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ep55. 피라미드 탐사 (4)
숭배자는 어느새 고개를 치켜들고 강선후와 의문의 생명체 사이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크르르…….”
늑대의 형상은 예상치 못한 반격을 두 번이나 당한 탓인지 노골적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밀라-토리타스milla-toritas.
시간을 되감거나, 일부를 반복 재생하는 룬 문장이었다. 세계의 시간을 통째로 과거로 보내거나 빠르게 재생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숭배자들이 다른 시간선의 자신을 단시간 불러내어 분신을 만들어 내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늑대에게 공격받을 뻔한 상황에서 1분 전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응용했다. 숭배자가 기억하는 한 누구도 저런 식으로 사용하려는 걸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해서 너무나 먼 과거로 돌아가 버린다면, 어쩌면 존재 자체가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통제하는 건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었고, 목숨을 걸 만한 메리트가 있는 행위도 아니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밀라milla의 위험성을 몰라서였을까?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저 남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단 하나뿐이었다.
확신. 너무 노골적이고 단순해서 읽기 쉬운 감정. 또 그만큼 명확하여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감정.
저 남자는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늑대가 다시 달려들기 위해 앞발을 모았다.
“……?”
그러고는 그 상태로 정지되었다. 늑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숭배자는 무수히 많은 입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늑대의 형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그 늑대의 형상 안쪽에 얼기설기 엉킨 뿌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식물이 늑대를 안쪽에서부터 부여잡고 있었다. 수술 중 단단한 철심을 박는 것처럼, 안쪽에서부터 자신을 고정하는 뿌리 때문에 무릎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크르르…….”
뿌리의 시작점은 쿠크리였다. 강선후가 깊숙하게 박아넣고 도망친 쿠크리의 나무 손잡이가 가지와 뿌리를 뻗어 늑대 형상 몸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몰드란moldran. 식물 성장을 촉진하는 연금술사의 룬 언어야. 기억나지? 리리.”
“예전에 천공섬에 올라갈 때…… 썼던 거지?”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지 않아? 칼 손잡이로 가공된 나무의 조각마저 조금만 자극하면 이렇게 다시 뿌리를 내려. 그리고.”
촤악—!
돌돌 말려 있던 채찍이 강렬한 파열음을 내며 한 번에 펴졌다. 강선후는 천천히 늑대 형상에게 다가갔다.
늑대 형상은 당황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했지만 발끝 하나를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건 신목의 뿌리야. 내 친구가 특별하게 준 선물이지. 힘으로 어떻게 못 할걸.”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다가갈 뿐이었다. 벌써부터 승리를 직감하고 있는 걸까? 확실한 건, 몇 합 나누기도 전에 벌써 기세는 강선후 쪽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이었다.
늑대의 몸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다시 수천의 나비로 쪼개져 흩어졌다. 늑대 형상의 몸을 안쪽에서 고정하던 뿌리가 땅에 떨어져 굴렀다.
아주 작은 나비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다섯 줄기로 갈라지는 듯한 나비들은 다시 강선후를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강선후의 주변을 빠르게 도는 나비들.
무슨 공격을 하려고 하는 건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저것이 매우 화가 나 있고 불안정한 상태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기다렸다는 듯 채찍을 머리 위로 들어 휘저었다. 강선후를 감아 내듯 원을 그리며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채찍.
애초에 늑대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행동을 시작한 강선후였다. 즉, 늑대 형상이 이런 행동을 할 거라는 것까지 예상한 상황이었다.
채찍을 들지 않은 손에서 황금빛 광채가 발하더니 그 검지 손가락에 하늘색 반지가 끼워졌다. 거기에는 다섯 개의 짙은 파란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보석 중 하나가 빛을 발했다. 강선후는 동시에 그 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강선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원형의 마법진.
시동어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땅에 새겨진 룬은 스스로 발동했다. 모든 획이 빛을 발하며, 이곳의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강선후의 머리카락이 위로 솟아올랐다.
리리 역시 자신의 머리카락이 위로 붕 뜨는 걸 느꼈다. 정전기? 그 순간, 땅에 새겨진 자칫 복잡해 보이는 룬이 뭔지 깨달았다.
“이, 무식한……!”
리리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강선후는 외었다.
“씨르thir.”
손에서 시작된 물방울이 채찍을 타고 흐르는가 싶더니 나선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회전하는 채찍의 표면을 타고 흐르다가 뿌옇게 내린 안개처럼 주변을 퍼져 나가며 나비들을 적셨다.
