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ep44. 탐험가 길드 사무소 (6)
탈레스반tallethban.
명계의 기운을 조작하는 탈레talle의 대표적인 파생 언어다. 남부 접경지대의 죽음을 연구하는 마법사들, 그들 중 수습생 신분을 가진 이도 재능만 조금 있다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단순한 언어.
이 언어는 단순히 명계의 기운을 허공으로 흩날릴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또렷한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존재를 위축시킬 수 있고, 이는 때에 따라서 아주 유용한 작용이 될 수도 있었다. 남쪽의 마법사들은 죽음의 대지에마저 적응한 위협적인 생물들을 쫓아내는 데에 주로 사용하고는 했다.
하지만, 룬 언어는 같은 언어여도 사용자의 역량 등 각종 요소에 따라 그 위력을 달리한다.
탈레talle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엘드리치가 왼 룬은 사자(死者)의 지팡이 속에서 증폭되어 전방으로 흩뿌려졌다.
터어엉—
공기가 급격하게 팽창하는 소리와 함께 스멀스멀 기어 오는 모든 넝쿨이 수 미터나 뒤로 밀려났다. 옭아매는 공포에 뒷걸음치던 사람들은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여실히 목격했다.
“이게, 무슨……?”
마법을 맨눈으로 목격한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다. 비현실에 더 가까운 이계를 연구하는 이들이었음에도 그랬다.
강선후는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단 하나의 감정을 품은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연구팀장을 마지막으로 놀라게 한 건 바로 그 눈빛에 담겨 있는 감정이었다.
보통 싸움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독기를 품게 되기 마련이다. 그 행동에 원한이나 분노가 없더라도 그렇다. 링 위에 올라간 격투가들이 그러하듯.
하지만 이 남자의 눈빛에서는 그 어떠한 부정적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평온했으며, 심지어 아주 조금이지만 연민마저 엿볼 수 있었다.
누구를 향한 연민인가? 지금 이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을 향한 연민?
아니었다. 그 감정은 지금 전방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넝쿨과 꽃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
“아, 네.”
“이계 식물이 있는 식물원 구역은 저 유리창 너머 하나뿐인가요?”
“네. 원형 복도 가운데에 식물을 배치한 한 구역만 있는 구조입니다. 아직 시범 운영 중이라서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아요. 이곳만 제압하면 어떻게든 가능할 겁니다.”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애초에 그게 관심사는 아닌 듯했다.
“저 안쪽에 환풍구가 있죠?”
“아, 네.”
“당연히 외부로 연결되어 있을 거고.”
“그럴 겁니다. 제가 본 건 아니지만.”
“환풍구에 개폐 시스템이 있나요?”
“네? 아, 네! 있습니다! 그, 예전에 이계 탐험가에게 식물원에 대한 자문을 구했을 때 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었다고 들었어요!”
연구원은 눈앞의 남자가 바로 그 이계 탐험가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보낸 탓이었다.
강선후는 그 말을 듣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네. 그럼 지금 바로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주세요.”
“저 역시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 이렇게 남에게 맡겨 두고 자리를 비우는 건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연구팀장이라 하더라도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동요와 흥분으로 가득 찬 머릿속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끌어내는 게 무리인 것도 당연했다.
강선후는 그 부분을 이해했다.
“제 친구 한 명이 나가서 사람들을 통솔하고 있어요. 아마 지금쯤 엄청나게 몰려들었을걸. 그 친구가 싹싹한 편이긴 해도 권한 없이 그 사람들을 통제하기에는 무리잖아요?”
강선후는 뒤를 살짝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강선후는 그리고 뒤를 쭉 돌아보다가 한 보안요원을 향해 말했다.
“지금 들고 있는 소방도끼 저한테 주세요.”
“아, 네.”
보안요원은 강선후에게 소방도끼를 건넸고, 강선후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 강선후가 기다리던 현상이 발생했다.
덩굴들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점혈이라도 찔린 것처럼.
연구원과 보안요원들은 조금 전 어떤 여자가 안쪽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끼를 치켜들고, 안주머니에서 수제 담배처럼 생긴 것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여전히 얼기설기 엮여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덩굴을 향해 정면으로 섰다.
