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ep53. 탐험가 연맹 (3)
“음…….”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에 본 이 숭배자가 쓴 룬은 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모든 룬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모르는 게 더 많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룬 중에서는 아예 그 ‘분류’가 다른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현재의 이계 사람들이 강령술이라고 생각하는 ‘탈레talle’ 계열이 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탈레는 그냥 탈레talle 그 자체로는 내게 감응하는 연혼을 현세에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 매개로 사자의 지팡이가 필요하다.
탈레스반tallethban은 영혼들이 산다는 명계의 기운을 방출하는 룬 언어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단순한 생물들을 뒷걸음치게 하거나 움찔거리게 만드는 간단한 효과가 있다.
탈레나마스tallenamath는 데스 나이트의 부술 수 없는 갑주에 금이 가게 만든다. 내 예상인데, 유령과 같은 명계의 존재들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는 능력이겠지.
“으양아아아아아악!”
이처럼, 하나의 대표 단어에서 파생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룬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런 형태의 룬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방금 전 분신술을 만드는 이 수상한 녀석의 룬 역시 파생 언어였다. 얼굴을 보니까 인간이고,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의 룬을 아무렇지 않게 구사한 거다.
게다가 시동어도 외지 않았잖아? 그저 손등에 그려져 있는 룬이 알아서 작동한 거다. 이것도 생각해 볼 점이다. 시동어가 없이 룬 문자가 작동하는 건 황금의 유물인 기록관의 반지를 사용한 게 아니라면 불가능하니까.
“저기…….”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리리는 조금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찌르며 다른 손으로 내 앞을 가리켰다.
“저거 죽일 생각이었어?”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전기가 흐르는 그물에 둘러싸인 채 몸을 뒤트는 오른손 흑염룡을 바라보았다.
“……아.”
“아는 무슨 당신 또 딴생각 했지! 저러다 죽어!”
“아냐 안 죽어. 내가 맞아봤는데 살만 해…… 어?”
갑자기 축 늘어지는 흑염룡.
…… 저러면 안 되는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녀석을 둘러메고 흔적을 쫓았다. 그 끝에는 내 예상대로 동굴이 하나 있었고, 그곳에 녀석을 단단히 묶어 놓은 뒤 도시로 출발했다.
“13구역에 있는 술집으로 오랬지?”
“가서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리리가 의문을 표했지만 나는 우선 가보기로 했다.
주머니에 소매넣기 하는 식으로 의뢰를 전달하는 단체니까 뭐라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 * *
13구역은 리리와 내가 생각하는 도시의 풍경이 아니었다. 정문 기준 반대편에 위치했던 터라 도달하기도 꽤 시간이 걸렸고, 구역의 숫자가 높아질 수록 길도 좁아지고 더 불규칙적으로 구불거리며 이어졌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동안 구경거리도 많았다. 생각보다 큰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물건을 거래하고 있었으며, 도시의 귀족인지 외부에서 온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신분이 귀한 것 같은 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대체로 자원이 풍족하여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는 편인 이계 사람들이지만, 그래서 귀족들의 모습은 훨씬 더 사치스러웠다.
“리리도 저렇게 공주님이셨나?”
“신분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누린 것보다 통제 받은 게 더 많았어. 로얄 블러드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그래.”
특히 리리는 인도자의 사명이라는 의무감이 있는 가문이었으니 더 그랬겠지. 지금 리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가만히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얻어진 게 아닐 터였다. 모든 능력이 전부 그러하듯.
나는 바위산을 통째로 깎은 본성과 2차 성벽을 구경했고, 땅에서 지어 올린 게 아니라 원래 있는 지형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신기한 건축물들을 지켜보았다.
전반적으로 고대 유적에 그대로 얹혀 사는 느낌은 활발하고 숨겨져 있지 않은 이 도시에서 신비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발전하는 문명이 아니라 정점을 찍고 정체되어 있는 문명이더라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도착한 13구역은 거의 할렘가나 가까웠다. 사람 세 명도 간신히 통과할 것 같은 좁디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고, 여기저기에 골아 떨어진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길바닥에서 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리가 많이 안 되어 있어. 제국이라고 하길래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황제가 없잖아.”
리리의 말이 맞다. 황제가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정도라도 체제가 유지되어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보통 지도자의 자리가 공석이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튀기는 싸움을 하기 마련인데.
