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ep46. 사냥, 검은 뱀 (3)
기생체는 온몸에서 고열을 내뿜고 있었다. 온 숲에 불을 붙인 뒤에도 열기는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허억, 허억…….”
리리는 숨이 가빠옴을 느꼈다. 달궈진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오는 건 그 자체로 호흡곤란을 유발했다.
더군다나 뱀파이어의 피부는 외상에 약했다. 천잠사의 망토 바깥으로 삐져나온 피부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리리는 서둘러 손을 망토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언제나 강선후를 신뢰했지만, 최소한 지금은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리는 강선후의 표정을 보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강선후의 표정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단순히 복수심 때문에 저것한테 덤빌 생각인 거야?”
“저 탑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지켜야 할 것 같거든.”
강선후는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행성, 그 행성을 둘러싸고 있는 고리가 보였다.
“그게 다음 황금 유물로 향하기 위해 해야 하는 거 같아서.”
그 뒤, 그는 리리를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고작 복수심 같은 걸로 널 이렇게 위험한 데에 데리고 왔을 거 같아?”
“고열지대 태양탑 때도, 파도치는 사막의 끝없는 나락 때도 내 의사는 묻지도 않았으면서.”
리리는 그렇게 말하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강선후도 같이 웃었다.
“그래도 내가 정해 둔 기준이란 게 있어. 말했지? 나 원칙주의자라고.”
그러면서 강선후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단순히 복수심 때문에 남까지 끌어들일 생각 없어.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위험한 곳은 가도 나 혼자 가.”
“그거 아쉽게 됐네.”
스릉—
리리 역시 품속에서 헌팅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저 불꽃을 뿜어내는 거대한 짐승 앞에 서 있는데 저 나이프가 무슨 소용일까? 리리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품은 의지를 행동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안 데려간다고 해도 나는 따라갔을 거니까.”
강선후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인도자의 상을 타고났기 때문일까?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강선후는 쥐고 있던 금속 줄을 잡아당긴 뒤 단검을 회수했다. 잔뜩 화가 나서 하늘에 대고 고함을 내지르던 기생체가 고개를 내렸다. 자신을 분노케 한 것을 찾아 당장이라도 뭉개버릴 기세였다.
“가자.”
“응.”
둘은 렐릭시나의 등에 올라타 숲속으로 몸을 가렸다.
* * *
기생체는 비늘 하나하나를 부르르 떨며 고개를 휘적였다. 그리고는 코브라처럼 귀를 활짝 펼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 짓을 하는 놈들의 생김새를 볼 수 있었다. 불타는 갈기의 흑마와 그 위에 타고 있었던 것들이 이 이 상황의 주동자였다.
기생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선후는 다시 숲 사이로 숨었지만, 기생체는 이제 신중함을 버렸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비축한 에너지마저 신경 쓰지 않고 폭발시킬 정도로 이성을 상실했기에,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기생체가 그 입을 쩍 벌렸다. 새까만 입안의 점막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혀 뒤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기생체는 불꽃을 뿜어 아무렇게나 숲을 긁었다. 순식간에 직선 형태로 나무들이 사라졌다.
강선후는 더 이상 숨지 않았다. 숨기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리리!”
리리는 손에 꼭 쥐고 있었던 녹색 보석에 다시금 정신을 불어넣었다.
강선후는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생전 활을 써본 적이 없었기에 아무리 잘 써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리리만 못하다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렐릭시나의 운전에만 집중하며 아공간 가방을 앞으로 메고 뚜껑을 열어젖혔다.
강선후는 그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둔 연금술 물약들을 리리에게 건넸다. 리리는 빠르게 매듭지어 화살촉에 그것을 묶었다.
이 매듭은 강선후가 알려 준 것이었다.
강선후가 기생체에 접근했다. 나무 아래서 불쑥 튀어나온 그를 보고 기생체가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리리가 화살을 쏘아 댔다.
첫 번째 화살은 기생체의 몸에 닿자마자 폭발했다. 두 번째 화살은 비늘을 녹였고, 세 번째 화살은 기생체 안으로 파고들며 할로우 탄환처럼 조깨져 박혔다.
이어서 끊임없이 빠르게 이어지는 화살들. 시위만 당기면 자동으로 화살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이 속사는 순식간에 수십 발의 화살을 기생체의 몸에 박아 넣었다.
물론 그것들 중 기생체에게 유효한 타격은 단 한 개도 없었다. 하지만 기생체의 분노를 더욱 이끌어 내는 데에는 충분했다.
촤아아악—!
기생체 허리춤의 피부가 갈라지는가 싶더니 사마귀의 앞발 같은 날이 튀어나왔다. 그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땅을 격하게 찍었다. 충격에 나무 수 그루가 뿌리째 솟아올랐다.
기생체는 팔을 들어 올렸다. 그 아래 볼품없이 깔려 핏덩이가 되어 있기를 바랐는데, 이미 그 흑마는 저 멀리 달려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흑마의 발굽과 갈기의 불꽃은 이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연료를 태우며 출력을 강제로 수십 배 올린 증기기관처럼 콧김을 뿜어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흑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더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렐릭시나! 괜찮아?”
고통스럽지 않을까? 강선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렐릭시나는 태어난 뒤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즐거워하고 있었다.
렐릭시나는 이제까지 그저 제 주인과 주인의 친구를 위해서 속도를 조절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전투는 한나절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 시점에서 기생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훨씬 강하다는 게 명백한 사실인데, 기생체는 강선후를 압도하기는커녕 잘 건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대한 분노가 속 안에 계속 차오르고 있었다. 기생체가 자각하지도 못한 사이, 그 감정의 응어리는 임계점을 한참 전에 넘어 버렸다.
