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ep53. 탐험가 연맹 (1)
나는 두 동강 난 악마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악마를 상대할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단 말이지.
옛날 조난 생활을 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이런 놈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놈들이 악마인 줄도 모르고 있었지만.
“확실히 죽지 않는 놈들이 있었어.”
나는 물론 당시에 녀석들과 싸우기보다는 피해 다니는 걸 선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었고, 죽지 않은 놈들과 맞서 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해 봤자 괜히 체력만 소모하고 위험만 부담하게 될 뿐.
천공의 기사가 건네준 검을 내려다보며 느꼈다. 확실히 이런 걸 휘두를 때는 기술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검술 같은 것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악마 놈들을 만날 일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었다.
“배워야 하나?”
리리한테 물어보면 알려 주긴 할 거다. 당장 활을 제대로 쏘는 방법도 리리에게 배웠으니까. 지금의 내 궁술은 그렇게 정확도가 높진 않지만 확실히 쓸 만해진 상황이고, 그렇게 된 건 순전히 리리 덕분이었다.
“……알아서 되겠지.”
하지만 결론적으론 이 생각으로 끝났다.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봐도 늦지 않으니까.
그제야 내 신경은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로 향했다.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은 모습인데, 입은 옷은 평범한 주민이 아니라 탐험을 고려한 복장이었다.
……그런데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거야? 불안하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은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흙투성이가 된 리리를 바라보며 우선 물었다.
“안 다쳤지?”
“응. 별거 아니야.”
리리는 몸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엔 처음 보는 이 아이에게 물었다.
“그쪽은?”
“아, 저요? 네. 덕분에…….”
“다행이야. 그럼 물어볼 게 있는데.”
북쪽을 바라보았다. 숲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방향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지형이 아니니까.
“제국 본성으로 가는 길인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길을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네? 본성에 가 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이 근방 분이 아니신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
역시?
아이의 눈이 다시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온 영웅이야. 제국을 위기에서 지켜 준다는 그…….”
리리가 조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무엇이실까? 구국 영웅?”
“…….”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애가 거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예전 최초의 전쟁터에서 나한테 신령 어쩌구 했던 기억이 떠올라 불안해졌다.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겠지.
“본성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줄 수 있어? 거기에서 볼 사람이 있어서.”
“황제는 없어요. 황좌는 계속해서 공석이었으니.”
“……나 그렇게 높은 사람 아니야. 어쨌든, 본성 방향 좀 알려 줘.”
아이는 그제야 몸을 일으킨 뒤 정확히 북쪽을 가리켰다.
“길은 중간에 끊기지 않아요. 이대로 며칠 동안 쭉 가면 본성에 도달할 수 있어요. 말을 타고 계시니 한나절에서 이틀 정도만 이동하면 도착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말을 줄이고 떠나려다가 잠깐 멈춰 섰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물어볼 수 있는 건 다 물어보는 게 좋겠지.
“이 악마들이 어디에서 나온 거야? 원래 근방에는 악마가 많아?”
“아뇨. 원래 제국 주변은 주신교의 축복이 내려진 곳이라 악마가 거의 등장할 수 없어요. 무덤지기들도 제대로 활동하니까…… 검은 태양이 떠오르고 이렇게 되었어요.”
“너는 탐험 중인 거야?”
“네. 불꽃의 대장벽 조사 의뢰를 받았거든요.”
“제대로 준비하고 나서 출발해. 만약에 내가 구해 주지 않았다면 분명 죽었잖아?”
“……그렇죠.”
“이런 행운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기대하면 안 돼.”
아이는 내 말을 귀에 새길 듯 경청했다.
“탐험은 운이 아니야. 준비하면, 준비한 만큼 대처할 수 있어. 위험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활동이지만, 그건 위험에 더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지 악으로 깡으로 모든 걸 뚫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알겠지?”
“……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질문에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근처 마을로 복귀해서 조합원들을 기다릴게요. 제대로 준비한 다음 출발할게요.”
“좋아. 지금 출발해.”
아이는 땅에 떨어졌던 가방을 메더니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님!”
“…….”
