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ep53. 탐험가 연맹 (2)
우선 맨 처음 할 일은 이 근방의 지형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본성이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았지만, 성안에 사는 사람 만큼은 아니어도 밖에 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지구 식으로 표현하자면 1차 산업 종사자들을 대체로 성벽 밖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지.
“도시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훨씬 더 정보를 줄 거 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경계심이 좀 있는 것 같아.”
리리의 말대로였다. 도시의 사람들은 내가 외부인이라는 걸 바로 눈치챘는지 말을 걸어도 우선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도 전에 안 좋은 소문이 돌 수도 있다.
“여기에 하루 이틀 머물 거 아니면 처음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게 만들면 안 돼.”
리리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역시 집을 벗어난 뒤 여기저기 떠돌아 본 경험이 있었기에 금방 이해했다.
“당신이 그런 것도 알고 있을 줄 몰랐는데. 거의 숲에서만 살아간 거 아니었어?”
“예전에 우리 세계에서 탐험할 때 느낀 점이야. 폐쇄적인 곳일수록 외부인이 나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 사람들이 내게 어떤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안 겪어도 되는 말썽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밑져야 본전.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우리는 그래서 도시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렐릭시나였기에 성 외곽에 데려간 뒤 어디 숨어 있으라고 명령했다.
“내가 부르면 그때 다시 와 줘. 최대한 사람들 눈에 띄지 말구.”
“크릉—.”
“너 숨는 데에 재주 없는 거 알아. 막 절대 들키면 안 된다 그 정도는 아냐. 그냥 적당히 몸 숨기고 있으면 돼.”
“……당신 렐릭시나랑 아예 대화가 가능한 거야?”
“몰라?”
도시 뒤편, 그러니까 북쪽으로 렐릭시나가 몸을 숨긴 뒤 우리는 저 멀리 남쪽으로 펼쳐져 있는 밭으로 이동했다. 확실히 성벽 밖의 사람들은 외부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웠다.
“근방에 습지요?”
“호수나 강이 있는 곳도요. 아시는 대로 다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허어…… 저는 이 근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어서…….”
땅에서 이상한 뿌리 식물의 흙을 걷어 내던 농부가 말했다. 나는 뿌리와 줄기의 경계가 땅 위로 높이 드러나 있는 식물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리리도 처음 목격한 듯 조금 경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뭐야?”
리리는 호기심보단 혐오에 가까웠다. 그럴 법한 게, 대부분의 뿌리가 흙 속에 묻혀 있으면서도 꿈틀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징그러.”
“이거요? 스콥이 뭔지 몰라요? 이게 얼마나 맛이 좋은데요!”
농부가 갑자기 그 식물을 푹 뽑아냈다. 유연한 뿌리가 여전히 땅속에 박힌 채로 길게 늘어났는데, 지상으로 완전히 드러난 뿌리들은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리리는 완전 벌레를 본 차소희 표정처럼 돼서 몸을 움츠리고 뒷걸음질 치기까지 했다.
물론 나는 저렇게 보여 주니 저 식물이 뭔지 깨달았다.
“오…… 이 식물이 이렇게 작은 건 처음 보는데요.”
“모험가님은 이게 뭔지 아셔요?”
“원래는 나무보다 크게 자라서 땅속 동물들 잡아먹잖아요. 파밍 웜 천적일 텐데 얘가.”
“맞아요! 그래서 세 달에 한 번씩 뽑아서 뿌리를 다듬고 다시 심어요. 그리고 그 뿌리를 먹는 거지.”
그런 식용법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계는 먹을 걸 구할 줄만 알면 생각보다 굶을 일이 없었고, 이 식물은 내 입장에서는 너무 위험했으니까. 나는 이 식물의 습성을 역이용해서 덫 용도로 썼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긴 했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모른다는 거지? 나는 우선 의뢰에 집중하기 위해서 바로 인사를 건넨 뒤 다음 사람을 찾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잠시 딴 얘기로 빠졌던 이 농부가 말을 이었다.
“내 거 작물 사 가려고 들르는 상인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얘기 들어 보면 저어쪽에 습지가 하나 있다고는 하던데요?”
농부가 가리킨 곳은 북동쪽이었다. 저 멀리 작은 산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아래쪽으로 희미하게 시작되는 숲이 보였다.
“아 그래요?”
“그런데 저쪽 요즘에 분위기 이상해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들어갔던 사람들도 실종된다고 하고,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밤중에 몰래 들락날락하면서 거기에서 있던 일을 비밀로 부친다고도 하고…… 요즘 우리네들은 아예 발길도 안 주려고 하는 곳인데.”
