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ep47. 엘프와 엘프의 나무 (2)
강선후가 들고 있는 쿠크리. 이름은 콜드 포레스트(cold forest).
버뮤다 숲이 자신에게 기생한 기생체를 처리해 준 대가로 강선후에게 만들어 준 검이었다. 숲의 숨결로 달궈져 제련된 검날에는 숲의 힘이 담겨 있었다.
모든 생명은 대수림의 자식이었고 그건 숲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숲의 손에서 빚어진 검날은 대수림의 기운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크르르릉—!”
렐릭시나는 바람을 앞지르는 속도로 요르문간드의 몸으로 달려들었다. 푸른 갈기가 길게 꼬리를 늘어트렸고, 강선후를 주인으로 삼은 생명의 정령이 그 뒤를 따랐다.
명계의 말이 뿜는 죽음의 기운과 생명의 정령이 뒤섞여 길게 늘어진 꼬리, 그 선두에는 검을 휘두르는 강선후가 있었다.
그 돌격의 끝에서, 강선후는 렐릭시나의 뛰어올랐다. 관성을 검 끝에 담아 두 손으로 기생체의 단단한 비늘에 과감하게 찔러 넣었다.
비늘은 절대로 뚫을 수 없는 것처럼 생겼다. 강선후는 자신의 힘, 그리고 이 검의 예리함이 저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을 깨부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믿어 주세요. 그대를 따르는 우리의 힘을, 그리고 우리에게 힘을 허락한 모든 생명의 어머니를.」
그저 자신을 따르는 정령의 부탁을 믿고 모든 걸 걸었을 뿐이었다. 기생체 강선후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폐가 타들어 갈 것만 같았지만 눈을 부릅떴다.
“……믿어.”
대수림의 기운을 담은 콜드 포레스트의 검날은 그대로 비늘을 뚫어, 그 아래에 있을 살갗을 찢고 파고들었다.
두근—
대동맥의 박동이 검날을 타고 손에 느껴졌다. 하지만 이 정도 동맥 손상에 요르문간드가 끄떡할 리 없다. 하지만 강선후는 곧 이런 이성적인 계산 따위 머릿속에서 날려 버렸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사냥에 대한 상식, 그리고 거대한 사냥감을 잡는 방법.
이런 것 따위 지금은 전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검에 깃든 힘은 대수림의 것이었으니까. 이 기생체와 영원의 시간 동안 맞서 싸우던 영혼의 힘이었으니까.
검날에 스며들어 있었던 힘이 빨려들 듯 기생체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대수림의 의지가 기생체의 핏줄을 타고 역방향으로 흘렀다.
모든 피는 심장에서 출발하여 온몸에 영양분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그 역방향을 달리는 대수림의 기운이 도착한 곳은 요르문간드의 거대한 심장이었다.
숲의 에너지를 뭉쳐 고체화시킨, 그 진주가 있는 곳으로.
“키익, 키이이익—.”
가슴이 터질 듯한 팽창감에 요르문간드는 당황했다. 그 심장에는 거체를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본디 대수림의 것.
폭주 상태에 빠진 터라 이미 과부하 상태였던 기생체의 몸은 대수림과 생명의 정령의 공격을 견디지 못했다. 그 힘은 무언가를 빼앗는 게 아니라 채우는 힘이었기에, 기생체의 그릇은 오히려 넘치기 시작했다.
그 막대한 에너지에 기생체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근육, 혈관, 신경. 그 모든 게 세포 단위에서 뭉개지고, 터지고, 쪼개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건재한 요르문간드. 하지만 뿜어내는 고열이 점차 약해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꼿꼿하게 서 있었던 거체가 흐느적거리며 힘을 잃기 시작했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던 그 비명도 점차 옅어졌다.
이윽고 요르문간의 몸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거대한 뿌리로 덮여 있는 탑의 반대쪽으로.
문제는 그게 강선후의 방향이었다는 것.
