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ep55. 피라미드 탐사 (5)
「저들을…… 구원해 줘.」
「모든 걸 바치고…… 자진해서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간 저들을…….」
AI, 아니 정령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서 균열 안쪽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 □□□ □□□.”
—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악마와 함께 사라진다.
— 이는 검은 태양의 마지막 권능이라.
나조차도 의미만 간신히 해석할 수 있었을 정도로 고수준의 복잡한 언어였다. 물론 소리는 균열을 넘을 때 왜곡되는 현상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대단한 수준이었다.
“당신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룬이 있다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야. 이 밑에 있는 대악마는 황금의 시대 이전부터 존재해 온 거라고.”
최초의 전쟁터에서 거인왕 아틀라스와 싸웠던 악마다. 황금의 시대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면서 황금의 시대의 말미마저 장식한 놈.
“그런 놈을 봉인하는 데 평범한 룬이 쓰였을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한 뒤 몸을 일으켜 바로 균열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뒤에서 리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위험하잖아!”
물론 안다. 내가 이제까지 목격한 모든 균열은 굉장히 불안정했다. 비프로스트가 괜히 복잡한 구조물로 차원문을 지탱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하나하나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확인해야 해.”
균열을 넘어가자 냉기가 확 하고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혀 왔지만, 다행히 산소가 없는 공간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사소한 것 따위 고려하지 않고 바로 바닥에 그려진 룬, 쓰러진 네 명의 사람들, 여전히 서서 끊임없이 룬을 외우고 있는 사람을 번갈아 살펴봤다. 내가 있는 것 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신경 쓸 수 없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균열이 꺼져 버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나는 우선 서 있는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검은 태양 문양이 그려져 있는 보라색 천으로 만들어진 후드. 미스터 흑염룡이 입은 옷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 얼굴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눈이 까뒤집어 있었으며,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명확하기 그지없는 그 발음과는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의식이 없는 거 같은데.”
의식이 없는데도 행동이 이어진다. 어마어마한 의지와 집착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굉장히 인상 깊은 부분이고 이런 것에 관심이 자주 팔리는 나지만, 지금만큼은 감성을 조금 뺄 때다. 나는 바로 시선을 내려 바닥에 그려져 있는 거대한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최소 16중첩 짜리 세 문단.”
“……그 정도라고?”
균열 건너편에서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던 리리가 듣고 놀랐다. 애초에 알아볼 수 없었기에 그저 처음 보는 룬이라고만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가 당장 알아볼 수 있는 것만. 아마 더 복잡할 가능성이 커.”
“그게 가능해?”
“못 할 거야 없긴 한데…….”
이론상일 뿐이다. 이 정도라면 룬의 창시자 정도는 되어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디테일이다.
하지만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 어렵지 않게 룬의 현 상태를 해독할 수 있었는데.
“이 룬,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무슨 의미지?”
어느새 몸을 일으킨 흑염룡이 물었다. 역시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지.
의미를 묻는데, 의미야 간단하고 명료하다.
“이제 곧 대악마가 깨어난단 소리야.”
“수리할 수 있겠어?”
“이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애초에 자신들의 모든 걸 다 바친다는 가정하에 만들어 낸 특수한 룬이야.”
아틀란티스의 주인 디오네의 아버지이자 모든 거인들의 왕, 아틀라스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나아가 황금의 시대를 조각내버린 녀석이 깨어난다.
물론 황금의 시대는 당시에 이미 말기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악마가 얼마나 강력한지 충분히 설명이 되는 역사다.
나는 우선 땅에 써 있는 룬 문자를 최대한 뇌에 새겼다. 그사이에 균열이 일렁이기 시작해서 서둘러 복귀했다. 내가 통과하자마자 바로 닫히는 균열, 뒤돌아보니 정령이 힘이 부친 듯 깜빡거리고 있었다.
황금 지침에서 노란색 보석을 꺼냈다.
『연금술사의 시약병』
세 번째 병에는 아직 태양빛이 담겨 있다. 이제는 몇 방울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게 태양의 상징성을 여실히 보여 주는 듯했다.
