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7
17화 – ep.7 버뮤다 숲, 사냥 (2)
강선후가 처음 숲에 들어온 뒤 반나절 간 한 일은 명상이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푸른 수정의 위치를 찾아낸 뒤, 그걸 앞에 두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배움이 없는 이가 본다면 그렇게만 보였겠지만, 리리의 눈에는 저 행동의 의미가 보였다.
강선후는 지금 숲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푸른 수정이란 그걸 가능케 하는 매개체였으니까.
‘인간이 어떻게···?’
이 숲에 들어온 뒤 강선후가 보여준 능력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긴 명상이 끝난 뒤, 강선후는 푸른 수정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파삭—
수정이 작고 날카로운 모양으로 산산이 조각났다.
절대로 깨지지 않는 수정을 깨는 방법, 그건 수정의 주인인 숲의 허락을 받는 것이었다.
강선후는 그 조각들을 주운 뒤 반듯하게 깎은 나무에 끈으로 엮기 시작했다.
리리는 저도 모르게 강선후에게 다가갔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있을 때 빨리 끝나는 작업이었으니까.
***
“도와줘서 고마워.”
나는 리리에게 말했다. 내 뒤를 쫓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숲 안까지 들어올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는데 생각해보니 신경 쓸 게 전혀 없었다.
리리는 아주 똑똑한 뱀파이어였다. 본인이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오래 걸릴 뻔한 작업에 자진해서 손을 보태주기도 했지.
“후.”
이틀 밤을 꼬박 새워서 제시간에 모든 준비를 끝냈다.
몇 번이나 강조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행 단계가 아니라 준비 단계다. 목표물을 추적해서 위치를 확인하고, 목표물이 지나다니는 곳에 함정을 설치하고, 목표물의 약점을 파악해서 정확하고 신속하게 노린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냥감과 정면 대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사냥은 룰이 없는 싸움이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먼저 목숨을 끊으면 승리하는 싸움.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치를 발견했다.
숲의 심장, 검은색 수정 바로 위에 만들어진 기생체의 고치.
높이는 대충 내 키의 1.5배 정도. 너비는 양쪽으로 팔을 쭉 뻗은 것보다 살짝 작은 정도.
어마어마하게 큰 실뭉치처럼 보이기도 한 그것은 단단하게 고정된 채 허공에 띄워져 있었다.
“고치부터 엄청 건강해보이는구만.”
건강한 기생체.
그 소재도 겁나게 질이 좋겠지.
고치를 둘러싼 실뭉치의 색깔은 연녹색을 띠고 있었다. 오히려 좋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고치 기다랗게 늘어진 촉수는 나무에, 땅에, 바위에, 여기저기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이 근방 전체가 방사선 피폭이라도 당한 듯 온통 칙칙하게 시들어 있었다.
이게 기생체가 숲에 생기면 안 되는 이유였다. 양분에 미쳐 있는 놈들은 숲이 통째로 폐사할 때까지 저 짓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다가가면 안 되는 이유도 있었다.
“끄으으어억······.”
고치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열 명의 사람이 몸에 촉수가 꽂힌 채 신음하고 있었다.
고치 내용물뿐만 아니라, 고치는 그 자체로도 생물체였다. 뭐 저딴 생물이 다 있냐 하는데 이계에는 있더라.
그래서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사냥에서 중요한 것 두 번째는 바로 인내니까.
빠직.
오랜 기다림 끝에 고치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고.
“키이이이이이—.”
괴물이 걸어 나왔다.
어··· 저걸 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대충 칼날 팔이 네 개 달린 사마귀인데, 곤충이 아니라 파충류 같은 못생긴 녀석이었다.
다시 되새긴다.
사냥에서 중요한 것 두 번째는 인내다.
“키륵.”
아직 잔뜩 젖어있는 기생체는 처음 움직이는 관절에 비틀거리면서도, 근처에 쓰러져 있는 요원들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쿠으······.”
침을 흘리며, 그들에게 칼날 손을 뻗으며 다가가는 그때.
차자자자자작—!
굉음이 숲 전체에 울려 퍼지며 미리 설치해놓은 수십 개의 화살 덫이 발동. 녀석에게 쇄도했다.
화살촉은 날카롭기로 소문난 푸른 수정. 특제품이다.
푹푹푹푹푹!
“키에에엑!”
온몸에 화살이 꽂힌 괴물은 세 쌍의 다리를 혐오스럽게 움직이며 비틀거렸다. 네 개짜리 눈 중 하나는 벌써 화살에 잃었다.
나는 판단한다.
녀석은 경험이 없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당황했다.
