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ep44. 탐험가 길드 사무소 (3)
이계의 계절은 지구와는 동떨어져 움직인다. 차소희의 말을 들어 보니 지구는 슬슬 가을이라는데, 베이스캠프 근방의 황무지는 내가 귀환할 때부터 지금까지 포근한 날씨를 유지하고 있었다. 낮에는 살짝 덥다가도 밤이 되면 얇은 외투 하나를 찾게 되는 그런 날씨. 생각해 보니까 사막 기후랑 비슷한 면이 있다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계에 계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지구랑 그 흐름이 다를 뿐이지. 당장 나도 조난 시절 계절을 대비했던 기억이 있고, 서지아는 엘 로크라 벨라가 울린 뒤에는 ‘격동의 사계(四季).’라는 계절이 도래한다고 했었다. 최초의 성좌 엘신이 사실을 예견했다지. 그리고 엘신이 엘프라는 사실은 엘프들의 커다란 자부심인 모양이었다.
불을 다 끈 1층 휴게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
악마와의 전투에서 고생을 많이 한 리리는 씻고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자마자 소파에서 곯아떨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줄 알았다.
“생각이 많아져?”
“안 자고 있었네?”
“자다 깼어.”
이제 막 잠에서 깬 듯한 리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 냉장고를 열었다. 새삼 그 모습이 재밌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제는 제법 현대 지구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풍긴단 말이지.
“당신이 옛날에 살았다는 곳이 대수림이었다는 생각은 못 했어.”
나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 숲에서 보냈다. 정착한 뒤에는 그 숲에서 벗어난 기억이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경험한 게 너무 많았다. 숲 하나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말이지.
사실 이쯤 되면 내 기억도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내가 정말 대수림에만 있었던 게 맞나?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아?
“다음 계획은 생각해 봤어?”
리리의 물음에 나는 황금 지침을 꺼내 들었다. 다음 행선지는 창밖에 보이는 띠를 가진 행성. 저곳에 여섯 번째 황금의 유물이 있었다.
“저기로 가야지.”
목적은 간단하다. 다만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뿐.
서지아는 저 행성에 도달할 수단으로 세계수를 제안했다. 내가 보기에도 로켓을 타는 게 아니라면 유일한 방법으로는 그것밖에 없다.
“중요한 건, 세계수를 어떻게 찾아내냐인데.”
“대수림은 지금으로선 전설로밖에 남지 않은 곳이야.”
저게 문제라면 문제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진 않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수정도끼를 바라보았다. 엘시니들이 가지고 있었던 덩어리랑 합쳐져서 이상한 모양이 되어 있었는데, 다시 분리시키려면 특별한 방법을 써야 하는 터라 지금은 불가능했다.
“좀 쉬어, 이번에는 고생 많이 했으니까.”
“당신은 안 자?”
“연구하고 싶은 게 생겨서. 그리고 아침에 어디 갔다 올 테니까 일어나서 나 없어도 놀라지 말고.”
“내가 애야? 알았어.”
리리는 2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연금술 장비와 룬 실험용 모래가 깔려 있는 작업실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라 시마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해가 뜨기 시작하자마자 남쪽으로 달렸다.
* * *
“광인이시여! 비로소 이렇게 와 주셨군요! 다들 뭣들 하느냐! 서둘러 광인을 맞이해라!”
촌장이자 사제, 그리고 군사 보급관을 자처하는 늙은 엘프가 남쪽 마을에서 나를 맞이했다. 내가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게 내심 서운한 모양이었다. 나도 책임감을 조금은 느끼고 말이지. 그래도 이렇게 내게 성의를 보이는 사람들인데.
내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이 사제는 엘프였고, 딱 봐도 서지아보다 훨씬 오래 산 엘프였다. 그러니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그 녀석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대수림…… 말씀이십니까?”
내 생각해도, 사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뭔가 얻어 갈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대수림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태어난, 말 그대로 생(生)의 요람입니다. 신의 아홉 자손도, 모든 불멸자도 그곳에서 첫 발걸음을 뗐다고 하지요.”
“세계수도 거기에 있고요?”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반만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계수가 대수림에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대수림과 세계수는 애초에 하나의 존재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지요. 지금 남아 있는 건 전부 전설일 뿐이라서 어디서부터 믿어도 될지는 소인도 잘…….”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내용은 다른 데에 있었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대수림을 어떻게 찾느냐는 말씀이십니까?”
