 확실히 어떤 문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문자가 완성되었다.
그건 빛으로 된 룬이었다. 허공에 수직으로 세워진 그것은 땅에 그려진 것과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냈다.
뱀파이어의 눈이 점점 커졌다.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다.
“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몰랐어.”
“당신, 새로운 룬 문자를 창조해 냈어! 황금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리리도, 강선후도 완성된 룬 문자를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말리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게 뭐예요?”
“마르카마 투 엘 네르키오 데 루디나marlkaama to el nercio de ludina.”
“어, 마르카마 투…… 그게 뭐예요? 주문이에요?”
“명령어.”
“무슨 명령……?”
“빛의 형태로 왕의 무덤을 추적하라.”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반지 낀 손을 문자에 가져다 댔다. 문자는 그대로 반지에 흡수되었다. 그곳에 있었던 다섯 개의 검푸른 보석 중 하나가 빛을 발했다.
강선후는 그걸 가지고 밖으로 나간 뒤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리는 데에 10분도 넘게 걸리던 문자는 순식간에 반지에서 튀어나와 허공을 장식했고, 그 아름다운 형태 한가운데서 빛을 발하며 지평선을 가리켰다.
말리나는 저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허수아비가 잠시 태양과 달을 가렸을 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을 밝혀 주던 지평선의 황금별.
그게 바로 저 방향에 있었다.
리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디에서든, 왕의 무덤을 추적할 수 있게 됐네.”
“이계에는 제대로 된 나침반이 없으니까…… 나중에 헷갈리면 억울하잖아?”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후는 다시 룬 문자를 반지로 흡수했다.
말리나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그 모든 행동을 목격했다. 그녀 입장에선 낡은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룬이라는 언어.
인간은 태생적으로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현하며, 또 연구하고, 새로운 걸 창조해 내는 외부인.
말리나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너무 멋있다!
“오빠는 그거 어디에서 배웠어요?”
“돌아다니다 보니까 여기저기에서 들었던 게 있어서. 근데 언제부터 오빠가 됐어?”
“……바깥세상은 그런 걸 쓰는 사람들이 많아요?”
강선후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이어서 질문하는 말리나.
강선후는 리리를 바라보았고,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은 거의 없지.”
말리나는 생각했다. 밖을 돌아다닌다는 건 이토록이나 멋진 일이구나.
밖에는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많구나.
어린 말리나는 아직 세상에 대해 실망한 게 많지 않았기에, 금방 그런 환상에 빠져들었다.
“리리.”
“응.”
“짐 싸 두자. 해 뜨면 출발할 거야.”
“이번에는 가져갈 게 많지 않겠네.”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문객이 언젠가 떠난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말리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녀가 살아생전 처음 보는 외부인이었기에 그랬다.
“……내일 바로 가요?”
“그렇지?”
“어디로 가요?”
“저기로.”
강선후는 손가락으로 천체를 가리켰다. 허공에서 천천히 자전하고 있는 고리를 달고 있는 행성.
황금 지침은 저곳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강선후는 말리나가 몸을 배배 꼬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걸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도 언젠가 저랬었지.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익숙해져야 하는 건 불편한 잠자리도, 더러운 화장실도 아닌 헤어지는 아쉬움이었으니까.
말리나는 그런 걸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쉬워?”
“일주일만…… 아니, 하루만 더 있으면 안 돼요?”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루만이라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더 많단 말이에요.”
“다음에 다시 오면 되잖아?”
입술을 삐죽 내밀었던 말리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또 올 거죠?”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우리 아직 시간 많잖아.”
뱀파이어는 강선후가 그렇게 말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라도 있었다는 듯, 가방에서 나뭇가지를 꺼내 불을 붙였다. 차가운 계곡의 밤바람을 데우는 온기가 전해졌다.
“용, 들어 봤어?”
“용이요? 당연히 알죠!”
“내가 만난 용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말리나가 그 옆에 앉았다. 모닥불을 반사하는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대신에, 네 이야기도 궁금해.”
“제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는데요? 저는 평생 여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서…….”
강선후는 말리나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푸른 문양.
“이거에 대해서 이야기해 줘. 카르칼 일족은 모두 그런 문양을 관자놀이에 그려 놓았더라고.”
말리나는 자신도 이 모험가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이 모험가의 수많은 경험 중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산악 마을에서 매와 함께 사는 소녀는 그것만으로 기뻐했다.
