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ep44. 탐험가 길드 사무소 (2)
서지아는 신화에 대해서는 리리만큼 잘 알지 않았다. 하지만 신의 강림을 목격하는 데 그 어떤 지식이 필요한가? 그저 이번에도 강선후가 신화적인 사건에 닿았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뿐이었다.
언제나처럼 차소희와 사무소를 지키던 날, 대낮의 하늘이 한순간에 밤으로 바뀌고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동시에 떠오른 그 순간.
북서쪽에서 화산재 같은 검고 찐득한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그 모습을 서지아는 목격했다.
베이스캠프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이계의 술에 매료된 주정뱅이마저 여관에서 뛰쳐나가 서울로 돌아가고, OWIC의 요원과 군인들이 일제히 차원문을 타고 들어오는 동안 서지아는 저 멀리 솟아오르는 연기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서지아는 백 년 전 천공의 기사가 황제를 살해했을 때도 이미 성인이었고, 방랑자의 상을 타고났기에 세상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렇기에 악마 역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강선후가 악마와 대적하고 있다는 것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악마란 불멸자와 신의 부작용으로 태어난 존재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는 필연적이기에 태어난 존재들.
그렇기에, 필멸자가 대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강선후는 그런 존재와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서지아는 생각했다. 절대로 도망치지 않겠지. 하고자 하는 건 반드시 이루고 마는 남자니까. 이게 서지아의 시선에 비친 강선후의 모습이었다.
위이이잉—
“대피령이 발령되었습니다! 베이스캠프의 전 인원은 신속하게 차원문 플랫폼으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하여 전달합니다…….”
모두가 베이스캠프의 차원문으로 달려 들어갈 때, 서지아는 헤드폰을 벗어 던지고 언제나 묶어 두었던 머리띠를 풀며 동쪽으로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 * *
정지훈은 강선후에게 지금 상황에 대한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그리고 안전하다는 확신을 받은 뒤에 서울로 복귀했다. 그 뒤, 강선후는 서지아와 함께 사무소로 들어갔다.
소파에 털썩 앉는 서지아에게서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강선후는 언제나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서지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엘프다운 모습으로 돌아간 그녀는 테이블 위에 목재 활을 대충 던져두었다. 왼쪽 팔에는 두꺼운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쳤어?”
“일하다 보면 다치고 손가락도 몇 개 잃고 그러는 거지.”
“별 무서운 말씀을 하시네. 어디 갔다 왔어?”
“동쪽.”
“동쪽? 그 대수림 있는 곳?”
강선후는 동쪽에 있는 거대한 숲을 떠올리며 말했다. 맨 처음 종을 울린 유적이 있는 거대한 숲. 성좌의 가호를 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는 숲이라고 했었다. 이름이 엘신 포리에리였나?
“엘신 포리에리는 대수림이 아니야. 그냥 조금 큰 숲이지.”
“그 정도로 거대한데 대수림이 아니라고?”
“엘프가 아닌 종족들은 좀 크다 싶으면 다 대수림이라고 부르는 버릇이 있지만, 대수림은…… 단순히 크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곳이니까.”
엘프의 마음의 고향,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떤 엘프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숲.
그게 바로 대수림의 전설이었다.
그리고, 서지아는 그 전설을 잘 알고 있는 종족이었다.
“대수림에는 잠든 세계수의 씨앗이 있다는 종족 전승이 있어.”
“세계수의 씨앗? 세계수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는 세계수가 없으니까.”
리리가 대답을 대신했고, 서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랫동안 없었지.”
“왜?”
“몰라. 아직 때가 아니라든가, 세계수는 시들고 발아하는 걸 주기적으로 반복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냥 근거 없는 미신들뿐이야. 뭐, 신화가 다 그렇겠지만.”
강선후는 그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달이 뜨고 밤에 가까워지는 하늘.
그 방향에는 그림처럼 허공에서 자전하는 행성이 있었다.
