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ep44. 탐험가 길드 사무소 (5)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조금 긴장이 풀렸던 감각이 다시 곤두섰고, 웅성거리는 대화 소리가 분리되어 내 귀에 때려 박히기 시작했다.
“……강선후 아냐?”
“저 옆에는 서지아 같은데?”
“서지아가 누구야?”
“그…… 있어. 우리 업계에서 유명했던 사람. 거의 깡패 두목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런데 왜 둘이 같이 있어?”
“동업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저렇게 친할 줄은 몰랐는데.”
헤드폰을 뒤집어쓴 서지아였기에 그 귀가 보이지 않았지만, 저 말을 서지아도 듣고 있을 게 분명했다. 미세한 표정의 변화가 느껴졌으니까.
“도망치자.”
“……도망?”
레토르트 선짓국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린 리리가 눈을 천진난만하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당신 세상이잖아. 도망쳐야 할 이유가 있어?”
우선 리리는 내 뒤를 따라오며 그렇게 말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까 리리는 내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면서도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는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영웅은 간혹 자신의 나라에서 범죄자이기도 하지. 보통 누명을 쓴댔어…….”
리리는 그렇게 옛날이야기 같은 내용을 중얼거리더니 오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 설마.”
그 눈동자에 담긴 애처로움을 보고 서지아가 실소를 터트렸다.
“귀족 아가씨라 그런가, 순수한 면이 있어.”
“……뭐라고?”
리리는 도끼눈을 뜨고 서지아를 바라보면서도 나에 대한 동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거 아니라고.
그 순간.
“저, 선후 씨 맞으시죠?”
내가 우려하던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가 지구에 오는 게 대체 얼마 만이지? 그전에 이것저것 사러 간혹 방문했을 때도 모자에 후드 집업을 둘둘 말아서 오고는 했었지.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짐을 느꼈다. 그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는 걸 눈치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섰다. 기자인가? 하긴, 차소희 말마따나 지구에서는 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데 이제까지 기자 한 명 찾아오지 않은 게 이상하긴 했다. 나는 그저 OWIC이 알아서 케어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까지 그걸 기대할 수는 없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최대한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졌다.
“저, 죄송합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그러고는 리리의 손을 잡고 플랫폼 정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리리는 조금 맹한 표정으로 그저 끌려오듯 따라왔고, 서지아는 내 옆에서 나를 힐끗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차소희도 실실거렸다.
“이계에서는 누가 봐도 지배자를 타고난 사람처럼 굴더니, 오히려 고향에서는 맥을 못 추네?”
“얘 원래 이래요. 호랑이가 쳐다보는 것보다 사람이 쳐다보는 걸 더 싫어한다니까?”
“귀여운 면이 있네.”
“……범죄자가 아니었던 거야, 당신?”
리리마저 헛소리를 하니 슬슬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실내 광장에서 벗어나 플랫폼 정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드넓은 차원문 플랫폼의 광장. 그곳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현대인들과 저 앞을 가로지르는 차로 꽉 막힌 도로.
그리고 거인을 쳐다보듯 고개를 번쩍 들어야 꼭대기를 볼 수 있는 빌딩의 숲.
내가 아는 반짝거리고 답답한 도시의 숲. 서울이 맞았다.
“이건…….”
리리는 아까부터 맹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에 조금 심심했다.
“……황금의 왕국.”
“아니야.”
“이게, 당신이 사는 왕국이야?”
왕국은 아니지만, 어쨌든 비슷한 거긴 하지. 서울의 전경을 바라보는 리리의 눈동자에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잠시 그렇게 멍하게 있고 난 후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왜 황금의 왕국을 찾으려고 해?”
“응?”
“여기가…… 황금의 왕국이잖아.”
리리는 순간 강렬한 허탈함을 느낀 것처럼 보였다. 나도 고개를 돌려서 다시 도시를 바라보았다.
리리의 눈에는 찬란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네. 근데, 오히려 내 눈에는 이계의 신비로운 건물들이 더 멋있는데 말이지.