머리에 꽂힌 화살은 일시적으로 균형감각을 뺏을 것이며,
좌측 눈을 잃어 시야가 좁아졌다.
스릉—!
허리춤에 납도 해둔 사냥용 나이프.
기생체가 발하는 금속 부패 현상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 특제품.
날이 두 뼘 길이 정도 되는 그것을 역수로 뽑아내며, 녀석의 좌측으로 접근해 배 쪽 다리 관절에 박았다.
그리고.
“카츠khaaz”
미리 검날에 적어둔 룬 언어가 발동된다.
파지지지직—!
녀석이 거칠게 네 개의 칼날을 휘두르지만 닿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빠르게 검을 거두며 거리를 벌렸다.
“키르륵······.”
남은 세 개의 눈을 덜덜 떨며 나를 바라보는 기생체.
내가 찌른 곳은 정확히 신경계가 지나가는 곳.
테르마tterma의 전류는 강하진 않지만, 신경계를 훼손하기엔 충분하며.
“캬아아악!”
쿠웅—!
“이제 넌 다리 세 개는 못 쓴다는 뜻이지.”
녹색 기생체를 상대하는 교과서적인 방법, 그 교과서의 저자는 강선후다.
***
“화기 반입 허가 내려왔습니다.”
이계의 밤.
베이스캠프 외부 거점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요원 서른 명은 각자의 화기를 들어 올렸다.
화기 반입 허가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였기에. 이들은 한참 전부터 총을 소지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기관단총.
신뢰성이 너무나 떨어졌기에 어쩌면 플라스틱 나이프를 믿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될 정도였다.
하지만 금속이 부패하는 현상을 확인한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인원 확인해라.”
작전 지휘자의 명령에 각 팀은 인원을 확인했다.
R&D본부에서 파견된 현장 연구 자문팀도 있었으며, 팀원 중에는 진서연도 있었다.
“투입 전 다시 전달한다. 이번 작전은 SC-4등급 기밀 작전이다. 기도비닉을 유지하고 보안에 신경을 쓸 것.”
“알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낸 요원들은 버뮤다 숲으로 출발했다.
진서연은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작은 달 한 개밖에 뜨지 않은 밤은 너무 어두워서 그마저도 오래 볼 수 없었다.
“누님.”
고개를 돌리자 전략기획본부의 정지훈이 다가왔다.
“지훈이도 있었구나.”
“오늘은 현장 데이터 분석 담당입니다.”
“요즘 들어 현장 파견 많이 나가는 모양인데, 고생이 많네.”
“누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 회사가 원래 그렇잖아요?”
진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정면을 바라보았다.
“걱정 많이 됩니까?”
손톱을 깨무는 진서연의 모습을 보며 정지훈이 넌지시 물었다.
“나는 전략기획본부 사람들처럼 사이코패스가 아니라서.”
“우리 회사 소속인 이상 누님도 사이코패스입니다.”
“나는 감성 빼면 시체거든. 꼬마야.”
“이과 입에서 나올 말입니까?”
심각한 상황에서도 농담을 할 수 있을 만큼 신경이 굵은 사람만 모인 회사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진서연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뭔가를 알아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 너희 쪽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아예 연구할 샘플 자체를 확보하지 못해서 보고서를 거의 소설로 썼다고.”
버뮤다 숲의 이상 반응을 알게 된 지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원거리에서는 수집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었고, 무리한 결과 특무부대 열 명 실종이라는 참사가 일어났다.
“저게 곧 우화한다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잖아.”
베이스캠프가 공격받을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
정보 부족을 무릅쓰고 선제공격하기.
작전 책임자들은 후자에 배팅했다.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진서연은 도무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현장 지휘자한테 향수 드리지 않았나요?”
“어? 아, 그렇지. 작전 진입할 때 반드시 전원 사용하시라고 말씀드렸어. 연구 결과라고 말하긴 하지만···.”
강선후에게 제안받은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 말대로 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분 지금 입이 귀에 걸리셨더라고요. 완전 오해하고 계시는 모양이던데.”
“···살아돌아오기만 하면 데이트 한나절 못해줄 것도 없어.”
진서연은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 숲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계 전용 장파 무전기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상황실, 들리는지.]정지훈은 바로 수화기를 들어 응답했다.
“여기는 상황실. 보고하라.”
[작전 인원 전원 버뮤다 숲 도착. 30m의 거리를 유지한 채 정찰 중이다.]“기타 보고사항은 있는지?”
[육안 관찰 결과 특이사항 없음.]“알겠다. 특이사항 발생 시 즉각 보고하도록.”
[숲 내부로 진입하겠다.]“통신병은 숲 외부에서 대기한 상태에서 계속 연락을 유지하라.”
