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ep55. 피라미드 탐사 (2)
저 거대한 악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드넓은 지저 세계의 공간마저도 비좁은 듯 몸을 구기고 앉아 있는 그것은 절대로 죽은 것도, 심지어 잠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우선 바디캠의 배터리를 간단하게 교체하며 그 악마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저 봉인당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깨어 있는 상태인데 저토록이나 얌전하게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여기에서 느꼈다.
“……봉인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거구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리리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조급하게 물어 왔다. 저렇게 거대한 악마를 보니 제법 담력이 좋은 리리조차 평정심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유를 말하기 전에 먼저 뒤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미스터 흑염룡을 바라보았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그 흑발 사이로 보이는 눈. 거기에는 노골적인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내 직감을 증명받기 위해서 물었다.
“검은 태양이 떠오르는 이유가 뭐라고?”
“……어둠의 신께서 원하시는 게 있기 때문이다.”
“검은 태양이 뭘 원하실까?”
이 유적은 통째로 검은 태양의 유적이다. 지난번에 만난 그 함정투성이의 작은 유적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유하자면, 여기는 검은 태양 숭배자들의 수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런 곳 지하에 악마가 있다. 최초의 전쟁을 일으킨 주범인 바로 그 대악마다.
그리고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그 악마와 영원히 싸우며 고통의 굴레에 빠져 있다. 시공간을 지배하는 힘 때문에 저 악마를 그 틈새 속에 가둘 수 있었지만, 필연적으로 거기에 희생된 사람들이 있는 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를 강렬하게 열망한다면.
“그게 대체 뭐겠냐는 거지.”
“……악마의 완전한 소멸.”
“바로 그거야. 아니면 이제 검은 태양마저 저 악마를 붙잡아 두는 데에 한계에 다다른 거일 수도 있고.”
검은 태양은 계속 눈물을 흘려 이 피라미드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평소에는 제대로 된 기록마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사실들을 굳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공개하고 있었던 거다.
이 역시 이상하다. 왜? 굳이 지금?
혹시,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걸 막는 데에 힘이 부치기 시작했던 거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결론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은가?”
흑염룡의 질문에 나는 돌아가는 사다리 쪽으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야. 이건 그저 직감에 의존한 결론이니까. 과하게 넘겨짚은 것일 수도 있고, 따지고 들어가면 억지를 부리는 거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 거 하나하나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있고, 가끔씩은 과감한 결단에 더 무게를 둬야 할 때도 있어. 그리고 지금은 후자야.”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신의 의사소통 방식이란 인간 입장에서는 간혹 답답하기 그지없어서, 그 뜻을 제대로 말해 달라 빌더라도 제대로 답해 주는 경우가 잘 없어. 그게 극에 달했을 때 해야 할 게 뭔지 알아?”
사다리를 붙잡고 위를 바라보았다.
검은 태양이 뿜는 희미한 빛이 트랩도어 저편에 느껴졌다.
검은 태양이지만, 어쨌거나 태양이고 빛을 뿜는다.
“그때만큼은 잠시라도 신보다 내 판단을 더 믿어 보는 거야. 그 순간만이라도.”
리리와 흑염룡 둘 다 말이 없었다. 아마도 각자의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다. 사다리로 올라온 뒤 잠시 흑염룡을 바라보았다.
지금 시점에서 이 녀석의 비밀을 조금 알 거 같았으니까.
“너도 잘 모르지?”
“…….”
“너 역시 검은 태양 문명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야. 그렇지?”
“…….”
부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 추리 한번 들어 볼래? 검은 태양 숭배자들은 평소에 시공간 사이에 숨어 있었어. 아마 그래서 인간의 몸으로 수백 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올 수 있었겠지. 시간으로부터도 자유로웠을 테니까. 그렇지?”
“그렇다.”
“더 중요한 건, 너희들은 로크 벨라의 종소리에서도 자유로웠을 거라는 사실이야. 당연한 이야기잖아? 그게 울릴 때마다 시공간의 틈새 사이에 숨어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왜 너는 이 사실들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
역시 부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로크 벨라의 영향력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최후의 용 키호테 영감님을 보고 느낀 사실이다.
