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6
16화 ep7. 버뮤다 숲, 사냥. (1)
“간단하게 결정할 수 없으니 딱 하루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답변을 드릴게요.”
진서연은 이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고치 부화 예정일은 사흘이라고 했다. 보수적으로 잡은 기간이라고 하니 더 오래 걸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정리하자면 최소한 하루는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미리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들르기로 했다.
“기생체라···.”
기억이 떠오른다. 이계에서 방랑하던 시절 무수히 많은 숲을 경험했었다.
그 과정에서 기생체를 몇 번 만났었다. 숲의 에너지를 빨아먹으며 성장하는 호전적인 이계 마수.
강하지만 못 잡을 거 없었다. 예전에도 경험해본 적이 있었으니까.
이계에서 수없이 많은 동물을 사냥하면서 배운 게 있었다.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행 단계가 아니라 준비 단계라는 것.
거기에 필요한 모든 지식은 내 머릿속에 빠짐없이 들어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원문 플랫폼 바깥으로 나가는데.
“어?”
정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진서연과 마주쳤다.
“어? 안녕하세요! 서울로 돌아오셨네요.”
“준비할 게 있어서요.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이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많이 마주쳐요. 유일한 통행로라서 그렇게 되더라고요.”
지금이 오후 두 시. 월요일이라서 한창 일할 시간일 텐데.
“선후 씨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이계 갈 필요가 없어졌네요. 다행인데요?”
“저한테 볼 일이 있다고요?”
“어제 이야기 나눈 의뢰 안건, 오늘 아침에 결과 나왔는데···.”
표정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만으로, 다음에 나올 말을 유추할 수 있었다.
“기각됐어요. 없던 일이 되어버렸네요.”
사실 어느정도 예상했었다.
이유 정도는 들어봐도 되겠지?
***
진서연이 강선후에 관한 안건을 올린 그 날 오전.
“선임 연구원님, 원장님이 호출하셨습니다.”
“아, 네.”
원장실로 곧장 향한 진서연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원장님. 선임 연구원 진서연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와.”
R&D원장 박영식은 진서연이 오늘 회의에서 올린 안건을 검토하고 있었다.
“서연아. 고생이 많다.”
박영식은 원장의 위치에 있는데도 선임 연구원 하나하나까지 친숙하게 대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올린 안건 봤는데···. 강선후한테 정보를 물어보려고 갔다가 다 들켰다고?”
“아, 네. 죄송합니다. 숨기려고 했는데 강선후가 바로 눈치챘습니다.”
“2년 동안 이계에서 살았다니 그럴 만도 하지. 그래도 독단적으로 움직인 건 잘못된 거야. 보고하면 내가 허락 안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서연이가 회사를 위해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는 잘 알아. 그래도 우리는 연구 본부야. 이런 건 정보부서에서 할 일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보자.”
딸깍— 하고 마우스 눌리는 소리. 원장은 잠시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강선후가 자신에게 의뢰를 맡기라고 제안했다고?”
“네.”
“안 돼.”
서지연은 이 대답을 듣자마자 탄식을 내뱉었다.
박영식은 너그러운 사람이었으나 일에 관련되어서는 양보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 안건은 기각할게.”
“하지만, 강선후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그자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 믿는 구석이···.”
“안 돼.”
“······.”
박영식은 단호한 표정으로 진서연을 바라보다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계에서 2년 동안 살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외부인에게 고위험 작전을 맡길 순 없어.”
“2년이 아니라 최소 7년···.”
“그건 가설일 뿐이잖아? 연구원이 가설에 기대어 행동하면 안 되겠지?”
진서연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은 연구 본부고, 모든 요소가 확실해질 때까지는 단정 짓지 않는 게 원칙이었으니 그랬다.
“우리 특무부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고작 2년 동안 이계에서 살다 온 개인이 해결한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야.”
틀린 말이 아니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진서연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저 이계에서 2년 동안 살았을 뿐이야. 전문성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개척했다기보단 어디 숨어 있었다고 추측하는 게 더 가능성 있지 않겠어? 이계 전역이 다 위험한 것도 아니니.”
