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ep55. 피라미드 탐사 (6)
탐험을 할 때, 도전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어쩌면 당연한 게, 가장 이상적인 탐험이란 미지를 앞에 두고 거기로 달려드는 행위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많이들 동의하겠지.
그렇기에 미지에 대한 도전에 반드시 딸려 오는 두려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말이야.
피라미드 안이 예고도 없이 물에 가득 차 있는 건 너무한 거 아냐?
“우프푸웁—!”
우리는 문이 열리자마자 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나는 바로 몸을 돌려 피했지만, 내 뒤에 있는 리리가 연고도 없이 물을 흠뻑 맞아 버렸다. 리리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혼이 다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눈을 꿈뻑대며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머리카락이 푹 젖어 미역줄기마냥 늘어져 물을 뚝뚝 흘렸다. 리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리리 깨끗해졌네. 사막에서 물이라니. 완전 반갑지?”
“……어. 그러네.”
오랜만에 초기 리리의 퉁명스럽고 딱딱한 분위기를 맛봤다. 리리는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쥐어짰다. 저렇게 긴 거 안 불편한가 싶은데, 머리를 기르는 건 로얄 블러드의 전통성 같은 거라는 이야기를 해 주더라.
우리는 피라미드 안쪽을 바라봤다. 첫 번째 피라미드처럼 꼭대기부터 시작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문을 열자 그만큼 물이 빠져나간 거다.
아마 1층에서 문을 열었으면 그냥 난리가 났겠지. 엄청난 수압으로 목숨이 위험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나의 다른 조각은, 이 아래에.」
어눌하지만 충분히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피라미드에서 그러했듯,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피라미드 바닥에 두 번째 정령의 조각이 있다는 말이다.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리리가 그렇게 말했다.
“이 안에 물만 있다고 해도 저 아래까지 내려가서 정령의 조각을 들고 올라오는 건 너무 위험한 판단…….”
풍덩!
물론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물로 뛰어들었다. 리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전줄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위험할 수 있으니 과감하게 포기했다.
지금은 이런저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잖아? 나는 여전히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백색의 구슬을 믿고 있었다.
정령의 첫 번째 조각은 말이 없었지만, 나를 지켜 주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서 두 번째 정령의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조각을 들고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솔직히 마지막까지 가서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살짝 위험했다.
“푸하!”
“가지고 왔어?”
나는 두 번째 정령 구슬을 손에 들고 내밀어 보였다. 리리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우선 별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꽤 숨을 오래 참네. 인간 같지 않게.”
“그런가?”
“아니, 됐어. 새삼스럽게 이런 말 하기도 뭐 해.”
리리의 도움을 받아 위로 올라간 뒤, 피라미드 아래로 내려왔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두 개의 정령 구슬. 원래는 하나여야 하는 놈들이다. 왜 세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나는 두 개의 정령 구슬을 눈앞에 둔 채 잠시 쉬면서 생각에 잠겼다. 최소한 흠뻑 젖은 몸을 말릴 여유 정도는 있을 테니까.
부상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옆에서 쉬고 있는 흑염룡은 말없이 내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선 정령 구슬부터 눈여겨봤다. 두 개의 구슬은 서로 교감이라도 하는지 내 의도를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요하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표면 위에 흐르는 룬 문자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리리는 그런 내 뒤에서 정령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뭔가 알겠어?”
“각자 다른 명령어야. 그러니까 우리 뇌가 좌뇌, 우뇌, 감정 부분, 계산 부분이 나뉘어져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우리 뇌가 그렇게 나뉘어져 있다고?”
나는 고개를 돌려 잠깐 리리를 바라보았다. 맞아. 얘 이계 사람이었지. 뇌과학은 지구의 산물이니까…….
다시 정령 구슬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비유적으로 그런 느낌이다. 나는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룬의 표면을 해석하고 있었다.
“아니, 탐험하면서 머리를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현타가 몰려와서 피식 웃게 되어 버렸다. 리리는 내 모습을 보며 옆에서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라 어쩔 수 없잖아?”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어도 내가 직접 했어.”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세 번째 피라미드로 향했다.
* * *
리리는 일어나서 가슴을 쭉 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 순간 바람마저 멈춰버린 사막. 저 멀리 날카롭게 솟아올라 있는 비정상적인 모래 산들은 공포를 자아냈다.
구그그그그—
땅이 한 번 더 진동하더니 격변했다. 솟아오른 부분은 더 높이 솟아오르더니 끝내 이리저리 촉수처럼 휘어지기 시작했다. 아래로 꺼진 부분의 바닥은 이제 여기에선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었다. 바로 이 피라미드 유적을 포함한 근방에서는 저 비정상적인 지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유적이 지형의 변화를 억제하기라도 한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는 것 같아 일부러 눈을 돌렸다.
그녀는 지금 강선후의 제안에 따라 기계장치 광장 근처에 남아 있었다.
— 이번에는 혼자 갔다 올게.
— 그래도 되겠어?
— 그편이 안전할 거 같아. 여기에서 정령하고 저 미스터 흑염룡을 좀 보살펴 줘.
