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ep54. 검은 피라미드 (4)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 옆, 저 멀리서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답은 나왔다.
“원래는 아무런 문제 없는 사막이 어느 순간 큰 문제가 생겼다. 그건 아마 양분 부족 현상이었을 거야. 작물은 자라지 않았고 생물들이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현상.”
리리는 내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런 일이?”
“그런 일이 생긴 이유보다 우선 시기에 집중해야 해.”
나는 시체를 가리켰다.
지금 우리 눈앞에 백골이 된 시체를.
“그건 세네 달 전에 일어난 일이야.”
“세네 달 전?”
리리도 그 부근에서 문제를 느낀 모양이다. 확실히 리리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검은 태양이 뜬 직후잖아.”
나는 다시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황금 지침에서 노란색 보석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 크기의 생물은 고작 세네 달 만에 백골이 되지 않아.”
『연금술사의 시약병』
세 번째 병에는 순수한 태양빛이 담겨 있다. 이전에 임프와 싸울 때 리리가 대부분 소모했지만, 지금 남아 있는 양으로도 내가 쓰기에는 충분하다.
나는 뚜껑을 열어 담겨 있는 태양빛 한 방울을 땅에 흘렸다.
“……무언가 강제로 영양분을 빨아들인 게 아니라면 말이지.”
똑—
자체적으로 온화한 황색 빛을 발하는 물방울이 땅에 떨어지자.
파악—!
모래알이 튀어 오를 정도로 격렬하게 땅 속으로 빨아들였다.
거대한 갈증에 시달리는 누군가가 허겁지겁 빨아들인 것처럼.
그리고 그게 누군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악마 놈, 마냥 자고 있는 건 아닌가 본데.”
강이 흐르고 산맥이 멀지 않은데 비정상적으로 사막이 형성된 이유, 더 나아가 그나마 재배할 수 있는 작물마저 자라지 않을 정도로 척박해진 이유. 사막에서 사는 종족인 리자드맨마저 아사하게 만들 정도로 단 한 방울의 에너지마저 없어진 이유.
이 아래에서 그걸 탐하는 놈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명백하게 검은 태양이 떠오른 뒤 더 활동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게 일시적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마 점점 심해지겠지.
이것도 내 직감이었지만, 이런 직감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신뢰도가 높은 편이었다.
나는 잠시 서쪽을 바라보았다. 황금 지침은 여전히 저쪽을 가리킨다.
“……가자.”
“응.”
잠시 고민은 했다. 이곳은 짐짓 여유롭게 보이는 사막일 뿐이었다. 뭔가 특별한 만남이 있을 것 같은 그런 거대한 공터.
하지만 그곳을 바라보는 내 눈은 아마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을 거다. 이곳 아래에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악마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피라미드는 지구에서도 로망 그 자체였다고.
우리는 빠르게 서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면서 황금 지침을 꺼내서 바라보았다.
진행하다 보니 문뜩 지침의 끝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그 진폭이 거세졌다. 그 시점에서 다시 렐릭시나를 멈춰 세웠다.
“유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인데.”
전방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지평선의 저 끝까지 펼쳐져 있는 서쪽 모래사장.
그리고 지평선과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왜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여?”
우리의 목적지는 피라미드다. 그리고 이 정도 가까이 왔다면 최소한 피라미드의 모습은 진작에 보였어야 한다.
“…….”
우리는 이 근방을 원형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거의 반나절을 넘게 돌아다녔으나 눈에 보이는 건 사막, 사막, 또 사막뿐이었다.
흔들리고 있는 지침. 내가 그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에 리리는 살짝 불안해하고 있었다.
“땅속인가? 혹시 그 악마랑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 그건 너무 끔찍한데. 아니면 혹시…….”
“아니, 여기가 맞아.”
나는 말에서 내렸다.
“혼란스러움은 가끔 당연히 믿어야 할 걸 의심하게 만들어. 그럴 때, 더 믿어야 해. 가끔은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니까.”
눈앞 허공.
그곳에 시야를 고정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 * *
검은 태양 신도는 생각했다. 이 인간은 대체 뭐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었다. 그런데 하는 짓은 수백 년의 경험을 쌓은 엘프 장로, 혹은 대사제의 행동을 연상시켰다. 사막 한복판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를 보자마자 분석하는 능력은 이 자가 과연 자신과 같은 인간인지를 의심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게다가 악마가 활동하기 시작하는 징후를 깨닫고 나서도 후퇴를 생각하지 않는 담력부터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맞서는 태도까지.
검은 태양의 신도는 아공간에 갇혀 있다가 수백 년에 한 번씩, 검은 태양이 떠오를 때만 현실에 나올 수 있었다. 이는 검은 태양을 섬기는 자가 감당해야 할 첫 번째 대가였다.
그렇기에 각 세대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봐 왔던 모든 시대의 인간 중에서 이 남자와 같은 자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나?
능력이 있는 자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용기가 부족했다.
