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ep46. 사냥, 검은 뱀 (1)
검은 뱀은 탑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중간중간 탑을 깨무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대한 증오 표출이라는 추측이 맞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큰 의미가 없다. 뱀의 목표가 탑 꼭대기에 있다는 확신에 도움을 줄 뿐.
리리가 던진 병에 담긴 기름은 지구산 특제였다. 이계의 원료는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지만, 정제 기술만큼은 지구의 것이 훨씬 월등했으니까. 내가 아는 선 안에서는 말이다.
그곳에 쏘아낸 화살촉에 묶은 병에는 공기와 만나면 급속도로 산화되는 물질이 담겨 있었다. 다시 말하면, 화학적인 불화살인 셈이다.
뱀의 등줄기를 따라 푸른 불이 일더니 밝은 주황색을 발하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뱀은 팔도, 다리도 없었다. 그 말뜻은.
“저 불을 끄려면 탑에서 내려와서 땅을 굴러야 하겠지.”
이기는 싸움의 대전제, 내가 유리한 위치에서 싸워라.
“저기! 우리가 잘 내려갈 생각부터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내게 바짝 매달려 있는 리리가 그렇게 말했다. 그동안에도 렐릭시나와 연결되어 있는 밧줄에 의지한 우리는 공중을 크게 활강하고 있었다. 저 뱀 녀석은 자신에게 폭죽을 터트리고 간 게 누구인지 알지도 못할 거다. 그저 난데없이 날벼락이 떨어졌다는 생각만 들 수도 있겠지.
그것 역시 내가 원했던 바다. 힘의 격차를 정보의 격차로 상쇄한다. 그리고, 그건 감정과 기세의 격차로 이어진다.
렐릭시나는 멈춰 서더니 아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허공에 자신의 몸을 고정했다.
콰득—!
“쟤 지금 벽을 물어 버린 거야?”
리리가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살짝 돌출된 탑 외벽의 장식을 이빨로 그대로 물어 버려 허공에 몸을 고정하다니.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치악력이다. 내가 잡았지만 가끔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놈인지를 모르겠네.
하여튼 그 덕분에 나 역시 안정적으로 멈춰 설 수 있었다. 우리는 빠르게 밧줄을 기어올라 다시 렐릭시나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밧줄 화살을 꺼내 벽에 단단히 박았다. 빙글 돌아 알아서 매듭이 묶이는 걸 확인한 뒤, 렐릭시나는 그 무게에 의존해서 다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으면서 그 발굽에 붙은 불꽃의 접착력이 강화된다. 렐릭시나가 평범한 말보다 험지 주파 능력이 뛰어난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 발굽에서 푸르게 불타는 불꽃이 그냥 장식인 것만은 아닌 탓이었다.
위에 매달린 밧줄이 제동력을 강화해서 안정성을 높인다.
도박과 비슷한 수였으나 렐릭시나의 역량을 알았기에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와 하얀 나무들 밑으로 모습을 숨겼다.
“후욱…… 후욱…….”
렐릭시나가 묵직한 콧김을 뿜어냈다. 주전자에서 나온 그 증기만 봐도 얼마나 몸에 열이 올라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렐릭시나의 뺨을 어루만지며 녀석을 진정시켰다.
“잘했어.”
“크르릉—.”
그리고.
내 뒤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져서 풍기는 매캐한 먼지 냄새.
앞에서 내 어깨 너머 뒤쪽을 바라보는 리리의 표정을 보아 내 예상대로 뱀은 땅으로 떨어졌다.
“진짜 저것만으로 떨어졌네. 꿈쩍도 안 할 줄 알았는데.”
“뱀은 변온동물이고, 팔이 없다면 등에 붙은 불씨 하나도 생각보다 무서운 법이거든. 손이 묶여 있는데 등 뒤에서 뭐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난다고 생각해 봐.”
“……끔찍해.”
“그렇지? 그거랑 비슷한 거야.”
나는 뒤를 올려다보았다. 뱀 녀석이 얼마나 급하게 떨어졌는지 먼지는 생각보다 높게 치솟고 있었다.
쉬이이익—
이어서 화가 잔뜩 난 뱀이 연기 사이로 고개를 치켜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가자.”
“응.”
