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
19화 ep7. 버뮤다 숲, 사냥. (4)
***
뒤늦게 소식을 전달받은 진서연은 서둘러 복귀했다.
“상황 종료라니요?”
“현장에서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지금 막 복귀를 시작한 참이니, 두세 시간 기다리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겁니다.”
“특이사항 보고는 없었고요?”
작전 총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데없는 상황 종료 보고. 의문점은 산더미였으나 복귀를 완료하지 않은 시점에서 무전으로 사사건건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딱히 숲이 아니더라도, 베이스캠프 외부는 긴장을 풀 정도로 여유로운 곳이 아니었으니까.
총책임자는 유선 연락망을 들고 어딘가에 명령을 내렸다.
“실종된 특무부대를 전부 구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지금 이송 중이라니 의료진 대기하라 전해.”
이제 남는 건 연구 자문팀의 현장 분석 준비였다. 그건 연구팀의 역할이었기에 진서연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투입 팀 복귀합니다.]경계병의 보고에 현장에 있었던 진서연은 고개를 돌렸다.
일출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보랏빛이었던 지평선이 조금씩 푸르게 옅어지는 그때, 버뮤다 숲 방향의 언덕에서 하나둘 사람의 형상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서른 명의 요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 중 일부는 무언가를 업고 있었다. 이전에 실종되었던 특무부대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요원들의 한가운데서 마치 호위를 받는 것처럼 걷고 있는 한 사람.
그 남자는 한쪽 팔로 거대한 괴생명체의 시체를 들어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저게 그 괴물입니까?”
“아니 생각보다 너무 큰데······.”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모두가 괴물의 시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괴물이 아닌, 그 괴물을 들고 오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서연이었다.
“누님. 연구 자문팀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데이터 셰어 라인 좀 미리 구성하려고··· 하는···데.”
후속 작업을 준비 중이었던 정지훈은 연구팀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진서연을 찾아왔다.
하지만, 진서연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지평선에 하염없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어, 누님?”
진서연의 표정을 본 정지훈은 그만 말문이 막혀서 입을 다물었다.
“···내 꺼야.”
서늘한 감각이 척추를 따라 흐르는 걸 느끼며 정지훈은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역시 우리 회사 사람은 하나 같이 다 싸이코 뿐이라고.
***
이건 다 뭐야.
황무지 한가운데에 펼쳐져 있는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군사 거점이었다. 넓게 펼쳐진 텐트들 사이에 차량 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는 게 꽤 본격적으로 보였다. 거대한 안테나가 달린 걸 보니 통신이나 정찰 용도인 듯했다.
“···저런 차 끌고 다니다가 이계인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이계 사람들 입장에서는 누가 봐도 이상해 보이잖아?
그렇게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넓은 반경으로 간이 감시초소가 구축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신경은 쓴다 이거지?
“······.”
“우리 요원이야?”
“민간인이래. 하운드인가?”
“···하운드가 저걸 어떻게 혼자 잡아.”
“요원들이 도와줬겠지.”
상황을 자세히 보고받진 못했는지 OWIC의 직원들이 딴소리하는 게 들려왔다.
나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괴상한 소문이 퍼져서 귀찮아지는 건 원치 않으니까.
그래서 웬만하면 몰래 가져오려고 했는데, 그것까지 바랄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진지를 가로질러갔다. 사람들은 날 마주칠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현장에 투입되었던 요원은 정비병에게 다가가서 한탄하고 있었다.
“이거 초탄부터 불발이었어요.”
“네? 초탄 불발 말입니까?”
“쓸 수 있는 총은 맞습니까? 아니,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는 것부터 마음에 걸리는데 이렇게 초탄부터 불발이면··· 차라리 새총을 가지고 가는 게 낫겠습니다.”
정비병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총을 분리해서 상태를 살펴봤다.
“이거 노리쇠 부분이 잔뜩 젖어 있는데요. 어디 빠트렸습니까?”
“···예? 아니, 물 근처도 간 적이 없는데······.”
당연하지. 내가 한 짓이니까.