“저기에 닿으려면 세계수가 있어야 한다는 거잖아? 그 정도 높이로 자라는 건 세계수밖에 없으니까.”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을 테니까. 아니면 뭐……. OWIC한테 부탁해서 헬기라도 공수하든가? 그럼 편하긴 하겠네.”
강선후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이계의 신이 두고 간 선물이야. 만약에 누군가 저기에 도달하길 바랐다면, 그건 이계의 방식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겠지. 신이 직접 두고 간 거잖아?”
“……자기답네. 사실 기대도 안 했어.”
서지아는 허리춤에 있는 가죽 가방의 끈을 푼 뒤, 두꺼운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꺼냈다.
“자.”
“뭔데?”
“엘시니라고 알아?”
“엘시니……?”
“벌써 까먹었어?”
뒤에서 듣고 있었던 리리가 거들었다.
“성좌로 승천하겠다고 숲에 틀어박혀서 수련하는 엘프들 말하는 거잖아. 예전에 동쪽 숲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 기억 안 나?”
“아, 기억났어.”
강선후는 떠올렸다. 예전 동쪽 숲에 유적을 찾으러 갔을 때, 선전 포고도 없이 공격했던 엘프들이 있었다. 자신이 지배자의 상이라는 걸 깨달은 뒤에는 태도를 바꾸었던 그 엘프들은 저들을 ‘엘시니’라고 소개했었지.
“이 물건은 엘시니의 주지승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야.”
“뭔데?”
“대수림의 심장 조각.”
이계의 숲은 하나의 단일 생명체기에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심장이 빛깔을 띤 수정 형태라는 건 이제 지구인들도 웬만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수림 역시 숲이니 심장을 가지고 있겠지.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어떻게 가져왔어? 엘시니들이 그냥 순순히 건네줘? 그 사람들한테는 귀한 거 아냐?”
“음…… 잠깐 빌렸지.”
리리는 헛웃음을 지었고, 강선후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훔쳤구나?”
“빌린 거라니까? 그리고 자기야, 생각해 봐.”
서지아의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졌다. 그리곤 그 얼굴에 희미하게 조소가 덧씌워졌다.
“돌아다니면서 거인을 죽이고 용이랑 친구 먹고 신이랑 마주하는 자기랑, 숲속에 틀어박혀서 명상한답시고 하루 종일 멍 때리는 엘시니들이랑, 누구 손에 있을 때 더 쓸모 있겠어?”
“틀린 말은 아니야. 나도 그 녀석들 별로 마음에 안 들긴 했어.”
오히려 뒤에서 듣던 리리가 대답했다. 이전에 공격받았던 것 때문에 리리에게 엘시니들은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나는 볼일이 있어서. 시킬 일 있으면 연락해. 월급루팡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제는 베이스캠프 근처에서는 핸드폰 쓸 수 있으니까 참고하고.”
서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선후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다친 건 어쩌다가 다친 거야? 그냥 긁힌 상처는 아닌 거 같은데.”
붕대와 옷에 가려져 있지만 강선후의 관찰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강선후는 서지아의 움직임만 보고 상처를 추측해 냈다.
“……숲에게 공격받았어. 엘신 포리에리한테.”
“네가?”
서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리리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너는 엘프 아냐?”
서지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엘프가 숲한테 공격받는다고? 용이 추락한다는 말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소리인데.”
“나는 너희들이 보기에는 엘프지만, 엘프하고 숲이 보기에는 엘프가 아니야.”
서지아는 짐짓 장난기가 스며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너보다 여섯 배는 더 살았다? 너가 뭐야? 너가.”
서지아는 그런 말을 남기며 사무실을 나섰다.
* * *
강선후가 탐험을 끝마치고 복귀할 때마다 베이스캠프에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었다.
단순하게는 건물이 더 올라간다든가, 상가의 매장이 사라지고 들어온다든가, 도로가 이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포장된다든가.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지구에 별 관심이 없는 강선후마저 구경을 마다치 않는 변화가 생겼다.
베이스캠프에 마탑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본 강선후는 실망과 재미를 동시에 느껴야 했는데, 안쪽은 그저 통신소 설비로 가득 들어차 있을 뿐이기에 그랬다.