나는 깜빡거리면서 떨리는 정령에게 다가가 한 방울 떨어뜨렸다. 사막에서 빗줄기를 만난 기분이려나? 어찌 되었든 그 빛이 조금 안정되는 모습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정령과 눈을 맞췄다.
“정신이 들어?”
「…….」
그 표면에 흐르는 룬만 봐도 불안정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말을 이었다.
“황실의 인장은 어디에 있지?”
내 말에 문뜩 리리가 흠칫했다. 그게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모양이었다.
「황실의 인장, 황금의…… 유물? 왕이 목자의 상에게 수여한 것?」
“응. 뭔지 알고 있구나.”
「과거, 어떤 목자의 상이…… 피라미드에 바쳤어. 그 힘과 비밀을…… 대악마의 정화를 위해 사용해 달라고.」
“그래서, 소모됐어?”
「아니, 온전히 보관되어 있어…….」
제국은 수백 년 전 어떤 황제가 인장을 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인장이 피라미드에 있을 가능성을 이야기했었지.
“버린 게 아니라, 더 큰 뜻을 위해서 희생한 거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악마를 처리할 방법이 있는 거야?”
「이곳 전체가…… 악마를 죽일 무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황금의 유물 덕분에 완성된…….」
“좋아.”
그렇다면 이야기는 명확해진다.
“다른 피라미드도 빠르게 돌아보자.”
“어떻게 할 거야?”
리리가 물었다.
“되찾아야지. 황실의 인장.”
“무기의 일부가 되어 있다잖아?”
“무기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만들면 되잖아?”
“…….”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놀랐다. 리리의 눈빛은 강했다. 공포 역시 숨기지 못했지만, 그보다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할 거면 빨리 움직이자.”
“좋아.”
황금의 시대를 끝장냈다는 악마.
황금의 왕좌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리리의 심기를 건드리기엔 충분한가 보구만.
나는 정령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
손등에 빛나기 시작한 주홍빛 송곳니 문신.
「이건…….」
“지금부터 나랑 친구 하자는 뜻이야.”
불안정한 정령은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연히 이목구비가 없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도와줄게.”
그 순간, 정령이 내 영혼을 받아들이는 게 느껴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기분이다.
하지만 감상에 젖는 건 다음 시간에. 지금은 서둘러 움직일 때다.
구그그그—.
시간이 가면 갈수록 봉인이 풀려 가고 있으니까.
이후 피라미드를 나갔다. 정령이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한 덕분에 나가는 길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가는 입구는 지상에 붙어 있었다. 들어오는 입구처럼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건 참 다행이었다.
“부탁할게.”
하얀 구슬은 반짝이며 벽에 달린 장치에 명령을 내렸다. 곧 톱니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육중한 돌문이 모래를 밀어내며 바깥으로 열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검은 태양 아래에 펼쳐진 사막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풍경은 피라미드에 들어갔을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
리리는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막 각지의 모래들이 비정상적으로 높이 솟아 있었다. 자연스러운 모래 산이 아니라, 송곳처럼 삐죽삐죽한 모습이었다.
어떤 부분들은 그와는 반대로 땅 아래로 푹 꺼져 있었다. 그 역시 송곳처럼 날카로운 원뿔 형태로 파여 있었다. 솟아오른 부분과 꺼진 부분들이 사막 여기저기에 불가사의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막 전체가 거친 멜로디의 음향 그래프의 형태를 띠고 있는 거다.
“사막이 무너지고 있어.”
말이 되는 문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피라미드 유적 중앙 기계장치의 지하에서 봤던 풍경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 거대한 사막 아래에 존재하는 엄청난 규모의 공동.
그러니까 이 사막은 공동을 덮고 있는 껍데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다. 당연히 자연스러운 지형이 아니다. 그 힘의 균형은 그저 대악마의 봉인마법으로 유지되어 있었던 것뿐.
그 균형이 깨진다면 안정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고, 이게 그 결과였다.
“왜 하필 지금일까?”