사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수림의 위치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게 이 시대에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솔직히 확신할 수 없군요. 생명을 섬기는 종족의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이게 있다면요?”
나는 도끼를 내밀어 보았다. 대수림의 심장을 깎아서 만든 수정도끼. 사제는 엘프니까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지. 사제는 조금 흥미로운 눈으로 그걸 바라보았다.
“이걸 어디서 얻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늙은 엘프는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제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심장 조각이 대수림이 실존했다는 증거는 되지만, 대수림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진…… 아.”
사제는 문뜩, 설화 속 어떤 내용을 떠올린 듯 눈빛을 살짝 빛냈다.
“숲의 심장은 아무리 조각나도 하나하나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본래의 하나로 되돌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강한 위협이나 자극을 받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지요.”
“그건 알고 있는데…….”
물방울 두 개가 가까이 붙으면 하나로 합쳐지듯, 숲의 심장은 여러 개로 조각나도 천천히 서로 가까워지다간 결국 다시 하나로 붙게 된다. 이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작용은 굉장히 미세하다. 가만히 두고 몇 년이 지나야 서로의 거리가 미터 단위로 가까워질 뿐이다. 대수림이 바로 이 근처에 있는 게 아닌 이상, 저 원리로 위치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아.”
나에게 생각 정리할 시간을 주는 듯 침묵을 지키던 사제가, 나도 모르게 내뱉은 감탄사를 듣고 시선을 다시 돌렸다.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수정도끼의 날을 내려다보았다.
“……강한 자극을 주면 되잖아.”
“그럼 하나로 합쳐지려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 봤자 미약한 변화인지라…….”
“그럼, 더욱, 더욱더 강한 자극을 주면 되잖아요? 당장 하나로 합쳐지고는 못 배길 정도로 강한 자극!”
“그런 게 있겠습니까? 대수림의 강대함은 다른 숲과 비교도 할 수 없는지라, 그것을 자극할 수 있는 게 뭔지 소인은 감이 오지 않습니다만…….”
“죽음.”
나는 황금 지침을 꺼내 들었다. 그 뒤에 꽂혀 있는 다섯 번째 보석. 어두운 남색을 띠고 있는 그것.
“오히려 강한 생명을 띠는 존재니까, 더욱더 격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잖아?”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고대에 존재했다는 최초이자 최후의 강령술사가 죽음을 다루는 마법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남부의 제국 소속 마법사들 중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하지만…….”
사제는 찝찝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강령술사의 능력을 재현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명계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남쪽으로 다시 가신다고 하더라도 딱히 소득은…….”
나는 황금지침 뒤에서 남색 보석을 꺼냈다. 그것은 황금빛 광채를 내뿜으며 남색의 수정구가 달린 지팡이로 변했다.
시든 나무뿌리 모양의 막대 위에 남색의 수정구가 있는 형태의 지팡이.
사자(死者)의 지팡이.
엘프 사제는 헛바람을 들이켜며 뒷걸음질 쳤다. 생명과 가까운 종족이기에, 이 지팡이에 더욱더 크게 반응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생명과 더욱더 가까운 존재라면? 가깝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모든 생명을 낳은 존재의 심장이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나는 벌써 대수림을 찾아낸 듯, 붕 뜬 기분을 만끽했다.
“그, 그건…… 그 지팡이에 담긴 기운은 대체…….”
나는 지팡이를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마나라든가 마력 같은 걸 쓰는 건 아니지만, 룬이란 아무렇게 내뱉는다고 실행되는 게 아니니까.
“탈레talle.”
“컹—!”
아직 늑대의 형상을 한 존슨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자리에 앉는다.
“유령…….”
나는 존슨을 올려다보았다.
유령은 이 지상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대수림의 대척점에 손색이 없겠지.
“……광인이시여.”
“네?”
“광인께서는 어떤 경지에 오르시려 하는 겁니까?”
“글쎄요?”
가끔 듣는 질문이다. 특히 이계 쪽 사람들은 내게 큰 기대를 품는 듯했지.
하지만, 나는 그런 거 도무지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지금 내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거라면 대수림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거기에 있는 세계수의 씨앗이라면 저 행성에 도달할 수 있다.
거기에는 뭐가 있을까? 이계는 원래 특이한 곳이지만, 다른 천체라면 또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겠지.