“······.”
“너는 그 사람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어.”
정말로 그런 걸까? 자신이 강선후를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느라 냉정하지 못한 걸까?
“사실 이건 이계에 대한 영향력 문제가 커.”
“영향력··· 말입니까?”
“이계 안보를 우리가 아니라 제삼자가 책임지는 사례가 생기면 OWIC의 독보적인 권한이 의심받겠지. 정부 정책이 흔들릴 수도 있고, 떨거지들이 트집을 잡을 수도 있어.”
“정치적인 문제네요.”
“나도 이런 건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순수하게 연구에만 매진할 순 없는 걸까? 진서연은 이런 문제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지는 걸 감출 수 없었다.
“이 사안에 대한 전권은 정책기획본부로 이전됐어. 더는 우리가 신경쓸 문제가 아니야. 그쪽에서 군사하청업체에 지원을 요청했다니 잘 해결될 거야.”
“알겠습니다.”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했다. 진서연은 고작 연구팀 중 하나에 소속된 선임 연구원일 뿐이었다.
애초에 맡은 업무도 이게 아니었을뿐더러, 뭔가를 추진할 권한도 없었다.
***
“흠.”
진서연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 가네요.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회사네.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진서연은 뭔가 시무룩하게 보였다. 왜 그러는 거지?
“연구원님이 저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요?”
“아무래도 사업을 하시는 거니··· 이런 계약 하나라도 따두시는 게 좋잖아요. 괜히 기대만 하게 만든 거 같아서요.”
“제 사업을 신경 써주시는 거예요?”
“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이 사람,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사업은 상관없어요. 그냥 먹고 살 만큼만 벌려고 한 거고, 욕심은 없으니까.”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그리고, 의뢰를 받지 않았다고 내가 사냥을 못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네?”
처음에는 차분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서연은 생각보다 당황을 자주 했다.
“회사의 지원이 없을 텐데요?”
“지원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건 상투적인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어··· 우리 특무부대가 통째로 당했다는 이야기, 제가 했었죠?”
“네. 들었어요.”
“···그런데, 진짜 아무런 지원 없이 혼자 가신다고요?”
고개를 끄덕였다. 진서연은 내 말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아니 의중이 어딨어. 진짜로 말한 그대로인데.
“······베이스캠프를 위해서인가요?”
아니, 그거 절대로 아닌데. 뭔가 제대로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숲 기생체는 에너지 섭취에 대한 욕구로 완전히 미쳐있는 놈이라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나로서도 곤란했다. 숲을 조진 다음에는 베이스캠프를 바라보며 침을 흘릴 테니까.
게다가, 녀석이 가지고 있는 손톱날과 고치를 구성하는 외피, 그리고 그걸 둘러싼 실은 여러모로 쓸 데가 많았다.
돈은 상관없이, 그거 하나만으로도 내가 움직일 가치가 충분했다.
“굳이 선후 씨가 수고하시지 않아도 돼요. 그럼 의뢰 허가를 받지 못한 제가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요.”
오해를 하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굳이 이 오해를 풀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그럼 전 바빠서 먼저 가볼게요. 아, 그리고···.”
최소한의 도의를 지키기 위해서 이 말은 남기기로 했다.
“웬만하면 정말로 사람 보내지 마세요. 꼭 보내야 한다면, 출동하기 전에 향수를 잔뜩 뿌리라고 전해두세요.”
서로의 이해관계가 끝난 이상 회사가 잘못된 선택을 해도 내 책임이 아니다.
최소한의 조언을 할 뿐. 선택은 저 회사가 하겠지.
진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생각이 복잡한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리리는 며칠 전부터 버뮤다 숲 쪽을 바라본 채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날짜가 지날수록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워지고 있었다.
이계에서 더운 바람은 좋지 않은 징조를 상징했다. 대부분의 경우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발현했다는 의미가 되기에 그랬다.