[수신 확인.]통신 장치는 금속 부품이 있었기에 숲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금 무전이 울렸다.
[상황실.]“여기는 상황실.”
[숲에 진입하는 데에 실패했다.]“실패했다니, 그게 무슨 소린지? 숲이 공격했나?”
[숲이 우리를 거부한다. 진입 절차를 확실히 한 뒤 들어갔는데도, 숲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에, 진서연과 정지훈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
‘버뮤다 숲은 공식적으로 내부 탐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
이건 거짓말이었다. 이계를 탐사하는 인간들에게 공포를 심어 베이스캠프에서 멀리 나가지 못하게 만들도록 하는 OWIC의 여론 통제였을 뿐이었다.
이계 기업과 일부 하운드는 이미 버뮤다 숲의 거부 반응을 극복하는 법을 깨달았다.
방법은 단순했다. 숲의 감지하지 못하는 호르몬제를 섭취하는 것.
이번 작전에 참여한 요원들도 여지없이 그 호르몬제를 섭취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허억!”
숲에 발을 들이자마자 땅에서 초록빛 넝쿨이 솟아올라 이들의 몸을 휘감았다.
“제, 젠장!”
사격 개시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요원들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
숲은 그저, 이들을 들어 다시 숲 바깥까지 옮긴 후 얌전하게 내려둘 뿐이었다.
버뮤다 숲은 위험한 곳이었다.
호르몬제가 통하지 않아 숲에 감지되었다면 그저 죽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숲이 이렇게 온건하게 인간을 다루는 건 처음이었다.
“···상황실에 보고해.”
“알겠습니다.”
지휘자는 우선 상황실에 보고한 다음에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호르몬제가 통하지 않은 이유.
이건 순식간에 눈치챌 수 있었다.
“···향수!”
진서연이 준 향수.
그 인공적이고 강렬한 향 때문에 숲이 여전히 이들을 인지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효과적인 신체 방어 방법이라고 해서 믿었는데, 우리를 속인 건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쿠그그그그그——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요원들은 뒷걸음질 치며 숲을 바라보았다.
숲 외곽에서 수천, 수만의 덩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버뮤다 숲이 이토록이나 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덩굴은 천천히 솟아오르며, 천천히 외곽을 따라 숲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벽이 세워졌어.”
숲 전체를 감싸는 벽이 세워졌다.
들어오지 말지어다.
마치 숲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모든 보고를 들은 뒤, 진서연은 한 사람을 생각했다.
“···강선후.”
이변의 원인을 다른 데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 말고는 이런 변화를 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지훈아. 요 며칠 탐사 허가받은 기록 좀 확인해줄래?”
“어떤 걸 확인합니까?”
“강선후!”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정지훈은 신속하게 서류를 뒤적거렸다.
“강선후가 지구 시간 이틀 전 근거리 탐사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계 시간으로는 밤···.”
탐사 허가 기록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유 불문하고 마을의 영역 바깥으로 가려면 다 받아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름이 강선후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향수를 뿌리라고 전한 것도 그것 때문에···.”
일부러 숲이 요원들을 인식하게 만들려고?
사람들을 숲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왜 숲이 강선후에게 협조하고 있는 거지?
어떻게, 숲이 협조할 수 있게 한 거지?
숲을 둘러싼 거대한 넝쿨의 벽.
그건 강선후만을 위해 숲이 마련한 격투장이라는 걸, 진서연은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진심이었다고? 혼자서 버뮤다 숲에 들어간다는 게?”
물론 강선후는 처음부터 진심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말의 심각성이 너무 심해서 진서연은 끝까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인간은 아무리 대단해도 인간이었다. 인생 전반에 걸쳐서 완성된 그 고정관념을 깨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무의식 탓에 진서연은 강선후의 잠재력을 ‘상식적인 인간’선에서 판단했다.
그런 인간이 숲을 통째로 움직였다.
최종적으로 도출된 결론은 간단했다.
“···역시 윗대가리들은 다 멍청이들 뿐이야.”
***
강선후와 기생체의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리리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피하기 전에 숲이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 줬다.
강선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설치한 덫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의도대로 작동했으며, 기생체는 제대로 움직여보지도 못하고 치명상을 입었다.
강선후는 기생체의 생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안전을 완벽하게 확보하며,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과감하게 행동했다.
첫 번째 합을 나눈 후, 강선후와 기생체가 대치하는 그 순간.
“···웃고 있어.”
리리는 강선후의 얼굴에서 즐거움의 감정을 느꼈다.
동시에, 바라보기만 해도 다리가 저릴 듯한 영혼의 상이 그의 등 뒤에서 다시금 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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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버뮤다 숲, 사냥.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