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ep49. 어두워진 낮 (2)
리리는 제국에서 온 사절단을 바라보았다.
들은 적은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보다 북쪽 더 멀리, 노미나 산맥의 영역을 벗어난 대평야 지대에는 키가 아주 작은 종족이 다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산악지역에 속하는 신카 공작령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리리는 이걸 이야기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리리는 강선후의 살짝 뒤쪽에서 고개를 내밀어 처음 보는 종족을 찬찬히 관찰했다. 키가 큰 편인 강선후 기준으로 허리쯤 오는 키에 콧수염, 그리고 대머리.
이상하게 생긴 종족이네.
리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제국에서 찾아왔다는 건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세계수의 꽃 위에서 바라봤던 제국과 이곳 사이를 가르는 장벽은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장벽은 수백 년 전에 갑자기 발생하여 제국의 지배력을 단번에 없애 버린 재앙이었다.
그 정도의 장벽을 뚫어서 굳이 이곳까지 제국의 사절단이 온 것이었다. 리리는 이게 결코 사소한 방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피곤해.”
리리는 저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며 뒤쪽으로 뻗어 가방을 벗어 던졌다.
서지아도 마찬가지로 슬쩍 리리를 따라갔고, 강선후 역시 늘어지는 표정으로 셋을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그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지나쳐 문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마을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 OWIC 쪽 직원분?”
“아, 예. 문제대응 총책임자 허지태입니다.”
“지태 씨. 마을에 여전히 사람들이 있나요? 혹시 다들 지구로 대피했나 해서요.”
“아뇨. 다들 정상적으로 오가는 중입니다. 원거리 탐사만 제한하고 있고요.”
강선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오의 하늘처럼 드높게 떠 있는 검은 태양이 눈에 들어왔다.
“저 태양이 뜰 때만 활동하는 생물들이 있어요. 그것들 중에는 굉장히 위험한 놈들도 있고요. 그건 알고 있나요?”
강선후는 그들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모르고 있는 게 죄는 아닐 테니까. 그저 자신이 귀환할 때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여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허지태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아, 네. 다행히 이분이 늦지 않게 모든 조치를 취해 줘서 말입니다. 애초에 조치 전에는 코드 바이올렛이 발령되어 마을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대피를 시켰다가 이 사람이 도와줘서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네.”
그 말에 강선후는 살짝 놀랐다. 외부인이 갑자기 방문해 마을을 도와줬다는 이야기가 나쁘게 들릴 리 없었다. 뒤로 고개를 돌리자 리리와 함께 소파에 앉아 있는 차소희가 보였다.
“……?”
차소희는 뒤에서 감자칩을 두 개씩 집어먹다가 그대로 멈추고 동그란 눈으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왜 봐?”
“무슨 조치를 받았는데?”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차소희는 빠르게 질문의 의도를 깨닫고 자신의 허리춤에 묶여 있는 금속 통을 내밀었다.
“무슨 금속 가루래. 이걸 주기적으로 한 줌씩 뿌려 주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었지.”
“습지에서 자연적으로 녹슨 금속 가루인가.”
“맞소! 제국 변방엔 검은 태양에 대해 아는 자가 없어서 우려했는데, 이 마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구만!”
노움은 깔깔 웃었다. 작은 덩치만큼이나 목소리 톤이 높아서 말투와 퍽 어울리지 않았다. 강선후는 그에게 이계어로 물었다.
“왜 굳이 이 마을을 도와준 겁니까?”
노움은 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국의 이름으로 제국의 시민을 돕는 데에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름이?”
노움은 멋들어진 콧수염을 잡아당기던 손을 쭉 뻗어 내밀었다.
“엘리엇, 엘리엇 하리파.”
강선후는 그 손을 가볍게 잡은 뒤 말했다.
“엘리엇, 커피 마셔요?”
“커피? 커피가 뭐지? 과실주라면 내 거절하는 법이 없었지만!”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엌으로 가려고 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대화를 유심히 듣던 차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아 씨 완전 녹초 됐더라. 힘들었나 본데 앉아 있어. 마실 거 꺼내오면 되는 거지?”
“부탁할게.”
“저 수염 난 잼민이는 뭐 먹는대?”
“……포도 주스 하나 꺼내 와 줘.”
“오키.”
차소희는 부엌으로 들어갔고, 강선후는 소파로 다가가 리리 옆에 앉으며 말했다. 엘리엇과 허지태도 따라 옆에 앉았다.
“할 말이 있다면서요?”
“경계심이 심하다 들어 내 우려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와주니 아주 좋구만! 이곳에서 나온 술맛을 보고 싶어.”
탐험복조차 갈아입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었던 리리는 어느 순간 강선후의 태도가 유순해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거뜬히 호의를 베풀어 주는 이들을 강선후는 언제나 거부하지 않았다.
차소희가 마실 것과 과자 몇 개를 가져온 뒤 위로 올라갔고, 엘리엇은 합성 착향료로 맛을 낸 포도주스를 맛보고 좋아했다.