용기가 있는 자들 역시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혜로움이 부족하거나 때로는 객기에 눈이 멀어 있었다.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자를 만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자는 잔혹했었다. 자신이 어디까지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를 명확히 알았기에 더욱더 끝 모를 탐욕을 보여 줬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소시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박한 모습 사이사이에 보여 주는 의외의 행동과 역량들은 신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인가?
그 순간, 그 남자는 외었다.
“루디나ludina.”
남자의 눈앞에 섬광이 터졌다. 뱀파이어도, 신도도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이어서 바로 외었다.
“모로스moros.”
섬광은 사라지지 않고 희미하게 남아 룬 문자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에 본모습이었다. 그리고 신도는 저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 밀라milla.
신도는 이 남자가 자신의 손등에 그려져 있었던 룬을 구현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것 따위 따지지 않기로 했다. 너무나 짧은 시간 동안 신도는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던 일을 몇 번이나 경험해 버린 탓이었다.
룬 문자는 그게 무엇이든 공통적으로 기하학적인 마법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보면 그저 이런저런 도형의 집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형태.
하지만 이건 언어를 이미지화시킨 것이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문자라고 불렀다.
남자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자신의 의식에서 지워 버리고, 룬 문자와 자신 단둘만이 세상에 남은 유일하다고 생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엄청난 집중력.
남자는 지금 룬 문자의 한 획 한 획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었다.
신도는 생각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단 한 번의 휴식 시간도 빼놓지 않고 명상에 잠기던 남자의 모습을.
신도는 그에게서 수백 년간 풀리지 않는 난제를 눈앞에 두고 고뇌하는 자연철학자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조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천천히, 그저 천천히 차근차근 문자를 해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갈 뿐이었다.
신도는 그 모습에서 강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 어떤 학자가 난제 앞에서 조급함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신도는 깨달았다.
이 남자 조급해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기 자신이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확신.
자신을 향한 단 한 톨의 의심마저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확신.
그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획 돌렸다. 그쪽에는 검은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달려나가 모래사장에 거대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직경 다섯 걸음이 넘어가는 거대한 원. 그리고 그 사이에 복잡한 도형을 그려 나갔다. 무아지경 속에서 순식간에 모든 그림을 완성한 남자는 그 한가운데 허공에 다시 한번 밀라milla의 언어를 만들어 띄웠다.
그리고, 품속에서 어떤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건 검은 태양 유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염이 길게 난 노인이 조각되어 있는 반투명한 부적이었다.
“……지난번에 검은 태양 유적에서 얻었던 거잖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천천히 조각을 들어 올렸다.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듯 조심스럽게.
그렇게 바닥에 그려진 룬, 그리고 조각상, 마지막으로 검은 태양이 한 줄로 나란히 정렬된 그 순간.
조각상을 통과한 검은 태양의 빛이 모이고 산란하며 룬 위를 검붉은빛으로 수놓았다.
남자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리리도, 검은 태양 숭배자도 지금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무대가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닥에 그려진 원, 그 허공에 세로로 띄워져 있는 빛으로 된 룬 문자, 거기에 덮어 씌워진 검은 태양의 빛.
이 모든 게 하나로 어우러져 새로운 문자로 떠올랐다.
강선후의 눈이 그 모든 획을 훑었다. 신도는 순간 그 눈동자에 획이 새겨지는 듯한 착시마저 느꼈다.
아니, 착시가 아니었다.
정말로 강선후의 눈동자에는 룬이 새겨지고 있었다.
새로운 눈을 얻은 강선후는 그걸로 다시 한번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인간이 초점을 맞출 수는 없었지만, 이 인간은 지금 그걸 하고 있었다.
그건, 이 인간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강선후는 그렇게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읊조렸다.
“네피리아 엘 밀라nephiria el milla.”
그 순간, 허공의 작은 점이 생겼다.
점은 면이 되었으며, 입체적인 도형이 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확장되며 강렬한 폭풍을 만들어 냈다. 땅의 모래가 솟아오르며 이곳을 뿌연 먼지로 가득 채웠다.
먼지가 걷혔을 때, 따끔거리는 느낌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간신히 눈을 떴을 때.
그들의 눈앞에는 세 개의 검은 피라미드가 서 있었다. 삼각형의 세 꼭지점 부분에 위치한 피라미드는 제국의 가장 높은 건물보다도 그 꼭대기가 높았으며, 좌우 크기는 그에 비례하여 거대했다. 갑자기 거인 세 명이 이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듯한 위용마저 느껴졌다. 검은 태양 문명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마법의 수정이 각각의 꼭대기에 있었다.
그 앞에는 인간의 머리를 한 사자상이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당장이라도 살아날 것 같은 명장의 솜씨로 조각된 석상이었다. 그 역시 검은 돌로 되어 있었다.
신도는 알고 있었다. 검은 태양이 수백 년마다 한 번씩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의무를 끝마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음을.
“…….”
신도는 이야기 속에나 있을 법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남자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