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ep51. 북쪽, 먼 여행길 (2)
우리는 그날 교회의 빈 방에서 묵을 수 있었다. 침대조차 없는 방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리리는 빠르게 잠들었고, 나는 연금술사의 일지를 펼쳐 조금 더 살피다가 잠들었다.
교회 사람들은 자지 않았다. 원래 검은 태양이 떠 있는 주간에는 수면을 통제해서 수행하는 기간이라더라. 지구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있었다. 사순절이라든가.
다음 날, 우리는 검은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출발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잠시 북쪽을 바라봤다. 계곡 아래쪽에 있는 여기에서는 아직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붉은 테두리만 살짝 엿보일 뿐.
“저기, 교회는 검은 태양이 얼마나 유지되는지 알고 있어요?”
검은 태양 시기 동안 고행을 하는 문화가 있다면 그 기간도 대체로 알고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그 기간은 내 이번 여행에서 굉장히 중요하니까.
내 질문에 사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닌 건가?
그러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네?”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던 리리가 나서서 반응했다.
“검은 태양께서는 스스로 광명을 저버린 태양입니다. 그분께서 뭘 원하는지는 잘 모르고, 매번 떠오를 때마다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떠나지 않으신다는 말이지요.”
“다른 두 태양이 가만히 있을까요? 하늘은 원래 그들의 자리일 텐데.”
내 질문이 퍽 도전적인 모양이었다. 사제는 조금 놀란 듯하지만 내가 주신교의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했다.
“주신들께서는 서로 반목하는 존재가 아니십니다. 그들은 아홉이자 하나, 서로 같은 뜻을 품고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 쌍둥이 신께서 검은 태양의 의지에 반할 일은 없습니다.”
퍽 신앙적인 이야기다. 신화가 단순히 설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신이 직접 존재하는 세상이기에 저 말에는 의미가 있었다.
“정리하자면, 검은 태양이 만족하지 못하면 이 현상은 계속해서 남아 있다는 거죠?”
“지난번에 떠오른 검은 태양은 200년이 넘게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
리리도 나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나는 과거에 검은 태양을 겪었던 기억이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었다. 당시에는 길어 봤자 한 달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뭐, 결론적으로 원하는 걸 이루면 사라진다니 당시에는 정말 한 달뿐이었을 수도 있지.
떠나려던 차, 사제가 내게 물건을 하나 건넸다. 안에 푸른 모래가 들어 있는 원형의 유리판을 금속 테두리로 감싼 물건. 황금 지침보다 조금 더 큰 원판.
“네비게이터입니다. 근처의 비프로스트를 감지하고 그 방향을 표시하는 주신교의 공학품이지요. 서쪽 대륙 끝의 대장장이 종족에게 의뢰해서 만든 물건입니다.”
비프로스트. 고대의 이계 사람들이 사용했다는 장거리 이동용 차원문.
그 위치를 표시해 주는 물건이라고 사제는 설명했다.
“주는 거예요?”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남부 지방의 비프로스트는 전부 찾았습니다. 하지만 여행자께서는 불의 장벽을 넘어 제국 본성으로 가시려는 거지요? 그곳은 우리 교회 입장에서는 미지의 영역이고, 여러 비프로스트가 있을 것입니다.”
“아, 혹시 그럼 이거 좀 여쭤볼게요. 여기서부터 북쪽에 혹시 비프로스트가 있나요?”
사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타깝게도 이곳을 마지막으로 비프로스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걸 받아 가방에 넣은 뒤 렐릭시나의 등에 올라탔다.
“잘 있다 가요.”
“대주교의 친우분을 모시는 건 교회의 영광입니다.”
“교회에 아홉 신의 영광이 있기를.”
리리가 먼저 말에 올라타기 전 가슴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사제도 거기에 화답했다.
“아홉 신이 그대들의 길을 축복하기를.”