리리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하얀 나무 숲 사이로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그러면서 나를 힐끗 바라보는 그 시선에는 이상하도록 생각이 많이 담겨 있었다. 매번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하는지.
나는 그저 다음 작전에 대해서 정리할 뿐이었다.
* * *
리리는 강선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눈을 바라봤지만 평소와는 다를 바 없는, 노골적으로 말하면 참 단순하고 직설적인 눈빛을 정직하게 뿜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안에는 언제나 여유가 일부 드리워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 위에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야수의 형상이 거대하게 드리워 있었다.
포식자의 상.
처음 리리는 그 형상을 보기만 해도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의 눈빛, 들리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지는 그 울음소리 앞에서는 공포를 넘어선 무력감마저 느껴지고는 했으니.
리리는 언젠가 다른 지배자를 만나야만 자신의 숙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지배자들이 어떤 자들일지에 대해서 자주 상상해 보고는 했다.
하지만, 포식자가 이런 모습일 것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저런 형상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눈빛에 온화함이 남아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난폭한 성질을 숨기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중인격이라도 되는 건가? 리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강선후를 경계했으나, 이제 와서는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강선후는 언제나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감정으로 사람을 대했다.
“뭘 그렇게 봐?”
강선후는 넌지시 말했다.
이 남자가 자신의 숙명을 끝내 줄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나쁜 선택은 아니었고, 리리는 그것만으로 우선 만족하기로 했다.
“으응, 아니야.”
리리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현실로 돌아왔다. 강선후는 뒤를 돌아 뱀과의 거리를 가늠한 다음, 자리에 눌러 앉아 가방을 풀어헤친 뒤 무언가를 잔뜩 꺼냈다.
그건 이미 만들어진 연금술 화합물, 그리고 연금술을 행할 수 있는 휴대용 간이 실험대들이었다.
리리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무릎을 굽혀 몸을 낮췄다.
지금까지 강선후와 사냥을 한 적은 많았다. 마땅히 역사에 기록되어야 할 전투도 있었으나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사사로운 사냥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짧아도 몇 주, 길게는 몇 달이나 지속되는 탐험에서 식량은 언제나 주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강선후와 그렇게 수많은 사냥을 하면서, 그의 스타일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는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대부분의 사냥감은 정면에서 대결하면 강선후가 이길 가능성이 적은 것들이 대다수였다.
강선후는 스스로 늑대 수준의 사냥감조차 정면에서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여겼다. 그게 가능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렇게 단정 짓고 행동했다. 그에게 있어서 전투의 최우선 순위는 승리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승리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승리란 최후에 남는 것이기 때문이었으니까.
강선후는 연금술 실험대를 쭉 펼치고는 약간 고민하더니, 삽을 꺼내서 땅으로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리리는 도우면서도 넌지시 물었다.
“왜?”
“뱀은 생각보다 후각이 좋아. 내가 있는 위치가 들킬 수도 있으니까. 땅 아래에서 작업하려고.”
“굳이 이럴 거면 처음에 왜 자극한 거야?”
“위협이 있다는 걸 인지하게 하려고.”
“모르고 있게 하는 쪽이 좋은 거 아니야?”
기습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었다. 강선후는 부지런히 삽으로 하얀 흙을 퍼올리며 말했다.
“비슷한 역량을 가졌거나, 오히려 나보다 약한 걸 사냥할 때는 기습이 유리해. 괜히 위협하면 도망치거나, 선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뱀이 있을 법한 곳을 슬쩍 올려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건 나보다 강하잖아? 그리고 내가 어디있는지는 잘 찾지 못하겠지.”
“……그렇지.”
“그리고 내가 누군지도 몰라. 벼락이 떨어진 건지, 아니면 신벌이 내린 건지 성좌가 헤코지를 한 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거야.”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봐. 뭔지도 모르는 게 자신을 노리는 건 맞는데, 그 습격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다?”
강선후는 잠시 생각을 잠겼다가 씨익 웃었다.
“미쳐 버릴걸.”
* * *
대수림에 기생한 기생체는 꽤 오랜 시간 살아오며 많은 양분을 축적했다. 대수림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양분량이었으나, 그래도 다른 숲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대수림은 기생체에 그 어떤 숲보다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래서 기생체는 흡수하는 양분 만큼이나 소모하는 양분이 많았고, 그래서 항상 격렬하게 굶주려 있었다.