처음에 마주치자마자 다짜고짜 방아쇠를 당기길래 룬 언어로 대처했다. 넝쿨 벽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건너편에서 총의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미리 대기했었다.
하마터면 팔자에도 없는 총알맛을 볼 뻔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꽤 놀랐거든.
그렇게 한창 바쁘게 현장이 돌아갔고, 나는 이대로 내 사무소까지 직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진서연과 마주쳤다.
“어, 나와 있으셨네요.”
“강선후 님······.”
눈빛이 왜 저래?
약간 소름이 돋았다. 이계에서 살던 시절 날 사냥하려 했던 퓨마를 닮은 육식동물이 저 눈빛이었는데.
진서연은 잠시 고개를 가로 졌더니 다시 예전의 그 분위기로 돌아왔다.
“정말 해버리실 줄은 몰랐는데요.”
“한다고 했잖아요. 사람 말을 잘 못 믿으시네.”
“그래서 연구원 하죠. 의심이 덕목인 직업이거든요.”
그때, 의료진이 들것을 끌고 바쁘게 지나쳤다.
“부상자 호송한다.! 준비 철저하게 해!”
“바이탈은?”
“위급하지 않습니다. 검진 준비하겠습니다.”
진서연은 그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리 말해두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을 거예요.”
“아, 선후 씨가 구조하신 거네요. 역시.”
“세 명 정도 목숨이 간당간당하긴 했는데, 숲에서 응급처치를 끝내고 왔어요. 출혈은 없을 거고, 대신에 영양실조가 좀 심각할 테니 그것부터 해결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하네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내 갈 길 가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티는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거 진짜 너무 무거워서 한시라도 빨리 내려놓고 싶었다.
그런데 또 누군가 내 앞길을 막아섰다.
“그건 두고 가주셔야 합니다.”
“···?”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어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뭔가 좀 어려 보이는 직원 하나가 억지로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직원은 맞는 모양인데···.
“규정상, 이계에서 나온 모든 항목은 우리 OWIC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회사가 요구할 경우 반납해야 할 의무가······.”
빠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달려와서 그 뒤통수를 후렸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우리 한 번 더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안녕하세요. 강선후 님. 전략기획본부 정지훈입니다.”
“안 까먹었어요.”
“그거 다행이네요. 그리고, 사과드리겠습니다.”
허리를 굽히는 정지훈. 뒤통수를 부여잡고 있었던 옆의 녀석은 영문도 모르고 정지훈의 손에 눌려 같이 허리를 굽혔다.
“이 녀석이 아직 인턴이고, 일을 배우는 중이라서···.”
“그거 규정이라면서요? 뭐 우선권 뭐시기.”
“우리 회사에서 ‘원할 경우’입니다. 나중에 우리 쪽에서 정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현재 그 사체의 소유주는 분명히 강선후 님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보증하겠습니다.”
“······.”
딱히 할 말은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에서 벗어나 다시 걸어 나갔다.
인턴이란 사람, 잘은 모르지만 아마 엄청 혼나겠지?
그렇게 한 시간쯤 더 걸려 오두막에 도착했다.
쿵!
짊어진 짐을 땅에 내려놓았다. 어깨가 떨어질 거 같았다. OWIC 사람들한테 좀 도와달라고 부탁할 걸 그랬나?
고개를 가로젓고는 전리품에 집중했다.
지금 내가 내려놓은 건 기생체의 고치를 둘러싼 실, 그리고 번데기의 외피, 그리고 기생체의 시체 한 구였다.
실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작업이 좀 필요해서 창고에 박아뒀고, 외피는 잘 말려서 가죽 코트를 만들 생각이었다. 내가 들고 있는 나이프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데 어마어마하게 가볍고 유연한 소재였다.
그리고 마지막. 제일 중요한 거.
사마귀의 앞발처럼 생긴 네 개의 칼날 손톱.
후웅—!
하나를 들고 휘두르자 오두막 옆에 있었던 작은 나무가 잘려나갔다. 단면은 사포질이라도 한 것처럼 깔끔했다.