인사를 나눈 뒤 북쪽으로 출발했다. 이 시점에서 리리는 가방 속에 있는 엘신의 활을 등에 메었다.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지.”
이동에 불편할 것 같아서 아공간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리리가 이렇게 판단한다면 존중하기로 했다.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었으니.
노미나 산맥을 타고 올라갔다. 천공섬의 그림자로 가려진 부분은 유독 추웠다. 리리는 바람을 막아주는 탐험용 재킷이면 충분한 듯했지만, 나는 아공간 가방에서 두꺼운 산악용 방한복을 꺼내 입었다.
렐릭시나는 가파른 눈길에서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올랐고, 다행히 산악지대치고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져 계속해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했다. 사실 봉우리는 아니지. 제일 낮고 완만한 길목을 따라 올랐으니까. 그저 산맥의 첫 번째 꼭대기라고 하는 편이 옳을 거다.
그곳에서 쉬면서 잠시 전방을 바라봤다. 산맥의 꼭대기 부근이니 이곳 정상에서는 제국의 본성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턱도 없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건 그저 다음 봉우리일 뿐이었다.
산맥이라면 보통 일자로 쭉 늘어진 얇은 영역을 상상하게 된다. 물론 지구의 히말라야도 그 폭에 작은 나라가 걸칠 만큼 넓지만, 노미나 산맥은 넓은 부분은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벅찰 정도의 넓이를 자랑한다.
“……노미나 산맥은 왜 이렇게 넓어?”
“추락한 신의 상처에서 자라난 곳이니까.”
지구인으로서 지리를 신화와 연결하는 건 퍽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맘에 안 드는 대답은 아니란 말이지.
나는 잠시 전방을 바라보면서 다음 경로를 설정했다. 최대한 완만하면서 높이가 낮은 곳.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대체로 계곡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적당한 계곡을 바라보다가 주신교회에서 받은 선물 두 개를 꺼내 보았다.
첫 번째는 ‘영웅 여정의 지도’라고 소개받은 물건. 검은 태양과 관련된 유물이었는데, 지도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면 뭔가 길을 알려 주는 물건인가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그저 은빛의 원반형 거울일 뿐이었다.
두 번째는 네비게이터. 투명한 원반형 유리 안에 푸른 모래가 들어 있는 형태다. 모래는 이리저리 움직이면 중력에 따라 흐른다. 모래시계처럼 말이지.
고대 시절의 대중교통을 담당했던 차원문의 위치를 알려 주는 물건이다. 원리는 모르지만 대단한 대장장이 종족이 만들었다니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
가만히 네비게이터를 바라보던 내 눈이 거기에 고정되어 버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에 잠겼다. 리리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옆에서 나를 부르기 전까지.
“당신 왜 그래?”
하루 온종일 여정 속에서 살짝 지친 듯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던 리리가 마찬가지로 네비게이터를 바라보았다.
네비게이터 속 모래는 모래시계의 그것처럼 중력을 따라 흐른다.
하지만 지금은 자석에 이끌린 철가루처럼 좌측에 살짝 쏠려 있었다. 미세한 변화지만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
솔직히 답은 명확했다.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네비게이터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어.”
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비게이터가 가리키는 게 뭔지는 이미 알고 있잖아?
“근처에 비프로스트가 있나 본데.”
내가 말했다. 하지만 리리도, 나도 이 상황을 마음 편히 좋아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더 이상 비프로스트가 없다고 했잖아.”
우리는 네비게이터가 안내하는 좌측을 바라보았다. 가파른 내리막과 이어지는 작고 좁은 계곡과 연결되어 있는 곳.
저기에 있을 비프로스트를 주신교에서 찾지 못할 리가 없는데…… 이런 추적기까지 있었다면 더더욱.
리리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장 가자.”
“응.”
이번에는 리리도 내 모험심을 탓하지 않았다.
