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ep56. 몰락한 자들의 망치 – 발칸 셀루니아 (1)
“크르르릉—!”
검은 바람이 숭배자와 리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곧, 검은 바람에 푸른 불꽃이 붙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렐릭시나는 그대로 피라미드의 표면을 타고 올랐다. 검은 석재가 사방으로 부서져 튀었지만 난폭한 흑마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가속도를 붙은 뒤, 그 푸른 불꽃의 갈기와 발굽을 길게 늘어트리며 공중으로 도약했다.
강선후도 그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무언가 긴 줄이 강선후에게서 시작되었다. 그건 강선후 주위에 다각도의 나선을 그렸는데, 곧 채찍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렐릭시나는 강선후에게 달려들었고, 강선후는 채찍을 크게 휘둘렀다. 그 끄트머리가 렐릭시나로 향했는데, 타격 없이 그 목을 감아서 단단하게 고정했다.
그 뒤, 강선후는 채찍에 가해진 힘에 몸을 실었다. 크게 원을 그리며 렐릭시나와 강선후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곧 강선후는 곡예를 부리듯 그 등에 올라타 몸을 강하게 고정했다.
렐릭시나는 그대로 허공을 걷어차 방향을 틀었다. 아무런 발판도 없이 그런 행동을 했다.
“……뭐야. 저게.”
리리가 고개를 돌려보니 숭배자가 몸을 일으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리리는 저 말이 원래는 와일드헌트의 유령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저런 행동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렐릭시나는 그대로 피라미드의 표면에 착지해서 미끄러지듯 빠르게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 경로를 따라 후드드득 하고 석재 표면이 사정없이 부서져 갔다.
그렇게 바닥에 도달한 뒤, 렐릭시나는 빠르게 중앙 광장으로 달려왔다. 리리는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달려갔다. 맨 처음 한 일은 강선후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강선훈의 재킷 오른팔 부분이 심하게 그을려 있었다. 안쪽에도 화상을 입은 걸까? 손등의 화상으로 보아 보통 폭발에 휘말린 게 아닌 모양이었다.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야?”
“후…….”
강선후는 렐릭시나에서 내린 뒤, 이제는 세 개가 된 정령 구슬을 눈앞에 나열했다. 모든 구슬이 다 모인 상황이었다.
강선후의 행동에서 조급함이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무슨 상황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제야 좀 알겠는데, 피라미드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장치 같은 거였어.”
“저긴 무슨 역할이었는데?”
“저 안은 상황실이자 제어실.”
강선후는 기억을 더듬어 그 안에서 본 걸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상황실에서 대악마의 봉인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어. 그리고 동시에 봉인을 제어하는 역할도 하는 거 같았고.”
“그럼 방금 그 폭발은 뭐야?”
강선후는 한 자리에 나열된 정령 구슬의 표면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집중의 바닷속으로 풍덩 들어간 느낌이었다. 저렇게 두면 조만간 자신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리리는 다시 확실하게 되물었다.
“당신이 튕겨 나왔던 그 폭발은 뭐야?”
“……제어 장치가 과부하 되었어.”
강선후는 마지막 세 번째 정령 구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른 것보다 작고 주황색을 띠고 있는 구슬.
리리는 그 정령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통제하려고 해 봤는데 무용지물이더라고. 간신히 얘를 살려서 나오는 선에서 그쳤어.”
“그렇다면…….”
강선후는 힐끗, 사막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름이 쏟아지며 비가 내리듯 사막이 그 형태를 잃고 아래로 무너져 내리며 소멸하기 시작했다. 장엄하고, 또 끔찍하도록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봉인이 해제됐어.”
적란운처럼 요동치며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사막.
그 가운데에 우뚝 서 있던 날카로운 뿔만이 이 격변 속에서 가만히 있는 존재였다.
리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압도적인 풍경에 잠시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머리카락이 뒤흔들리도록 휘저은 뒤,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쿠그그그그—
사막은 계속해서 무너져 갔다. 이제는 제대로 발을 디딜 수 있는 바닥마저 없었다.
비를 한껏 뿌린 뒤 사라져 가는 거대한 적란운처럼, 사막의 모래 하나하나가 분해되듯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유적 주변은 미동도 없었다. 이유를 할 수 없었다. 왜 유적 주변의 땅은 저 영향력에서 자유로운가?
바닥의 아래가 드러나고 있었지만 이 위치에서는 그 깊이 아래의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사막 아래에 있는 공간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허공이자 어둠이었다.
거길 덮고 있었던 사막이 사라지자 점차 검은 태양의 햇빛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바닥에서 오랜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숭배자들과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너무 아래에 있었고,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시선은 거기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무너지는 사막의 모래 아래.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뼈.
죽은 거인의 무덤에서 파낸 것 같은 그 거대한 뼈는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 경추에 돋아난 수많은 뿔 중 하나가 사막 위에서 보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게 들었다. 뻥 뚫린 그 눈 안에는 어둠뿐이었다. 검은색 뼈와 틈새마다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무거운 검은 연기.
황금의 말기를 부순 대악마를 표현하기에는 이 문장으로 충분했다.
악마가 입을 열었다. 악마학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는 리리라도 곧 저 입에서 무언가 강력한 힘이 방출된다는
“선후? 이제는 결단을…….”