나는 그렇게, 어떤 골목의 막다른 길에서 푯말을 볼 수 있었다. 제국의 언어로 적혀 있지만, 리리와 영혼을 연결한 덕분에 읽을 수 잇었다.
『물에 빠진 시궁쥐』
괴상한 센스를 가진 이름이지만 가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퍽 적절한 작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골목. 게다가 검은 태양까지 떠 있는 지금 주점은 암실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천장에 아무렇게나 매달려 있는 등불이 끼익거리면서 흔들렸고, 그 아래에는 ‘축축한’ 인상을 가진 사람들 몇이 우울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침의 한적한 카페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적막함이 느껴졌다.
나는 우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로 카운터로 향했다. 오라고 해서 왔지만 뭘 해야 할지는 모르고, 괜히 수상하게 보이고 싶진 않았다.
“주문?”
펑퍼짐한 인상에 회색 수염이 드문드문 나 있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
‘리리. 돈 있어?’
‘……난 지금은 당신 세상 사람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제국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래서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길을 묻거나 사람을 찾는다면 우선 돈 없이 들어온 것도 크게 이상한 건 아닐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는데, 주점 주인이 뜬 한쪽 눈이 나를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쓰고 있는 모자를 향했다.
“……붉은 장미를 주문하겠다고? 허, 머리에 피도 안 말랐는데 먹을 줄 아는 구만.”
갑자기 너털 웃음을 지으며 뒤에서 철재 컵을 가지고 와 무언가를 따르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붉은 장미의 키는 크지 않다.」
엘리엇이 내게 알려 준 암호명이었다.
리리와 나는 서로를 힐끗 바라보았다. 살짝 난처해 하던 리리도 눈치를 챘는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잔을 받고 자리에 앉는 순간.
누군가 우리 정면에 동시에 앉았다.
남녀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딱 봐도 나에게 익숙한 복장과 장비들이었다.
“의뢰는요?”
“그 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나는 그 젊은 남녀의 머리에 쓰여져 있는 베이지색 페도라를 바라보았다.
내가 본 것과 똑같은 거다.
이 사람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 좀 했었지.
하지만 언제나 내 태도는 똑같다. 거짓말을 치거나 기회주의적으로 간 보면서 말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나는 그 연맹 소속이 아니거든요? 그냥 개인적으로 이 모자를 얻은 것뿐인데 그쪽이 우선 오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미리 말해 두는 거예요.”
연맹원 남자는 내 말을 듣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 모자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어찌 되었듯 탐험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거고, 제가 쪽지에 적었던 대로 행동했다는 건 연맹의 활동이 싫지 않다는 의미잖아요?”
뭐 틀린 말은 아닌데.
남자는 내 예상보다도 어린 것 같은 목소리로 활기차게 말했다.
“탐험가 연맹의 일원이 되는 건 그렇게 까다로운 심사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도장을 찍어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모자를 소유하고 있고, 자질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의도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연맹원입니다.”
비밀 단체라 그런지 신기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의뢰의 내용부터 확인해 볼까요? 그래야 연맹에서 보상을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보상은 결과에 따라서 다르게 주는 건가?”
연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내밀 수 있는 게 없는데?”
그제야 살짝 표정에 의문을 띄우는 연맹원.
“……의뢰를 해결하고 나서 오라고 쪽지에 적혀 있지 않았나요? 해결했다면 그 증거를 챙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흔적이나 새로 알게 된 신뢰도 높은 정보요.”
“그런 걸로 만족한다고요?”
“……?”
“따라올래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컵에 담긴 붉은 술이 아깝긴 하지만 애초에 술은 별로 안 좋아한다. 옆에서 우리 얘기를 들으면서도 부지런히 홀짝거리던 리리만 내심 아쉽다는 듯 잔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도시 밖으로 나간 뒤 습지로 출발했다. 연맹원 둘은 우선 조용히 내 뒤를 따라오면서도 의문을 숨기지 않았다.
내 뒤를 따라오던 연맹원 중 주근깨가 난 땋은머리의 여자 쪽이 내 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어디서 얻었어요? 평범한 연맹 상징은 아닌데?”
“검은 태양 유적 안에 있는 시체의 거였어요.”
“검은 태양 유적이요? 벌써 검은 태양 유적 하나를 정복한 건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감탄을 내뱉은 여성 탐험가.
“세상에, 나중에 이야기 해 주실래요! 너무 궁금해요! 아니, 어떻게 찾아낸 거예요?”