“굉장히 달콤하고 훌륭한 와인이로구만! 이렇게 단맛은 꿀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음료의 정체를 알고 있는 리리는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레토르트 선짓국을 처음 먹었을 때를 본 강선후도 이런 감정이 느껴졌을까?
강선후는 말했다.
“저한테 볼일이 있는 거예요?”
“사족이 많은 걸 싫어하신다 들었소?”
“일반적으로는.”
“황가의 보물을 찾아주시오.”
의뢰였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노움 엘리엇이 하는 말에 리리가 눈을 번쩍 뜰 정도였다. 표정 관리에 실패한 그녀를 보며 엘리엇은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재밌는 이야기지! 그렇지 않소?”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실래요?”
“관심을 가진다니 좋군.”
엘리엇은 강선후의 반응에 만족하며 말을 이었다.
“현재 제국의 상태는 아시나? 다른 세상의 분이라니 아마 모를 거라 생각한다만.”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리리가 대신 대답했다.
“백 년 전, 황제가 천공의 기사에게 살해당한 후 아직까지 그 자리가 비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지! 왜 비어 있는지는 아나?”
“……정치적인 문제라고만 알고 있어요.”
아마 리리의 부모는 알고 있을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리리는 열 살 남짓한 어린애였고, 도이나 신카와 안드류 신카는 그 어린 나이부터 정치에 대해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인도자의 숙명을 행하는 데에 굳이 필요한 지식이 아닌 탓도 분명 있었다.
엘리엇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다음 황제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라네.”
리리는 그 말을 듣고 강한 의문을 품었다.
“왜 나올 수 없나요?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라면 전쟁을 해서라도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게 사람들 본성일 텐데.”
“그렇지! 하지만 제국의 황제 자리란 그렇게 간단한 자리가 아니거든. 그래서 이 의뢰를 한 거라네.”
엘리엇은 강선후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제국의 황제로 임명받기 위해서는 황실의 인장이 필요하오. 고대에 황금왕께서 떠나시며 한 지배자 가문에게 수여한 것이지.”
“그게 없으면 황제가 못 되는 건가요? 그냥 그 자리에 앉아버리면 되는 게 아니라요?”
엘리엇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제는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 그 힘은 바로 인장에서 나오오. 황실의 인장을 가지고 주신교의 인도를 받아 아홉 신 모두의 힘을 그 안에 담으면, 바로 그가 황제가 되는 거지.”
“백 년 전 황제의 시체를 뒤지면 되찾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제국은 그 백 년 동안 뭐 했는데요?”
제국의 예법을 모르는 강선후의 말은 엘리엇이 듣기에는 무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이야기를 들어 놓은 엘리엇은 개의치 않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백 년 전 황제가 가지고 있는 황실의 인장이 가짜라는 게 밝혀져서 그렇소.”
“……황제의 인장이 가짜였다고?”
“그 황제만 가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네. 굉장히 오래전 어느 순간부터 황제는 가짜 인장으로 유지된 자리였다는 거지.”
강선후가 듣기에는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이었으나 리리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위조된 황제의 인장으로 유지된 황실, 그리고 그 손아귀에 움직인 제국.
이는 황금의 왕이 물려준 위치라는 미명하에 유지되어 온 제국의 정통성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진실이었다.
리리는 천공의 기사가, 그러니까 강선후에게 집행자의 검을 물려준 그 기사가 백 년 전 황제를 왜 죽였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온 세상을 기만해 온 작자였다.
“……천공의 기사는 틀리지 않았어.”
천공의 기사는 자신이 황제를 죽인 탓에 세상이 전란에 휩싸였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품은 채 살아왔다. 하지만 진실을 안 리리가 보기에 그 검은 정당했다. 눈앞에 기사가 있다면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외치고 싶었다.
엘리엇은 말을 이었다.
“그대가 굉장히 유능한 탐험가라고 알고 있소. 그리고 의뢰를 받는다고도 들었지. 그래서 내 이렇게 의뢰를 하러 온 것이오. 불의 장벽을 피하기 위해, 동쪽의 파도 치는 사막을 건너면서 말이오. 진짜 황실의 인장을 찾아내는 것. 당신에게 부탁할 의뢰 내용이오.”
강선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주요 키워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거짓 황제,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는 진짜 황실의 인장.
그것을 찾아 떠나는 일.
엘리엇은 생각에 잠겨 있던 강선후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는 걸 눈치채고는 의아해했다.
“……제가 원래 보수를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게 그래도 동기부여가 되면 더 재밌거든요?”
“재미?”
“그래서 드러나 보려고 하는데요.”
“당연히 생각해 뒀지. 그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꽤 고민이 많았다오.”
엘리엇이 신호를 보내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이 들어와 목재로 된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아주 작은 보석이었는데, 보통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신묘한 느낌이 드는 파란색의 흐름이 그 안에 있었고, 보석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물방울처럼 보였다.
