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ep54. 검은 피라미드 (2)
한동안 서쪽으로 달려 나갔다. 우리는 조금 서둘러서 움직였는데, 검은 태양이 떠올라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검은 태양께서는 스스로 보고자 하는 걸 보신 순간 형제들에게 다시 자리를 양보한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면 수백 년 동안 검은 태양이 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지.
하지만 이건 반대로 말하면 내 목적이 달성되기도 전에 지는 일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물론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여유롭다는 말이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굳이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시간 낭비를 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수림’이라고 불리는 숲을 직선으로 가로질렀다. 렐릭시나는 평범한 말은 곤란해할 법한 장애물마저 돌파하며, 하늘조차 잘 보이지 않는 숲을 가로질렀다.
“읍읍읍!”
리리와 나는 괜찮았지만, 조금 애매한 포즈로 묶여 있는 미스터 흑염룡은 조금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힘드니?”
“읍읍읍!”
“그러게 누가 개기래? 가만히 있었으면 나도 얌전하게 데리고 다녔지.”
“읍읍!”
“왜 자기를 데리고 다니려고 하냐고? 우선 너희랑 관련이 있는 게내 목표니까 데리고 다니면 좋을 거 같았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야기했다.
“널 거기에 혼자 두기도 솔직히 그랬거든.”
“무슨 뜻이야?”
리리가 물었다. 나는 한 달 동안 도시에서 머물던 시절을 떠올려 봤다.
“탐험가 연맹. 마냥 편하게 사는 거 같진 않더라고.”
“뭐 느낀 게 있어?”
“적대하는 단체가 좀 있는 모양이었어. 그러고 보니 그럴 만해.”
리리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마 얘도 느꼈을 거다. 도시 안에서 흐르던 묘하게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물론 리리는 사회생활을 많이 해 보지 않았으니 그 느낌이 구체적으로 뭔지는 깨닫기 힘들었겠지.
그래서 내가 풀어 설명했다.
“생각해 보면 그래. 지금 제국은 황제가 공석이라지만, 어쨌거나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은 있겠지? 간접적으로라도 말이야.”
“섭정은 있을 거야.”
“그 사람이 황제의 복귀를 바랄까?”
“…….”
“그리고 그 사람을 옹호하는 파벌이 분명 있을 거잖아.”
별로 관심도 없고 재미도 감동도 없는 정치 이야기다. 하지만 그걸 좋아하냐와는 별개로 난 그런 문제에 꽤 민감한 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지 탐험이란 제 3국을 방문할 일이 많고, 이런 나라들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으니까.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간혹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여행객한테도 불씨를 튀기는 법이었다. 국가적인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로도 그런 일은 간간이 일어난다.
그러니 정치적인 눈치가 있어야 했다. 영문도 모르고 나쁜 꼴을 보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만약 연맹이 황실의 인장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집단이 있고, 그 집단이 탐험가 연맹이랑 별로 사이가 안 좋다고 쳐 봐. 그럴 때 탐험가 연맹이 수상한 신도를 몰래 가지고 있었다가 걸리면?”
“모함을 당할 거야. 사람들을 선동하겠지.”
“그렇지.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단체니까 오히려 저런 건수 하나 잡히기만을 기다릴 수도 있어.”
이번 여행은 짧지 않을 거고, 그 사이에 탐험가 연맹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면 곤란해진다. 나는 정치적인 일에 얽히는 건 진짜로 싫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사전 준비인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리리는 내 의도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당신, 착하네.”
“아닐걸?”
사실 뭐라고 오해하든 사소한 부분이니 상관은 없지. 그래서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막사는 것처럼 보여도 관심사 안에서는 꽤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우리가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렐릭시나는 장애물이 많은 영역을 돌파해 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할 거다. 그때가 되면 의사소통을 위해서 목청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 잠시 체력을 아끼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정리해 볼 생각이었는데.
“……?”
그 순간 전방에서 인기척을 느꼈고, 렐릭시나는 내 반응을 읽어 내고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속도를 줄였다.
부스럭—
전방 수풀 뒤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피부로 느껴지는 습기를 보아하니 저쪽에는 아마 연못이나 작은 시냇물이 지나가는 영역일 터. 그렇다면 짐승일 가능성이 높았다.
턱- 턱- 턱-
아니, 이건 짐승이 아니다. 이족보행을 할 때 나는 걸음 소리다. 이건 사람이다. 나는 렐릭시나의 등에서 내린 뒤, 혹시 몰라 허리춤의 쿠크리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거기 누구 있나요?”
