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ep56. 몰락한 자들의 망치 – 발칸 셀루니아 (3)
강선후는 블랙홀을 넘어왔다. 저곳에서 시간을 얼마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의 풍경은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
거대한 뼈로 된 창들이 허공에 박혀 있었다. 함선의 에너지 방어막을 뚫고 박혀 있는 게 눈에 보였다. 투명한 창문이 조각난 듯한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뒷골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옵시디오. 뚫린 거야?”
「방어 시스템의 한계 역량 대비 충격량 72퍼센트 도달. 아직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대악마는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무릎을 꿇은 채 양손으로 땅을 짚고 마치 사족보행 짐승처럼 이쪽을 바라본 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입에서 검은 연기를 끊임없이 토해 내는 뿔난 검은 해골이라니.
뒤를 바라보았다. 함선의 동력을 담당하는 블랙홀 엔진이 보였다. 저 너머에는 대악마를 죽일 수 있다는 유일한 희망이 있다.
강선후는 눈을 감고 망치에 새긴 룬과 감응해 봤다.
머릿속으로 회로의 진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제대로 작동시킬 수 없었다. 강선후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단순히 리빙 아머 룬만으로 그 망치를 작동시킨다는 건 스마트 폰으로 슈퍼컴퓨터의 일을 해내겠다는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에는 후작업이 필요했다.
강선후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수천의 숭배자들이 그곳에서 함선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번에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대악마가 한쪽 손을 번쩍 들어 뻗었다.
콰앙—!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야 최종병기를 가동시키니 마니 하는 상황에서 신경 써야만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강선후는 이런 복잡한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단순한 일로 만들기로 했다.
“리리.”
블랙홀 엔진을 바라보던 리리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무언가 날아왔다. 받아 보니, 그건 황금 지침을 포함한 각종 황금의 유물들이었다. 강선후는 시약병과 집행자의 검, 그리고 방랑자의 활의 보석만 손에 쥐고 있을 뿐이었다.
“이걸 왜 나한테?”
“혹시 위험한 상황이 오면 그걸 이용해서 방어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당신은 어쩌려고?”
강선후는 우선 대답을 보류한 채 이번에는 숭배자에게 말했다.
“야, 흑염룡.”
“내 이름은 흑염룡이 아니다.”
“어쨌든 간에. 자, 네 임무가 중요해.”
“……?”
숭배자는 강선후가 이런 말을 할 거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게 조금 당황한 사이, 강선후는 숭배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피리아, 드웨브, 닌 휘든, 모르티스”
nephiria, deweb, nine wheeden, mortis.
숭배자는 순식간에 지나간 고급 룬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그런 숭배자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네피리아, 드웨브, 닌 휘든, 모르티스.”
nephiria, deweb, nine wheeden, mortis.
“그만, 잠깐. 대체 무슨 의미냐? 설명도 하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내가 널 만난 뒤부터 지금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연구한 결과를 그냥 알려 준 거니까 고마워하라고.”
“……?”
“똑바로 들어.”
슬쩍 미소 지었던 강선후가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쿠우웅—
콰지직—
그 사이에 또 무슨 공격을 받았는지,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강선후에게 가려서 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볼 수 없었다.
“네피리아, 드웨브, 닌 휘든, 모르티스.”
nephiria, deweb, nine wheeden, mortis.
“그게 대체 뭔데.”
“밀라milla의 진리를 관통하는 네 가지 단어.”
“……뭐라고?”
“세상은 단순한 요소들로부터 비롯된 복잡한 현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건 룬도 마찬가지야. 룬 체계가 하나의 소설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럼 그 소설의 핵심 주제를 이루는 단어들이 있겠지?
이것도 마찬가지야. 위에서 말한 네 단어는 밀라milla의 체계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 저걸 이해하면 체계의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야.”
이 순간, 숭배자는 막무가내 탐험가였던 강선후의 눈이 순식간에 자연 철학자의 그것으로 바뀌는 모습을 목격했다. 눈빛은 너무나 날카로워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는 말들이 모두 머릿속에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강선후는 숭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네 임무는 그거야.”
“……밀라milla의 체계를 풀이하라는 건가?”
“그걸 풀이하면 너희들의 최종 병기를 해석할 수 있어.”
“이걸 내가 어떻게…….”
숭배자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이 한껏 나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너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 아래에 있는 숭배자들을 모두 구출하는 것도 나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콰가가강—!
「보호막 한계 역량의 89퍼센트 도달.」
“대악마를 억제하는 것도 나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이야.”
강선후는 어느새 다가온 렐릭시나의 등에 올라탔다. 그 흑마가 불꽃을 품은 콧김을 내뿜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렇다면 그중 하나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해내야 해. 너는 나보다 먼저 밀라milla에 대해서 이해한 놈이잖아. 할 수 있어. 그럼.”
“……네놈이 나한테 목숨을 맡긴다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그게 뭐가 어때서?”
“뭣…….”
“너는 검은 태양을 숭배하는 놈이야. 잘은 모르지만 그 숭배자들이 아무렇게나 살아왔다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어.”
강선후가 말머리를 돌렸다. 말은 벌써부터 앞으로 달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 그럴싸한 책임을 져 봐. 자신의 삶을 아무렇게나 던지는 게 아니라, 타인의 목숨을 자기 손에 올려놓아 보라는 뜻이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실이었다.
