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ep44. 탐험가 길드 사무소 (1)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사는 곳에서 유명한 말이야. 보통 유명한 학자들이 자신의 성과를 설명할 때 자주 쓰더라고.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멀리,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는 뜻이라는데.”
“거인의 어깨 위에 서면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리리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묘지기의 어깨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오싹함을 느꼈는지 몸을 살짝 움츠렸다.
“딱히 그럴 것 같진 않은데. 거인이랑 같은 시야인데 어떻게 거인보다 멀리 봐?”
“글쎄.”
나 역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산봉우리 위에 선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바라본 모습은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풍경을 선사했다. 빠르게 비행하던 키호테의 등에 올라탄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거인은 이 높이가 익숙하지만, 난쟁이는 그렇지 않으니 더 민감하게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는 거 아닐까? 내 생각이지만.”
“흐음.”
리리도 조금은 더 차분해진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나 역시 울퉁불퉁한 산악지대를 조용히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노미나 산맥.
산맥이라고 한다면 보통 일자로 쭉 뻗은 산의 나열을 생각하기 쉽다.
이곳은 단순히 그런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지형이 아니었다. 일자로 쭉 뻗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폭도 엄청나게 넓다. ‘일렬도 된 산의 나열’이 아니라 ‘거대하게 퍼져 있는 산의 모음’이라고 부르는 게 더 옳을 지경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려던 묘지기에게 굳이 부탁해서 이곳까지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리리는 본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었고, 지리에 대해서 박식한 편은 아니라서 자신의 왕국이 어디 방향에 있는지도 잘 몰랐다.
리리가 살던 곳이 여기와 비슷한 지형이라고 하니, 어쩌면 주변을 둘러보는 걸로 단서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알 것 같아.”
그리고 소득은 있었다. 리리는 북서쪽을 가리켰다.
“저 쌍둥이 봉우리. 보여? 우리 왕국에서도 저걸 볼 수 있었어.”
“저걸 기준으로 두면 다시 찾아갈 수 있다는 뜻이네.”
“응.”
나는 가방 속에서 지도를 꺼내 리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빨간색 선을 쭉 그었다.
이로서 지도에는 두 개의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나는 리리의 왕국이 있던 곳, 다른 하나는 왕의 무덤.
왕의 무덤도 방향만 알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즉, 거리를 알 수 없었으니 이렇게 지도의 가장자리에 그 위치만을 표시해 뒀다.
이걸로 충분하겠지.
「이제, 출발. 태양이 너무 강렬해.」
묘지기가 인상을 쓰며 위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신의 첫 번째 자손인 불멸자 용은 태양의 찬란함을 한껏 만끽하지만, 신의 자손이 아닌 불멸자 거인은 신의 광채를 부담스러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 세상에도 거인의 마음을 인도하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거인은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 악마와 싸우는 석상을 바라보았다. 이 거대한 묘지기마저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어깨와 머리가 우주에 닿아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석상이었다.
「……아버지.」
모든 거인을 자식으로 삼아 사랑했다는 거인왕. 아틀라스.
거인왕이 죽고 나서 거인은 사랑하는 법을 잊었댔지.
나는 거인이 잠시 제 아버지를 올려다볼 시간을 주고자 했다. 리리도 내 의도를 이해하고 재촉 없이 잠자코 기다렸다.
* * *
OWIC의 전략기획본부 통합분석실 선임 정지훈.
근 반 년동안 많은 실적을 인정받은 그는 이제 관리자급 직책으로 승진했다. 여기에 강선후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은 정지훈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좋은 일이었을까?
정지훈이 판단하기에 그건 반만 맞는 소리였다. 봉급이 늘어났고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아졌지만, 일은 늘어났고 책임과 의무는 더욱 막중해졌다.
조사팀을 서쪽으로 파견한 뒤, 정지훈은 텅 빈 베이스캠프의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협조를 구하는 데에 온갖 애를 먹었었지. 관리자급으로 올라갔다곤 하지만, 결국 그런 일에 적합한 인력은 정지훈이었다.