“하늘고래의 눈물이오. 구름 위를 헤엄친다는 고래가 흘린다는 아주 귀중한 보물이지! 연금술의 귀중한 재료로 쓰인다고 들었는데,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으신가?”
강선후 입장에서는 호기심이 당기는 물건이었다. 보석으로서도 굉장히 아름다웠고, 연금술의 재료로 쓰인다는 이야기가 특히 탐구심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보수인가요?”
“계약의 증거일 뿐이오. 만약에 완수해 준다면 이걸로 끝낼 수 없지.”
엘리엇은 상자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황금의 왕국을 찾는다고 했지?”
“…….”
“의뢰가 완료된다면, 황금의 왕국에 대한 지식이 잠들어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드리겠소.”
황금의 왕국에 대한 정보의 정보라니.
리리가 듣기에는 퍽 웃긴 제안이었으나, 강선후의 표정을 듣고 그가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리리는 그 이유를 금방 파악했다.
고대의 지식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면 그곳 자체도 특별한 곳일 테지. 강선후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좋아요.”
주저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오는 대답에 엘리엇은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아니, 경계심이 심하다고 들어서 골치 깨나 아플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호쾌한 사람이었다니! 초면이지만 마음에 드는구만!”
“뭐, 그러면 시작은 어떻게 하죠? 무작정 찾으라고 하면 나도 곤란한데.”
“구체적인 정보는 제국의 내 본부에 있다오. 제국으로 가지. 어떻게, 같이 갈 생각이시오? 우리는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해서.”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따로 갈게요. 긴 여행을 바로 출발할 수는 없으니까.”
엘리엇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행원은 품속에서 황동빛의 배지를 두 개 책상 위에 올려 뒀다.
“제국 본성의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요. 하지만 제국의 영역에서는 통행증이 필요하니, 그걸 잊지 말고 챙기시오.”
“오…… 리리. 뭔가 본격적이지 않아? 재밌을 거 같은데.”
리리는 아무 말 없이 제국의 통행증을 하나 들어 내려다보았다.
“제국에 도착하면 상인 길드 접수처에서 이렇게 말하시오. 붉은 장미의 키는 크지 않다.”
“……암호인가요? 왜? 당신 제국 쪽 사람 아니었어요?”
엘리엇은 씨익 웃었다. 광대와 그 콧수염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제국의 부흥에 베팅한 사람 정도라고 생각해 두시오. 와인 잘 먹었소! 그것 참 맛있는데…… 잊지 못할 것 같구만.”
엘리엇은 제국식 작별 인사를 건넨 뒤 미련 없이 사무실에서 떠났다.
창문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바로 떠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강선후는 나무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담겨 있는 걸 바라보았다. 이건 그로서도 처음 보는 거였다. 어쩌면 기억에 없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리리 역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쉬어야지. 너 엄청 지쳐 보이는데?”
리리는 문뜩 자신의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사이사이에서 모래가 우수수 떨어지는 걸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온몸이 다 아파.”
“그리고 저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면 내 마음대로 못 움직이잖아. 나는 가이드 끼고 돌아다니는 여행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
“당신답네.”
강선후는 OWIC의 간부 허지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은 지적하는 어조였다.
“제 이야기를 이렇게 함부로 하면 곤란한데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제국 쪽에서는 이미 강선후 님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허지태는 설명했다. 주신교의 남부 총본산에서의 이야기와 서쪽 파도치는 사막에서의 이야기는 이미 알음알음 전설처럼 퍼지고 있단 이야기를.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저들 집단은 강선후 님에게 반드시 도음이 된다는 것을요.”
강선후는 그쯤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덕분에 제국 반경의 탐사에 필요한 도움을 받은 터였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고, OWIC은 이제까지 강선후의 편의를 잘 봐준 것도 사실이니 믿어 보기로 했다.
“……이제 짐 풀고 쉬자. 일 끝나셨죠?”
“그럼 저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기 제 개인 연락처입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그때였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스며들어왔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방문자들이 한쪽 방향을 보고 선 채 웅성거리는 소리였다.
이상함을 느낀 강선후와 리리가 밖으로 나갔다.
“……저걸 실제로 볼 줄이야.”
엘리엇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이제까지의 여유는 사라진 상태였다.
강선후도 그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검은 태양은 어느새 다시 북쪽 상공에 떠 있었다.
검은 태양은 그렇게,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뚝뚝 떨어지는 검은 물이 천구를 타고 아래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게 어디에 떨어지는지는 드높은 노미나 산맥에 가려져 알 수 없었다.
그러나.
“……!”
그대로 덮치듯 등장한, 하늘을 가릴 듯한 형상에 몇몇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기까지 했다.
낮게 깔린 안개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그 형상은 피라미드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저건 너무 비정상적으로 크잖아…….”
북쪽 하늘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선후가 입을 열었다.
“저건 신기루야.”
“신기루?”
복합적인 빛의 굴절과 반사로 인해, 아주 멀리 있는 어떤 것이 시야에 보이는 현상.
강선후는 세 개의 거대한 검은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