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ep56. 몰락한 자들의 망치 – 발칸 셀루니아 (2)
십수 개의 화포가 불꽃을 발하고 무언가 날아가 대악마의 몸에 부딪혔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폭음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화약 냄새는 나지 않았다.
“검은 태양 숭배자들이 이런 걸 만들었을 줄은 몰랐는데.”
나는 균열 안에서 죽음마저 극복한 채 끊임없이 봉인 주문을 외던 노인을 떠올렸다.
우리가 간과한 게 있다. 검은 태양 숭배자들이 좀 음침해 보이는 건 사실이더라도, 이들 역시 ‘그’ 시대를 살아온 구성원들이라는 점이었다.
심지어 다른 황금의 유물처럼 남겨진 것들이 아니었다. 그 유지를 이제까지 악착같이 이어 온 자들이었다.
“이들은 대악마의 습격 이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해 왔었어. 그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유적은 그 결과물이다. 마침내 뒤에 왔던 리리가 물었다.
“이게 대체 뭐야? 이런 무기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시대 말기에 모든 자원과 기술을 쏟아부어서 수천 년이 넘게 건조한 결과물이다.”
미스터 흑염룡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슬슬 기억이 돌아오나 봐?”
“……아직 확실하지 않아.”
그 말에 리리가 처음으로 반색했다.
“이거라면 대악마를 이길 수 있는 거야?”
애석하게도 거기에 대한 대답은 리리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아니, 이건 아직 미완성이야.”
전방의 대악마에게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걷혔다. 애초에 악마를 다 가릴 정도의 연기가 피어오르지도 않았다. 거포 십수 문의 일제사격마저 저 악마의 몸을 가리기에도 불충분했다.
“조금이라도 다쳤으면 좋겠는데.”
최소한 이 공격이 유효하다는 것만 증명되어도 일이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지.
하지만 세상일은 언제나 쉽게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연기가 걷힌 자리는 아무리 봐도 작은 상처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비틀거리는 걸로 봐서 충격이 없진 않은 모양인데…… 양으로 승부하면 조금 더 나은 결과가 나올까?
“아니겠지.”
내가 생각해도 여기에 기대를 거는 건 바보짓이다. 오히려 본질적인 부분에서 완벽하게 다른 한 방이 필요하다. 그게 내 판단이었고.
“이걸 만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이걸 만든 설계의 단편에서 그 한 방을 준비하는 노력이 보였다. 그게 뭔지는 나조차도 아직 알 수 없었을 뿐. 이 함선의 모든 부분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즉, 탐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래가 사라지자 사막이 있던 곳은 통째로 거대한 저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자 지형지물이 제대로 보였는데, 검은색 바위로 가득 찬 암석지대였다. 검은 태양 유적의 구조물을 이루는 자재가 저 바위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악마의 비명에 쓰러진 사람들 중 일부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누가 생각해도 비정상적인 생명력. 분명 뭔가 권능에 버금가는 축복을 받은 게 분명했다. 아니면 저주거나.
그게 뭐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쓰러진 이들 모두가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다는 거고, 이는 저들도 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하며, 몰려오는 악마의 기운을 제대로 버티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명령을.」
내 생각을 읽었는지 함선을 제어하는 정령이 내게 말을 걸었다. 머릿속으로 울리는 그 목소리에 의문을 참지 않고 되는대로 물어보기로 했다. 혼자 고민해 봤자 해결되는 건 없을 테니까.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
「옵시디오.」
“좋은 이름이네. 옵시디오. 우리가 저 악마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밑에서 계속해서 싸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옵시디오는 내 말을 듣더니 잠시 빛을 일렁였다. 정령들이 공통적으로 생각에 잠겼을 때 나타나는 현상. 생각은 길지 않았다.
「몰락한 자들의 망치 – 발칸 셀루니아는 지금 이 함선만을 의미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그럼?”
「대악마를 토벌하기 위해 검은 태양의 숭배자들이 준비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프로토콜입니다.」
“그 최종 수단을 간단하게 설명해 줘.”
옵시디오는 내 앞에 좌표계를 펼쳤다.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좌표계에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굉장히 먼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만 보였을 뿐.
