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ep48. 꽃 위, 외로운 여행자 (4)
연금술사의 일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끝없는 어둠에서만 구할 수 있는 소재는 언제나 바래 왔던 연금술의 비밀을 푸는 실마리가 되어 준다. 이 여정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오랜 시간 속에서 나는 평생의 과업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창문을 통해 내가 살던 땅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끝없는 어둠은 거대하고 공허한 곳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우리 대지는 그저 아주 작은 점이었다.
– 그곳은 이 어둠 전체로 봤을 때는 티끌이라는 말조차 부족했으나, 이 끝없는 어둠은 바로 우리 세상이 있음으로써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 내가 살던 곳이 어떤 빛을 띠고 있는지를 멀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건 아주 찬란한 황금빛이었다! 이 사실을 신의 자손 모두가 알기를! 우리가 끝없는 어둠 속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얼마나 작으며, 또 얼마나 반짝이는 존재인지 알기를 바란다!
– 나는 멀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바로 우리의 세상 자체가 내가 쫓는 뜨거운 빛이라는 걸, 나의 황금이라는 것을. 내가 만들어 내고자 삶을 바쳤던 황금은 바로 우리의 세상 그 자체라는 사실을.
– 그렇기에 후회는 없다. 이 여정의 끝이 의미가 있기를, 내가 마지막까지 당당한 황금의 일원이라는 것이 증명되기를 확신하기에.
“이 연금술사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기쁨 속에서 살았어.”
솔직히 이게 일지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후회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이 죽어 가는 내용이 여실히 담겨 있을까 봐 그랬다. 나는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그게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이 연금술사는 신에게 향하는 여정을 열정 속에서 살아갔다.
나는 테이블과 같이 놓여 있었던 세 개의 시약병을 바라보았다. 거치대까지 포함해서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었는데, 그중 하나에 무언가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뒤에 서 있는 사람들도 다가와 바라보았다.
손전등을 병 아래에 대 보았다. 분명 이 안에는 무언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를 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보통 병에 들어 있다고 하면 액체, 좀 더 좋아 봤자 기체를 상상하기 마련인데 이 안에 들어 있는 건 그런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밤하늘이야.”
리리가 그렇게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 안에는 은하가 들어 있었다. 은하 하나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병 속에서.
나는 비어 있는 다른 병을 들어 올린 뒤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외었다.
“모스mohs.”
병 입구에서 만들어진 불씨가 병 안으로 들어가더니 내부를 가득 채우고 주황색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불꽃이 병에 담겼어.”
리리의 말대로였다.
내가 지배자의 상을 타고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금술에 대한 조예가 있어서일까? 나는 이 병의 기능이 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병이었다. 생명 에너지인 정기, 불꽃, 그리고.
“은하수.”
이 안에 담겨 있는 건 은하수였다. 아마도 연금술사는 은하의 눈물이라고 부르는 그것.
가만히 듣고 있던 엘신이 말했다.
“연금술에 필요하지만 다룰 수 없는 물질을 다룰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이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내의 한계에 달한 서지아가 뒤에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거기에 적혀 있는 연금술로 만들어지는 게 대체 뭔데?”
나는 다시 일지를 펼쳤다. 이 부분을 읽을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엘릭서, 그리고 현자의 돌.”
“현자의…… 돌. 황금을 만든다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언제나 연금술 비법이 말하는 내용이 추상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비법서에 적혀 있는 황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황금이라는 조금 이야기가 다를 거라고.
시약병 거치대에 모든 병을 꽂아 넣은 뒤 그것들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잠시 빛을 발하더니 하나의 보석이 되었다. 밝은 연노라색 보석이.
그걸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 있는 건 더 이상 건들고 싶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다시 거무스름한 하늘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돛, 그리고 드넓은 꽃 위의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한 뒤 황금 지침의 뒤편에 노란색 보석을 끼웠다. 버튼을 누르자 딸깍 소리를 내며 열리는 뚜껑.
내부 지침은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리리는 그걸 보고 말했다.
“……제국의 본성이 있는 방향이야.”
“그리고, 네 집이 있는 방향이지?”
리리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여러 정황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리리의 공작령은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리리는 언제나 목에 걸어 두는 황동 열쇠를 무심코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흠칫 놀라며 다시 집어넣었다.
“부담을 주려고 일부러 보여 준 거 아니야! 그냥 무심코…….”
“부담은 무슨. 가 봐야지.”
리리의 어머니는 서지아에게 부탁해서 저 황동 열쇠를 유품으로 남겼다고 했다.
저택의 지하실로 찾아오라고 굳이 말했다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나는 이 꽃에서 내려가는 방향이 아니라 북쪽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거무스름하게 보일 정도의 높이.
이 정도라면 내가 가야 할 방향에 뭐가 있는지를 전부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나는 카메라도 있고, 지금도 눈앞의 모든 장면을 촬영 중인 액션캠도 있다. 차소희가 챙겨 준 이것이 소소하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단순히 녀석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다음부터는 들고 다녀야겠네.
나는 지침을 바라보며 바로 북쪽으로 향했다.
“하필 오르막길이네. 내가 부탁 해 볼까? 고개 좀 살짝 움직여 달라고.”
서지아가 먼저 말했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고생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하필 꽃이 남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어서 내내 오르막길이었지만 굳이 힘들게 갈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속도를 줄이면 되니까.
“매번 하는 얘기지만, 나는 남는 게 시간이야.”
“……인간 입에서 나올 만한 소리는 아닌 거 알지?”
