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ep44. 탐험가 길드 사무소 (7)
나는 손안에 있는 작은 숲의 심장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야생에서 생명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겁먹어서.
“조금만 거기에서 기다려.”
나는 아직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그것을 가방 깊숙한 곳에 넣었다. 저렇게 있어도 당장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 나중에 정착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찾아 주기로 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급하게 자리를 뜨면서도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혹시 이계 식물의 포자나 씨앗이 사람들의 상처 안으로 들어간다면 큰 자칫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저는 이 식물원을 대표해서 시민 여러분들께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부분을 먼저 말씀드립…… 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던 이전의 연구팀장의 옆을 지나쳐 갔고, 그는 내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저기, 강선…….”
어느새 내 이름까지 안 모양이다. 사람들이 앵간히 내 얘기를 했나 보지. 나는 그에게 꼬리를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뜩 이 한마디는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다들 하루에 한 번씩 상처 부분을 꼭 소독하세요. 혹시 염증이 생기거나 기타 다른 증상이 있으면 꼭 나 찾아오시고요. 알겠죠?”
“네? 아, 저 잠시만…….”
“꼭 찾아오셔야 해요!”
“꼭이요! 탐험가 길드는 여러분을 항상 친절하게 모십…… 으앗?”
내 말에 괜히 덧붙이는 차소희의 팔을 잡아끌었다.
“얘 봐. 너는 손님 많아지는 게 싫니? 저런 고객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비즈니스에서 업계 사람들한테 얼굴도장 찍는 건 상식이라구요, 상식.”
아, 그러셔.
나는 듣는 척도 안 하면서 앞으로 그저 걸어나갔다. 차소희는 그런 내 뒤를 따라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는 놀리는 듯한 억양이 가득했다.
“왜 그렇게 급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잖아.”
“이제 좀 솔직해지기로 했어?”
솔직히 그렇다. 괜히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있으면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학습된 듯한 행동인 것 같기도 했다.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말이지.
“우리 세상에서는 당신 안 그랬잖아.”
내 걸음 속도에 맞춰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리리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컬러 렌즈로 덮인 그 갈색 눈동자가 평소의 이 녀석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 적안이 아무래도 리리의 인상에서 큰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당신을 믿고, 당신을 올려다보았는걸. 불멸자와 악마 앞에서도 주눅 든 적 없었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당장 안 듣고는 못 참겠는데요?”
우리는 동시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돌아봤다. 평상복을 입고 있는 진서연이 방긋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어 조금 전 받았던 문자를 확인했다. 이계의 돌발 상황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 문자는 분명 진서연이 보낸 메시지였다.
“방금까지 이계에 있던 거 아니었어요?”
“퇴근했죠. 오늘 오전까지 현장연구실 당직 근무였거든요. 당연히 오늘은 당직휴무.”
“이계 비상 상황이라며?”
“퇴근이 더 중요하죠?”
이 와중에 듣고 있던 차소희는 ‘고롬, 고롬.”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차소희와 진서연 간의 짧은 공감대가 형성된 뒤, 진서연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닌 거 같아서요. 그런 업무는 지훈이 분야기도 하고, 사방에 꽃이 피는데 제가 눌러앉아 있어 봤자 뭐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원인도 모르겠고…….”
진서연은 그렇게 잠시 중얼거리더니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말했다.
“그래서 놀러 오기로 했죠.”
“……놀러 나한테 와요?”
“뱀파이어 귀족 자제분 데리고 서울에서 쇼핑한다면서요?”
진서연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이걸 어떻게 참아요?’
“고로치!”
이럴 때 보면 차소희와 진서연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호기심과 추진력의 측면에서 말이다. 나는 그저 체념하고는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다.
“선후 씨는 어디로 가는데요?”
“청계천. 거기가 은근 탐험용품을 좀 팔거든요.”
“저 차 있는데 운전 담당은 제가 할게요. 눈치 없이 데이트에 끼어들었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진서연 덕분에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낡은 상가로 당연하게 향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진서연과 차소희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 둘이 죽이 잘 맞는 경우가 꽤 있는 터라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차소희가 금방 나한테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선후야! 우리 리리 데리고 백화점 갔다 와도 돼?”
“백화점?”
“리리 말이야. 맨날 탐험복 아니면 추리닝에 돌핀팬츠만 입고 다니는 거, 안 불쌍해? 얘 나이 때 나는 틴트만 열여섯 개였어.”
나는 애초에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오히려 진서연이 웃었다.
“지금은요?”
“반 개!”
“한 개가 아니라요?”
“지난번에 술 처먹고 뚜껑 대충 닫았더니 가방 안에 반절은 쏟아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반 개.”
“……세상에.”
저들끼리 죽이 잘 맞는 이야기가 꺼내는 차, 그 뒤에서 리리는 동그란 눈으로 멀뚱멀뚱 둘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차피 이번에는 무전기하고 방독면만 사려고 온 거니, 딱히 내가 리리를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차소희는 리리에게 팔짱을 끼고 바로 옆에 있는 멋들어진 건물로 들어갔다.
“……어디 가?”
“재밌는 곳!”
“재미? 당신은 안 가는 거야? 어…….”
그 모습이 조금 재밌어서 살짝 지켜보다가 나는 낡은 복합 상가로 발걸음을 향하려다 말고 서지아를 바라보았다.
저쪽을 따라갈 것 같았던 서지아는 우두커니 선 채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부터 한마디도 없었는데.
“너는 나 따라오려고?”
“아직 고민 중이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쪽 상가로 향했다. 이 상가 중 어딘가에 단파 무전기를 파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산업용 방독면도 찾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이기에 나는 이것들을 최우선으로 구매할 예정이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문뜩 여유가 생겨서 나는 서지아에게 말을 걸었다.