「좌표에 표시된 곳은 검은 태양의 숭배자들이 준비해 온 결전 병기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있는 무기를 작동시키는 데에만 성공하면…….」
“대악마를 이길 수 있다? 확신해?”
「저는 확신합니다. 그 힘은 대악마를 압도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에.」
어떤 복잡하고 신비로운 힘이길래 그렇게 확신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옵시디오의 말을 믿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땅을 흐르는 검은 기운을 계속 주시하며 말했다.
“그 최종 병기가 있는 곳으로 가는 방법은?”
「함선의 블랙홀 엔진은 함선에 동력을 공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종 병기와 이곳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도 합니다.」
나는 뒤를 돌아 선상 중간의 기계장치 상공에 떠 있는 블랙홀을 바라보았다.
“……안전한 거 맞지?”
「안전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이론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말은 뭐든 간에 불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이유가 되진 않았다.
지체할 필요 없이, 우리는 바로 기계 장치 앞까지 이동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다.
“옵시디오.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
「대규모 보호막을 전개하겠습니다.」
원기둥 형태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막이 사람들을 감싼다. 동시에 그 안에 있는 악마들이 괴로워하며 머리를 부여잡고 땅을 뒹굴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전투에서 해방된 숭배자들이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몰려오던 기운은 사람들을 덮치기 전, 방어막에 가로막혀 방파제 위 파도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에너지 보호막 역시 조금은 불안하게 일렁였지만, 그 힘을 막아 내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악마를 견제하는 선 안에서는 이 함선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첫 포격에서 알다시피, 악마를 죽이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악마를 죽이기 위한 힘은 이 블랙홀 건너에 있었다.
어떤 기묘한 술법을 통해서 만들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차례다.
“야, 흑염룡.”
“……?”
“너도 우리랑 같이 간다.”
“내가?”
“아무리 기억이 망가졌더라도 우리 중에서 이 문명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어쨌거나 너야. 저 안에 뭐가 있든 간에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아낼 가능성이 크니까.”
흑염룡은 내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그대로 기계 장치 앞에 섰다. 웅웅대는 공명음이 거대한 블랙홀에서 들려왔다.
“옵시디오. 잠깐 자리 좀 비울게. 대악마를 견제해 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함선의 화포가 다시 전방을 조준한다. 그것들이 힘을 충전하는 모습을 본 뒤, 우리는 기계 장치를 올라 블랙홀로 뛰어들었다.
비프로스트의 균열을 통과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주변에 빛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극도로 왜곡되었다. 리리는 두려운지 눈을 꼭 감고 있었고, 흑염룡은 조금 더 초연하게 주변의 풍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렇게 반대편으로 도착했다. 그곳에 있는 건 암석으로 이루어진 평야. 아니, 평야라고 부르기는 살짝 부족한 드넓은 공간.
검은 하늘, 그리고…… 무수히 많은 별. 저 멀리 별빛 사이를 유영하고 있는 촉수가 잔뜩 달린 해파리를 닮은 거대한 고래들.
검은 태양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큰 모습이었다.
마치 더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우주야.”
여기는 우주 공간이었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평평한 소행성이었다. 아래로 중력이 작용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여기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게 여겨선 안 되는 세상이었다.
그 생경한 풍경 속에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단 하나의 물건이 있었다.
“……저게 뭐야.”
그건 망치였다. 중세 배경의 영화 속에서 볼 법한 한쪽은 뾰족하고 다른 쪽은 평평한 그런 전투 망치.
머리와 손잡이의 비율로 봐서 한 손으로 다루거나 투척하는 데에 적합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저게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빌딩보다도 훨씬 크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건 어떤 소행성이고, 저 망치는 그 소행성의 핵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는 사실을.
잠시 넋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볼 뻔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한 뒤, 우리는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윽.”
가까이 다가가니 이미 미라가 되어 있는 시체. 한쪽 손에는 조각용 망치, 다른 손에는 룬이 그려져 있는 끌이 들려 있었다.
혼자서 이 망치를 다 조각한 걸까? 대체 얼마의 시간이 걸린 걸까?
그 시체 옆에 떨어져 있는 문서 몇 개와 설계도를 주워 들었다.