리리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우리 둘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흉흉한 소문이 도는 습지? 오히려 좋지. 내가 찾던 곳이다. 기다릴 필요 없이 자리에서 떠나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젊은 양반이 씩씩해서 좋네. 한창 바쁠 테니까 돈 필요하면 와서 밭일이라도 도와요. 많이는 못 쳐 주지만 저녁값은 벌어 갈 수 있을 거야.”
“좋아요.”
북동쪽으로 향했다. 렐릭시나가 없어서 꽤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우리는 농부가 말하는 습지가 뭔지 잘 알 수 있었다.
매번 새로운 지역에 들어간 다음 처음 하는 일은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시각은 장거리를 인식하는 데에 훌륭한 감각이다. 하지만 그건 장애물 몇 개에 쉽게 제한된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정보는 장애물을 쉽게 극복하고, 이 정보를 인지하고 해석하는 감각은 후각과 촉각, 그리고 청각이다.
공기에 섞인 습기, 그리고 각종 냄새와 소리들. 식물과 바위로 가득 찬 곳에서는 시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게 해 준다.
리리 역시 동공을 붉게 물들여 주변을 바라보았다. 혹시 모를 거대한 영혼이 존재할 경우에는 리리가 먼저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존재는 많지 않지만, 우리는 기생체부터 거인까지 거대한 영혼을 가진 것들을 많이 만난 적 있다.
“기생체는 없고…… 숲은 아주 고요해. 우리가 익숙한가 봐.”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녀석이니까.”
아주 오랜 시간 도시와 더불어 살던 숲은 사람을 거부하지 않았다. 영혼 탐색이 끝난 리리는 잠시 기다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
“아마도 도시 북쪽으로 이어지는 큰 강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강의 수원지 중 하나가 여기야.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있고, 그 폭포 때문에 지반이 물렁해지고 깎여서 거대한 습지가 만들어진 모양이야.”
“산이라면…….”
“아마도 보라색 옷을 입은 녀석이 숨어 있을 법한 동굴이 있겠지.”
나는 다시 주머니에서 천 조각과 쪽지를 꺼내 읽었다.
쪽지는 총 두 개였는데, 두 번째가 바로 이런저런 루머가 적혀 있는 부록이었다.
「— 보라색 옷을 입은 자들은 조직적으로 행동한다는 소문이 있음 (검증 필요)
— 검은 태양이 뜨고 나서부터 등장하기 시작. (신뢰할 수 있는 정보)
— 사람이 아닌 이형의 존재라는 소문. (검증 필요)
— 사람의 인지능력 밖의 움직임을 보인다고 함. (신뢰할 수 있는 정보)
— 수백 년 전 검은 태양이 떠올랐을 때 그런 이형의 존재들이 제국 여기저기를 휩쓴 재앙이 돌았다는 괴담. (검증 필요)
— 여자와 아이를 납치해서 인신공양 한다는 소문 (신뢰할 수 없음)
▶추신 – 공포 분위기로 인해 헛소문이 퍼지는 건 흔한 일이니 위 정보는 단정 짓지 말고 참고만 바람.」
추신에 적힌 내용은 나도 공감하는 바다. 구설수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보통 대중의 공포 심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여러 번 본 적 있었지.
우리는 조심스럽게 숲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선 난 그 전에 숲을 조금 달랬다.
“실례할게.”
숲은 우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배불리 먹고 잠든 사자와 같은 게으른 온화함마저 느껴졌다.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습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렇게 습지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강을 만날 수 있었다. 습지다운 이름답게 강 중간중간에 갈대 같은 식물 군집들이 포진해 있었다.
“……생각보다 넓은데.”
리리는 난처한 듯 이야기했지만, 내가 매번 강조하듯 마음 급하게 움직일 필요 없다. 마음가짐에 따라 시간은 의외로 내 편인 경우가 많다.
“탐-탓사Tham-tatha.”
주변 미물들의 감각을 빌리는 언어. 물론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수천의 정보가 뒤섞여서 들어와 생각만큼의 쓸모는 없다.
하지만 그 자체로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곳에 사는 생물이 뭘 느끼고 뭘 보는지, 그 단편만 알더라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 감각을 하나하나 더듬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
“왜 그래?”
“물에 사는 동물들이 한 곳에 몰려 있어. 물속은 아니고, 물가 근처 육지인데…….”
동물은 단순하다. 그들이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한 군데 몰려 있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가자.”
나는 바로 그 감각이 느껴진 방향으로 향했다. 발 달린 물고기나 작은 새 같은 것들이 물가에 모여 있는 걸 발견했고, 나는 그 이유를 빠르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갑각류의 껍질과 물고기의 뼈 등이 쌓여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다가가서 그것들을 뒤적였다. 더럽게 느낄 수도 있었는데 리리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말했다.