“너 말이야. 예전에는 하운드 생활을 했다면서?”
“그렇지.”
“돈귀신으로 그냥 소문이 나 있던데, 왜 그렇게 악착같이 벌려고 했던 거야?”
“잘 살려고.”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서지아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대답인데, 이 엘프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니 조금 이상했다.
“……너한테는 지구보다 이계가 편한 거 아니야?”
“어딜 가도 이방인이라면 이방인에게도 기회가 있는 땅이 좋으니까. 이 정도면 자기한테 답변이 되려나?”
“흠.”
서지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보기에 난 엘프야?”
나는 잠시 그 질문의 의도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그냥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무슨 의도인지 모를 때는 그 의도를 넘겨짚으면 안 된다는 게 내 지론이었으니.
“글쎄, 네가 보기에 난 인간이야?”
“……어려운 질문이네.”
“그렇지? 의도에 따라서 대답하기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는 질문인데?”
서지아는 잠시 내 대답을 소화시키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 미안해, 자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너 데리고 온 거 이계에 혼자 있지 말라고 그런 거니까 미안할 거 없어.”
“……?”
“혼자 있으면 괜히 또 가서 다치고 올까 봐. 그거 상처는 괜찮은 거야?”
이계 야생 생활을 하면서 상처를 파악하는 눈썰미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사냥에 도움이 되는 감각이거든.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지금 서지아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거대한 숲에게 공격을 받았댔지? 엘프라면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야.
고개를 끄덕인 뒤 뒤돌아 가는 서지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쪽 마을의 엘프 촌장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려 봤다.
「엘프들은 태어날 때,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발아한 나무의 싹을 찾아내 영혼을 연결합니다. 그 순간 엘프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겁니다. 그러지 못했다면 그자의 영혼이 진정한 엘프라고 부르긴 힘들겠지요.」
확실히, 지구에 기꺼이 정착한 엘프한테 사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겠지.
* * *
서지아는 하운드 생활을 하던 시절 아지트로 삼았던 낡은 아파트로 향했다. 이런저런 개조까지 했던 곳. 한때 나름 자리를 잡고 밑에 사람까지 부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서지아는 이 세상에서 비로소 자신의 집을 찾은 느낌이었다. 한때나마 의지하던 신카의 멸망 이후에는 더욱 그런 곳이 절실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결국에는 배신 당하고 죽을 위기에까지 처했잖아? 그때의 소란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도록 정리가 되어 있는 완전히 빈 건물이었다.
이전의 잔해만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입구 바로 옆 방에는 내가 쓰러져 묶여 있었지. 콘크리트 바닥에 물들어 있는 핏자국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그 당시 죽어 가는 자신의 흔적이었다.
하염없이 죽음을 기다리던 그때의 날 구해 준 건 강선후였다.
그리고, 엘프는 반드시 빚을 갚는다. 그게 은혜든 원수든 간에.
서지아는 먼지투성이의 양손 망치를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공간 전체가 먼지 덩어리 같은 그 방의 한쪽 벽을 내리쳤다.
그 뒤쪽에서 빈 공간이 드러났다.
엘프 전통의 리넨 천으로 감싸 있는 길쭉한 무언가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재질도, 형태도 특별할 것 하나 없어 OWIC 놈들이 감지기로 수색했더라도 그냥 지나쳤을 물건.
서지아는 그 물건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었기에.
천을 펼치자 모습이 드러낸 건 단 한 발의 화살이었다.
특별할 거 없어 보이는 가느다란 겨우살이를 엮어 만든 화살.
서지아는 방랑자의 상을 타고났고, 이는 명가의 후계임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물건은 가문 대대로 내려온 유물이었다.
최초의 성좌가 된 엘프, 엘신의 화살.
세계수의 씨앗을 찾아낸다면, 그것을 싹틔울 정도의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서지아는 끝까지 이 화살의 존재를 강선후에게 말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백 년을 수련하여 영혼이 정순한 엘프가 아니라면 이 화살의 막대한 힘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아마도, 반드시 목숨을 잃겠지.
그건 반쪽짜리 엘프도 마찬가지일 거다.
서지아는 잠시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퀴버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이계로 출발했다.
* * *
“이제 가는 거야?”
며칠 뒤 꼭두새벽.
눈을 비비며 사무실에서 나오는 차소희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저 멀리 서쪽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는 대략 서쪽, 아마도 최초의 전쟁터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곳 하늘에 신이 두고 간 행성이 자전하고 있었다.
저곳에 뭐가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그건 도착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모를 일이겠지.
진서연이 건넨 약식 보고서를 받았다. 여전히 빼곡한 글씨로 가득 차 있어서 당장 읽기에는 무리였다.
“대수림의 심장에 묻어 있는 성분을 최대한 분석해 봤어요. 역시 저는 별로 찾아낸 게 없지만…… 선후 씨는 알아볼 수 있는 게 있을지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오늘은 서지아가 안 보이네?”
“글세. 며칠 전부터 안 보이던데…….”
차소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아주 살짝 생각에 잠겼다가는 우선 눈앞의 목표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짐 다 쌌어.”
우리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리고 언제나처럼 렐릭시나의 등 위에 올라타는 우리 둘.
우리는 천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이번 여정의 규모를 가늠했다.
“갔다 올게.”
“조심해서 갔다 와요.”
“여유 있으면 촬영해 와? 테스트해 볼 게 있거든.”
차소희가 건네준 액션캠을 슬쩍 내려다본 뒤, 렐릭시나를 출발시켰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