힘의 격차는 감정과 결핍의 격차로 극복해 낼 수 있다.
이게 강선후가 기생체를 사냥하는 방식이었다.
옆구리를 뚫고 나온 두 개의 팔이 이 주변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하얀 나무들은 날아올랐으며, 그 사이에 살고 있었던 온갖 생물들이 빠르게 도망쳤다.
기생체의 움직임은 빨라졌으나 정교함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강한 존재가 본능적으로 품고 있는 위협적인 기술은 사라지고, 그저 파괴하고자 하는 격정만이 그 손짓에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기생체는 적의 모습을 보았다. 자세히 보기도 전에 손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뭔가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됐나?’
그런데 그 존재는 오히려 자신의 손날을 타고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모래 먼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그건 질리도록 본 흑마가 아니었다. 푸르고 반투명한 유령 늑대가 그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채 날 위를 달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 꼭대기에서 늑대는 도약했다. 그리고 기생체의 눈을 물어뜯었다.
“키에에에엑—!”
기생체는 비명을 질렀다.
손상된 눈을 대신할 새 눈은 금방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이 싫었다. 저놈들은 약하다. 나는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이 대수림을 무너트린 존재다.
저깟 놈들이 감히.
“키아아아아—!”
기생체의 몸과 정신을 가득 채운 분노를 터트렸다. 기생체의 몸은 이제 더 이상 뱀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바닥과 닿아 있는 꼬리에서 수많은 뿌리가 급속도로 자라나 땅속 깊숙이 박혔다.
그 촉수들은 이 숲 아래를 흐르는 산의 뿌리에 닿았다. 생명에게 양분이 되는 정기가 흐르는 공간. 산의 뿌리.
기생체는 힘이 약해질 때마다 이 뿌리에 흐르는 정기를 이용해서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땅속에 들어가지 않고 뿌리를 그곳까지 박아내렸다.
이제부터 공급될 무한한 양분. 기생체는 지치지 않고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이는 자신을 승리로 이끌고 평소와 같은 평온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 거다.
이 아래에 있는 정기는 내 편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산의 뿌리에 흐르고 있는 정기는 그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막대한 양이 느껴졌다. 이 아래 흐르는 정기가 이렇게나 많았던가? 그리고, 이렇게나 빨랐던가?
그리고, 그 정기는 의지를 가진 듯 기생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키익?”
땅에 박았던 뿌리를 급하게 뽑아내었다. 그 끝이 면도날에 잘린 것처럼 날카롭게 도려내져 있었다. 그곳에서 뿜어지는 피 때문에 기생체는 오히려 에너지를 잃었다.
그리고.
강선후는 그 모습을 잠시 관찰하다가 말했다.
“셀피.”
리리조차 지금 이 순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고삐를 잡은 강선후의 왼손 등의 문신이 찬란한 주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산의 뿌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생명의 정령은 산의 뿌리를 통해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다.
원래 스프리건은 한 군데에 머무르려는 습성이 있다.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리가 없다.
하지만 주인이 있는 스프리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인의 명령이라면, 습성 따위 거뜬히 극복해 낼 수 있으니.
강선후는 기생체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같이 싸우자.”
「우리는 주인의 뜻을 품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녹색의 기운이 땅에서 스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젖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고요히, 땅에서 하늘을 향해 떨어지는 그 기운은 찬란한 생명을 품으며 하얗게 바랜 대수림을 감싸 안았다.
하얀 숲의 바닥에서 녹색의 싹이 고개를 들었다.
강선후가 심어 둔 숲의 씨앗.
버뮤다 숲이 제 친구를 위해 온 힘을 다하여 만들어 낸 네 개의 씨앗이 동시에 발아했다.
이번 숲의 씨앗은 거대한 하나의 나무가 되지 않았다.
숲의 씨앗은 원래의 목적대로 하나의 숲이 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생명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 공간이 생명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강선후는 더 이상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기생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달리지도 않았다.
그 오만함.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그 모습에 기생체는 격분했다. 낫처럼 되어 있는 양팔을 들어 강선후를 향해 내리쳤다.
그 순간, 땅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눈을 한 번 깜빡일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순식간에 자라고, 피어오르고, 열매를 맺더니, 그 열매들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폭죽 수천 개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곳이 연기로 가득 찼다. 기생체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이것은 환각을 이용해 자신을 지키는 꽃이 뿜어내는 물질.
한두 개의 꽃으로는 영향조차 받지 않았으나, 비정상적으로 피어오른 수천 개의 열매는 기생체의 혈관에마저 환각물질을 흐르게 만들었다.
기생체는 휘청였다. 한층 더 에너지 소모량을 올려 혈관에 흐르는 독기를 태워 버렸다.
믿을 수 없었다.
고작 저런 인간 하나 때문에, 수백 년 분량의 에너지를 일시에 써 버렸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연기 안에서 다시 한번 늑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기생체는 이질감을 느꼈다. 늑대가 이토록이나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고?
눈앞까지 떠오른 푸른 늑대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투명한 유령늑대를 둘러싼 갑주는 목질로 되어 있었다. 그 날개는 나뭇잎의 성질과 유사했다.
생명의 정령이, 숲에게 자원을 빌려, 생명과는 정반대의 존재에게 갑옷을 만들어 줬다고?
기생체는 두 번째 눈을 물어뜯겼다.
연기가 걷히고, 강선후와 리리는 무기를 든 채 기생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키호테를 부를 줄 알았어. 아니면 디오네나.”
리리의 말을 듣고, 강선후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저런 미물을 사냥하는 데 그런 존재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잖아.”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