역시나 활기찬 목소리다. 이 연맹원들 자체가 다 이런 분위기인가?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습지에 도착했다. 이들은 내가 검은 태양 신도를 잡아 둔 동굴에 도착하자마자 말을 잃었다.
연맹원들은 검은 태양 신도를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 * *
탐험가 연맹의 대표적인 활동원. 올리버와 아멜리아.
둘은 이 처음 보는 탐험가가 의뢰 완수랍시고 내놓은 증거를 보고 말을 잃었다.
팔다리가 묶인 채, 입도 꼼꼼하게 막힌 채 꿈틀거리며 누워 있는 이 자가 검은 태양의 신도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너무나 위험한 행동이었다. 이 단체에 관한 소문은 전부 다 흉흉했고, 그분위기는 이들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그 소문들의 내용 자체는 거짓이더라도, 그런 분위기 자체는 거짓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소문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법칙이었다.
그렇기에 그 모든 걸 일부러 쪽지에 적어 두었다. 헛소문이라도 그런 걸 적어 둔다면, 실력 있는 탐험가라면 이게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 일인지를 알아서 깨달을 수 있었을 테니까.
이 페도라를 쓴 자라면 무릇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올리버는 생각했다. 이쪽지를 건네고 나서 얼마나 지났지?
그리고 깨달았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들의 거처를 파악하고 바로 포획을 했다고? 올리버는 강선후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아무런 상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멜리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는 올리버 보다 궁금증을 더 못 참는 성격이었다.
“……위험하지 않았나요?”
“뭐가요?”
“보라색 옷을 입은 자들이 검은 태양의 신도라면, 이들은 특별한 룬을 사용할 거예요. 그리고 그건…….”
“푸하! 너희 빛의 도피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위대한 어둠의 유산이지…… 크큭.”
그때, 입의 봉인을 푸는데에 성공한 신도가 다시 크큭대며 말했다.
강선후는 오히려 그 부분을 더욱더 궁금해졌다.
“어이, 흑염룡.”
“크큭…… 흑색의 용에 나를 비유하다니. 드디어 검은 태양의 위대함에 대해서 조금은 체감했는…….”
“나는 그냥 피라미드에 가고 싶을 뿐이야. 그, 검은 태양께서 눈물을 흘릴 때마다 보이는 피라미드 있지?”
올리버와 아멜리아, 그리고 신도 모두가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나는 거기에 가고 싶어.”
“네놈의 그 탐욕스러운 손이 피라미드에 닿을 수 있을……!”
“그냥, 보고 싶을 뿐이야.”
“…….”
어떻게 보면 그냥 거짓말을 통한 회유일 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강선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들 스스로 억지처럼 느껴졌으나, 왠지 이 남자는 진짜로 순수하게 그러고 싶을 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짧은 한마디에 그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올리버가 말했다.
“……우리 역시 황실의 인장을 찾아야 하기에, 그 피라미드를 찾아야 합니다.”
검은 태양 신도가 모든 말을 듣고 대답했다.
“그 피라미드가 그토록이나 만만하게 보이더냐. 그건 시공간의 틈새에 있고, 시공간을 조작하는 검은 태양의 유산으로만 찾을 수 있는 장소다. 너희 빛의 도피자들이 그것을 넘보는 건 터무니없는…….”
“검은 태양 유산이라는 건, 지금 네 손등에 있는 룬 언어를 말하는 건가?”
강선후가 진실에 접근했고, 신도는 살짝 움찔 했으나 다시 평정심으로 돌아왔다.
그걸 안다고 한들, 이 남자가 어쩌겠는가? 신에게 버려지고도 여전히 빛 속에서 무력하게 살아가는 도피자일 뿐인데.
“유산 중 하나지. 내 손등을 잘라가면 뭐라도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한 번 해 보아라. 내 오른손에 봉인된 어둠은 네놈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리…….”
그 순간이었다.
“밀라-토리타스milla-toritas.”
강선후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른 한 명의 강선후가 저 멀리 문에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이 동굴로 들어오던 과거의 강선후 모습을 복사라도 하는 듯.
검은 태양 신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다고 생각한 지금 이 순간마저 평점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부심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강선후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강선후는 여유롭게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대는 검은 태양의 화신이신…….”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진짜 돌아버리겠네.”
신도가 내린 결론이 매우 맘에 안 드는 듯했다. 옆에 서 있던 리리는 이 순간 웃음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