“썩지 않은 게 있는데.”
“이렇게 쌓여 있으면 보통 맨 위에 있는 건 말라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잖아.”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사실은 이거 하나다.
“아직 이곳에서 떠나지 않았어.”
리리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그저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근처에서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떠나기도,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무수한 발자국. 물가라면 저런 발자국은 빠르게 사라질 텐데, 축축한 진흙 위에 찍힌 발자국 중 몇 개는 여전히 선명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자 공기가 웅웅 하고 울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방향에는 강을 따라 이어진 절벽이 있었다. 아마 저곳 어딘가에 있을 동굴에서 나오는 소리일 거다.
“찾았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번쩍이는 모습을 보았다. 머리보다 몸이 더 먼저 움직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바로 허리춤에 묶어 뒀던 천잠사의 망토를 일제히 펼쳐 몸을 가렸다.
퍼어엉—!
무언가 발밑에 떨어지더니 터지며 하얀 연기를 뿜어냈다. 살짝 달콤한 냄새가 풍겨 왔다. 환각 작용을 하는 가스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바로 룬 언어를 외었다.
“모스mohs. 데 마누de manu.”
공기 중에 생기는 다섯 개의 불꽃 덩어리. 동시에 그 사이사이를 타고 격한 바람이 불어 가스를 날려 버렸다.
바닥과 공기 중에 생긴 불꽃은 그 흐름을 가속하고 남은 가스의 성질을 변화시켰다.
“후후후…….”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풀 사이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딱 맞는 검은 옷. 그 위에 장식용으로 덧댄 보라색 천 부분들.
후드를 뒤집어쓴 모습. 금색 실로 장식된 옷은 딱 봐도 수상한 집단의 제복이란 사실을 알려 줬다.
딱 봐도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는데, 눈을 가리고 있어서 감정을 정확히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재수 없게 비릿한 미소만 입가에 스미고 있었을 뿐이었다.
“……대화로 풀려고 했는데, 먼저 공격했다 이거지?”
나도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서 진지한 건 리리뿐이었다. 리리는 검을 들고 몸을 낮추면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감히 어둠 속에 스며든 검은 태양의 숭배자의 뒤를 쫓다니…… 검은 불꽃에 그 영혼이 불탈 때가 되어서야 후회할 텐가.”
“……?”
보라색 옷을 입은 녀석이 갑자기 헛소리를 시작했다. 다가오며 팔을 양쪽으로 여유롭게 벌리는 자세는 덤이었다.
“내 어둠의 칼날 끝이 검은 태양과 함께 빛나고 배덕자들에게 심판을 내린다. 우리는 어둠 속에 숨어서 저 하늘의 뜻을 섬기니…… 네놈의 영혼의 비명이 벌써 들리는 듯하군.”
“너 그러다가 맞고 후회할래? 아니면 우리 지성인답게 대화로 해결할래?”
“……너희 미개한 것들이 위대한 어둠의 의미를 어떻게 아는가?”
녀석이 움직임을 멈췄다. 여유로운 척하지만 내 눈에 움찔하는 게 다 보였다.
저거 포기 안 하네.
“그렇다면 보여 주겠다. 내 오른손에 봉인된 신의 힘을…….”
그 순간, 녀석의 오른손 손등이 빛났다. 나는 처음에 지배자의 문신인 줄 알고 움찔했으나, 자세히 보니 그건 내가 처음 보는 카테고리의 룬 언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더니, 녀석의 몸에서 검은 전기가 파지직 하고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여러 개로 분리되는 녀석.
분신술?
“……오.”
저 룬이 분신술이라는 거지?
“큭큭큭…….”
녀석은 내가 이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칠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 같으면 저 능력을 이용해서 바로 공격했을 텐데, 그저 여유로운 태도를 일관하며 지켜보고 있기만 했으니.
물론 놀라긴 했다.
근데, 오히려 기쁨의 놀라움에 가까웠지.
새로운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우선 일부터 끝내야 한다.
“어떠냐. 이게 바로 내 오른손에 봉인된 신의 힘으기으갸갸갸갸갸갹—!”
주머니에서 동그란 공 형태의 기계장치를 던졌다. 그것도 피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놈이었다.
물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기계장치 공은 날아가며 그물이 되어 펼쳐지고, 녀석은 그물에 흐르는 전기에 팔다리를 휘저으며 침을 질질 흘렸다.
“……예전에 파도치는 사막에서 가져왔던 거구나?”
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뒤트는 그…… 오른손의 흑염룡 양반을 그저 내려다보았다.
금방 풀어 줄 생각은 없었다. 혼 좀 나야지.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