기억이 뒤섞이고, 뭔가 떠오를 법하다가도 기억나지 않으며, 그나마 기억하는 것들이 간혹 망상인지 진실인지조차 구분되지 않게 만드는 종소리. 시대와 시대를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황금의 유물.
내가 보기엔 이 미스터 흑염룡도 로크 벨라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로크 벨라가 울리는 그때, 시공간의 틈새에 숨어 있지 않고 괜히 밖에 나와 있다가 변을 당한 셈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알아야 하는 사실은 아니다.
미스터 흑염룡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저런 걸 봐 버렸잖아?”
“그럼 역시 돌아가는…….”
무슨 소리야.
나는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당장 저길 들어가 봐야지.”
“…….”
“황금보다도 이전 시절 첫 번째 전쟁의 주역이었던 대악마. 그 대악마를 봉인한 너희들. 그리고 스스로 권능을 포기했다는 검은 태양. 그 비밀이 지금 눈앞에 있다고. 그걸 두고 그냥 가라고?”
어느새 나를 바라보던 흑염룡의 눈빛에는 여유가 많이 사라져 있었다. 맨날 헛소리나 하면서 보여 주던 비릿한 미소는 어디 가고, 생경한 것을 목격한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바로 기계 구조물 안에서 나왔다. 다시 검은 태양이 떠 있는 거무스름한 하늘이 보이고, 사막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보이던 거대한 뿔. 이제는 누구 것인지 명확하게 알게 된 그 뿔을 바라보았다. 이전과는 달리 조금 더 솟아 있었는데, 명확하게 악마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뿔은 악마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그 악마가 얼마나 거대한지 체감이 되는 부분이지.
그게 움직인다면 거대한 재앙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려면 빨리 움직여야겠지?”
리리가 내 뒤를 따라 나오며 말했다. 내가 그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파지지직—
안쪽에서 다시 균열이 생겼다. 그 순간 내 눈동자에 새겨진 룬을 발동했다. 검은 태양의 빛이 기계 장치 안쪽으로 밀집하는 모습이 보였다.
리리는 당황했으나, 나는 저 현상의 원인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리리도 뒤늦게 깨달았다.
“도망쳤어.”
하지만 리리도, 나도 미스터 흑염룡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지 않았다.
리리는 내가 그를 잡을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일부러 놓쳐 준 거지?”
“생각이 많아 보이더라고.”
나는 왠지 웃음이 나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가끔씩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나는 매번 그렇지만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끄집어내는 걸 싫어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듣지 못하는 내용은…….
“직접 알아보면 되지.”
나는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어떤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이, 우리는 바로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라미드에 근접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거대한 위용이 몸으로 느껴졌다. 고대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보다도 거대해 보였다.
사전 정찰을 시작했다. 우선 렐릭시나의 등에 올라탄 뒤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규모가 너무 커서 이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하지만 우리는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나, 당신이랑 탐험하는 기간이 꽤 길었잖아?”
“그렇지?”
“이렇게 난이도 높은 탐험은 처음이야.”
“고생은 대수림에서 더 했잖아?”
“고생은 둘째치고 여기는 너무 어렵잖아.”
몸 고생보다 머리 고생이 더 싫다니.
“내가 매번 말하잖아. 너도 가만 보면 그냥 몸으로 때우는 타입이라니까. 머리 쓰는 거 은근 안 좋아해.”
“아니거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나는 다른 답을 내놨다.
『사자의 지팡이』
“존슨!”
“캉!”
나의 충직한 유령 늑대를 소환한다. 이륙할 것처럼 꼬리를 휘젓는 녀석을 잠깐 쓰다듬어 준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피라미드 보이지? 저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뭐가 있는지 확인해 줘. 그리고 이것저것 위험 요소가 있는지도 확인해 주고.”
“웡!”
존슨은 그대로 몸집을 부풀리더니 언제나 보여 주는 겨울 늑대의 형상이 되어 피라미드를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리리는 그런 존슨의 투명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위에 입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예전에 이거랑 비슷한 피라미드를 방문한 적이 있거든. 그 피라미드에는 입구가 두 개 있었는데, 지상의 입구는 함정이었고 진짜 왕실로 향하는 건 피라미드의 위쪽에 있었어.”
“왜 그렇지?”
