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ep52. 검은 태양 숭배 유적 (1)
결론은 간단했다.
“맨 몸으로 들어가기엔 위험해.”
하지만 저 얼음 조각과 냉기가 기생체의 가죽과 천잠사의 망토를 뚫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확신을 가지고 아니라 대답할 수 있다.
리리에게 천잠사의 망토를 씌우고, 그 위에 기생체의 가죽을 단단하게 씌웠다. 나 역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이 없도록 신경 썼다. 발을 덮을 정도로 늘어진 부분은 밧줄로 단단하게 안쪽에서 묶었다.
“얼굴 조심해.”
“…….”
리리는 입까지 꼼꼼하게 틀어막아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세팅했지.
눈에는 특제 고글을 씌웠다. 제국 사절단이 늪지의 금속으로 그림자 생명체를 막아 주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계의 광석 중에는 견고하면서도 가공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것들이 있다. 그걸로 만든 고글이라면 효과적으로 안구를 보호할 수 있겠지.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눈보라를 바라보았다. 긴장한 리리가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이 살짝 보였다.
나는 눈보라를 명확히 주시하며 외었다.
“모로스moros.”
에너지의 현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룬 언어. 섬광을 만드는 루디나ludina와 조합하여 허공에 고정된 광원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했었다.
즉, 에너지를 허공에 고정하는 룬 언어고 제어계열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로 저 눈보라를 통째로 멈추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덜 부담스럽게 들어가는 데에 도움은 주겠지.
“가자.”
리리와 나는 신중하게 한 걸음씩 옮겼다. 렐릭시나는 물론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튼튼한 녀석이지만 괜히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발을 들이밀자 미세한 얼음 조각들이 기생체의 망토를 두드리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경직시킨 뒤 천천히 발을 옮겼다.
“……읏!”
리리가 소리를 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녀석이 실수할 리 없으니까. 내 생각대로 리리는 가벼운 신음을 끝으로 안정을 되찾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눈보라 안에 도착했다. 태풍의 눈처럼 안쪽에는 바람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이전의 거무스름한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확실히 안전을 확인한 뒤 우리는 망토를 벗어던졌다. 나는 바로 리리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쳤어?”
“여기, 조금 긁혔어.”
돌파 도중 기생체의 가죽과 고글 사이에 약간 빈틈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미세하게 긁힌 상처가 붉게 부어오르고 피가 한 방울 살짝 맺혔다. 다행히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뱀파이어의 피부는 쉽게 다치지만 비인간적인 속도로 재생되니까. 처음 리리를 만났을 때 만신창이였던 녀석이 일주일 만에 본래 모습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잠시 떠올려 봤다.
최종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가장 처음 보인 건 검은 석재로 만들어진 얇은 두 개의 기둥이었다. 그 위에는 잘 다듬어진 수정 조각들이 얹어져 있었는데.
“저거, 공중에 떠 있는 거야?”
“그런 거 같네.”
자세히 바라보니 기둥 위에 얹혀 있는 게 아니라 그 위 허공에 떠 있었다. 저게 폭풍을 만드는 장치인가?
두 개의 기둥 사이에는 온전하게 보전된 입구가 하나 있었다. 지하 묘지로 향할 것 같은 그런 입구.
“이걸로 확실해졌네.”
“정복할 만한 곳이라고?”
“……아니, 그냥 보통 장소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한 건데?”
“비슷하네. 뭐.”
리리는 상처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석재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거, 대체 무슨 재질인지 모르겠어.”
“그러네.”
리리 말대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석재.
“당신도 못 알아본단 말이야?”
리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가 왜 되물었는지는 알 거 같았다. 나는 이계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바위 조각을 눈앞에 두고 감조차 못 잡기는 힘들었다.
석재에 손을 가져다 대 봤다. 생각보다 단단한 느낌에 깜짝 놀랐다. 돌이 아니라 까끌거리는 강철을 만지는 듯한 느낌. 그리고 생각보다…… 차가웠다.
너무 차가웠다.
“리리, 손대지 마.”
나는 바위에 닿으려는 리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리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내가 이 석재에서 뭔가를 느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심각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왜?”
나는 대답을 보류하고 황금 지침을 꺼내 노란색 보석을 꺼내 땅에 놓았다. 곧이어 발현되는 세 개의 시약병 보관대.