장생종인 서지아의 말에 그저 웃은 뒤 바로 북쪽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이 꽃의 북쪽 끄트머리에 도착한 건 해가 다 지고 나서였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는데, 이 높이에서는 달빛마저 강렬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계는 달이 두 개고 라시마의 경우에는 크고 밝아서, 지구에서보다 가시거리를 훨씬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조심해.”
꽃잎의 끄트머리로 가자, 아주 조금이지만 흔들림이 느껴졌다. 바닥에 피어나던 식물들도 자취를 감추고, 이곳은 정말로 거대한 꽃잎의 형태였다. 살짝 분홍색을 띠는,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바로 그 빛깔이었다.
전방을 바라보자 마치 완만한 산의 정상을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곳이 바로 이 꽃의 가장자리.
우리는 그곳에서 북쪽을 바라보기로 했다. 서지아와 엘신은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굳이 내 뒤를 따라왔다.
정상에 닿았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우리는 그 가장자리에 나란히 섰다. 절벽 끄트머리에 선 느낌이지만, 아래를 바라보자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펼쳐졌다.
“……으.”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던 리리가 인상을 썼다. 나조차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의 높이었다. 구름이 우리 아래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 거대한 대수림마저 손바닥 두 개에 다 가려질 정도로 작아 보였다.
흔히 탈 수 있는 비행기보다도 높은 곳.
푸른 하늘이 사라지고 우주가 보일 정도의 높이는 그 정도였다.
보통 이 정도 높이에 올라오면 지구의 경우에는 지평선이 봉긋하게 솟아난다.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맨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계는 그러지 않았다. 이곳에 섰는데도 지평선은 여전히 평평했다. 이 행성이 지구보다 압도적으로 큰 걸까? 아니면…… 내가 함부로 상상할 수 없는 이계만의 어떤 특징이 있는 걸까?
즐거운 망상이었지만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지금은 앞으로 내가 향하게 될 북쪽 먼 곳에 뭐가 있는지를 정확히 확인해야 할 때니까.
베이스 캠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노미나 산맥이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노미나 산맥은 단순히 선으로 표현할 만한 만만한 산맥이 아니었다. 그 폭도 웬만한 대륙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거대했기에, 산맥이라기보단 거대한 산악 지대에 가까웠다.
그 산맥이 북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대체 얼마나 거대한 산맥인지 감조차 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높이에서는 그 산맥의 너머마저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사막이 있었고, 곡창 지대로 쓰일 것 같은 드넓은 평야가 있었고, 거대한 밀림도 있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바다가 희미하게 보였다. 놀랍게도 노미나 산맥은 그 바다마저 가로지르고 있었다.
대륙 각지를 격리시켜 제국를 쇠퇴시켰다는 이계의 현상. 장벽은 여기저기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마치 세계 지도에 그은 선이 실제로 발현된 것처럼 직선으로 이 땅을 이리저리 가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시야가 닿은 곳.
“……제국의 본성, 솔라.”
리리가 먼저 말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으로 넓게 퍼져 있는 평야. 몇 개나 되는 숲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는 그곳은 거대한 강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곳에서마저 보이는 거대한 성이 있었다. 쌓아 올린 게 아니라 깎아 만든 듯한 거대한 성이.
저게 이계의 사람들이 간혹 말했던 제국.
왜 이제까지 베이스캠프에서 제국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없었는지 알 수 있기도 했다.
제국의 본성과 노미나 산맥 사이를 정확히 분리하는 거대한 장벽은 불꽃으로 되어 있었다. 어두운 밤 풍경에서 그 장벽은 홀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황금 지침을 바라보았다.
그건 북쪽을 향하고 있었고, 그 방향에는 제국이 있었다.
아직 다음 유물이 저 성에 있다는 확신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보다 더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고, 훨씬 더 멀리 북쪽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직까지 정확한 건 아무도 모른다.
돌아다니면서 직접 알아봐야 할 일이고, 내가 즐기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바라보았다. 밤하늘과 두 개의 달빛에 비춘 세상의 모습은 꽤 볼만했으니까.
그러다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리리.”
“응?”
“해가 진 지 얼마나 됐지?”
“일몰? 얼마 안 됐는데.”
리리의 말대로, 내 생각에는 두 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근데 저쪽에서 해가 다시 뜨고 있네?”
리리는 다시 휙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맨 처음 발견했을 때는 정말 희미하게 밝아졌을 뿐인 지평선이 이제는 눈에 띄게 붉은색을 엿보이고 있었다.
“……저건.”
저게 뭔지 이미 알고 있는 엘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나도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저기는 해가 뜨는 방향이 아니잖아. 대체 저게 뭔데?”
서지아의 말대로다. 해가 뜨는 방향을 기준으로 동쪽을 정했으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북쪽은 해가 절대로 뜨지 않는 곳이란 말이지.
어차피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알아서 알게 될 일이다.
나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태양의 표면은 붉었다. 그리고 이글이글 불타는 모습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원래 태양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새하얗게 빛나는데.
그리고 이어서, 테두리 안쪽의 모습까지 고개를 내민다. 곧 그 모습이 반원형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잠자코, 리리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리리는 그 붉은 눈을 크게 뜬 채, 깜빡이지도 않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검은 태양.”
테두리는 붉게 불타지만, 몸통 전체는 빛을 잡아먹기라도 하는 듯 새까만색의 거대한 태양이 천공을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계를 비추는 세 개의 태양 중 세 번째, 검은 태양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