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ep44. 탐험가 길드 사무소 (4)
“저쪽 방향이라………….”
나는 행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녹색빛이 살짝 섞인 새파란 이계의 하늘에 떠 있는 행성.
파랗게 칠한 투명 종이를 위에 덮어씌워 놓은 듯 뿌옇게 보이는 그 모습은 저게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려 주는 듯했다.
“대수림이………… 저 위에 있다고?”
리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럴 법도 한 게, 저건 이 땅이랑 전혀 상관이 없는 우주에서 날아온 물건이잖아? 대수림은 분명히 이 땅에 존재하는 거였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별걱정이 없었다. 내 판단은 조금 달랐으니까.
“저 행성이 아니라, 저 행성 아래에 있는 지역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신이 저 행성을 가져다 놓았을 때, 아무 데다 던져 놨을 것 같진 않아서.”
“…………그게 더 가능성 있을지도.”
강선후의 설명에 리리도 납득했다.
하지만 아직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건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니까.
그렇게 한창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뒤에서 진서연의 난처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그, 선후 씨?”
“어? 언제 오셨어요?”
“방금이요. 그건 그렇고, 저, 오자마자 인사 말고 딴 얘기부터 해서 죄송한데요………….”
진서연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거인, 어디까지 끌려갈 예정이에요?”
대수림에 한창 정신이 팔려 있었던 리리도, 나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거인을 바라보았다.
“…………어?”
「느어어—!」
저거 왜 계속 끌려가?
바닥에 있는 룬 문자는 모로스moros, 조금 복잡한 단어지만 간단하게 보자면 다른 룬을 증폭해 주는 보조 룬 문자다. 예전에는 그저 모스mohs의 불꽃을 횃불 밝기로 만들거나 씨르thir로 식수를 만들 때 그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사용하곤 했었다.
지금은 죽음의 기운을 부르는 단어 탈레talle를 증폭시키는데 적용해 봤다. 쉽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성공한 모양인데………….
중요한 건, 거인이 그 룬의 영역을 벗어났는데도 계속해서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묘지기—!”
나는 그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거 안 되겠으면 그냥 놔도 돼!”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묘지기는 악착같이 대수림의 심장을 부여 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묘지기는 끝내 땅에서 솟아올라 있는 바위를 부여잡았다.
쿵 하고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비로소 멈추는 묘지기의 몸. 그 와중에도 아직 대수림의 심장이 움직이는 듯, 그것을 붙잡고 있는 팔은 저 멀리 뻗어 있었다. 반대쪽 손가락이 바위를 부수며 파고들었다. 그렇게 몇 초를 더 버티고 선 다음에야 대수림의 심장은 비로소 움직임을 멈추었다.
「후욱………… 후욱………….」
묘지기는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래 봬도 불멸자인데 무려 숨을 고를 정도라니. 대수림의 심장이 얼마나 격하게 반응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내 몸을 일으킨 거인은.
「으어어어어어—!」
괴성을 지르더니 씩씩거리며 대수림의 심장을 내려다보았다.
귀를 살짝 막았다가 뒤를 돌아보니, 차소희가 멍하니 그 거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입을 떡 벌린 그 모습이 퍽 우습게 보였다.
“거, 거, 거, 거, 거, 거………….”
“말을 해라. 말을.”
“거이인!”
차소희는 그렇게 외치며 펄쩍 뛰어 진서연 뒤로 숨었다. 진서연 역시 우두커니 거인을 올려다보다가는 흘러내리는 까만 불테 안경을 치켜올렸다.
“지하 무덤에 살던 거인이네요. 맞죠?”
“네.”
“…………친구 하기로 했어요?”
“그런가?”
나는 짐짓 묘지기 쪽으로 시선을 돌린 뒤 외쳤다.
“야! 우리 친구야?”
멍 대리던 차소희가 혀를 내둘렀다.
“미쳤어, 그냥 미친놈이야.”
진서연은 그저 살짝 난처한 미소를 보이며 팔짱을 낄 뿐이었다. OWIC의 정예 직원이라는 타이틀이 어디 가는 건 아니란 말이지. 확실히 깡은 세단 말이야.