“……리리.”
리리는 강선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유령 늑대 존슨은 리리가 따로 명령하지 않아도 그 의도를 파악할 정도로 영리했다.
“빨리!”
“컹!”
렐릭시나와 유령 늑대는 온 힘을 다해서 도망쳤다. 요르문간드의 거구는 그 크기만큼이나 쓰러지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이곳에서 빠져나오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굉음이 울리며 그 몸뚱어리가 땅에 부딪힐 때, 그것이 렐릭시나의 꼬리를 조금 스칠 정도였다.
찰나의 순간 간신히 그 영역에서 벗어난 강선후와 리리는 거대한 후폭풍에 휘말려 멀리 날아가 땅을 굴렀다.
“크윽…….”
어떤 나무에 강하게 부딪힌 강선후는 그 충격에 신음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손가락도 부러진 것 같았다. 요르문간드의 거체가 쓰러진 충격파는 여전히 몰아닥쳤다. 그만큼 거대한 몸집이었다.
하지만 폭풍도 점차 잦아졌다. 강선후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이 근방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모래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강선후가 가장 처음 찾은 건 리리였다.
“리리…… 리리!”
“나 여기 있…… 어.”
리리는 그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천잠사의 망토, 그리고 기생체의 가죽 망토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쓰러져 땅을 구른 줄 알고 걱정했는데, 순간적인 낙법으로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하고 그 짧은 시간에 온몸을 방어했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강선후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순발력이었다. 뱀파이어는 모두 이 정도인가?
“괜찮아?”
“발목을 조금 삔 거 같아.”
“안 다쳐서 다행이네.”
“……발목을 조금 삐었다니까?”
강선후는 너털웃음을 내뱉으며 리리에게 손을 내밀어 줬다. 리리는 그 손을 잡고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모래 먼지가 점차 잦아들고, 리리와 강선후는 그들이 만든 결과물을 바라보았다.
요르문간드는 뱀과 흡사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렇게 옆으로 쓰러져 있는데도 그 높이가 작은 동산을 연상시켰다.
“당신이 이겼어.”
리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턱이 슬며시 떨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긴 거지.”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기지 못했을 거야.”
“나 혼자 있었으면 이길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니지만.”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요르문간드를 올려다보았다. 보이는 건 그 신체의 일부뿐이었다. 이 대수림을 가로질러 있을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리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강선후 혼자라면 당연히 이기지 못했겠지.
하지만 생명의 정령, 유령 늑대, 그리고…… 나까지.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 모두가 여기에 모였을까?
강선후가 이런 것들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리리는 따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리리.”
“……아, 응?”
“대단하더라. 내 생각보다도 더 잘하던데.”
리리는 폭풍처럼 지나간 지난 싸움을 되새겨 보았다. 훈련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실전에서 역량의 극한까지 몰아 붙여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잘 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졌다.
“……당신도.”
리리는 칭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귀족은 누군가의 찬양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기에 오만하지 않는 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리리는 화제를 돌렸다.
“이게 당신을 처음으로 패배시킨 기생체라며.”
강선후는 따로 반응하지 않고 여전히 요르문간드의 시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예전에 이 녀석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던 시절을 떠올려 봤다.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이렇게 오래 살아남았었구나.”
그때가 아주 오래전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되었고, 그토록이나 오래 살아온 녀석의 결말이 이런 찜찜한 형태라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게 그의 방식이었으니까.
“이거면 된 거지.”
그저 숙원을 해결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끝날 일이야?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을 이긴 거라고.”
리리가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일반적인 기생체도 토벌을 위해 군대를 끌고 나가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눈앞에 있는 건 보통 기생체가 아니었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숲에 영원히 기생하는 개체가 실존할 때만 만들어지는 숲을 뜯어먹는 뱀 요르문간드.