‘이거 여기에서 계속 가게 해도 되는 거 맞아요?’
‘장사 망한다!’
베이스캠프의 모든 인원 서울 복귀 및 차원문 완전 봉쇄.
심지어 무기한 봉쇄 명령에 사람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했다. 심지어 차원문이 개방되었을 당시에는 정부를 등에 업은 OWIC이 나서서 사람들의 상업 활동을 독려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우려와 불만을 표하는 건 합당했기에, 정지훈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행성만 한 매가 하늘에서 내려다봤는데 그냥 둘 순 없으니.”
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한 매. 망원경으로나 관측할 수 있는 우주적 현상을 대기권까지 끌어오는 그 존재를 보고도 평소처럼 있을 수는 없었다. 이계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몰랐기에, 이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신이 두고 간 소행성은 남서쪽 상공에서 천천히 자전하고 있었다. 상공이라고는 하지만 그 어떤 산도 닿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높이였다.
저건 대체 뭘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기에 정지훈은 답답하기만 했다. 자기가 직접 관측하고 연구하겠다고 생떼를 쓰는 진서연마저 이번만큼은 허락할 수 없었다. 생명과 안전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이었으니까.
노을진 하늘 아래 텅 빈 거리를 걸으며 정지훈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의 외곽에 닿았고, 저 멀리 작은 숲이 보였다. 강선후가 자신의 앞마당으로 삼은 그 숲이었다. 벌써 이 주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는 이번에도 언제 돌아온다는 말 한 마디 없었다.
그 사람이라면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순간, 정지훈은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강선후는 항상 그를 떠올릴 때마다 어떤 경고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었다. 항상 놀라운 걸 꼬리에 매단 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폭격이라도 당한 듯한 어마어마한 폭음. 고개를 돌리자 서쪽 바위산만큼이나 높게 치솟아 오르는 흙과 먼지.
텅 빈 베이스캠프를 지키고 있었던 OWIC 측 용병부대가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바로 화기를 치켜든 채 사고가 일어난 곳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정지훈도 반사적으로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 고함은 곧이어 공포에 질린 비명으로 바뀌었다.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정지훈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두 개의 손. 그리고 뒤를 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머리와 몸통, 앙상한 다리.
넝마를 뒤집어쓴 거인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용병들은 총을 치켜들었지만 그 누구도 방아쇠를 당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깟 총알이 저 거인에게 먹히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고, 또 거인이 별로 적대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 요원님!”
분대장이 잔뜩 겁에 질린 채 정지훈을 애타게 불렀다. 정지훈도 뭘 할 수 없었기에, 그저 흙 속에서 기어 올라오는 거인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다시 한번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강선후?”
그저 직감일 뿐이었는데, 그 말에 화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와, 미친. 리리.”
“……왜.”
“나 멀미할 뻔했어!”
“나는 흙 먹고 배 터져 죽을 뻔했어.”
“귀족이 그렇게 상스러운 말해도 되는 거야?”
“귀족인 줄 알면 좀 귀족다운 대우를 해 주는 게 어때?”
“오늘 침대에서 자게 해 줄게!”
“아이고, 고마워라.”
강선후와 그를 따라다니는 뱀파이어의 목소리였다. 정지훈은 하마터면 다리에서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강선후는 거인의 넝마에서 기어 나와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뒤이어 넝마를 들추고 기어 나오는 리리를 받아준 뒤, 몸을 일으키는 거인을 바라보았다.
“재밌었어. 다음에도 간혹 이용해도 되는 거지?”
「네가 내 질문에 대답해 준다면. 인간.」
“뭐든 물어 봐.”
강선후와 거인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친우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네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어. 나는, 나는……. 언제나 이 질문을 던지곤 했고, 한 번도 그 대답을 들을 수 없었고……. 그뿐이지만…….」
거인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황금의 일원인가?」
“모르겠는데?”