리리는 강선후가 흑염룡이라고 부르는 젊은 인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까 전보다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가슴에 난 큰 상처는 불안정한 정령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었고, 강선후가 늦지 않게 응급 처치를 해 줬지만 당장 회복할 수는 없는 상처였다. 더군다나 여기는 사막. 상처를 회복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리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쪼그려 앉은 채 인간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데, 수백 년, 아니 어쩌면 수천 년 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이상했다.
리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
숭배자는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는 듯 심호흡을 하다가 문뜩 리리가 다가왔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는 의문이 가득했다가 곧 경계심으로 바뀌었다.
“하, 탐험가의 종이여. 제 주인이 없는 사이에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헛소리 말고. 자.”
숭배자는 리리가 내민 물병을 멀뚱이 쳐다보았다.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허약한 인간 주제에…….”
“뭐?”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얼마나 버티고 있는 거야?”
“뱀파이어치고는 얌전하다고 생각했더니, 제 주인 눈 안이라 내숭을 피운 것인가? 주제를 모르는 건 종족 따라가는 구…….”
“그냥 뱀파이어 아니야. 로얄 블러드야.”
숭배자는 자신의 앞에서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는 리리를 보며 흠칫했다. 리리의 날카로운 붉은 눈이 숭배자의 눈동자를 관통하듯 주시했다. 그 눈빛에는 뱀파이어 특유의 오만함이 있었다.
숭배자는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공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뱀파이어의 눈앞에서 공포에 떠는 건 인간의 영혼에 새겨진 각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주 오래전, 황금의 왕이 모든 신의 자손을 통합하기 전 인간은 뱀파이어의 먹이였으니까.
인간이 천성적으로 뱀파이어를 두려워하고, 또 증오하는 이유는 그 역사가 영혼에 새겨진 탓이었다.
“불경한 종족이 제 주인이 사라지고 드디어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숭배자는 끝내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상처에서는 피 냄새가 날 터, 그 냄새가 이 뱀파이어를 자극한 게 분명했다. 저도 모르게 일어나 뒷걸음질 치던 숭배자는 상처에서 솟아오르는 격통에 비틀거렸다.
“……에휴.”
그런 리리가 갑자기 눈을 감으며 한숨을 푹 내쉬는 리리.
“……?”
“봐봐. 너 상태 안 좋잖아. 괜한 자존심 세우지 좀 말라고. 자, 물 마셔.”
숭배자는 얼떨결에 리리가 건넨 물을 받아들였다. 그 뒤, 리리는 헌팅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숭배자가 다시 놀라기도 전에 자신의 손바닥을 베었다. 피가 땅으로 떨어지는가 싶다가는 붉은 증기가 되어 천천히 솟아올랐다.
숭배자는 자신의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사라져감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로얄 블러드 여자의 행동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오랜만에 종족 이름값을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리리는 숭배자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그 사람한테 물들기 시작했나 봐.”
“…….”
숭배자는 이 시대의 뱀파이어가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훨씬 더 유순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흡혈귀는 흡혈귀, 몸ㅁ 속에 피가 흐르는 이들과 유대를 쌓지 않는 종족, 배신의 상징.
그런 뱀파이어가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둘은 그 뒤 대화 없이 강선후를 기다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숭배자가 입을 열었다.
“……로얄 블러드라고 했지?”
“어. 처음 봐?”
“아니, 많이 봤지. 몰락한 제국의 도시, 솔라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있던 리리가 고개를 번쩍 들고 숭배자를 바라보았다.
“솔라에 로얄 블러드가 있었다고? 정말로?”
리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묵었던 한 달간, 로얄 블러드는 무슨 뱀파이어의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숭배자는 그런 리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앞으로 그 누구 앞에서든, 네가 로얄 블러드라는 사실을 숨기는 게 좋을 것이다.”
“왜? 로얄 블러드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예전, 거대한 원한으로부터 비롯된…….”
그 순간이었다.
콰가가강—!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강선후가 들어갔던 바로 그 피라미드였다. 리리와 숭배자 그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자리에서 펄쩍 뛰듯 일어났다.
피라미드의 측면부가 터져 나갔다. 그 어떤 폭발이 이 견고한 피라미드를 손상시킬 수 있는 걸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생각할 새가 없었다. 솟아오르는 연기,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연기와 함께 높이 솟아오르는 저건…….
강선후였다.
순간적으로 리리의 눈이 붉게 빛났다. 핏발까지 선 그 눈동자로 강선후의 상태를 살폈다. 우선 맨 처음 본 건 각종 보호 망토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건 다행이었지만.
“안 보여.”
하지만 그 어떤 때와 마찬가지로 강선후의 영혼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강선후의 영혼은 아주 특별한 때가 아니라면 애초에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푸카puka.”
리리는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나갈 준비를 했다. 뭘 하겠다는 심산은 아니었다. 그저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크르르릉—!”
검은 바람이 숭배자와 리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곧, 검은 바람에 푸른 불꽃이 붙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