얘가 날 뭘로 착각하고 있는지 이제 슬슬 알 것 같은데. 아이는 고개를 들더니 다시 물었다.
“혹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너하고 내가 운이 좋으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꾸벅 절을 한 뒤 서쪽으로 출발했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역시 여린 사람이야.”
리리를 바라보니 웃고 있었다. 어느새 이런 표정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녀석.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왜 저 애를 지켜보고 있는 거야?”
“……급하게 움직일 거 없으니까?”
리리는 방긋 웃더니 렐릭시나의 뒷자석에 다시 올라탔다.
“걱정하지 마. 안전할 거야. 악마들은 한 곳에서 그렇게 자주 발생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저래 보여도 모험가조합 소속 같은데, 기본은 할걸.”
“……가자.”
나는 그저 고삐를 잡고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향했다.
* * *
나무 군집에서 벗어나 평탄한 영역에 다다르고, 그렇게 반나절 정도 북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더 이상 방향이 옳은가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
“제국이야.”
나는 순수하게 멋진 풍경을 보는 감상으로 놀라고 있었지만, 리리는 조금 더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과거 대륙을 지배했던 황금의 계승국. 내 아버지가 나 태어나기도 전에 충성을 바친 곳이 저기야.”
솔라.
제국의 이름이자 동시에 그 수도의 이름이기도 한 곳의 풍경은 가까운 곳에서 보니 훨씬 대단했다.
성벽도, 그보다 높이 올라온 성도 광택이 나는 희끄무레한 빛이었다. 이계의 바위는 전반적으로 노란빛을 띠는데, 저곳은 확실히 달랐다.
“산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 거야?”
리리의 말대로였다. 성은 성벽에 가려져 일부만 보였지만 그 특색을 여실히 알아볼 수 있었는데, 무언가를 쌓아 올린 건축물이 아니라 산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성만 그런 게 아니라, 성벽까지도. 통째로 무언가를 깎아 만들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빠르게 달렸다. 각자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멀리서 보였다.
성벽 밖에도 이런저런 오두막들과 풍차, 목재소와 크고 작은 밭들이 보였다. 계획적으로, 대규모로 진행되는 지구의 농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이 자체로도 매력이 있었다.
그 사이를 달려나가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항상 자연 한가운데에서 주로 활동하던 나고 그걸 즐기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좋단 말이지.
제국의 경비병에게 통행증을 제시했다. 그들은 졸린 눈으로 통행증을 확인하더니 들어가라 허락했다. 제국이라길래 뭔가 거창한 절차가 있을 줄 알았는데 꽤 주먹구구식이구만.
안쪽의 풍경은 고대 로마의 도시를 상상했을 때와 흡사했다. 사람들의 옷차림만 조금 달랐을 뿐이었지만.
시설은 훌륭했지만 인구는 적어 보였고, 모든 건물과 시설이 다 사용되지 않고 적지 않게 방치되어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도시는 제국의 사람들이 지은 게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남겨진 문명에 사람들이 얹혀사는 느낌에 가까웠다.
“여기 역시 황금의 유적이었던 거네.”
“이게 풍화의 시대야. 우리는 황금의 시대가 만들어 준 세상에 얹혀사는 사람들이니까.”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지키던 보초는 통행증을 보자마자 바로 통과시켜 줬다. 이 통행증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반 시민들의 통행증은 아닌 모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 한 일은 상인 길드 위치를 묻는 것이었다. 엘리엇이 분명 그랬다. 상인 길드를 찾아가 ‘붉은 장미의 키는 크지 않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뭔가 비밀 결사인가?
그랬는데, 처음부터 상황은 예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상인 길드요? 상인이 길드가 어디 있어요?”
“그런 거 없는디…… 외부인이신가? 자, 그런 거 말고 내가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 주머니는 두둑하신가?”
뭐지?
나는 그 보따리상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다시 대로로 나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렐릭시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점점 더 나한테서 멀어지기만 했다. 그리고 녀석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크르륵…….”
“어허! 고기 아니야!”
“뭐……?”
리리는 가만히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내게 물었다.