흑요석처럼 날카롭고 강철처럼 단단한 기생체의 무기였다.
놀라운 건 이게 진짜로 금속이란 사실이었다. 스스로 금속을 부패하는 가스를 배출하니, 이건 그 가스에도 면역인 생체 금속인 셈이었다.
예리함과 내구성은 대체로 반비례 관계였다.
예리하면 그만큼 날이 잘 손상되고, 내구성을 챙기면 날카로움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장비는 탐험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쉽게 말해서 이 칼날은 최고의 조건을 가진 소재라는 말이었다.
“···가공법은 따로 생각해봐야겠지만.”
이계에서 내가 끝내 이걸 다루지 못한 이유는, 내 환경에서 이걸 가공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젠 아니잖아? 바로 앞이 인간의 베이스캠프였고, 좀 더 나아가면 서울의 한복판이었다.
시체의 나머지 부분도 쓸 데가 있었기에 오두막 뒤편에 대충 놓고 포대로 덮어놓았다.
이계의 황무지에서는 뭐든 잘 썩지 않으니 몇 주는 저렇게 둘 수 있다.
“이제 본격적인 준비는 끝났네.”
다소곳하게 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리리를 향해 말했다. 어차피 알아들을 리 없지만, 나는 풍선이랑도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다. 최소한 사람이잖아. 리리는.
“···너 윌슨 할래? 시즌 2144호 윌슨.”
“···?”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리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괜히 멋쩍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씻어야지.
그런데, 지금 리리의 표정은 어딘가 이상했다.
뭔가 큰 고민에 빠져있는 느낌. 아니면 뭔가를 결심한 느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
리리는 이 인간이 숲에서 한 행동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숲을 빠져나오기 전, 이제 막 기생체를 사냥한 뒤의 강선후는 속이 텅 빈 고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뿌듯함 그 자체였다. 리리도 번데기의 외피가 얼마나 가치 있는 소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부우욱—!
강선후는 기생체가 가진 칼날 손톱으로 번데기의 외피를 잘라냈다.
리리는 그 모습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다 가져가지 않아?’
번데기는 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았고, 접으면 부피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런데 강선후는 다 챙기지 않고 굳이 잘라내어 나머지를 숲의 심장 곁에 두었다.
리리는 그 의도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숲을 살리려고···.’
기생체는 금방 처리했지만, 리리의 눈에 이 숲은 살아남기 힘든 상태였다.
너무 많은 양분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황무지 한가운데에 있는 숲. 강선후를 돕기 위해 외벽을 두르기까지 했는데, 그건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동이었다.
숲은 지금 사실상 빈사 상태였다.
그리고 숲이 빨아들인 양분은 저 번데기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기생체가 번데기를 섭취하기 전에 사망했으니까.
그렇기에 번데기를 숲의 심장 곁에 둔다면, 숲은 다시 그 에너지를 되찾고 생존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강선후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사냥의 전리품, 그중 큰 가치를 지닌 것 일부를 숲을 위해 기꺼이 포기했다.
“메에에—.”
버뮤다 숲의 화신, 붉은 새끼 양은 감사를 표하듯 다리에 대고 머리를 부볐다.
강선후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로 내가 너한테 들어갈 때마다 짜증만 내지 말아줘. 난 그거 말곤 안 바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앞으로 버뮤다 숲이 강선후에게 온 힘을 다해 협조할 거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회상에서 벗어난 리리는 모든 일을 끝내고 근처 옹달샘에 갔다 온 강선후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은 뒤, 오두막 외부에 둔 긴 의자에 양팔을 베고 누웠다.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이 남자는 지배자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위에 있는 지위의 자격자일 수도.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필요가 없었다. 고민은 길었고,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리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다소곳한 걸음으로 강선후에게 다가갔다.
분명 자신이 접근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강선후는 모자를 얼굴에 덮은 채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익숙해진 걸까.
곁으로 다가간 리리는 그를 잠시 내려다본 뒤.
앙.
그 손가락을 깨물었다.
“···!?”
────────────────────────────────────
ep 8.영혼 연결, 헌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