문서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우리의 운명에 묶인 대악마에 대한 분노.」
「내 모든 기억이 종소리 너머로 사라지더라도, 그것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고 이것을 만들어 내겠다.」
「우리, 몰락한 자들이 추구한 세상은 실패했을지라도 그 의지만큼은 이 무기 하나에 담아내리라. 검은 태양께서 내게 내리신 그 명을 영혼을 바쳐서라도 이루어 내리라.」
「몰락한 자들의 망치.」
「후대에 누군가, 이 망치를 휘두를 수 있는 검은 태양의 화신이 도래하여 악마를 벌하리라. 우리는 그 예언이 실현되리라 믿는다. 예언자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부정했을지라도…….」
그 뒤에는 아주 복잡한 작업 일지와 설계도가 이어졌다. 그런 부분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망치를 올려다보았다.
“몰락한 자들의 망치.”
“발칸 셀루니아. 인간들의 번성하던 시절 사용하던 고어야.”
리리가 뒤에서 말했다. 흑염룡은 가슴의 통증이 몰려왔는지 인상을 쓰면서도 망치를 올려다보았다. 바로 아래에서는 꼭대기마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조금이나마 필요했다.
그러던 중 흑염룡이 입을 열었다.
“수천 년 동안 이를 갈아 온 복수자의 망치다.”
“너희들은 대체 왜 악마랑 싸워 온 거야? 황금의 시대 사람들은 뭘 하고?”
“……너희의 선조들은 그저 몰랐을 뿐이다. 자신들의 세상에 악마가 쳐들어왔다는 사실을.”
“이렇게 거대한 악마가 침공했는데 모를 수가 있어?”
“……우리가 숨겼으니까. 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없도록.”
“왜? 왜 너희들이 다 짊어지려고 한 건데?”
“…….”
흑염룡은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기 싫은 게 아니라 기억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으니, 어쩌면 나중이라도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조심스럽게 망치와 끌을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알 수 있었다. 이 망치 전체에 아주 미세한 회로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들은 아마 검은 태양 문명에서 개발해 낸 룬이겠지.
흑염룡이 뒤에서 물었다.
“그건…… 잘못 건드리면 우리가 쌓아 온 모든 게 무용지물로 돌아갈 수 있다.”
“알아.”
조심스럽게 끌을 가져다 댔다.
* * *
강선후가 망치 위에 무언가를 그리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리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강선후를 따라다니며 룬에 대한 이해도가 늘어났고, 그래서 지금 강선후가 하는 행동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룬에다가 다른 룬을 접붙이는 건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단순히 불꽃을 두 번 불러내는 데에 모스mohs를 두 번 적는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룬 문자는 중첩할 때마다 전혀 새로운 접속사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건 문자마다 서로 달라서, 어떤 문자는 애초에 중첩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지금 망치에 적혀 있는 룬이 그러했다. 그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기에, 그 위에 무언가를 새로 적을 빈틈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강선후가 하는 행동은 그저 그사이에 공백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뿐이었다.
그 안에 뭘 적으려고 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기에 적을 수 있는 룬은 없었다.
공용 룬은 그 어떤 것도 적을 수 없다. 문장을 구성할 수 있는 단어라면 뭐든 안 된다.
그나마 가능한 건 독립된 룬이었다. 사람들의 언어로 치면 고유명사. ‘태양’이나 ‘사람 이름’ 같은 것들.
대체 뭘 적으려고 하는 걸까?
그 순간, 강선후는 끌과 망치를 놓았다. 그렇다면 그저 저 룬 사이에 공백만 만들 뿐인가?
강선후는 안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냈다. 그리고 룬의 공백에 강하게 내리쳤다. 망치와 맞닿은 손바닥에서 순간 빛이 스며 나오다 사라졌다.
강선후가 손바닥을 치운 순간,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흑염룡과는 달리, 리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손아귀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건 금속 조각이었다.
리빙 아머의 룬이 적힌 채 거칠게 찢겨 있는 금속 조각이 망치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리리는 그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이건…….”
“그 양반, 기억나지?”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에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 보자고.”
천공의 기사.
강선후에게 저 룬 문자를 준 지배자의 상.
망치에는 그 존재를 만들어 냈던 리빙 아머의 룬 문자가 박혔다.
강선후는 고개를 돌려 다시 블랙홀로 향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