세계수가 시든 대수림은 기생체를 이길 수 없었고, 결국 우위를 점한 기생체는 탈피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그 무엇보다도 거대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대수림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탑 꼭대기에 별이 떨어졌다.
성좌의 존재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기에 기생체의 눈에는 그저 빗방울만큼이나 의미가 없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그 뒤부터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퍼져 나감에 따라 점차 숲이 하얀색 무언가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마치 얇은 보호막처럼 나무와 풀이 양분을 잃고 하얗게 변해 버렸다. 기생체는 이 숲에서 더는 양분을 뽑아낼 수 없었다.
기생체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저 탑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원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기생체는 분노하며 탑을 올랐다.
하지만 항상 실패했다. 숲은 그때마다 기생체를 방해했고, 기생체는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도 모자라 볼품없이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땅 속을 파고들어 흐르는 정기를 탐식해 겨우 힘을 보충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지금.
운이 좋게 이 근방을 지나가는 산의 뿌리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흐르는 막대한 량은 순식간에 전성기의 체력을 확보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될 것 같았다. 기생체는 다시 고개를 쳐들어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등에서 느껴지는 격한 통증.
처음 느껴 보는 고통이었다. 생명에 문제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건 점차 번져 나갔고 기생체는 그 느낌에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본능적으로 땅에 떨어져 몸을 비볐다. 등을 타고 흐르는 무언가는 사라졌으나, 그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이거 하나뿐이었다.
‘누구 짓이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알 수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그저 평소의 하늘이었다. 뇌우가 떨어진 적도, 이전에 봤던 것처럼 별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뭐지? 뭐가 나를 공격하는 거지?
기생체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신력이 빠르게 소모되었고, 그 탓에 에너지가 격렬하게 빠져나갔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무엇이든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달의 형태가 바뀌는 걸 올려 보며 기생체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그 순간, 이질적인 냄새가 혓바닥을 스치고 지나갔다.
쉬이이익—
기생체는 그 거대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방향을 빠르게 찾아냈다.
오른쪽, 꽤 먼 거리. 매캐한 무언가가 증발되는 듯한 냄새.
그곳을 바라보자 달빛에 비친 희미한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성을 잃은 뱀은 그게 뭔지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이 숲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현상.
그렇다면 저게 날 공격한 그것이다.
그런 판단을 하고.
쉬이이익—!
거친 쇳소리를 내뿜으며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머리를 처박았다. 무언가 닿자 그대로 입을 쩍 벌려 물어 버렸다.
그리고.
……?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가 그 자리에 가로세로로 엮여 있었다. 십자가 형태의 그것이 입 안에서 위아래 턱 사이에 단단하게 끼어 들어갔다.
이게 대체 뭐지.
단순한 나무일 텐데, 고작 나무가 이토록이나 단단한 거지.
목재는 후처리를 통해 강해진다는 개념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뱀은 머리를 들어 올렸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자 다시 숲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까지 시선이 올라왔다.
그런데, 양 눈 사이에 뭔가 있었다.
이물질인가, 싶었는데.
“안녕.”
푸욱—!
무언가 콧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혀를 사정 없이 내밀었지만,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머리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었으면 털어 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기생체는 그러지 못했다.
한 달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이 여전히 무엇인지 아예 감을 잡을 수 없었기에, 공포심 때문에 신경이 경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은 길지 않았다. 단 몇 초? 기생체는 빠르게 분노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전에, 인간이 먼저 움직였다.
인간은 쇳덩이를 자신의 미간에 틀어박았다.
그리고.
탕-! 탕-! 탕-! 탕-!
무언가, 살갗을 꿰뚫고 연속적으로 두개골을 두드렸다.
격통과 공포, 무엇이 더 큰지 구분도 하지 못한 채, 기생체는 머리를 뒤흔들었다.
강선후는 그 전에 미리 뛰어올라 공중에 몸을 띄웠다.
뒤늦게 꼬리부터 무언가 달려 올라오고 있다는 걸, 기생체는 깨달았다. 그건 네발 달린 검은 짐승이었고, 푸른 갈기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게 미리 준비된 각본이라는 듯 움직였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