그 대답에 거인은 주저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당황하진 않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모르겠어.」
“악마와 싸울 때는 어떤 기분이었어?”
「……모르겠어.」
“카르칼 일족이 너를 마을로 초대했을 때는?”
「……모르겠어.」
“그럼, 네 ‘어머니’가 너를 아들이라고 불렀을 때는?”
거인은 손바닥을 내려 보았다.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박동하는 디오네의 심장이 있었다.
「……모르겠어.」
“말을 제대로 해야지.”
거인은 다시 고개를 들어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아직 모르겠는 거지.”
강선후는 거인을 타박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표정에는 웃음기가 가득했으며, 그건 절대로 비웃음이 아니었다.
포식자의 상을 타고난 이 인간의 눈에서는 존중이 담겨 있었다.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저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있었나?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았다. 허나,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던 왕의 표정을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을 하다가는 강선후의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
“알게 될 거야.”
「……그게 언제?」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게 되는 그날보다, 알아가는 날들을 먼저 상상해봐. 생각보다 기분 좋을 걸.”
알게 되는 날보다, 알아가는 과정들.
“책도 완결부를 다 읽고 덮을 때보다 한창 읽고 있을 때 더 재밌거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거인은 더 이상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 가?”
「아니. 그러나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그렇게 하나씩 알아가는 거지.”
강선후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거인도 마찬가지였다. 거인은 마지막으로 강선후에게 물었다.
「인간은 왕이 될 건가?」
“몰라.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진짜 모르겠어. 솔직히 그렇게 원하지도 않고.”
거인은 이때까지도 꼭 쥐고 있었던 심장의 따스함을 느꼈다. 그리고 곧 강선후에게 그걸 건네며 말했다.
「네가 왕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혹여 그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밑에서 너를 받치고 서겠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임종의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인간이 서 있는 땅이 무너지는 법은 없을 것.」
“말만으로도 고맙지.”
강선후는 거인이 건네는 심장을 받아들었다. 거인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삽을 들어올렸다.
이제는 무덤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이전과는 달랐다. 이름 없는 거인은 지금부터 묘지기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고대 무덤도시의 저주받은 문지기가 아니라, 아주 오래 전 왕에게 부여받은 명령을 충실히 행하는 관리자가 될 예정이었다.
강선후는 그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거인이 몸을 돌리자 그 어깨 너머로 거대한 행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토성처럼 띠를 두르고 천천히 자전하고 있는 그것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 * *
강선후는 품속에서 황금 지침을 꺼내들었다. 다음 황금의 유물은 바로 저 천체에 있었다. 아주 천천히 자전하는 그것은, 행성이라고 하기에는 지상에 너무나 가까웠으나 도달하기엔 너무나 높았다. 키호테가 살았던 천공섬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저기에는 어떻게 가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더라도 넘볼 수 없는 높이였다. 언뜻 바라보면 달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숲의 씨앗으로 어떻게 안 되겠어?”
리리가 옆에서 바라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절대 안 돼. 천공섬이랑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보이는데.”
그렇게 말하며 정지훈을 슬쩍 바라보았다. 용병들과 함께 있는 그는 천천히 물러나는 거인을 올려다보며 아직도 경직되어 있었다. 조만간 또 질문 폭풍에 시달려야겠구만.
그렇게 생각하려는 찰나,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 서 있는 건 서지아였다.
“너…….”
그런데, 그 모습이 퍽 색달랐다.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올 것 같은 리넨 블라우스와 가죽 조끼. 그리고 가죽바지. 그리고 어깨에 매고 있는 활.
가리지 않은 길쭉한 귀, 검게 염색한 장발의 뿌리로 살짝 올라오고 있는 본래의 금발.
“세계수가 있다면, 저곳으로 닿을 수 있겠지?”
여전히 날카로운 그 표정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하는 말부터 복장에 외모까지. 엘프는 엘프구나.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