강선후와 리리는 그 신화 속의 뱀을 사냥한 순간이었다. 리리는 순간 강선후의 가슴 한편에 있는 촬영 장치가 여전히 작동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물건의 사용법을 이해한 지는 오래였다. 그렇기에 이 사건의 증거가 남았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길드의 사람들이 이걸 보면서 뭐라고 생각할까?
그렇게 잠시 리리는 기생체와의 전투에 온 정신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아니었다. 강선후는 이미 죽은 사체에는 별로 관심 없었다.
“저거 봐. 리리.”
리리는 강선후의 저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반드시 보고자 했던 것. 그것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달려온 그 끝에 목적을 달성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해 줬을 때의 기쁨.
강선후의 얼굴에는 그런 기쁨이 서려 있었다.
그렇기에 리리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거대한 꽃이 피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꽃받침이나 간신하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한 송이의 꽃.
푸른 하늘의 뒤편에 있는 그 꽃은 살짝 비스듬하게 꺾여 피어 있었고, 그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줄기 하나가 우주의 영역에서 이 땅까지 닿아 있었다. 그 줄기를 둘러싼 금속의 고리가 허공 중간에 떠 있었다. 예전에는 토성의 고리처럼 행성 주변에 놓여 있었던 것이었다.
“세계수야.”
눈을 감자 이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향기가 느껴졌다. 어느 새부터 불타는 재의 냄새도, 진한 피 냄새도, 기생체가 풍기는 위협적이고 코가 찢어질 것 같은 페로몬 냄새도 더 이상 없었다.
그저 세계수가 뿜어내는 한 송이의 꽃향기만 맴돌 뿐이었다. 하늘에서 눈 같은 것이 내려 손을 들어 받아 보았다. 하나하나가 씨앗만 한 솜털.
“이게 뭐야?”
“……세계수의 꽃가루.”
“뭔지 알아?”
강선후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리리는 언제나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이계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렸을 때 책에서 봤던 그런 이야기들.
“세상 모든 생명의 근원. 땅 위를 기는 벌레부터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구름 위를 헤엄친다는 고래까지…… 생명이라면 모두 심장에 품고 있대.”
“멋진 이야기네.”
강선후는 그 이야기에 만족했다.
생명의 근원이 눈처럼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다. 대수림은 그것들에 담긴 정기를 머금고 녹황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선후는 잠시 고개를 내렸다. 이런 싸움이 끝나고는 항상 그 싸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복기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강선후의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서지아.
세계수는 서지아의 화살로 촉발되어 꽃을 피웠다. 행성이 여섯 갈래로 쪼개지고 그 안에서 꽃봉오리가 피어올랐다. 정확히는 몰랐지만, 이는 어찌 되었든 서지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서지아는 그 화살을 쏘기 전에 자신을 고백했다.
강선후는 사람이 언제 저렇게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했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을 누군가에게 알려 주려 한다. 그들이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저 상황까지 몰려 본 적이 많았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서지아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는 게 아니라 확실히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그녀를 붙잡았던 건……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생각했을 무렵, 언덕 위에서 누군가 내려와 강선후에게 다가왔다.
강선후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엘신.”
엘신은 예전에 보았던 그 평온한 표정으로 강선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서지아를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
강선후는 서둘러 다가갔다. 리리는 그 뒤에서 방금 들었던 이름을 듣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엘신?”
필멸자 최초의 성좌, 모든 엘프가 존경하는 선지자.
그 엘신이 강선후와 정말로 아는 사이라고?
그러니까, 과거에 강선후를 구했다는 엘프가 정말로 엘신이라고?
……엘신은 황금의 시대보다도 훨씬 이전의 사람인데?
리리는 혼란 때문에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모든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건 대체 얼마 만의 만남인 걸까? 강선후가 엘신에게 다가갔을 때 반가움의 표시를 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강선후는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선후는 엘신에게 다가가 그녀가 내려놓은 서지아의 상태를 서둘러 살폈다.
서지아는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