『연금술사의 시약병』
첫 번째 병에는 은하의 눈물, 두 번째 병에는 선악과의 악마. 그리고 세 번째 병에는 지구에서 담아 온 태양빛이 담겨 있었다.
나는 세 번째 병을 꺼내서 뚜껑을 연 뒤 조심스럽게 검은 석재에 흘려보냈다.
치이이익—
마치 금속에 강산이 닿은 것처럼 연기가 난다. 석재가 녹으며 동시에 흘러내리던 태양빛이 격렬한 반응을 내며 사라졌다.
나는 그 반응을 보며 이런저런 가정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연금술사가 일지에 적은 말 중 하나를 떠올렸다.
「두 개의 상반된 물질이 접촉하면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건 당연하다. 강철과 강산이 만났을 때의 반응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많은 사람들이 강산이 강철을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반만 맞는 말이다.
강산은 강철을 녹이지만, 강산 역시 그와 동시에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린다. 강철이 강산을 파괴하며, 강철 역시 강산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처럼 격렬한 반응을 이루는 두 물질 중 우위에 있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것뿐. 세상의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이치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 리리 역시 답에 도달한 듯했다.
“석재가…… 태양을 거부해.”
“그렇지. 그리고 아마 우리도 거부할 거야. 만졌을 때 느꼈어.”
태양과 그 자손을 거부하는 석재.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태양이란 모든 낮을 지배하는 존재다.
태양빛을 거부하는 재질이라면 어떻게 그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말이 안 되잖아?
태양을 거부하는데도 이제까지 남아 있는 석재.
그리고 이렇게 뻔한 곳에 위치하는데도 주신 교회에서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비프로스트.
“…….”
답이 나오는 거 같은데?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확증편향은 간혹 정답을 놓치게 만드는 실수의 원인이니까.
나는 유적의 입구 앞에 선 뒤 외었다.
“바크vakk.”
쾅 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석재 문이 열렸다. 이건 귀환 후에 OWIC을 위협하려고 딱 한 번 쓰고 말았던 언어. 문을 여는 언어다. 실제로 내가 귀환하기 전의 사람들은 맨손으로는 열 수 없는 문을 만든 뒤 이 언어로 문을 개방하고는 했다.
“들어가자.”
리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조용히 심호흡을 하다가 말했다.
“모스mohs.”
“……오.”
허공에 작은 불꽃이 생긴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리리가 만들어 낸 불꽃은 먼 거리에서 보는 반딧불이처럼 깜빡였다. 리리는 뚱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워낙 표정 변화가 없는 녀석이었지만 민망해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크흠, 아직 잘 안 되네.”
“이 정도도 대단한데?”
“당신은 이런 걸 너무 당연하게 하잖아.”
리리는 은근 이런 부분에서 호승심이 있다. 특히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리리가 내게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객관적으로 봐도 리리는 똑똑하니까. 솔직히 개인적으론 나보다 똑똑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웃고는 룬을 외었다. 리리가 들을 수 있도록 조금 더 발음에 신경 쓰면서.
“모스mohs.”
리리는 내 발음을 다시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지.
우리는 잠시 입구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저 밑으로 내려가는 기나긴 터널형 계단. 이상하게 허공이 빛을 흡수하는 듯 모스의 불빛은 충분하게 이곳을 밝혀 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리리에게 방독면을 꺼내 준 뒤 나도 장착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제까지 고대 유적을 들어가며 방독면을 쓴 적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대 유적은 적대적이지 않았으니까.”
“당신이 말했잖아. 황금 시대의 유적은 어쨌거나 사람이 쓰던 건물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쓰던 건물이라면 애초에 사람한테 적대적일 리가 없어.”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아무래도…….
“리리. 멈춰.”
리리는 내 말을 듣자마자 멈췄다. 우리는 어느새 통로형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서 있었다.
그렇게 만난 공간은 작은 강당 정도 되는 크기의 방이었다. 꽤 많이 내려왔는지 천장은 높았고, 우리가 서 있는 곳의 건너편 벽 중앙에는 다음 방으로 이동하는 듯한 입구가 보였다. 친절하게도 여기에서 저기까지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기까지 했고.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거 절벽이야?”
이 입구부터 반대편 출구까지 이어지는 복도.
그곳을 제외한 모든 바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복도는 방을 가로지르는 돌다리였고, 양쪽으로는 끝도 모르고 떨어져 있던 낭떠러지였던 거다.