“이게 멋있어 보일 수는 있는데, 사실 그렇게 멋진 세상은 아니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건, 이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 건설된 문명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광장의 계단 한편에 소주병을 끼고 모여 있는 노숙자들이 보였다. 다른 쪽에는 빨간 잉크로 아무렇게나 쓴 글씨가 써 있었다. 뭔 지옥, 뭔 천국 하는 내용. 그들은 마이크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하고는 한다.
“……글쎄.”
서지아가 오히려 대답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서지아는 잘 알 거다. 지구의 생활을 오래 경험한 이계의 사람이니까.
리리의 시선에는 놀랍게 보일 수도 없는 풍경인 건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역시 이런 세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뭐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개인적으로 재미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거다.
나는 그저 다시 건물을 바라보았다.
“후아…….”
매캐한 도시의 공기더라도 내게는 고향인 만큼, 가끔 정겨울 때가 있다. 들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 순간, 나는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는 걸 눈치챈 서지아가 먼저 물었다.
“왜 그래?”
“이거…….”
이거 내가 착각한 건가? 나는 이번엔 입을 닫고, 코로만 천천히 공기를 들이켜봤다. 음미하는 느낌으로, 코 천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기를 한 올 한 올 느껴 본다.
그리고, 확신했다.
“꽃향기잖아.”
“꽃향기?”
차소희도 눈을 감고 나를 따라 해 봤다.
“안 나는데? 그리고, 난다고 해도 뭐 이상하나? 누가 향수 뿌리고 지나갔나 보지.”
내가 아무리 지구에 오랜만에 왔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를 고려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과민 반응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건 그냥 꽃향기가 아니야. 이계의 공기에서 나는 냄새야.”
서지아의 표정이 제일 먼저 바뀌었다. 이건 이계에의 공기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였다. 하지만, 여기는 이계가 아니잖아?
왜 서울의 공기가 이계의 성질을 띠는 거지?
그 순간, 뒤에서 방금 말을 걸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기, 잠시만요!”
그는 달려와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빠르게 말했다. 내가 다시 도망칠까 봐 우려하는 듯한 모습으로.
“저는 기자가 아닙니다. 저, 후우…… 저는 의뢰자예요!”
“의뢰…… 요?”
“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부터 선후 님 사무소에 찾아갔는데, 안 계시더군요. 이렇게라도 마주쳐서 정말 다행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휴무니까 나중에 오시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이 사람의 표정에서 그 촉박함의 정도가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 저는 이계 식물을 연구하고 실생활에 적용하여 농업 개선을 추구하는 친환경 회사의…….”
“본론만.”
“……삼성동에 이계 식물원이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예전에 선후 님에게 식물원 운영의 자문을 구했던 회사입니다.”
단순히 자문 의뢰 경우에는 내가 직접 움직일 필요가 없었고, 자금이 필요했던 초반에는 꽤 쏠쏠한 의뢰들이었다. 그중에서는 식물원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 왔던 회사가 하나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선후 씨 자문 덕분에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통제가 되지 않더군요.”
“무슨 현상인데요?”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식물이 꽃을 피운다는 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저 말을 듣고 어떤 문제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절대로 꽃이 돋아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에도, 심지어 식물원의 벽이나 기둥에서도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
“이상 생장. 식물을 구성하는 유전물질은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꽃을 만들기 시작해요. 번식을 위해서인데…… 혹시, 꽃에서 푸른빛이 나던가요?”
“네. 정확합니다!”
내가 아는 현상이었다. 생명력을 과하게 공급받은 숲이나 식물은 그 생명력을 이용해서 이상 성장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저건 정기가 유출되는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잖아.”
서지아의 말이 맞았다. 예전에 성녀와 마주쳤던 바로 그 숲처럼, 산의 뿌리를 통과하는 정기를 직빵으로 맞는 식물들이 보이는 현상이다.
……지구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잖아?
그 순간, 주머니에 넣어 뒀던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꺼내 보니 진서연에게서 온 문자였다. 지금 이 사람은 아직 이계에 있을 터였다.