* * *
내리막길은 생각보다 가팔랐고 심지어 중간에 작은 바위 절벽도 연속해서 있었다. 탐험에서 이런 지역은 나쁜 편이다. 한 번의 큰 장애물보다 연속된 작은 장애물이 체력과 투지에 더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렐릭시나! 뛰어!”
“크릉!”
“저기! 당신! 내 말 들려?”
얼굴을 때리는 눈발이 따가울 지경이다. 터번으로 가린 얼굴에 눈만 내밀어도 시려서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뒤에서 잔뜩 고개를 숙인 리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않아?”
“탐험 원칙! 계획에서 벗어난 돌발 행동은 신속하게 처리해라!”
“그래도! 이렇게 급해야 해? 응?”
“나는 원칙주의자니까!”
그 순간 렐릭시나가 훌쩍 뛰어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으앗!”
약 7m 정도 되어 보이는 높이를 순식간에 착지하며 스키점프를 하듯 눈 위를 미끄러졌다. 네발 동물이 한다고 생각하기 힘든 액션이다.
“원칙은 무슨! 당신 그냥 궁금해서 이러는 거잖아!”
“…….”
“내가 맞았지!”
리리는 이제 눈치가 정말 빠르다. 사실 시간이 갈수록 호기심이 커지는 게 사실이었다. 분명 사제는 이곳에 더 이상 비프로스트가 없다고 설명했었다.
“여기는 주신교회에서 그렇게 먼 지역도 아니야. 왜 주신교회는 이 근방에 있는 비프로스트의 존재를 몰랐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게 못 참는 이유거든!”
뭔가 냄새가 난다. 숨겨진 것들의 냄새가. 그리고 숨겨진 것들은 보통 단내를 풍기기 마련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달콤한 냄새.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곳을 지나가는 산맥의 바람은 날카롭고 난폭하다. 칼로 베이는 것 같은 냉기를 뚫어 내며 안쪽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생각보다 좁아지는 계곡. 어느새 하늘은 얇은 틈새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진입했다.
눈 위로 고개를 내민 버섯이 보였다. 이계의 버섯은 추운 지방에서도 이렇게나 잘 자라는 종들이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날카로운 바람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게…… 뭐야?”
리리가 렐릭시나의 등에서 내리며 말했다. 나도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렐릭시나의 등에서 내렸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은 간단히 말해서 ‘새하얀 회오리바람’이었다.
작은 집 한 채를 둘러쌀 수 있을 정도의 비정삭적으로 작고 키가 낮은 회오리바람이 우리 눈앞에서 몰아치고 있었다.
땅에 쌓인 눈과 얼음조각을 끌어올려 내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얗게 반짝거리는 회오리는 누가 봐도 인위적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 생각을 하게 된다.
대체 저 안에는 뭐가 있을까.
“들어갈 거야?”
리리는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무작정 머리를 밀어 넣을 생각은 전혀 없다.
아공간 가방에서 비상용 강철 말뚝을 하나 꺼내서 조심스럽게 회오리바람 안쪽으로 밀어 넣어 봤다.
카가가가각—!
눈과 얼음 조각이 강철을 치고 지나간다. 부여잡고 있는 내 손에 강한 압력이 느껴지는 수준.
말뚝을 거둔 뒤 살펴보니 무수한 흠집이 나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맨몸으로 들어갔다가는 옷이 찢기는 걸 넘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 수준. 손으로 살짝 만져 보니 동상을 입을 정도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네비게이터를 다시 바라보았다. 유리판 안에 들어 있는 푸른 모래는 이제 날카로운 반응을 내며 격렬하게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황금 지침과는 달리 가까워질수록 방향을 더 정확하게 가리키는 모양인데.
그건 이 폭풍의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고작 비프로스트가 이렇게 격렬하게 보호되어 있다고? 이제까지는 이랬던 적이 한 번도 없잖아?
대체 안쪽에 뭐가 있길래?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