그 순간 리리는 보았다.
강선후 눈앞 허공에 떠오른 네다섯 개의 투명한 ‘창’들을.
그 창들에는 이런저런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강선후가 지구에서 사용하는 문자와 숫자가 끊임없이 움직였고, 이런저런 그래프의 수치가 실시간으로 변동하고 있었으며, 다른 창에는 룬 문자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며 끊임없이 수정되고 있었다.
세 개의 정령 구슬은 강선후의 룬 문자 리듬에 맞춰 일렁거렸다. 마치 강선후의 명령을 받아 그때그때 형태를 바꾸고 있는 듯했다.
“뭐 하는 거야?”
“오류 수정.”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강선후는 지금 정령을 창조하고 있었다.
황금의 시대 이후에 유실되었던 기록, 그리고 기술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어어어어—.」
악마가 울부짖었다. 낮고 고요하게 울리는 소리.
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을 죽이고 영혼을 흔드는 힘이 담겨 있었다. 바닥에 있는 숭배자들이 일시에 쓰러졌다. 검은 기운의 광선은 소리의 속도로 강선후의 일행이 있는 유적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이었다.
“……검은 신을 섬겼던 존재는 들어라.”
강선후는 이계의 고전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리리는 고개를 돌렸다. 강선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모니터들이 하나의 결과값을 도출하고 있었다.
강선후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맹수의 영혼이 다시 한번 거대하게 그 머리 위에 떠올라 기세를 발했다.
「듣고 있습니다. 내 주인.」
동시에 깨달았다.
어느 순간, 정령 구슬은 거대한 하나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출항을 명령한다.”
그 순간, 세 개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었던 수정이 허공으로 치솟아 보라색 빛을 내었다.
광선이 뿜어져 나와 정가운데에 있던 기계 장치에 에너지를 전달했다.
기계 장치 위에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강선후가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그 순간, 유적 전체가 떠올랐다. 유적을 덮고 있었던 모래가 폭포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유적의 모습이 드러났다.
“……배?”
아니, 이건 단순한 배가 아니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이것은 배라고 부를 수 없는 규모였다.
유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모함이 엔진 구동음을 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쩌어어엉—
악마가 내뱉은 기운은 허공에서 무언가 부딪혔다. 투명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보호막이 순간적으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정령은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몸을 펼쳐 거대한 홀로그램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건 함선의 각 부위의 현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제어 모니터가 되었다.
「대 악마 결전병기: 몰락한 자들의 망치 – 발칸 셀루니아」
「67퍼센트 가동 완료. 입력된 작전을 시작합니다.」
강선후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리리와 숭배자를 지나쳐 함선의 선수로 향했다. 그 눈동자에서 빛을 발하는 룬을 볼 수 있었다.
숭배자는 몸을 일으켜 그 뒤를 따라나섰다. 꼭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강선후 앞에서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숭배자 역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강선후가 본 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검은 태양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 중심부는 여전히 검은색이었으나, 붉게 타들어 가던 표면의 일렁임은 하얀빛을 내고 있었다. 검은 태양은 지금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권능을 지상에 투사하고 있었다.
검은 태양의 빛이 강선후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권능을 눈으로 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숭배자는 그 부분에서 순간 질투를 느꼈다.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검은 태양을 섬겨 왔는데, 검은 태양은 이제까지 그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남자를 선택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에 의문을 표하거나, 반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은 숭배자 역시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전방, 웅크린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대악마를 바라보는 강선후.
숭배자는 그 뒤에 서서 물었다.
“……두렵지 않은가?”
“뭐가?”
“저 악마가.”
엘프들은 악마를 ‘두려움이 형상화 된 존재’라고 불렀다. 그 호칭은 종족마다, 문화마다 달랐지만 의미는 한 점으로 수렴했다.
악마는 신의 자손들이 품는 공포를 먹고 살며, 그렇기에 쳐다보기만 해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강선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악마를 바라보았다.
“무섭지.”
“무섭다고?”
“사막을 앞에 두고서도, 드높은 설산을 앞에 두고서도, 벌레가 잔뜩한 늪지대가 펼쳐졌을 때도. 단 한 번도 무섭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냐? 사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을 우습게 보는 거라고.”
“……그럼 어째서 악마 앞으로 나서는 거지?”
“그걸 극복하는 재미에 중독되어 있거든.”
숭배자는 강선후가 오히려 웃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표정에 넋이 빠져 있을 때, 뒤에서 뱀파이어 가 따라왔다.
“미친놈.”
“솔직히 이번에는 그런 말 들어도 할 말 없는 거 인정.”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낄낄거렸다. 그리고 슬쩍 뒤쪽 위를 올려다보았다. 정령이 만들어 낸 홀로그램 제어 시스템.
그걸 읽을 수 있는 사람 역시 강선후가 유일했다.
“……가볍게 기싸움이나 해 볼까?”
정령은 그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위이이이잉—
유리로 된 바닥의 뚜껑이 열리고, 피라미드의 표면이 벗겨지며 거포 수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이어 거친 기계음을 내며 한 점을 조준했다.
「충전 완료.」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포들이 일시에 검은색 불꽃을 뿜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