누가 봐도 침입자에게 적대적인 환경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썼던 물건이니 사람에게 위협적일 리 없다’라는 논리가 완전히 틀린 상황.
이걸로 내 모든 추측이 확실해졌다.
“이건 황금 왕국의 유적이 아니야.”
“그렇다면…….”
나는 안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 뒀던 금속 거울을 꺼내 들었다. 뒷면에는 검은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양각이 새겨져 있고, 전면은 금속이 잘 닦인 거울 형태의 원판이었다.
『영웅 여정의 지도』
사제가 이 물건을 건네줬을 때를 떠올려 봤다.
‘이 물건은 검은 태양 숭배라는 고대 단체의 유물이라고 합니다.”
검은 태양 숭배.
검은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는 감지되지 않았던 비프로스트는, 직설적으로 해석하자면 검은 태양이 뜨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태양빛과 닿으면 격렬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건축 소재. 이건 태양이 뜰 시간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유적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던 것.
리리와 나는 고개를 들어 전방 문 위쪽에 그려져 있는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 문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들 뒤로는 무너진 황금의 왕국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숭배하고 있었다.
“……검은 태양이야.”
무너져 버린 황금의 왕국을 등 뒤에 두고 검은 태양을 숭배하는 집단.
검은 태양 숭배.
“여기는 검은 태양 숭배의 유적이야.”
과거 황금의 왕국과는 조금 다른 역사를 밟았던 단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리 중간중간에 유격이 존재했다. 유격은 총 세 개. 같은 간격으로 위치해 있다.
좌우를 바라보았다. 모스mohs의 불빛을 최대한 밝혀도 벽의 모습이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낼 수 있는 빛은 이게 끝이 아니다.
“루디나ludina.”
번쩍 하며 카메라 플래시처럼 섬광이 찍힌다. 제어 룬까지 사용하면 주변을 관측할 정신이 없으니 이 순간의 번쩍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순간적으로 주변의 잔상이 사진처럼 망막 위에 남았다. 눈을 감고 사진을 감상하는 상상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벽에는 무언가를 수납할 것 같은 거대한 홈이 파여 있었다. 그리고 그 홈의 간격은…… 다리의 간격과 똑같았다.
리리는 조용히 내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챙겨 다니는 유리구슬 하나를 꺼내어 다리 위로 굴리듯 던졌다. 그러자.
후우우웅—
좌측 벽에서 무언가 날아와 다리를 가로질렀다.
그것은 정확하게 다리 중간에 있는 유격을 통과하여 반대편 벽까지 간 뒤 다시 사라졌다. 순간이었지만 정확히 볼 수 있었다.
그건 천장을 축으로 휘둘러지는 거대한 도끼였다. 스치기만 해도 몸이 박살 나기에 충분할 정도로 무겁고 흉물스러운 도끼.
“함정…….”
“황금 유적처럼 좋게좋게 넘어가 주진 않는다는 거지.”
“…….”
나는 전방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리리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리리. 생각해 봐. 이 정도 함정이 있어. 그렇다면…….”
나는 다음 통로 너머의 어둠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끝에 대체 뭘 숨겨 놨길래 이러는 걸까?”
“……글쎄.”
“뭐가 되었든, 그건 멋진 거겠지.”
“당신 웃고 있는 거야?”
“내가?”
리리의 시선은 내 얼굴에서 정수리 위쪽을 향했다. 그 동공이 붉게 빛나는 걸 보니 내가 못 보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이럴 때도 상을 발현하는구나.”
“무슨 말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리리는 허탈한 듯 미소를 지었다.
“미치긴 했구나 싶어서.”
나는 왜 그러냐고 물을 정신도 없었다. 바로 황금 지침에서 녹색 보석을 꺼냈다.
『방랑자의 활』
“방법은 생각해 뒀어?”
“이판사판이지.”
밧줄 화살을 순식간에 세 발 발사해 단단하게 고정한 뒤, 내 쪽으로 늘어진 밧줄을 돌다리에 몇 번이나 감아 단단히 매듭지었다.
그리고 구슬을 던졌다.
후우우웅—!
날아오던 도끼의 자루가 밧줄에 걸리더니, 큰 진동과 기계가 부서지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밧줄에 엉망으로 엉킨 도끼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뭘 숨겨 뒀는지는 몰라도 이 정도로 나를 막을 생각을 하다니. 물러 터졌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