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ep48. 꽃 위, 외로운 여행자 (3)
우리는 다시 세계수로 향했다. 그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었다. 왕의 언어가 있는 제단까지도 두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다시 세계수로 향하는 것도 그 정도의 시간은 걸릴 예정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충분했다. 고개를 들어 세계수의 꽃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돛과 노들이 정말 멋진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세계수의 씨앗에 얽힌 이야기는 이랬다.
엘신이 수행을 쌓을수록 그와 영혼을 연결한 나무 역시 더 높은 곳으로 발전해 나갔다. 엘신이 성장한 만큼 나무 역시 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엘신은 끝내 승천했고, 나무는 세계수가 되었다.
하지만 성좌가 된 엘신과는 달리 나무는 지상에 남았다. 세계수는 제 수명을 극복하지 못했고 시들었다. 대신에 씨앗을 남겼다. 아마 황금의 시대는 그 씨앗에 새로운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씨앗이 병들어 버린 거야.”
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는 그 위상만큼이나 질병 역시 강력했고, 연금술사는 그걸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신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이 말을 남겼다.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신만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엘신은 그저 의문을 던졌다. 나 역시 그건 궁금했으나 알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보다 더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수풀을 헤치면서 말을 이었다.
“신이 도와줘야 한다는 말이요. 보통은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일 때 쓰는 말이잖아요.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그래요.”
신만이 우릴 구할 수 있다는 말은 자주 쓰인다. 그리고 난 이 말에 담겨 있는 근본적인 무력감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엘신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결론을 내리자마자 신을 찾아가겠다고 직접 출발해 버렸네요.”
“그러네요.”
“보통은 그런 사실이 두려워서 외면할 법도 한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상에서 바라보니 다시 새파란 하늘. 저 너머에는 이계의 사람들이 끝없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바로 그곳이다.
신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답을 낸 어떤 사람은 바로 신을 만나러 출발해 버렸다.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나란히 걷고 있는 리리는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리리는 자신의 목적 외에 타인의 일에는 무심한 척하지만, 실은 감정 이입을 심하게 하는 타입이었다. 타인의 사정이 자신의 일처럼 느낄 정도로 말이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끝없는 어둠 너머로 향했다니.”
리리는 내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건 굉장히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우주 비행 중에 온갖 생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세상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다. 공학적으로는 확실히 이계를 능가하는 지구의 사람들마저도 그런데 이계의 우주 여행이라면, 심지어 홀로 떠난 여행이라면 어떨까?
얼마 전 태양계를 벗어났다는 보이저호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카메라 전원을 내리기 직전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사진을 남겼다는 탐사선이랬나.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훨씬 더 먼 곳을 향해 떠돌아야 하는 삶은 무슨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세계수의 위로 오른 뒤 이전의 건물로 향했다. 하늘 위로 드높게 치솟은 에너지의 돛을 잠시 바라보았다.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저게 머금고 있는 건 바람이 아니었다. 아마도 태양풍이지 않을까? 우주를 여행하는 배의 그것이니까.
리리는 아까 전과는 전혀 다른 관심을 보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이곳에 있을 황금의 유물에 더 관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신의 세계를 향해 홀로 여행했던 여행자에 대해서만 온 신경이 팔려 있었다.
우리는 다시 건축물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괴상하게만 느껴졌던 여러 요소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외부와 완전히 밀폐시킨 환경은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고, 교회의 이미지를 담당했던 세 개의 첨탑은 다시 보니 안테나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외부의 환경을 감지하기 위한 더듬이 역할이었을까?
외부에서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는 이전에 봤던 것과 같은 연금술사의 실험실 같은 내부 모습.
그곳에서도 변화가 느껴졌다. 우선 제어실에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동력이 공급되고 있다는 의미다.
“……저건 건들지 말자.”
“응.”
정황상 우주를 여행했던 물건이다. 잘못 만졌다간 이륙해 버릴 수도 있다고…….
제어 시스템 뒤쪽에 뭔가가 무너진 잔해가 있었는데 나는 그곳을 한동안 주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좀 움직인 거 같은데.”
“저 잔해 가?”
바닥에 있었던 먼지 쌓인 유리병들을 둘러보던 서지아가 날 바라보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지아는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저 변화가 느껴진다고? 그냥 쓰레기 더미잖아.”
“높이도 조금 달라졌고, 측면이 약간 무너졌어.”
“……그래.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서지아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잔해로 가까이 다가갔다. 처음에는 흙과 돌더미인 줄만 알았던 그것들은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평범한 것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비정상적으로 금속이 많이 함유된 돌, 혹은 흙가루였다.
“이건 딱 봐도 외계의 금속인 거 같은데.”
내가 알고 있는 지상의 어떤 금속과도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미세한 빗금이 가 있고 광택이 나며 강철만큼이나 단단한 느낌.
이 여행자가 우주에서 그저 여행만 한 게 아니라 이것저것 수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잔해들을 한쪽으로 밀어 치워봤다. 그 아래에 있는 건 살짝 열려 있는 트랩 도어였다. 손으로 쓸어 보니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느껴졌다. 보통 트랩도어는 나무로 만들기 마련인데.
나는 그 문을 슬쩍 열어 보았다. 안에서 공기가 확 하고 흘러나와 잠시 코를 막았다. 그새 호기심을 못 참고 가까이 다가온 리리를 저지하는 건 물론이었다. 리리도 금방 내 의도를 깨닫고 코를 막았다.
내부 상황을 눈으로 먼저 확인해 볼 수도 없는 곳은 무슨 독성 공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맨 처음 개방한 사람들이 곰팡이균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탐험계에서도 유명한 이야기고 말이야.