동시에 땅에 새겨진 룬이 발동되었다. 리리는 잠시 허리에 묶어 두었던 천잠사의 망토를 급하게 펼쳐 몸을 가렸다.
그건 복잡한 형태의 룬이 아니었다.
그저 몇 번이나 중첩된 룬일 뿐.
전도체로 가득 찬 이곳에 전류가 퍼져 나갔다. 먼지들이 물에 젖어서 분진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미세하게 깔린 물안개들이 나비와 나비 사이로 전류가 통하는 걸 수월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수천의 새가 세차게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벽에 부딪히며 공명했다. 여기저기에 스파크가 튀며 번쩍거렸다. 빛으로 이루어진 나비들은 비틀거리더니 땅으로 떨어져 그 형태를 잃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나비들은 에너지와 룬으로 이루어진 물방울이 되어 땅 위에서 요동쳤다.
순식간에 작은 조각 하나마저 그 형태를 잃고 완전히 힘을 잃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구석에 몸을 날려 망토로 몸을 휘감았던 리리는 슬쩍 고개만 내밀어 주변을 살핀 후, 들고 있던 걸 전부 집어던지고 강선후에게 달려갔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선후 역시 이 전류에 잔뜩 노출된 게 분명했다. 그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괜찮아? 괜찮은 거지?”
“……안 괜찮아.”
그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곧 괜찮아야 저런 말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긴장이 탁 풀린 리리는 그제야 조급하지 않은 시선으로 강선후의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와,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 확실히 준비 없는 전투는 힘들어. 나는 이렇게 싸우는 타입은 아닌 듯.”
“당신 미쳤어? 아니, 매번 이런 방법 말고는 머리가 안 돌아가?”
“인마. 이것도 머리가 돌아가야 할 수 있는 거야. 묘수 아니었냐?”
“묘수는 무슨 말이나 못 하면! 여섯 중첩 테르마tterma가 말이 돼?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지난번에 실험하다가.”
리리의 손이 팍 하고 강선후의 등짝으로 날아갔다.
“이 멍청아! 이번에는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다고!”
강선후는 그저 낄낄 웃으며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확실히 피해가 없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여기저기 피부가 붉게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 리리는 심경이 복잡한 눈으로 그걸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우선 리리의 상태를 살핀 뒤,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곧 둘의 시선은 한곳으로 향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숭배자였다.
“쟤 튀겨졌을까?”
“사람한테 튀겨졌다가 할 말이야?”
“안 죽었겠지?”
“……확신은 못 하겠는데.”
연기가 일렁인 채 축 늘어져 있는 숭배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움직였다.”
“사후 경직 아니겠지……?”
* * *
숭배자는 문뜩 정신을 차렸다. 몸을 일으키려다가 가슴 쪽에서 몰려오는 큰 통증에 신음성을 흘렸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공격을 받아 생긴 상처였다.
살펴보니 어느샌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으윽…….”
“어, 일어났어?”
고개를 들어 보니 흑발의 하얀 여성이 자신을 살피러 다가오고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숭배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난 건…….”
“쉿.”
리리는 숭배자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얼떨결에 숨마저 죽인 숭배자는 입을 꾹 다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다 뭐지?
리리 역시 숭배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버릇처럼 새겨진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여성이 귀족의 자제라는 사실을 숭배자는 바로 깨달았다.
숭배자는 이제야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이곳의 풍경이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닥에는 인공 생명체의 물방울들이 무수히 퍼져 있었다. 그 표면마다 미완성의, 혹은 조각난 룬 문자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숭배자가 놀랄 리가 없었다.
벽에 그을음으로 빼곡하게 적혀져 있는 룬 문자들이 숭배자가 놀란 이유였다.
새로운 불꽃이 솟아나더니 이미 빼곡히 적힌 룬 문자 옆에 또 다른 문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몇 개나 되는 불씨가 벽에 그을음을 만든다. 문자 옆에 이어서 새기기도, 문자 위에 추가적인 문자를 덧대기도 하면서 새로운 문자를 적어 낸다.
숭배자는 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벽에 새겨지고 있는 이 룬들의 성격을 잘 알 수 있었다.
이건 별개의 룬들이 아니었다.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통째로 하나의 문단이 되는 룬이었다.
강선후는 방 한가운데에서 바닥에 손을 댄 채 한쪽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어깨에 희미하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저 상태로 먼지가 쌓일 동안 가만히 있었다고?