“선후 씨 태도로 볼 때, 저 거인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해도 된다는 거겠죠?”
“역시 서연 씨가 훨씬 똑똑하시네요.”
“…………진짜로 선후 씨는 종잡을 수가 없어요. 상상도 안 되잖아요? 거인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잠깐 이야기나 들어줬어요.”
“지금은 바빠 보여서 넘어가고 싶지만………… 나중에 얘기해 줄 거죠? 이번에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진짜 많아서요.”
신의 모습은 여기에서도 보였을 거다. 사실 그 모습은 어디에 있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이 세상의 하늘 전체를 가득 채웠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준 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묘지기를 바라보았다.
묘지기는 땅에 철푸덕 주저앉아 씩씩대며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수림의 심장이 놓여 있겠지.
「으어어! 화가 난다!」
“진정해. 너 화 내면 여기 감당 못 해.”
안 그래도 묘지기의 모습은 지금 베이스캠프에서도 다 보일 거다. 정지훈이 미리 대처를 해 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코드 레드니 뭐니 해서 또 웨에엥 하고 사이렌이나 울렸을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힘이지…………!」
“대자연 어머니의 힘? 어때, 만만치 않지?”
「기분………… 나쁨.」
묘지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대수림의 심장을 내게 건넸다.
나는 사실 그 뒤에서 대수림의 방향을 잽싸게 기록하려고 지도까지 들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미 지도에 표시된 천체의 방향이 곧 대수림의 방향이었으니까.
고개를 들어 구름으로 가려지기 시작한 행성을 바라보았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되겠지.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진서연이 다가왔다.
“다음 목적지가 저기인가 봐요.”
“최종 목적지가 저기예요. 그 전에 방법부터 찾아야 하니까 이러고 있지.”
“회사에 로켓이라도 발주 넣어 볼까요? 혹시 몰라요? 왕복선이라도 건조해 줄지.”
그 농담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요. 신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방법은 있을 거예요.”
그때, 쿵,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거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한계까지 치켜들어야 보이는 그 머리. 진서연은 특유의 담력으로 아직 여유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지만, 그 뒤에서 차소희는 그저 벌벌 떨고 있을 뿐 이제는 입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문뜩 고개를 돌려 마탑으로 위장한 통신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지금 제대로 작동을 하는 듯하지만 공사는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걸로 보였다.
“저거, 마탑이요. 아직 다 안 지어졌나 봐요?”
“아, 저거요?”
진서연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렸다.
“중장비를 들여오지 못해 가지고요. 이렇게 높은 건물을 올리는 건 처음이다 보니까………… 업자가 많이 헤매는 모양이더라고요.”
나는 거인을 올려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실실 웃어 버렸다. 진서연은 그런 나를 보며 살짝 불안한 듯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또 무슨 생각이에요?”
“거인!”
「무엇?」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아 보이던 거인이 고개를 내려 나를 바라보았다.
“사람 일 한번 도와줘 볼래?”
「………….」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서지아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 * *
강선후의 부름을 받고 온 정지훈은 그의 의견을 듣자마자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일은 일이었고 회사 입장에서도 나쁜 게 전혀 아니었기에 허가는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 거인이………… 공사를 도와준다는 거, 맞습니까?”
필요한 모든 허가와 절차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한 정지훈은 눈앞의 거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거인은 지금, 삽을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말 잘 들을 거예요. 그렇지?”
「………….」
정지훈은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선후 씨 의견이니 안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런데…………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왜 공사를 도울 생각을 하신 건지 궁금해서요.”
“사실, 공사를 돕고 싶다기보단………….”
강선후는 고개를 돌려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얘한테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 주고 싶거든요.”
“더불어 사는 법 말입니까?”
“그러니까, 공사가 끝나고 나면 그에 대한 임금도 지불해 주세요.”
“그건 가능합니다만, 그게 이 거인에게 쓸모가 있을까요?”