“모스mohs.”
다시 한번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읊조렸다. 그 입가에 불씨가 튀는가 싶더니, 달콤하고 몽롱해지는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졌어.”
그 모습은 연기 사이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사라진 건지, 맹점을 자극하는 착시 현상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묘한 어지러움을 느껴 연구팀장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곧, 정신을 다잡았다.
“인원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벗어납시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보안요원들은 뒤쪽에서 두려움에 떨던 연구원들을 인도하여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 서둘러야 해.
강선후 머릿속에는 이 생각 하나뿐이었다. 이 식물 추출 성분이 제대로 통하는 건 고등한 동물뿐이었다. 기체의 영향력을 적게 받는 식물들을 상대로 큰 효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그래서, 이 녀석이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모든 상황을 끝내야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서지아의 모습이 보였다. 서지아는 조금 질린 듯한 표정으로 어느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곳에 거대한 식물 뿌리의 부푼 부분이 있었다.
그건 심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마치 기생체의 고치라도 되는 것처럼.
“당신은 이걸 다 알고 있었어?”
“몰랐으면 어떻게 지시를 내렸겠어?”
“……이건 엘프도 한평생 한 번 이상 보기 힘든 현상이야.”
서지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보이는 부푼 뿌리는 무언가 태어나기 직전의 알이라는 걸 단번에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서지아는 알고 있었다. 저건 숲의 심장을 품고 있는 알이라는 사실을. 그게 지금 부화하기 직전이라는 걸.
“이게 부화해 버리면 자리를 잡기 위해서 근방의 기후와 환경을 조작하려 들 거야.”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죽이든가, 어쩌면 근방 몇 킬로의 땅속에 뿌리를 뻗어 나갈 수도 있어. 자기도 알고 있겠지?”
서지아의 말에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숲은 어떻게든 자신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 이렇게나 오염된 토지라면 양분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뿌리를 깊게 뻗을 것이고, 서울의 지하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하철로 뻗었다가는 큰 사고가 날 거야.”
거기까지 닿은 서지아의 얼굴은 새하얘져 있었다. 숲은 자신에게 필요하다면 얼마나 난폭해질 수 있는지 잘 알기에 그랬다.
“당장 불태워야 해.”
그러면서 서지아는 활을 들어 올렸다. 방랑자의 활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화살을 만들어 냈다.
방랑자의 상 손에 쥐어진 방랑자의 활은 모든 잠재력을 끌어올렸다. 서지아가 만들어 낸 화살은 나선형의 식물 줄기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장미의 가시 같은 것들이 무수히 달려 있었다.
맹독을 가진 독초를 화살의 형태로 만들어 냈다. 이거라면 숲의 발버둥을 더욱 길게 잠재울 수 있겠지. 그렇다면 강선후가 강력한 룬 마법을 만들어 낼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강선후도 마찬가지의 결론에 도달했으리라 확신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강선후를 바라보며, 동시에 알을 조준하는 활시위를 당겼다.
강선후는 어느새 그녀를 지나쳐 알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 손에는 소방도끼가 들려 있었다.
저걸로 알을 부술 생각인가? 내려친다고 해도 부화를 도와주는 꼴일 텐데. 서지아는 순간 그 모습에 혼란을 느꼈다.
그리고, 알 앞에 무릎을 꿇은 강선후가 입을 연 그 순간.
“무서워하지 마.”
서지아의 흥분과 동요는 일시에 증발하고, 그 자리에 공허함과 차분함이 자리 잡았다.
강선후는 천천히 부푼 뿌리의 껍질을 벗겨 냈다. 그 안에는 이제 막 태어난, 정말 순수하기 그지없는 숲의 심장이 있었다.
원래 땅속에 반쯤 박혀 있어야 하는 그것은 아래로 잔뿌리를 뻗어 나가고 있었다. 두 손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강선후는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내가 책임지고 집에 데려다줄게. 알겠지?”
숲과 인간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평범한 인간은.