「선후 씨. 지금 이계에서 갑자기 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그냥 나무나 꽃이 아니라, 땅에도 갑자기 봉우리가 올라오고 있어요. 지훈이한테 연락 왔는데 코드 바이올렛이나 그린 발령할지도 모른대요. 참고해 주세요. 그리고, 시간 되면 와서 조언 좀 부탁드릴게요. 휴가는 방해 안 하고 싶으니 즐거운 시간 보내요.」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그 현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어요?”
“정확히 나흘 전부터입니다. 나흘 전, 새벽에 처음으로 확인되었답니다.”
나흘 전.
신이 행성을 두고 갔을 때의 일이다.
근거 따위는 없지만, 이 순간 내 목숨을 수십 수백 번 살려 줬던 직감이 고개를 들고 외쳤다.
이건 신이 두고 간 행성이 세상에 가하는 영향력이다.
악한 존재가 아니지만, 지구에서는 통제되지 않을 수 있다.
“갑시다. 안내하세요. 차량 있으신가요?”
“아,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례는…….”
“됐으니까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우선 가요.”
고개를 돌려보니 서지아가 약간 미소 짓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방금까지 난처해하던 강선후 맞아?”
그제야 내가 지금 들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웃음이 나왔다.
* * *
식물원 관리자는 CCTV를 통해 현장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OWIC에 지원 요청은 했어?”
“네, 특임대를 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한숨 돌리는 상황이었으나 동시에 욕설도 같이 튀어나왔다. OWIC에게 기어코 빚을 지게 되다니. 녀석들은 이 명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들의 영향력 확장 기회로 삼겠지. 이런 씨발.
하지만 이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아무리 기업의 이윤을 먼저 생각하더라도 지금 상황이 자칫 잘못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닌 탓이었다.
연구팀장과 몇 연구원만이 현장에 남아 있었다. 팀장은 놀라운 직업 정신을 발휘해서 보안 요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군사 전문가가 아니었으나, 식물에 관련해서는 누군가에게 지시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CCTV 안에서 연구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람객들 다 대피했습니까?”
“네!”
“다시 한번 확인하세요! 문제가 일어나면 안 됩니다. 앗…….”
연구원은 이리저리 팔을 휘적이며 지시를 내리다가 무언가에 긁혔다. 팔을 부여잡으며 몸을 떨어트리자, 그 벽에 돋아난 가시를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벽에서 식물의 가시가 돋아나다니. 연구팀장이 조금 동요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보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를 악물었다.
“화염 방사기는?”
“저, 꺼내 왔습니다. 하지만…….”
보안요원은 연구팀장의 생각이 뭔지 눈치채고 있었다.
“관리자님의 승인이 아직…….”
“책임은 내가 진다. 골든 타임을 놓쳐서는 안 돼.”
관리책임자는 마이크를 들었으나, 하필 이 순간 회선이 끊겨 버렸는지 목소리는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관리자는 나중에라도 그 연구원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가 보기에도 이건 적절한 판단이었으니까.
보안요원은 신호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호스를 열었다. 가스가 분출되고, 순식간에 불이 붙으며 고열의 화염이 증식한 식물들을 향해 뿜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상황의 심각성은 그 순간부터 드러났다.
식물들이 타지 않았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불은 거세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번지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뿐이었다.
식물들은 그저 그 불 속에서 더욱더 크게 증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혹독한 이계의 야생을 견디는 그 생물들은 이 불꽃마저 자신의 에너지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위협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읏, 으아아아—!”
땅을 뻗어 나가던 뿌리 하나가 보안요원의 발목을 옭아맸다. 다행히 늦기 전에 빼낼 수 있었으나, 화염방사기를 놓친 그는 다시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뒤로 기었다.
연구팀장은 자신이 그걸 집으며 말했다.
“다들 밖으로 나가요!”
“하지만…….”
“빨리!”
연구팀장은 이를 악물고 더러워진 마스크를 집어던졌다. 매캐한 연기가 눈앞으로 몰려왔다. 식물들의 무수히 많은 꽃이 뿜어내는 꽃가루.
그것이 뿜어내는 희미한 푸른빛은 불가사의했고 그렇기에 두려웠다.