오직 이 생각뿐, 지금 이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고마워요!”
“저는 해 드린 게 없는데…….”
충격이 가시지 않는 듯 멍 때리는 사제를 뒤로하고 렐릭시나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다가 문뜩 서지아가 생각났다.
“사제님, 저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요.”
“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는 엘프가 있는데, 자기는 우리 같은 인간이 보기에는 엘프인데, 엘프의 눈으로 보면 엘프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으음…….”
“그리고 숲에게 공격을 받아서 다쳤던데, 엘프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싶어서요. 본인한테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사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엘프들은 태어날 때,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발아한 나무의 싹을 찾아내 영혼을 연결합니다. 그 순간 엘프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겁니다.”
“……그러지 못하면요?”
사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자의 영혼이 진정한 엘프라고 부르긴 힘들겠지요.”
“음…….”
생각해 보면, 서지아의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왜 서지아가 신카 가문의 부탁을 듣고 리리를 추적했는지, 어째서 이계로 돌아가지 않고 지구 문화에 정착했는지.
이건 어느 정도 흥미가 가는 문제였다.
“고마워요. 다음에 또 올게요!”
“꼭 방문해 주십시오.”
* * *
차소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베이스캠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지긋지긋하던 봉쇄령도 풀리고, 코드 그린인지 뭐시깽이인지도 내려가고,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신났네요.”
그 곁을 같이 걷던 진서연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에는 지구가 진짜 지루해요. 인스타니 유튜브니 재밌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점점 사장님을 닮아 가는 거 아닐까요?”
“사장님? 아, 그놈? 지난번에 제가 사장이라고 부르니까 뭐라는지 알아요? 길드장이라고 부르래요. 참나, 진짜…….”
진서연은 웃음을 터트렸다.
“왜요, 재밌지 않아요? 저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요. 유치하잖아요.”
“유치한 게 좋아요?”
“유치하니까, 그런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유치하다는 게 욕으로 사용되는 세상이지만, 본질적으로 생각해 보면 전 나쁜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으음…… 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칠게요.”
진서연은 웃으면서 다시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보이는 베이스캠프의 정문.
오랜만에 돌아온 강선후를 만나러 가는 길.
차소희는 그런 진서연의 얼굴이 경직되며, 뒤이어 발걸음마저 멈추는 걸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요? 뭐 용이라도 다시 날아온 거예……?”
차소희도 그 시선을 따라 정면을 바라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한 걸 간신히 버텼다.
그곳에는 거인이 있었다. 넝마를 뒤집어쓴 거인이.
유일하게 거인을 목격한 정지훈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에, 이들은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뒤이어 올라온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직감적으로, 강선후와 관련이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랬다.
“……가요.”
“네.”
차소희와 진서연은 거의 뛰다시피 강선후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강선후가 땅 위에 복잡한 문양을 그려놓았고, 그 한가운데에 거인이 푸른 수정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강선후는 남색 수정구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뒤늦게 온 서지아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그 안색에 약간 의문을 품었던 차소희는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강선후의 옆에는 유령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빙빙 돌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존슨!”
“왕!”
“앉아!”
“왕!”
“왜 이럴 때는 말을 안 듣지!”
“헥헥헥!”
강선후는 지팡이를 휘둘러 강아지를 잠시 안쪽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거인에게 말했다.
“묘지기!”
「듣고 있음…….」
“그거, 생각보다 강하게 튀어 나갈 수 있으니까 꼭 잡고 있어!”
「나는 거인. 거인의 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혹시 모르지.”
강선후는 지팡이를 내밀고 정신을 집중했다.
“죽음에 반응하는 생명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남색의 수정구.
“탈레스반tallethban.”
강선후가 외치고, 바닥에 있는 룬 문자가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그 뒤.
콰아아아아아앙—!
거인이 쓰러져 한쪽 방향으로 쓸려 가고 있었다. 그 방향에 있었던 바위와 나무가 무너지고 쓸려 나갔다. 사람들은 귀를 막고, 각자 돌이나 벽을 짚고 서야만 했다.
“내가 말했잖아.”
강선후는 그렇게 말했다. 리리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방향이란 말이지?”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림이 있는 방향이야. 그런데…….”
그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리리와 강선후 모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방향은, 행성이 자전하며 떠 있는 방향과 완전히 일치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