버뮤다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어느 날 밤 혼자서 접근해보기도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숲은 리리의 입장을 거부했다.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경이 날카로워진 어린 숲은 지금 공포에 질려 있었다.
어째서일까.
리리는 지식 대부분을 독서와 공부로 습득했다. 신카 소왕국이 멸망하고 나서는 몸으로 세상을 배웠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았기에 많은 것을 알고 있진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계속 고민했다. 본인을 간서누라 소개한 이 남자와 영혼을 연결해야 할까?
뱀파이어는 피와 연관된 종족이었고, 피는 생명과 영혼을 상징했다.
그렇기에 뱀파이어 귀족은 영혼 연결이라는 특별한 의식을 거행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언어와 종족을 초월하여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중해지자.
영혼 연결은 한 번 거행하면 돌이킬 수 없었다.
만약에 이 남자가 포식자의 상이 아니라면? 그저 잘못 본 것뿐이라면?
열둘 지배자가 맞다고 해도, 이 남자의 속내에 악의가 가득하다면?
모든 게 아직 확실하지 않았기에 조금 더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 밤, 강선후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기름 등에 의존한 채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달빛을 붉게 반사하는 처음 보는 나이프, 그리고 항상 들고 다니던 푸른 수정 도끼, 기타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에 이전에 만든 특수한 궐련까지.
숲으로 출발할 거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인간이 그 숲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간보다 친화력이 높은 뱀파이어가 거부당했는데, 인간이 그 숲에 발을 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강선후는 포식자의 상을 발현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영혼의 상도 없이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모든 존재가 영혼의 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으나, 있던 영혼의 상이 사라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잘못 본 걸까?’
강선후는 배낭을 들쳐멘 뒤, 신발 끈을 단단하게 동여매고 출발했다.
리리는 그 뒤를 쫓았다.
‘마음을 다잡아야 해.’
가문의 의무를 위해서라도 지배자를 찾을 필요는 있었다. 허나, 조급함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끝까지 눈을 똑바로 뜨고 진실을 바라봐야만 했다.
아홉 신 모두에게 버려진 이기적인 종족, 인간이 지배자의 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직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잘못 본 걸까?
***
버뮤다 숲에 도착했다.
단 한 번의 휴식 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강선후는 숲의 경계선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후우우우웅
노미나 산맥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이 숲을 스치고 지나갔다. 리리 입장에서는 새로운 침입자를 인지한 숲의 울음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숲이 가진 거대한 영혼의 상이 보였다.
버뮤다 숲은 강선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숲의 영혼은 어린 숫양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붉은 털을 가지고 있었고,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강선후는 우두커니 선 채 숲을 올려다보았다. 보일 리 없는 영혼의 상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허락 없이 들어가면 숲이 준비해둔 각종 방어 체계에 그대로 노출된다.
농도가 짙어진 독기에 노출되어 피부가 녹을 수도, 환각을 일으키는 물질을 들이마실 수도, 아니면 숲의 ‘경비병’들에게 난도질당할 수도 있었다. 숲이 생명을 도륙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후우우우———
숲이 다시 한번 몸을 흔들었다. 노미나 산맥의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공기는 그대로, 그 자리에 한 점의 흔들림 없이 멈춰 있었다.
즉, 숲이 스스로 몸을 흔들었다.
리리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거대한 새끼 숫양은 천천히 몸을 낮추며 고개를 숙였다.
강선후를 내려다보던 어린 숫양의 상(狀)은, 지금 이 순간 한 인간에게 예를 표했다.
강선후는 그에 화답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중하게 첫발을 내디뎠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한 걸음에는 숲을 향한 수백의 존중이 담겨 있었다.
셈을 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짧은 시간 속에서, 외톨이 종족과 황무지에서 태어난 난폭한 숲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인간이, 숲과 교류를···.’
수백 년을 숲속에서 살아가는 엘프조차 철저한 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한 행동을, 저 인간은 아침의 우유 상인 아낙네와 눈을 맞추는 것처럼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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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버뮤다 숲, 사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