“애초에 방문을 상정하는 건물이 아니니까. 굳이 왕래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구조를 취할 필요가 없는 거야.”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존슨이 달려 내려오는 존슨이 보였다. 존슨은 특히 회색 수정 주변을 많이 맴돌았다.
“입구는?”
“컹!”
“꼭대기에 확인해 볼 만한 게 있다고?”
“컹!”
“붙잡을 틈은 많은 편이고…… 그런데 구조가 약한 편이야? 그럼 렐릭시나를 타고 올라갈 순 없고, 밧줄을 써야 하나…… 알았어.”
“헥헥헥!”
내 앞에서 다시 작아지더니 꼬리를 흔들어 대는 존슨을 잠시 쓰다듬어 줬다. 리리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다 말했다.
“당신 짐승이야? 아니,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라…… 대체 어떻게 알아듣는 거야?”
“알아듣지 못하면 죽는 곳에서 오래 살아 봐. 자연스럽게 들리지.”
“……그걸 들을 수 있어서 살아남은 게 아니고?”
음.
리리는 가끔 꽤 날카로운 말을 한다. 나도 솔직히 저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고.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우리는 바로 피라미드를 오를 준비를 했다. 검은 석재에 피부가 닿으면 많이 곤란해지니까 장갑을 단단하게 끼고, 노출되는 부위가 없도록 옷매무새를 꼼꼼하게 다듬었다.
“자.”
리리에게 피켈(Pickel)을 건넸다. 한 손에 꼭 쥐어지는 곡괭이 같은 건데, 빙벽을 등반할 때 쓰는 ‘아이스 베일’과 비슷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아이스 베일하고 피켈을 헷갈려 하기도 하고.
이건 특히 설산을 오를 때 중요한 물건. 다시 말하면 미끄러운 곳을 오를 때 좋은 물건이라는 거다.
가파른 곳을 오를 때 보조 기구로 쓰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리리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지만 내 설명을 듣고 금방 감을 잡았다. 몸 쓰는 법을 아는 애니까 금방 적응할 거라 여겼다.
“렐릭시나. 밑에서 망 좀 보고 있어 줘.”
“푸르르릉.”
우리는 조심스럽게 피라미드의 표면을 타고 올랐다. 계단 형태면 좋으련만, 발 디딜 틈 없이 가파른 각도였다. 중간중간에 피켈을 꽂아 넣고 몸을 고정할 빈틈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그렇게 도착한 정상.
“와, 예쁜데?”
“한눈팔지 말고 발밑 조심해. 여기 너무 좁잖아.”
우리는 사람 하나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는 빈틈 위에 간신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래 먼지를 가득 품은 바람이지만 이상하게 상쾌했다. 땀을 꽤 많이 흘린 탓이었다. 리리의 머리카락도 꽤 푹 젖어 있었다.
“하아…….”
리리는 심호흡을 크게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피라미드의 꼭대기.
회색으로 바랜 거대한 수정이 놓여 있는 곳 가장자리다. 높이만 오 미터가 넘어 보이는 날렵한 형태의 수정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평평한 부분에 얹어져 있었다.
새로 안 사실이다. 박히거나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얹혀’ 있다.
“설계상 움직일 여지가 남아 있다는 말이지.”
이 피라미드가 거대한 기계라는 내 예상이 맞다면 말이지.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입구를 찾았다. 존슨의 말대로라면 이곳에서 시도해 볼 만한 장치가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레버 하나를 찾고 미소를 지었다. 손잡이 부분만 하얀 걸로 봐서, 확실히 잡고 당기도록 만든 물건.
나도 모르게 그 물건을 잡았다가 다시 위험을 직감했다.
“왜 그래?”
“리리, 우선 안전줄부터.”
“아, 응.”
우리는 수정을 빙 둘러 단단한 매듭을 묶었다. 몇 번이고 당겨 매달려 본 다음 안전을 확인한 뒤, 나는 레버를 당겼다.
그 순간. 땅이 사라졌다.
정말 말 그대로였다. 우리가 밟고 있던 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땅이 있는 사진과 없는 사진을 어색하게 이어붙여 만든 영상처럼, 눈 깜빡하기도 부족한 시간 안에 땅이 사라져 버렸다!
“……?!”