보안요원들이 복도 뒤쪽으로 슬금슬금 빠졌지만, 연구팀장은 오히려 맨 앞으로 나아갔다.
챙그랑—
식물들이 있었던 곳의 강화유리가 깨지고, 넝쿨이 튀어나와 땅에서 흐느적댔다. 복도의 벽을 따라 움직이는 그것을 향해, 연구팀장은 화염방사기의 화구를 내밀었다.
그리고 호스를 당겼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떨어진 충격으로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팀장은 낭패라는 듯 화염방사기를 내려다보다가 집어던졌다. 갈라진 틈새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가스.
연구팀장은 이를 악물며 안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위험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 방법밖에 없지 않나?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고뇌할 시간 따위 없었다. 그는 라이터를 앞으로 내밀며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누구?”
“여긴 현재 출입 금지입니다! 시민분들은 당장 밖으로…… 으앗?”
“아니, 잠깐. 저 사람…….”
뒤에서 이질감이 드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시민이 멋대로 안으로 들어온 건가? 또 유튜브니 뭐니에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연구팀장은 이를 악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를 지나치는, 앞으로 곧게 뻗은 팔.
“모스mohs.”
그리고,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조차 알 수 없는 어떤 말소리가 들려왔다.
단 한 단어였으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라는 사실을 바로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억양과 발음.
화르르르르륵—
그 순간, 허공에서 불꽃이 발했다. 그건 순간적으로 사그라들 듯싶더니.
“모로스moros.”
갑자기 구 형태로 모여들더니 영구적인 화염의 벽을 형성했다. 얇았으나, 식물의 전진을 느리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제야 연구팀장은 당사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는데, 누구인지는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안 다쳤어요? 혹시 상처가 있나요?”
“괜찮…….”
“괜찮은지 묻는 게 아니에요. 아주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는지 묻는 겁니다.”
“……있습니다.”
“차소희.”
“응.”
“이분 데리고 가서 내 가방 속에 있는 연고 발라 드려. 그럼 1차적으로 감염은 막을 수 있을 거야. 나가서 부상자 있는지 확인하고, 체크해서 나중에 나한테 알려 줘. 그리고, 근처 사람들을 통제해 줘. 할 수 있지?”
“응, 맡겨 줘.”
“리리.”
그 옆에 있는 얼굴이 하얀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그녀에게 손가락을 튕겨 무언가를 건넸다. 그건 푸른색을 띠고 있는 작은 보석이었다.
“그 안에 탈레talle 문자가 네 개 저장되어 있을 거야. 식물이 나갈 수 있을 만한 통로에 저장해 줘.”
얼굴이 하얀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 손에서 황금빛 광채가 발하는 듯하더니, 보석은 반지가 되었다. 여성은 반지를 꼈다.
이번에는 헤드폰을 쓰고 있는 여성에게 녹색 보석을 던지며 말했다.
“서지아.”
“듣고 있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 식물 뿌리가 부푼 곳이 있을 거야. 거기에 화살을 꽂아 넣어.”
서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녹색 보석에서 광채가 발하는 듯하더니, 황금빛의 아름다운 활이 되었다. 그 뒤 순식간에 깨진 유리창 너머로 그녀는 사라졌다. 체조선수라고 착각할 정도로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당신은?”
하얀 여성이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남색 보석을 빼서 오른손에 강하게 쥐었다.
“이 녀석을 진정시키고, 물어봐야지.”
“뭘?”
“대수림에 대해서.”
듣고 있던 연구팀장은 물었다.
“……혹시 OWIC쪽 특임대입니까?”
“아뇨?”
“그럼…….”
강선후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살짝 장난기를 머금은 미소를 지었다.
“탐험가 길드요.”
남자의 손에서 황금빛 광채가 발하는 듯하더니, 남색의 수정구를 가진 지팡이로 변했다.
“탈레스반tallethban.”
터어어어엉—
매섭게 기어오던 식물들은 단순한 말 한 마디로, 거대한 충격을 받은 듯 몇 미터나 뒤로 물러났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