“배울 점은 있겠죠.”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정지훈을 바라보았다.
“거인한테도, 이계에서 살아가려는 당신들한테도요.”
정지훈은 OWIC 내에서도 사람을 다루는 일을 많이 하는 직책이었다.
그러니, 강선후가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그 목소리와 말투, 눈빛을 느끼고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계에서 살려면, 이계의 존재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존중해라.’
강선후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경고이자 동시에 조언이었다.
이계에 진출하려고 끊임 없이 욕심을 부리는 지구의 사람들을 향한 조언.
정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하시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실망할 게 뭐 있어요. 항상 잘해 주는데.”
강선후는 모든 일에 항상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끝내고는 했다. 진서연 역시 그 뒤에서 대화를 들으며 흥미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차소희는 그저 뒤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대화가 마무리되는 듯하자 진서연이 입을 열었다.
“ 선후 씨는 지금부터 뭐 해요?”
“지구에 가 보려고요.”
“그럼 이제는 제가 할 일이 남았네요.”
진서연은 손을 내밀었다.
“대수림의 심장, 일주일만 저한테 맡겨요.”
“네?”
“최소한 그게 있는 위치나 기후의 특성은 조사해 줄 수 있어요. 아무리 이계라고 해도 지구과학적 원리는 일치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물이 흘렀으면 퇴적물이 쌓이고, 생물 활동이 왕성하면 유기물의 흔적이 발견되기 마련이에요. 그런 것들을 알면 위치도 알아낼 수 있을지 몰라요. 게다가 조사 결과가 제가 모르는 것들투성이여도, 선후 씨는 알아볼 수도 있잖아요?”
진서연은 그렇게 말했다.
“길드장님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길드원이 하는 게 있어야겠죠?”
“…………서연 씨한테는 차소희처럼 돈도 안 드리는데?”
“대신에 저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요. 기브 앤 테이크가 되는 일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강선후는 웃으면서 수정을 그녀에게 넘겼다.
“그럼 부탁할게요.”
진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후는 이참에 그녀에게 카메라 필름도 건넸다. 이번 여정에서 찍은 사진들이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필름을 내려다보는 진서연의 눈빛에는 열정이 가득했고, 강선후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럼, 나는 다시 동쪽 숲으로 가 볼게.”
서지아가 입을 열었다.
“그곳에 아직 내가 놓친 게 있을 수 있으니………….”
“아니, 넌 나랑 같이 가.”
“…………?”
“나 잠깐 서울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는 뜻이야.”
서지아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강선후는 뭔가, 재밌는 일을 꾸미는 듯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정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 씨.”
“아, 네.”
“저 좀 무리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상대적이지만………… 너무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웬만한 건 가능합니다.”
강선후는 멀찍이 떨어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리리를 가리켰다. 리리는 예상치 못한 그 손가락질에 어벙한 표정이 되었다.
“쟤, 차원문 통과할 수 있게 조치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 * *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임시 통행증을 발급해서 신분증을 대신했다. 정지훈의 권한으로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과정들이었다.
차소희가 신나서 피부색을 가려 주겠다고 파운데이션을 가지고 왔지만, 예민한 뱀파이어의 피부에는 잘 맞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랑 비교하여 그렇게 이상한 편도 아니었으니 컬러 렌즈로 눈동자 색깔만 대충 가리기로 했다.
“나도 갈래! 나도!”
“너는 사무소 지켜야지.”
“오늘 휴무 할래!”
강선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소희를 바라보았다.
“아니, 가게 휴무를 왜 네 맘대로 정해?”
“그럼………… 휴가! 월차 낼게요, 사장님!”
강선후는 피식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차소희는 그 뒤를 종종 따라갔다. 그들은 오랜만에 베이스캠프의 중앙 거리를 걸었다. 최근에 있었던 소란 탓일까. 거리의 풍경은 한산했다.
여관주인 윤민지가 종이컵을 홀짝거리며 인사를 건네고는, 눈치를 보다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결국 그 아가씨 데리고 서울 가는 거예요? 렌즈가 잘 어울리네. 원래 눈동자가 커서 그런가.”