강선후는 엘프마저 신중한 의식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숲과의 의사소통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숲의 심장이 뿜어내는 푸른빛은 희미하게 떨렸다. 거기에 담겨 있는 감정이 뭔지 서지아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그 숲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듯 행동했다.
강선후는 심장을 양손에 조심스럽게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식물들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어느새 식물다운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전의 소동이 없었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근방에는 침묵으로 가득 찼다.
마음을 가득 채우던 조급함이 일시에 날아가자, 그 자리에는 다른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인간인 강선후는 어린 숲을 살리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썼고.
엘프인 자신은 위험이 된다는 이유로 어린 숲을 죽이려 들었다.
지금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이 감정은…… 너무 복잡했다.
이건 수치심이었다. 아마도.
* * *
“으아!”
복도로 나가자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식물들이 뿜어낸 습기가 재와 만나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 나는 이 냄새를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았다. 화학약품 같았거든.
복도에서 우두커니 선 채 문 바깥을 바라보는 리리와 마주쳤다. 리리가 끼고 있는 반지의 다섯 개 보석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시킨 대로 룬 문자를 잘 설치한 모양이다.
“수고했어.”
“나는 한 게 없어. 당신은…… 무사한 것 같네.”
리리는 힐끗, 내가 들고 있는 수정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건 숲의 심장 아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리는 아연실색했다.
“이곳에 기어이 숲의 심장이 생겼어? 그건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현상인데?”
“그러게. 좋은 구경 했지.”
나는 꽤 여러 번 본 것 같지만.
예전에 살았던 숲에는 숲의 심장이 한 개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었다. 한 개지만, 지상에서 볼 때는 여러 개로 보였을 수도 있지.
어마어마하게 크다면 그게 가능할 수 있다. 내가 살던 숲은 아무래도 대수림이었던 모양이니까.
리리는 잠시 내 손에 들려 있는 걸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문 바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의 정문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바깥을 다 볼 수 있었는데, 리리가 뭘 보고 있는지는 아직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뭘 그렇게 봐?”
“……아니야.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 것 같아.”
“뭔데?”
리리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범죄자는 아니었구나?”
“아니라니까?”
“자꾸 사람들 피하길래 그렇게 생각했어. 아니라면 다행이야. 그리고…….”
리리는 바깥으로 손가락질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각오를 좀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을 들을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내가 정문으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찰칵찰칵찰칵.
찰칵찰칵.
카메라의 셔터음이 들렸다. 여기저기 번쩍번쩍한 빛이 터졌다. 아니, 대낮 야외에 무슨 플래시야.
그런 하염없는 불평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저 사람들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찍힌 영상은 나중에 유튜브든 인스타든 해서 올라가겠지.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각오 정도는 했었다. 내가 아무리 지구 쪽에 관심이 없더라도 아무런 상식도 없는 사람까진 아니니까.
“강선후 님 맞으시죠!”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걸 이미 알고 계셨나요?”
“어떻게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도착하셨던 겁니까?”
“이번에 이계 측에서 거인을 공사에 투입시킨 게 강선후 님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그 와중에 차소희가 당황해서 사람들을 막고 있었다.
“저기, 이러면 저 사람 도망쳐요! 조금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니까?”
……저게 막고 있는 게 맞나? 오히려 부추기는 거 같은데.
나는 차소희의 어깨를 툭툭치고는 말했다.
“튀자.”
“사람들이 당신을 영웅 취급해.”
리리는 이계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낭만이 가득했다.
“저건 영웅 취급이 아니라 돈줄 취급이야. 저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거든.”
“돈…… 줄?”
“나중에 설명해 줄게. 가자.”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서지아는 아직 문 안쪽에서 우두커니 선 채,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의 날렵한 눈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바보 같은 눈빛이었다.
“뭐 해? 빨리 가자.”
“……알았어.”
서지아는 그렇게 말하며 뒤늦게 발걸음을 옮겼다.
(베이스캠프 주변 지도)
너무 멀리 있는 건 담겨 있지 않으며, 강선후가 인지하는 지역 배치라 실제와는 축적 등에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