“이건, 대체…….”
숭배자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강선후가 그 자세 그대로 대답했다.
“우리 세상에서는 프로그래밍이라고 하거든.”
“……프로그래밍?”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힘을 가지고 있는 단어와 문장의 조합으로 명령어를 만드는 거야. 그걸 좀 복잡하게 하면 일종의 지능도 만들 수 있지.”
강선후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희미하게 떨리는 눈꺼풀 아래로 희미하게 눈동자가 보였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렇게 만들어진 지능이야.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손상되어 버렸지만.”
“뭘 하는 거지?”
“복구.”
“네놈은 지금, 네놈을 공격한 지능을 복구하고 있는 건가?”
“의도하고 공격한 게 아니잖아. 얘는 자기가 살고 싶어서 몸부림쳤을 뿐이라고. 우리 세상에서도 심신미약은 감형 요인이야.”
“…….”
“그리고 그런 지능이라면, 자신을 구해 줬을 때.”
강선후는 손으로 허공을 그었다. 반지에서 튀어나온 마법진이 허공에 빛의 물감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빛줄기가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으며, 곧 간단하고 명확한 시동어가 완성되었다.
“보답을 하겠지.”
“……아니라면?”
“그럴 리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시대에 만들어진 존재니까.”
강선후가 그린 시동어가 발동했다. 벽에 그을음으로 그려진 문자들이 거기에 반응했으며, 바닥에 흩어져 있던 에너지 방울들이 반응하여 한데로 모였다.
“……이게 대체 뭘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능이라니.”
리리가 그렇게 다시 한데로 뭉쳐지는 구슬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선후는 모여들어 떠오르기 시작한 구슬의 표면에 흐르는 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완벽하진 않았으나, 이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너희들은 전부 이게 뭔지 알고 있잖아?”
“……룬으로 만들어진 지능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리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이렇게 불러.”
수정이 희게 빛났다. 약간은 불안정하게 깜빡거렸지만, 그것은 허공을 미끄러지듯 움직여 분명히 강선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정령.”
“…….”
“정령은 황금의 시대에 언어로 만들어진 존재들이었던 거야.”
모든 정령이 지배자의 상을 본능적으로 섬겼던 이유.
황금의 유지를 잇는 열둘의 상을 섬기는 이유는,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불완전하게나마 안정을 찾은 정령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당신은…… 검은 태양의 시험을…… 통과…….」
그 순간, 수정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리리도 명확하게 들었는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당신은…… 검은 태양의 힘을 이해하는…… 존재……? 당신은…… 검은 태양과, 그를 따르는 이들을 이해하는 존재……? 맞…… 아?」
“너는 누구야?”
수정은 강선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밀라 그리뉴모milla griinwmo.」
완성되지 못한 지능에 힘겨워하며 룬 하나를 외었을 뿐이었다.
강선후는 이게 무슨 문장인지 알고 있었다.
미스터 흑염룡이 저택에서 도망치기 위해 균열을 소환할 때 이 룬을 사용했었다.
허공에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룬 마법진. 그리고 갈라지는 공간. 그렇게 만들어지는 직경 2m의 원형 균열이 뚫렸다.
그 건너는 완벽하게 검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보라색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검은 수정을 앞에 두고 손을 내민 채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 □□□ □□□.”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알아듣겠어?”
리리가 숨소리 나 다름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악마와 함께 사라진다. 이는 검은 태양의 마지막 권능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룬이야. 그리고…… 악마를 봉인하는 주문이야.”
자세히 바라보니, 수정을 가운데에 둔 거대한 마법진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는 다섯 개의 발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발판 중에 사람이 서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유일하게 서 있는 자는 강선후 일행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계속해서 봉인 주문을 외우고만 있었다.
“…….”
나머지 발판 네 개.
그 근처에는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모두 사제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누군지는 제대로 볼 수 없었으나, 슬며시 보이는 그 손은 뼈마디가 다 보일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살아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서 있는 사람의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은 쓰러져 있는 이들의 것과 다를 바 없이 앙상했으며, 그냥 봐도 절로 걱정이 들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 □□□ □□□.”
하지만 주문을 외는 목소리만큼은 또렷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생명을 쥐어 짜내 주문을 외는 데에만 사용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걸까?
「저들을…… 구원해 줘.」
「모든 걸 바치고…… 자진해서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간 저들을…….」
그 순간, 세상이 한 번 더 흔들렸다.
이 밑에 있는 악마가 조금씩 더 세차게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