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ep53. 탐험가 연맹 (5)
내 양손 아래에서 여섯 개의 보석들이 일시에 빛을 뿜고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간다. 부피가 늘어나며 저들끼리 부딪치려고 하자 알아서 공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예전에 리리가 말했었다. 황금의 유물은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해 능동적으로 활동한다지. 이는 황금의 유물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곧이어 일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여섯 개의 유물. 활과 반지, 책, 칼과 지팡이. 그리고 연금술사의 시약병까지. 모든 유물이 책상 위에 일렬로 깔렸다.
그 뒤 테이블 건너에 있는 세 명의 탐험가 연맹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든 간에 능력을 보여달라는 엘리엇의 부탁은 이걸로 충분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실 이걸 꺼낸 이유는 다른 데에도 있었다.
황금의 유물과 왕국에 대해서, 엘리엇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만약 엘리엇이 이 유물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지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경황이 없어진다면, 알고 있는 걸 저도 모르게 더 이야기하지 않을까? 그런 계산이었다.
엘리엇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그저 테이블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깜빡이지 않는 눈이 그가 품고 있는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배자의 상을 타고났소?”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 당신에 세상의 회사는 당신이 지배자라는 이야기는 해 준 적 없소만.”
그러고 보니 OWIC은 내가 지배자의 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
내가 이제까지 한 일을 보고 어느 정도 추측은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OWIC이 가지고 있는 정보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탁자 위를 보던 엘리엇은 그 상태로 눈만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입을 열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묻고 싶어 하는 눈치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엘리엇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포식자.”
“포식자의 상이라고?”
“그렇대요. 사실 나는 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포식자의 상은 이제까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소.”
그러면서 엘리엇의 시선이 내 왼쪽 손등으로 향했다. 황금의 역사에 대해 잘 안다면 이 문신 역시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최초를 제외하고는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던 포식자가 이 시대에 등장했구나!”
엘리엇이 기뻐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혹시 예상 가는 바가 있으세요?”
“나야 모르지!”
“……그럼 지금 왜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유도 모르면 좋아할 일은 아니지 않나?”
“풍화의 시대에 명확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오!”
변화라.
엘리엇은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말을 이었다.
“변화란 정체를 깨부수는 것이지. 그게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는 물론 아무도 모르오. 하지만 어쨌거나 변화가 생긴다는 건 기나긴 정체의 시대가 끝날 거라는 이야기지 않나?”
“그게 좋은 일일까요?”
“주사위의 결과를 높이려면 다시 던지는 수밖에 없잖소. 더 작은 수가 나올지 더 큰 수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겠나!”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불확실성에 몸을 던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저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 뒤, 엘리엇은 내 생각대로 자신이 아는 걸 꺼내기 시작했다.
“당신은 인도자의 유물을 제외하고서는 대륙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유물을 다 모은 것이오. 이건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커. 처음으로 모든 유물이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한다는 거니.”
‘인도자’라는 단어에 리리가 움찔거렸다. 실제로 나는 리리에게 해당되는 황금의 유물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내가 모을 수 있는 전부라고? 이건 좀 의외인데.
“유물은 열두 개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저는 아직 여섯 개밖에 못 모았어요.”
“그중 몇 개는 황금의 왕국에 안치되어 있소. 그리고 몇 개는 위치를 알더라도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고 하지. 우리 연맹의 전성기 때 알아낸 사실들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정확히는 알 수 없소이다. 오래된 자료를 뒤져 보면 더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흠.”
나는 그 말을 듣고 황금 지침을 꺼내 들었다. 정확히 서쪽을 가리킨다. 그곳은 대사막이 있는 곳이고, 아마도 피라미드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황실의 인장이 있는 곳이지. 내 예상이지만 그 인장이 다음 황금의 유물일 것 같았다.
조금 복잡해지려고 하는 머리를 깔끔하게 비웠다. 지금 목표를 넘어선 영역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눈앞에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결하면 되니까.
그리고 애초에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나는 즐겁자고 이 일을 하는 거잖아?
그것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면 그만큼 주객이 전도되는 일도 없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엘리엇은 그런 나를 그저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하시겠소?”