리리가 의문을 품었다.
“왜 하필 우리가 오고 나서 봉인이 풀리기 시작한 걸까?”
“끝까지 버텼던 거야. 무언가 희망이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 희망이 보이니까 한계에 달하기 시작한 거지.”
나는 균열 안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 그 노인은 어쩌면 이미 죽어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런 의식도 없었고 그저 기계가 되어 룬을 외고 있었으니까.
이 상황을 해결해 줄 누군가 올 때까지 그저 버텨 왔던 거다. 자신의 희생이 의미 없는 결말에 닿지 않도록.
리리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위험한 일이야. 꼭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일까? 탐험가 연맹하고 제국 황실 세력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내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그 의도는 알 수 있었다. 꼭 우리가 이 일에 자진해서 뛰어들어야 할까? 이건 합리적인 고민이다. 내가 보기에도.
하지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왕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황금 왕이었다면, 지금 내 상황에 서 있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불가사의 그 자체인 인물이지만, 황금의 시대에 대해서 이해할수록 그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단편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왕이었다면…….”
리리는 내 질문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답은 간단하다.
“왕좌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왕 흉내도 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런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품고 있었던 고민에서 해방되는 것을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리리는 여전히 내가 왕좌를 찾아가 숙명을 완수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당신은 숙명을 따라 왕좌를…… 아니야.”
리리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안 물을래.”
그렇다면 앞으로 행보에 대한 논의는 끝난 셈이다. 바로 정령에게 물었다.
“다른 피라미드에는 뭐가 있어?”
「나의 일부. 나머지 두 개.」
“너는 조각나 있나 보지?”
대답은 없었지만 긍정을 표시하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정령이 미완성이라고 느껴진 건 그 이유인 탓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 유적은 대악마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 그리고 넌 그걸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능. 맞지?”
정령은 대답 대신에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셀피랑 행동하는 스타일이 비슷한 감이 있다. 정령은 다 이런가?
어쨌거나 유적의 비밀은 풀었다.
“검은 태양 숭배자들은 대악마를 봉인하고 있었고, 이 유적은 대악마를 죽일 그들의 비밀병기라는 거지?”
나는 다시 정령을 바라보고 말했다.
“내가 만약에 이 무기를 작동시켜 주면, 이 무기가 대악마를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있어.」
이제까지 희미하고 떨리기만 하던 목소리였는데 지금 만큼은 확신에 가득 찬 대답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옆에서 미스터 흑염룡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로크 벨라 때문에 잊은 기억들이 조금씩 떠올라?”
“……모르겠다.”
그렇겠지. 로크 벨라의 효과는 꽤 지독하니까.
하지만 유적을 돌며 조금씩 기억을 더듬다 보면 떠오르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디오네도, 키호테도 그랬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은 끝내 떠올렸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정령이 내게 호의적으로 변했으니 저곳을 공략하는 건 쉬울까?
「……저곳을 지배하는 내 다른 조각은, 나랑 분리되어…… 있어.」
“따로따로 공략해야 한다는 말이네.”
물론 전혀 아쉽지 않다. 단순히 시간이 충분하게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유를 부릴 수는 없겠지.
출발하려고 할 때, 붕대가 감긴 가슴 쪽을 부여잡던 흑염룡이 물었다.
“악마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악마는 필멸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내가 악마를 몇 번이나 상대해 봤다고 생각해?”
“…….”
검은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태양이 눈물을 흘리면서 신기루를 보여 줬었지. 총 세 번이었나? 이 피라미드에 접근했을 때는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누군가 도와주길 원했던 걸지도 몰라.”
신기루를 보고 호기심을 느껴 모험을 출발할 정도로 추진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안에서 피라미드의 시험을 통과하고 정령을 만날 수 있는 사람.
검은 태양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게 정말로 도움을 청하는 게 맞다면, 너는 그 도움을 수락할 생각인가?”
“신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신기해서라도 뭘 해야 하나 기웃거릴걸.”
“틀린 말은 아니지.”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리리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두 번째 피라미드로 향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