차원문을 경유한 유선 통신이 성공하자, OWIC은 통신사와 협업하여 이계에 무선 통신 기술을 접목하기에 이르렀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설계한, 마탑으로 위장한 통신소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베이스캠프를 기준으로 반경 몇 킬로에서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봉쇄령이 떨어져 별수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던 차소희는 강선후의 전화를 받자마자 벌떡 일어나 집 밖으로 나섰다. 감지 않은 머리는 대충 모자로 가리고, 바지만 갈아입고 상의는 집업 후드로 때웠다.
통화 내용은 이랬다.
“지금 사무소로 오라고?”
「응, 오는 길에 내 집에서 짐 좀 가져다줘. 나 귀환할 때 가지고 왔던 가죽 가방 있거든? 그것만 좀 들고 와 줄래?」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닌데……. 지금 봉쇄령 떨어져 있어. 코드 그린이래. 화산 폭발이라는 등 이상한 소문 도는데?”
「내가 OWIC에다 이야기해 뒀어. 너 통과시켜 줄 거야.」
차소희는 알았다고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강선후가 업계에서 가지고 있는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계 사업을 총괄하다시피 하는 세계적 기업의 서울 지부를 말 한마디로 움직이는 힘이라니.
강선후는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도 주목하는 거물이 된 지 오래였다. 그 녀석이 지구 일에 관심이 너무 없을 뿐.
“……하긴, 용이랑 대화 나누는 놈인데 사람 일이 눈에 들어오겠어.”
차소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소를 열고 사업을 한다는 건 그래도 돈벌이를 조금 신경 쓴다는 건데, 조금은 더 활동해도 되지 않을까?
……본인이 귀찮다면, 내가 대신 그 부분을 조금 신경 써 보는 건 어떨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강선후의 빌라에 도착한 차소희는 그가 부탁한 짐을 들고 차원문으로 나섰다.
“신분증 부탁드립니다.”
차원문 앞을 지키고 있는 OWIC의 보안요원들은 차소희의 신분증을 확인한 뒤, 절차도 생략한 채 그녀를 들여보내 줬다. 차소희는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르며 차원문 안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차원문 이동 충격 증상이 많이 사라진 상황. 그녀는 가벼운 울렁거림만 느끼며 사무소로 향했고, 강선후를 만났다.
“오랜만! 이번 여행은 어땠…… 어?”
차소희는 짐짓 하이톤으로 인사를 건네다가 민망해진 팔을 천천히 내렸다.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리리와 강선후는 그저 테이블 위에 놓인 주먹보다 큰 푸른 수정 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평소와 같은 풍경이었으나 차소희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지금 리리와 강선후가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다.
“……왜 그래?”
“소희야.”
“응.”
“그, 가방에 돌도끼 있거든? 그것 좀 꺼내 줄래?”
차소희는 가방을 뒤져 날카롭게 깎인 돌도끼를 꺼냈다.
엄밀히 말하면 수정도끼였다. 강선후가 조난 생활을 끝내고 지구로 귀환했을 때 가지고 돌아왔던 그 도구. 푸른 수정을 깎아 날을 만든 도끼.
조난생활을 하던 시절 그의 생활을 책임져 줬다는 그 도구였다.
강선후는 차소희가 건넨 도끼를 받아 들고 그 머리 부분을 테이블 위 수정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 도끼날은 숲의 심장을 깎아서 만든 거야.”
“……응.”
대답하는 건 리리뿐이었고, 차소희는 그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같은 숲에서 나온 심장 조각은 쪼개져도 다시 하나가 되려는 성질이 있어. 숲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관’이라서 진화한 특성이거든.”
도끼날과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대수림의 심장 조각이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둘은 달라붙었다.
리리는 고개를 돌려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꾹 다문 입과 동그랗게 커진 눈.
“당신이 옛날에 살았다는 숲…….”
강선후는 말없이 그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수림이었던 거야?”
강선후는 그 의견을 부정하지 않았다.
현재는 전설로만 남아 있다는 엘프들의 고향은 강선후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던 그 숲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