정말 오랜만에 당황해 본 나는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에 고개를 치켜들어 안전줄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수정을 받치는 바닥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안전했다. 조금 충격이 있을 예정일 뿐.
나는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오른팔을 두 바퀴 돌려 휘적이는 안전줄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그리고, 이제 막 내 옆을 지나가 떨어지는 리리의 손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텅—!
신축성이 좋은 고급 안전줄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우리 몸을 지탱했다. 오른팔에 느껴지는 강렬한 텐션에 살짝 이를 악물었다. 아래를 바라보니, 내 왼손을 잡고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리리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전줄 때문에 어차피 괜찮았는데 왜 굳이?”
“뭘 모르네. 너 밧줄 허리에 묶었잖아? 젊었을 때 조심 안 하면 나이 먹고 고생해.”
“당신이 조심을 입에 담을 사람이야?”
리리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어쨌거나 큰불은 껐으니 조금 여유가 생겼고, 우리는 그렇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주변을 살폈다.
안쪽은 어두웠다. 우리 위에 뚫려 있는 사각형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말고는 아무런 광원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빛이 없는 곳에는 시각이 의미가 없다. 이럴 때는 눈을 감고 다른 감각의 예민함을 더 올리는 게 좋다.
이 안에 담긴 정보 중 가장 인상적인 건.
“……공기의 흐름.”
피부로 느껴지는 그 흐름. 그리고 빈 곳을 휘저으며 생기는 미세한 공명음.
“……?”
거기에 담긴 정보는 꽤 흥미로웠다.
“여기, 완전히 빈 공간인데?”
“완전히?”
그 흔한 기둥이나 장식도 없다. 심지어 벽도 매끈해서 공기를 산란시킬 작은 구조물마저 없었다.
이토록 안정적인 흐름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피라미드 내부가 완벽한 빈 공간.
나는 다시 고개를 내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까 전에는 없었던 반짝이는 별 같은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바로 목에 걸려 있는 쌍안경을 들어 바라보았다.
그건 수정 구슬이었다. 공중에 살짝 떠 있었고, 비눗방울의 표면에 흐르는 듯한 매혹적인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흐르는 어떤 문자들을 보았다. 그건 서로 뒤섞여 오묘한 광채를 내는 룬의 파편들이었다.
그건 대놓고 내게 매력적으로 보이려는 듯 움직였다. 그러니까, 내게 다가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순간.
기이이익—
쿵, 쿵—
갑자기 여기저기서 벽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철문이 내려오고, 그 사이로 언뜻 톱니바퀴가 보였다 사라진다. 유압 프레스의 압력이 거칠게 빠져나가는 소리도 들리고, 증기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그와 동시에 기둥이 솟아오르고, 서로 조립되고, 쐐기가 박힌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기계 장치가 들어오다가는 벽으로 막힌다.
“…….”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몸에 묶인 안전줄을 풀었다.
턱—.
얼마 되지 않는 아래 쪽에 밟을 만한 땅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높이가 3m정도 되는, 가로세로 5m짜리 천장이 뚫린 방 안에 있었다.
마치 와보라는 듯한 빛을 내뿜는 구슬, 그리고 보란 듯이 만들어지는 미로.
미소가 지어졌다.
“당신을 시험하나 봐.”
리리의 말대로였다. 아니, 틀린 부분이 하나 있다.
“우리를 시험하는 거겠지.”
어디 한번 와 보라고 하면, 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하는 법이다.
전방으로 뚫린 통로를 바라보았다. 저기가 가는 길목이라는 거지. 리리도 자연스럽게 그 복도를 유심히 살폈다.
나는 우리를 여전히 매달고 있는 안전줄을 바라보았다.
……이게 소중한 고대 유적이 아니라 날 시험하는 시험대에 불과하다면 말이야.
나는 화합물 병 다섯 개를 한쪽 벽에 놓은 뒤 거리를 벌렸다. 불이 붙으면 거대한 압력을 발하며 폭발하는 그 병이다. 한두 병으로도 벽돌벽은 무난하게 뚫어 버리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지. 연금술의 결과물이다.
내가 망토를 몸에 두르자, 리리는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핥았다.
“잠깐, 우선 기달…….”
“모스mohs.”
이 유적이 날 시험하려 한다면, 나도 사정 봐줄 이유가 없잖아?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