아이의 목소리였다. 이제 막 노동에 투입될 만한 나이의 목소리와 말투.
난 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리리도 나도 긴장을 풀었다.
수풀 뒤편에는 작은 공터, 그리고 내 예상대로 옹달샘이 하나 있었다. 모닥불 자리를 비롯한 간단한 야영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모닥불 자리를 보니 이틀 정도는 여기에 있었던 모양인데.
“우리 이전에 봤지?”
“아, 기사님!”
‘탐험가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년이었다. 아마 비밀단체 탐험가 연맹과는 이름만 같지 다른 집단일 거다. 우리 세상의 하운드와 비슷한 사람들 아닐까? 어쨌거나 비밀결사를 자처하는 엘리엇 쪽 단체보다는 훨씬 평범할 게 분명했다.
“지난번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
리리도, 나도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이 애는 우리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탐험가 연맹은 나 하나를 들여보내기 위해 엘프 사제를 불러오려고 했었다. 그건 이 숲이 마냥 얌전한 녀석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아이는 딱 봐도 혼자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엘프 사제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보이지도 않은데, 아무렇지 않게 이 숲에 들어와 있는 거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네? 그냥 들어왔어요.”
그러더니 탐험가 소년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제가 뭐 잘못했나요? 제국에서 진입 금지령을 내렸다든가…….”
“아니, 그건 아니야. 다친 데는 없고?”
“네. 실비아 아주머니한테 발광버섯 좀 모아 달라는 의뢰를 받아서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여기서 얻으면 엄청 쉽거든요. 보수도 너무 좋아서 자주 받는 의뢰예요.”
사람들이 몰라서 이 숲에 들어오지 않는 게 아닐 거다.
고작 버섯 조금 채취하자고 엘프 사제를 불러서 제를 지내는 게 번거로우니 잘 안 했을 테지. 보수가 좋은 이유는 그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의미하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저거 모닥불, 피울 때 조금 시간이 들더라도 구덩이를 깊게 파. 불이 붙은 부분만 가려져도 바람 때문에 말썽 일으킬 일이 적어지거든. 아무리 습지라도 불씨가 튀면 곤란해지는 경우가 있으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저, 기사님은 서쪽으로 가시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피라미드 신기루를 봤어요. 그건…… 기사님을 부르는 걸까요?”
“나도 모르지?”
“저도 가 보고 싶어요.”
소년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그걸 바라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갔다 오면 이야기해 줄게.”
“네? 진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렐릭시나의 등 위에 올라탄 뒤, 이 어린 탐험가와 그 야영지를 조금 바라보다가 출발했다. 아이는 묶여 있는 미스터 흑염룡을 조금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지 큰 문제를 느끼지는 않는 듯했다.
우리는 다시 서쪽으로 출발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리리.”
“응.”
“저 애 영혼의 상을 봤어?”
“…….”
리리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이나마 생각에 잠겼다. 어느 쪽이든 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희미했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느낌은?”
“안개와 같았어. 아주아주 희미해서 그 형태를 알아볼 순 없었는데…… 동시에 안개처럼 거대했어.”
“흠.”
흥미롭네.
“읍읍읍읍!”
“뭐야. 할 말 있어?”
나는 혹시 몰라서 미스터 흑염룡의 입을 조금 풀어 줬다.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푸하! 감히 이 몸을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네가 아무리 어둠의 선택을 받은 자라고 하더라도 이건 상도덕도 없…… 읍읍!”
“리리, 가자.”
“……응.”
리리는 조금 안타깝다는 눈으로 흑염룡을 바라보았다.
* * *
숲을 지나가는 데에만 한 주 가까이 걸렸다. 걸어간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장애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거다.
“확실히 대수림이라고 불릴 만하구나.”
동쪽 산맥에서 된 강이 하류로 흐르면서 점점 더 폭이 거대해지고 있었다.
이건 내 입장에서는 꽤 좋은 일이었는데, 탐험에서 물길은 그 자체로 이정표가 되어 줄 만큼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유사시 식량이나 이런저런 자재를 구하기에도 좋았다. 물이야 내가 룬 언어로 만들면 되었으니 크게 상관있는 건 아니었지만.
“뭐 만드는 거냐.”
숲의 끄트머리에서 야영을 하는 날, 모닥불 앞에서 멍 때리고 있었던 흑염룡이 나에게 물었다.
“소금.”
“소금?”
“어. 소금.”