“쉿, 이거 비밀이에요. 아니, 기밀이야.”
차소희가 잔뜩 진지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세우며 말하자, 윤민지는 그 특유의 심드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아무렴요. 제가 지금 술 마시고 있는 것도 기밀이에요. 아시겠죠? 지금 이계 금주 기간이거든요. 준경계 상황이래나 뭐래나.”
“콜. 나중에 저도 한잔하러 올게요.”
“그것도 기밀이네요.”
서지아는 그런 우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왜 데리고 가는 거야?”
“네가 유일하게 지구를 경험한 이계인이잖아?”
조금 긴장한 듯한 리리를 바라보며 강선후가 말했다.
“얘한테는 네가 선배거든.”
“…………그러네.”
그제야 서지아도 조금 흥미가 돋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차원문을 앞에 둔 리리는 정말 많이 긴장한 듯 위축되어 있었다. 어느새 그 손끝으로 강선후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매번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차원문을 넘어갔고, 가벼운 현기증에 시달렸다.
그렇게 안쪽으로 이어지는 긴 통로와 계단을 지나, 검문대를 무사히 통과하자 서울 차원문 플랫폼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선크림을 파는 화장품 가게. 이계에 가지고 갈 레토르트 식품전문점.
사람들이 모여드는 화강암 타일 바닥의 거대한 공간. 유리로 이루어진 벽과 조명으로 가득한 천장.
차소희는 아예 대놓고 리리의 반응을 구경하기 위해 시선을 고정했고, 서지아도 관심 없는 척하면서 힐끗힐끗 리리를 바라보았다.
“………….”
리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강선후는 자신의 옷깃을 잡은 그 손의 힘이 점점 더 세지는 걸 느끼고 웃을 뿐이었다.
“가자. 나 잠깐 집부터 들르고, 살 거 있으니까 청계천 쪽 가야 해. 운전할 줄 아는 사람?”
“어……. 나 면허 없음, 흐흐.”
나도 없는데. 택시 부르는 게 나으려나? 그러다가 조금 한심한 눈빛으로 손바닥을 들어올리는 서지아를 보고 폭소를 터트렸다.
여기 있는 지구인 둘이 운전대를 못 잡는데, 정작 이 엘프가 운전 할 줄 안다고 손을 드는 꼴이라니.
그렇게 출발하려는데, 리리의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무서워.”
오히려 악마 앞에서도 이를 악물던 리리였는데, 차원문 너머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풍경에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조금 생각해 보면, 리리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무서워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강선후는 떠올렸다. 오히려 지구인들을 많이 피했었지. 이것도 맨 처음 겪었던 납치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는 건가.
하지만 언제나 리리는 자신이 민폐가 되는 상황을 극도로 거부한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몇 걸음을 떼서 조금씩 앞으로 이동했다.
차원문 플랫폼의 벽면을 따라 쭉 보이기 시작하는 상가. 기차역과 공항 사이의 무언가 같은 그 풍경을 강선후는 오랜만에 만끽했다. 가끔씩은 이런 것도 좋지. 오랜만에 들른 서울의 풍경은 정겨웠다.
그러던 중, 갑자기 리리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옷깃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모습에 강선후는 끌려가듯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식품점이었는데, 리리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다가 제품 하나를 들어올렸다.
“이거…….”
리리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반가움을 느끼는 듯한 그런 미소였다.
“당신이 맨날 나 가져다준 그거야.”
그 앞에 써 있는 홍보 문구가 가관이었는데.
《화제의 이계 탐험가. 강선후 PICK! 이계에서 가장 도움되는 식품.》
「이계에서 기본적으로 손상되는 철분을 보충해 주고 이계의 건조한 바람으로 인해 거칠어지기 쉬운 피부의 미용 효과에 떨어지기 쉬운 원기의 회복에도 탁월(……)」
그건 레토르트 선짓국이었다.
“…….”
“……푸흡.”
웃음을 터트린 건 차소희였다.
강선후는 뒤통수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절대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