“오늘은 쉬고.”
나는 리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일부터 출발 준비해요. 꽤 이것저것 건들 게 많을 것 같네.”
엘리엇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뒤에 있는 탐험가 연맹원인 올리버와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연금술 실험실 쓸 만한 데가 혹시 있을까요?”
“제국 대학에서 운영하는 실험실이 있소. 대여를 요청할 수 있을 거요.”
“부탁할게요.”
나와 리리는 다시 저택을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 있는 내 방까지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 생각에 잠겨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장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목록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고, 리리는…… 아마도 황금의 유물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거다.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유물이 있다는 말은,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리리에게 있어서 퍽 무겁게 들리는 말일 테니까.
그렇게 계단을 다 오르고 복도를 지날 때, 리리는 입을 열었다.
“아까 말이야.”
“아까?”
“응. 황금의 유물을 발현시킬 때.”
기억났다. 여섯 개의 보석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을 때지? 리리는 내 뒤에서 말을 이었다.
“내가 도와주려고 하는 걸 왜 말렸어?”
“눈치챘어?”
“응.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았어.”
나는 확실히 리리가 도와주려는 손길을 저지했다. 리리 역시 지배자의 상을 가지고 있기에 유물 발현이 가능함에도 말이다.
이건 따로 이유가 있었다.
“리리. 우리가 이 도시에서 로얄 블러드를 만난 적이 있어?”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왜 제국 본성, 제국의 중심지인데 뱀파이어 귀족을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을까?”
“…….”
리리는 그제야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은 듯했다. 제국의 영토에는 황실에 충성하는 로얄 블러드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수도에서는 단 한 번도 로얄 블러드를 만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뱀파이어인 리리를 보는 사람들의 오묘한 시선을 내심 느꼈다.
“이건 근거 없는 직감인데, 숨기는 게 좋을 것 같아. 네가 지배자의 상을 타고난 것도, 로얄 블러드인 것도.”
“응.”
리리는 짐짓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검은 태양 숭배.
먼 옛날 황금을 거부하고 검은 태양을 숭배했다는 집단.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검은 태양이 떠오를 때만 세상에 발을 들이밀 수 있었다.
그들 중 하나, 이름 모를 한 숭배자는 자신이 갇힌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목재로 이루어진 곳. 창문을 단단히 막혀 있었고 벽과 테이블에 있는 두 개의 등불만이 타들어 가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지만 먹을 만한 식사도 대접받았으며 신체에 해를 가하지도 않았다. 그저 손만 살짝 묶여 있었을 뿐.
자신을 잡아 온 것들이 죄인 취급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연기가 희미하게 방 안을 맴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의 현기증이 느껴지는 듯했지만, 어두운 곳에서 등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련히 이런 기분을 겪기 마련이었다.
왠지 차분해지는 마음.
그렇기에 조금 더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숭배자는 강선후가 밀라milla의 룬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다시 되새겼다.
검은 태양의 화신이라는 오해를 하게 될 정도로 완벽한 구현이었다.
‘밀라milla의 룬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자는 신도가 처음 해당 마법을 보여 줬을 때 분명 놀랐었다. 그 전까지는 이 룬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 하나로밖에 귀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숭배자는 그 결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이런 식으로 계속 논리를 겉돌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 결론은 이러했다.
“……내가 사용한 걸 보고 따라 한 거라고?”
이건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아니 인정 이전에 논리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결론이었다. 사용하는 걸 보고 따라 했든 손등의 룬을 보고 읽어 내었든 상관없이.
인간이 룬을 사용한다고?
검은 태양 숭배자도 아닌 자가 검은 태양의 룬을 사용한다고?
한 번 만에 보고 완벽에 가깝게 구사한다고?
그 한 장면 만에 논리가 파괴된 상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오류를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숭배자는 생각했다. 그 검은 머리가 흘러 검은 눈동자를 가렸다. 눈앞은 계속해서 몽롱해져 가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 봉인되어 있었던 흑염룡이 피어올라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룬이란 무엇인가.”
숭배자는 대답했다.
“신의 힘을 빌리는 명령어다.”
흑염룡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밀라milla란 무엇인가?”