나는 대충이나마 안전을 확인했다. 뭔가 매캐한 냄새가 순간 느껴져서 뒤로 물러난 뒤, 가방을 뒤졌다. 그곳에는 청계천에 들러서 사 온 방독면 두 개가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에 필터만 전문가용으로 갈아 끼운 것.
“자기, 생각보다 신중한 성격이네?”
“매번 말했잖아? 원칙주의자라고.”
“웃기지도 않은 농담인 줄 알았는데.”
세계수와 연결해도 그 특유의 말투는 그대로인 서지아를 슬쩍 바라보며 방독면을 단단히 착용한 뒤, 리리도 씌워 줬다.
“이게 뭐야?”
“독기 흡입을 막아주는 거름망 정도로 생각해. 아무래도 연금술 실험대나 재료 같은 게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서.”
“움, 이거 근데 좀 불편…….”
방독면 너머의 목소리가 뭉개져서 살짝 웃긴 목소리가 났다. 제대로 착용했다는 증거니 안심하고 일어나 안쪽을 바라보았다.
“내려가자.”
리리는 방독면 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인화성 기체가 있을 수도 있고, 미세한 먼지가 많으면 분진 폭발의 가능성이 있으니 룬을 사용하진 않았다. 대신에 비상용으로 챙긴 작은 손전등을 입에 물고 줄을 묶어 내려갔다.
대충 2.5m 정도의 높이로 보이는 지하실. 아직까지는 평범해 보이는 공간이었으나 위에서 내려오는 빛의 영역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바닥에 위험한 게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손전등을 켰다. 한 손에 정글 나이프를 꺼내든 건 당연한 처사였다. 뭐가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뭐 잘못됐어?”
위에서 서지아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니야. 안전한 거 같아.”
내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자 리리가 대신해서 대답했다. 나는 계속해서 지하실의 ‘거대한’ 풍경에 시선을 뺏긴 채였다.
애초에 손전등 하나로 모든 걸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던 집의 지하실 정도를 생각했었던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지상의 규모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잖아? 그저 작은 교회의 예배당 정도 크기였다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눈치챘다. 애초에 우주를 여행하려면 지상보다는 지하에 공간을 만드는 게 유리했을 거라는 사실.
직접 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지만 상관없었다. 우주 여행자가 사용했던 실제 공간을 눈앞에 보는 순간이었으니까.
그 공간은 복도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은 일종의 광장같이 거대한 거실이었는데, 그 규모가 거실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리고 이곳은 벽면을 따라 쭉 연금술 실험을 위한 장비들이 늘어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 잔뜩 삭았고, 군데군데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버렸지만 본래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리리는 내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내 뒤를 따라왔다. 벽면에 있는 연금술 실험대들을 훑어보았다.
“뭔가 알겠어?”
“……익숙해.”
간단한 감상이었으나 그 의미는 컸다. 내가 익숙한 연금술 실험대.
안쪽으로 들어갔다. 광장이 끝나는 저편에는 기다란 복도가 있었다. 그 시점부터 뒤에서 엘신과 서지아가 내려와서 내 뒤를 따라왔다. 그들 역시 이 거대한 공간에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다시 큰 방을 만났다. 그곳에 있는 장치는 그 어떤 것보다 최첨단 설비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듯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건 화로 같이 생겼으며, 전체적으로 보기에는 증기기관과 비슷한 형태를 띠기도 했다. 중요한 건 안쪽에서 파란빛이 여전히 스며 나오고 있다는 거였다.
“엔진실 아닐까?”
서지아가 먼저 입을 열었고 나도 동의했다. 세계수의 정기를 원료 삼아 우주를 여행했다면, 그 원료를 동력으로 바꾸는 장비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이곳은 그 이상의 무언가도 해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엔간히 연구에 미쳐 있었고, 에너지가 직접 흐르는 이 공간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곳은 가장 중요한 연구를 진행했던 연금술 연구대였다.
테이블 위에는 시약병 세 개와 함께 일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먼저 일지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펼쳤다.
“룬이야?”
“룬하고…… 옛날 사람들이 쓰던 고대 언어들. 룬에서 파생된 것들이야.”
“읽을 수 있어?”
“조금.”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다. 공부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도 전반적인 내용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빠르게 첫 페이지부터 일지의 끝까지 훑었다. 일행들은 각자 숨을 죽이고 날 바라보았다.
빠르게 읽어 나간 뒤, 나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자니 눈이 살짝 뻐근한 탓이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리가 이때다 싶었는지 입을 열었다.
“무슨 내용이야?”
“간단한 일기하고…… 어떤 연금술 결과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재료.”
내가 첫 번째로 주목한 건 그 재료들이었다.
“우주고래의 수염. 신의 깃털, 은하의 심장. 은하수 한 방울.”
“……그게 뭐야.”
“구할 수 없는 재료군요. 연금술사들이 황금을 만들기 위해 흔히 찾아다녔던 재료들이에요.”
엘신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재료 중 하나에 손을 가져다 댔다.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잡히지 않았다. 마치 막 꺼진 촛불에서 흘러 오르는 한 줄기의 연기를 고체화시킨 듯한 느낌. 손가락이 지날 때마다 그 형태가 흐트러지다가 다시 원상복구된다.
“이거요. 우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아닐까요? 지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질이에요.”
“확실히.”
아주 오랜 시간 지상에서 살았던 엘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우주고래의 수염인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일지를 내려다보다가 리리에게 말했다.
“이 여행자가 고통스러운 여정을 하지 않았는지 걱정했었지?”
리리는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우선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연금술사는 말이야.”
나는 일지의 첫 장을 다시 펼쳤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