이미 이 짓을 봤었던 리리는 그저 조금 멍한 얼굴로 불을 쬐며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강가 얕은 수면 아래에 있는 수초는 소금기를 머금고 있거든. 그걸 이렇게 다져 가지고 볶으면 소금을 얻을 수 있어. 좀 비린내가 나긴 하지만…….”
소금은 필수다.
특히 사막을 여행한다면 물만큼이나 중요한 게 소금이다. 나 역시 수분 부족 이전에 전해질 부족으로 거의 빈사 상태에 빠졌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미스터 흑염룡은 자신의 왼손 등을 씁쓸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룬 없이 깨끗한 손등. 내가 『기록관의 반지』로 해당 룬을 흡수해 버린 탓이었다.
“네가 얌전해져서 풀어 준 건 맞거든? 근데 솔직히 조금 불안하잖아. 그리고 난 불안한 걸 방치하는 건 딱 질색이라서. 나중에 이 일 끝나면 돌려줄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
미스터 흑염룡은 긍정하지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다. 우선은 내게 협조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다.
사실 협조적인 기색은 이전부터 있었다. 내가 밀라milla의 룬을 사용할 때부터, 미스터 흑염룡은 내게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말을 하지 않았기에 나도 딱히 캐묻지 않았다. 언제나 나는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굳이 끄집어내지 말자는 주의다. 직접 알아내는 것도 재밌으니까.
흑염룡이 물었다.
“……자신 있는가?”
“뭐가?”
“어둠의 시험대를 통과할 자신이.”
“진짜 컨셉 잘 지키네. 몰라.”
“모른다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뛰어들겠다는 거냐?”
“그런 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
내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는 풀썩 누워 버리는 미스터 흑염룡. 예비용으로 챙겨 온 침낭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우리는 그날 휴식 시간에 리리와 시간을 나눠 불침번을 섰다.
불침번 내내 슬슬 다시 보이기 시작한 하늘 사이로 지나가는 검은 태양을 구경하며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 ‘사막’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파도치는 사막처럼 땅이 흐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기마저 평범한 곳은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하늘에는 검은 태양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에서 뿜어지는 빛은 미약해서 전혀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달궈져 있는 사막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더 강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속해서 곁에 끼고 다니던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사막을 가로질러, 지평선 저 너머까지.
……강이 사막 한가운데에 흐른다고?
리리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지만, 사막이란 곳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풍경이었다. 강이 흐르면 그곳이 어떻게 사막인가? 물론 이집트도 나일강이 흐르지만 최소한 강변을 따라 굉장히 넓은 부분은 녹지라는 말도 부족한, 굉장히 비옥한 농경지였다. 최소한 강을 낀 지대는 사막이라 부르기 힘든 환경을 조성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는 말 그대로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모래와 자갈 한가운데에 한강만큼 폭이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강 말고도 생각해야 할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산 아래에는 산의 뿌리가 뻗어 있고, 그 뿌리를 타고 정기가 흐르잖아.”
“그렇지.”
나는 지금 강 너머 저 멀리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라고는 하지만 그 산의 영향력이 여기까지 닿지 못할 정도냐고 묻는다면 그건 애매하다.
“그 양분이 여기까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이번에는 다시 서쪽을 바라보았다.
강이 끝없이, 먼지로 뿌옇게 되는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방향. 사막 역시 그 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여겨봐야 할 구조물이 하나가 더 있었다.
리리도, 나도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처음에 산처럼 보였다. 하지만 산이라기에는 그 좌우 폭이 심각하게 좁았다. 그에 비해서 높이는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절대로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는 구조물이다. 특히 침식이 빠르게 일어나는 사막에서는 더더욱.
그때, 리리는 동공을 붉게 물들였다.
허공에 고정되어 있는 그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영혼이 보여.”
리리는 모래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악마의 영혼이야.”
“저 뿔이?”
나는 다시 뿔을 바라보았다. 꽤 강력한 악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잠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활동한다면 꽤 난리를 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리리는 내 예상 밖의 내용을 말했다.
“아니, 아니야. 저 뿔이 악마인 게 아니야.”
리리는 자신이 보고 있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 뿔은 악마의 일부분이야.”
“그럼 악마는?”
리리의 시선이 향한 방향은 바닥.
정확히 말하면 이 거대한 모래 대지 아래에 있을 무언가였다.
“이 사막 아래.”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이 사막 전체.”
나 역시 아래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다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리리의 시선이 한 군데에 고정되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리리는 이 사막을 모두 아우르는 크기의 영혼을 보고 있었다.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흑염룡이 입을 열었다.
“다시 묻겠다. 어둠의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있는가?”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