“상인 길드라는 거, 어떤 비밀 결사의 암호명 같은 게 아닐까?”
“암호명?”
“엘리엇 그 사람도 평범한 사람은 아닌 거 같았어. 생각해 보면 당신 세상의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는 사람이 평범할 리가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는 굉장히 단순했다.
“엘리엇은 우리가 이렇게 일찍 도착할 거라고 생각 못 했을 거야. 아마 본인이 먼저 도착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맞이할 생각이었겠지.”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리리는 난처해졌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당신…… 돈 있어?”
난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돈이야 벌면 되지. 대충 한 달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니 문제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와서 턱 하고 부딪혔다.
“어이구,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지나가는 남자.
“…….”
누가 봐도 연기 톤이었다.
“저 남자. 당신 주머니에 손을 넣었어!”
리리가 따라가려 하지만 내가 제지했다.
“왜 그래?”
“주머니에서 뭘 꺼내 간 게 아니야.”
내가 그런 거에 당할 정도로 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가만히 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리리는 내 손에 들려 있는 걸 보고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남자의 뒷모습과 내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게 다 뭐야?”
“저 남자가 넣고 갔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 뒤, 천천히 쪽지를 펼쳤다.
「의뢰: 보라색 옷을 입은 오컬트 신도의 정보 추적.」
「각지에 보라색 옷을 입은 자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소문이 돔. 그 소문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는 중.
우리가 조사한 결과 그들은 어떤 단체의 소속이고, 아홉 번째 신 ‘검은 태양’과의 연관성이 포착됨.
종류불문, 보라색 옷을 입은 오컬트 집단의 정보를 입수해야 함. 보상은 입수한 정보의 질에 따라 결정.
조건 완수 시 13구역 ‘물에 빠진 시궁쥐 주점’으로 올 것.
추신 – 정확도가 낮은 루머들을 부록으로 첨부했으니 임무 중 참고 바람.
추신2 – 그 천 조각은 오컬트 집단 중 한 명이 흘리고 간 옷조각임. 현재 유일한 증거.
추신3 – 연맹의 전통에 따라 의뢰에 대한 의무는 없음. 결정은 개인의 자유.」
나는 주머니에 같이 들어 있었던 짙은 보라색의 천 조각을 바라보았다. 찢겨 있고, 흙먼지와 핏자국이 묻어 있는 옷조각.
“……이게 대체 뭐야?”
나는 내가 쓰고 있는 모자를 벗어 보았다.
검은 태양 유적 안에서 만난 탐험가의 시체가 쓰고 있었던 모자. 아주 잘 만들어진 페도라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쪽지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더스 탐험가 연맹의 잃어버린 영광을 위하여.」
그곳 마지막에 찍혀 있는 도장은 옆에서 본 페도라의 모양이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모자와 완전히 같은 모양.
리리는 그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 엘리엇이 관련된 그 비밀 집단이 아닐까? 아니, 비밀 집단이 하나뿐이라는 법은 없어.”
리리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정리할 때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거, 좀 위험한 일에 관여된 거 아닐까? 우선 오해를 풀어야…….”
그렇게 말하던 리리는 문뜩 나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그제야 내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설마 할 생각이야?”
“비밀 결사? 비밀 임무? 이걸 참겠다고?”
“아니, 뭐 하는 건 그렇다 쳐도 고작 이 정도 증거 가지고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천 조각을 얼굴에 가까이 댔다.
“뭐 하는 거…….”
“염료 색이 바래 있는 건 습기의 흔적이야. 최근에 갑각류와 물고기를 주로 먹었네. 그럼 강가나 호수 주변일 거고, 오래된 먼지와 신선한 흙이 동시에 묻어 있으니 습한 곳 지하에서 오래 머문 사람이 최근에 지상으로 올라온 거야. 근처에 강이나 호수를 낀 습지를 찾아보면 돼.”
“……당신 개야?”
“그거 우리 세상에선 욕이야.”
“그런 의미로 한 거 아닌 거 잘 알잖아.”
리리는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먼저 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뭐 해? 빨리 가자.”
이제는 내게 익숙해진 리리의 모습에 문뜩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