* * *
“바로 떠나시오?”
강선후가 짐을 싸고 있다는 소식에 고원으로 조사를 나갔던 기사단장 파샹이 급하게 돌아왔다. 송별회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소식도 없이 떠난다는 사실에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네, 이제 다른 데도 가 봐야 하니까.”
“어디로 가오?”
강선후는 잠시 허공에 떠 있는 행성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저기를 갈 생각인데…… 그 전에, 집에 잠깐 가서 쉬다가 출발하고 싶거든요.”
“그럼 그리하면 되는 거 아니오?”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들으셨잖아요?”
“부동의 노인 봉우리 정상에서 눈사태와 함께 달려 내려왔다고 했지.”
강선후는 그 전설 같은 등장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그러고는 조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이 왔던 봉우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저기, 내려올 수는 있었는데 다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서요.”
너무 가파르고, 강선후가 만들어 낸 눈사태 때문에 없었던 절벽마저 생겨 버렸다. 어찌어찌하면 등반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으나, 오르다가 만나는 눈사태는 내려가면서 일으킨 눈사태보다 더 곤란할 게 분명했다.
즉, 저 꼭대기에 있을 비프로스트는 왕복이 아니라 편도에 가까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묘지기가 입을 열었다.
「안 될 거 없다. 인간.」
“너 점점 말을 잘하게 되네? 예전에는 단어로 끊어서 말하더만.”
점점 이성을 되찾아가는 것 같아 강선후가 보기에는 그저 좋았다. 묘지기는 그런 강선후를 그저 내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강선후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안 될 게 없다니?”
「인간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어떻게?”
묘지기는 아래를 가리켰다. 이 아래에 있을 거대한 무덤 도시를 의미했다.
강선후도 깨달았다. 그건 베이스캠프까지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규모라는 사실을.
“그렇긴 하네. 그런데, 아무래도 지하에서는 방향 찾기가 힘들어서.”
「내가 데려다줄 수 있다. 나는 그곳의 모든 길을 다 알고 있으니.」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집에 가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필요하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게 되겠지.
……어쩌면 더욱 유용한 광범위 통행로가 될지도? 지하철처럼 말이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런저런 계획과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이런 생각은 돌아가서 여유롭게 해도 되는 거니까.
이젠 정말 떠날 시간이기에 상기나와 파샹, 그리고 마을에 있던 기사들을 포함한 모든 카르칼 일족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상기나는 잠시 뱀파이어를 바라보았다.
“로얄 블러드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그쪽과 우리 종족의 원한이 깊다는 건 잊지 않지만.”
상기나는 잠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둘이서 이렇게 행동하는 걸 보니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군.”
“…….”
“기억하겠소. 허락된다면, 그쪽의 가문을 알려 주시오.”
“신카.”
상기나의 표정이 변했다.
“……신카라면.”
“오래전에 멸망한 가문입니다.”
“…….”
상기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리리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마주 잡았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신카의 생존자라는 말이군.”
“네.”
“신카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상기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신카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기에 기억은 정확하지 않았다.
이 뱀파이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으나,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순 없었기에 조금 미뤘다.
“당신을 기억하겠소. 그리고…… 또 오시오. 그대가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걸 모든 일족에게 말해 두지. 상기나의 이름을 걸고.”
리리는 상기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샹은 그저 무뚝뚝하게 강선후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 뒤에 서 있는 말리나만 간절하게 되물었다.
“다시 올 거죠? 약속한 거예요?”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인에게 신호를 보냈다.
거인은 강선후와 리리를 손바닥 위에 올린 뒤, 뒤 돌아 이전에 만들어 둔 구덩이로 출발했다.
“……허무하군.”
“저분은 영웅인데,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관심이 다른 데에 있는 사람이었네. 어쩌면, 굉장히 인간다운 눈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군.”
파샹은 그렇게 말했고, 상기나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동안 거인의 등을 바라보다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말리나가 있었다. 밤새잠을 자지 않은 듯 조금은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외부인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눈빛에는 어떤 감정마저 서려 있었다.
그 뒤에서, 비제이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리나를 바라보았다. 상기나는 비제이에게 가서 말했다.
“……신경 쓰이겠구만.”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원래 외부인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저런 감정은 언젠가 계곡의 바람에 씻겨 나가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상기나도, 비제이도 쓰게 웃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