“시간과 공간, 그곳을 넘어서 여러 차원을 지배하는 검은 태양의 힘이다.”
즉, 밀라milla란 검은 태양의 힘을 인간의 몸으로 행사하는 것.
과거, 황금과는 다른 길을 추구하던 ‘인간’들이 모여 검은 태양을 숭배했고, 검은 태양은 그들에게 보답을 내려 이 룬을 사용할 자격을 부여했다.
즉, 모든 신들에게 버려진 인간은 룬을 사용할 수 없으나, 검은 태양의 숭배자인 인간들은 유일하게 밀라milla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인간은 정말 검은 태양의 화신이란 건가?”
이건 아니었다. 최소한 검은 태양의 화신이라면 스스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아니면, 혹시 검은 태양의 선택을 받은 자인가?”
이건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검은 태양을 숭배한 지 셀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그건 몇백 년일 수도, 몇천 년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숭배자도 아닌 자가 검은 태양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듣고 있었던 흑염룡은 다시 물었다.
“검은 태양이 따로 계시를 내린 말은 없는가?”
그 순간, 숭배자는 검은 태양의 교리 중 하나를 떠올렸다.
「무한히 반복될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생긴 작은 균열은, 곧 격변의 씨앗일지라.」
작은 균열은 곧 격변의 씨앗.
그 균열과 격변이 굳이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된다. 그저, 촉발제.
숭배자는 유력한 결론을 내렸다. 이건 그저 신호일 뿐일지도 몰랐다! 세상에 큰 변화가 올 거라는 신호!
그 큰 변화는 무엇인가?
“빛의 시대가 저물고 어둠의 시대가 비로소 다가올 거란 신호!”
어둠이 빛이 되며, 빛은 어둠이 된다. 두 개의 정의가 뒤바뀐다. 빛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상의 법칙이 어둠을 기준으로 재구성된다.
검은 태양이 제일신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흐흐…… 어둠의 예언을 비로소 해석했군.”
검은 태양의 숭배자는 벌떡 일어났다. 손목이 묶여 있으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 손등에 있는 룬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이전과는 다른 모양으로 획이 움직이며, 전혀 새로운 문자로 재구성된다.
그것이 빛을 발한다. 밀라milla의 언어는 대가가 필요하지만, 어둠의 도래를 앞에 둔 숭배자에게 그런 대가는 사소한 것이었다.
룬이 발동되었고 허공에 균열이 발생했다. 안쪽에 무지갯빛이 흐르는 균열. 시공간을 제어하는 밀라milla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숭배자는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사방이 무지개의 광채로 가득 찼다. 광명의 속도로 숭배자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각양각색의 빛들이 보였다. 거대하고 다채로운 빛의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
숭배자는 그곳을 지나며 생각했다. 진리를 깨달았으니, 이 균열 역시 나를 진리가 필요한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동료들에게…….
그 순간이었다. 숭배자는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오른손에서 발현된 흑염룡이 갑자기 균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린 숭배자의 눈앞에 있는 건 더 이상 흑염룡이 아니었다.
균열 바깥에서 안쪽으로 몸을 반쯤 들이밀고 있는 한 남자.
함박웃음을 띤 그 두 눈을 희멀겋게 치켜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숭배자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히익……!”
그 남자의 입에는 담배 같은 게 물려 있었다. 그 연기를 들이마시자 다시 이전의 환각이 느껴지는 듯했다. 저건 환각 작용을 하는 풀이었다!
하지만 숭배자는 놀란 가슴을 금방 진정시키고 안심했다. 어차피 균열 안에 한 번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의 신체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그 순간이었다.
“내가 이런 균열을 몇 번 경험해서 말이지.”
숭배자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을 내뱉으며,
남자의 팔이 쑥 균열 차원 안으로 들어와 숭배자의 발목을 붙잡았다.
“무, 무슨!”
“어딜 가려고. 잠깐 나와 봐.”
숭배자는 이 터널의 반대편 끝을 향해 애처롭게 손을 내밀었지만.
“으아아아아…….”
그 처절한 몸부림이 무색하게 발목을 붙잡은 손에 끌려갔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