내 목숨을 건다는 사실은 각오가 된 뒤에는 제법 간단하게 여겨졌다. 운명과 미신을 믿는 이들의 체념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은 그저 외면했다. 그렇다면 꽤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타인의 목숨이 내 손에 걸려 있는 순간을 겪어 본 기억은 없었다.
내가 해내지 못하면, 내가 죽는 게 아니라 남이 죽는 것.
……해내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숭배자는 욕설을 내뱉으며 헐레벌떡 블랙홀로 다가갔다. 상처의 통증을 진작에 잊어버린 듯했다. 일 초조차 아깝다는 그 태도에 강선후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미소만 지었다.
그래서 그저 대악마를 바라보았다. 빠르게 박차를 가했다. 떠나기 전에 이 말 한마디를 남겼다.
“옵시디오. 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악마의 사정권 밖으로 대피해.”
「그렇게 된다면 이 함선이 당신의 전투를 지원할 수 없습니다.」
“괜찮아.”
「그러시다면.」
블랙홀 엔진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피라미드의 수정이 다시 보라색 빛을 발했다.
“가자. 렐릭시나.”
“크릉—!”
숭배자는 고개를 돌려 강선후의 흑마가 선수를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흑마는 함선의 가장자리에 도달하자 강렬한 푸른 불꽃을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그렇게 푸른 유성이 되어, 이 높이 떠 있는 함선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평범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강선후가 뛰어내리자마자 배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는 사람들이 함선의 위로 하나둘 워프되기 시작했다. 시공간의 힘을 다루는 함선의 능력이었다.
그 뒤 함선의 추진체가 작동하며 대악마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선상으로 워프한 숭배자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무수히 나 있었다. 이 아래에서 영원한 전쟁을 하던 자들.
그들 중 일부가 정신을 차렸다. 최면에서 이제 막 벗어나는 듯한 모습. 이어서 곧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다가와 흑염룡에게 말을 걸었다.
“바그너!”
강선후는 흑염룡이라고 부르는 자의 이름을 불렀다.
“현세로 나가 밀라milla의 비밀을 파헤치라는 임무를 드디어 완수했는가!”
그는 이 모든 걸 이뤄 낸 자가 바그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블랙홀만을 바라보며 외쳤다.
“아닙니다! 저는 로크 벨라의 종소리를 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노인은 당황했다.
“그럼 지금 상황은 대체…….”
“어떤 인간이 있습니다. 홀로 대악마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남자입니다! 그가 이 모든 걸 해낸 겁니다!”
“우리의 형제인가?”
“아닙니다. 검은 태양을 아예 모르던 남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중요한 건.”
흑염룡은 눈을 감았다. 강선후가 말해 줬던 네 개의 단어를 되뇌었다.
아직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검은 태양께서 그자를 선택했다는 겁니다.”
흑염룡은 블랙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령을 바라보았다. 정령은 지금 자율 운행 상태로 함선을 조작하고 있었다.
흑염룡은 이 함선을 운용하는 정령이 아무의 명령이나 듣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선택받은 자만이 정령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흑염룡은 그럴 수 없었기에, 혼자 이 모든 걸 해야만 했다.
“밀라millla.”
눈앞에 밀라의 문자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지만, 오히려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은 내용.
룬이란 문자이자 동시에 회로다. 각 획이 어떤 힘을 띠고 있고 어떤 에너지가 흐르는지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획이 모여 만들어지는 문양들이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게 룬 이해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말이 쉬울 뿐, 그건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강선후와 눈을 마주했을 때에는 가슴이 뜨거워져 할 수 있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니 달랐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 그 짧은 시간 안에?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저 아래, 푸른 꼬리를 길에 늘어뜨린 무언가가 대악마에게 달려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 시간까지 내가 이 비밀을 풀어낼 수 있을까?
그 순간이었다.
“옵시디오.”
옆에 있었던 로얄 블러드가 정령을 불렀다. 옷 안에 감춰진 왼쪽 어깨에서 희미한 보라색 문신이 발해지는 걸 보았다.
그건 지배자의 상이었다.
“……지배자의 상이 한 자리에 두 명이나.”
리리가 명령했다.
“옵시디오. 우리의 연구를 보조해 줘.”
「연산 처리에 추가 동력을 할당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그대들을 보조하겠습니다.」
“……우리?”
숭배자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숭배자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 눈에는 신뢰와 각오가 담겨 있었다.
“도와줄게. 같이 풀어 보자.”
그렇게 말하며 황금 지침에서 하늘색 보석을 꺼내었다. 그건 반지가 되었으며, 반지는 숭배자가 만든 룬을 흡수해서 넓은 공간에 알아보기 쉽게 펼쳤다.
입체적인 도형의 전개도처럼 룬이 한층 더 보기 편하게 나열되었다.
리리는 말했다.
“할 수 있어. 그리고, 저 사람은 안 죽을 거야. 걱정하지 마.”
“어떻게 확신하지?”
리리는 고개를 들어 검은 태양을 바라보았다.
“신과 악마의 싸움이야. 이건.”
“……그렇다.”
“우리가 이걸 처음 겪어 봤다고 생각해?”
숭배자는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그 붉은 눈동자가 모든 걸 설명해 줬기 때문이었다.
* * *
“렐릭시나! 이번에는 마음껏 달려 보자!”
“크와아악!”
렐릭시나가 뿜어내는 푸른 불꽃이 하얗게 바랠 정도였다. 신속의 충격을 견디기 위해 강선후는 거의 말에 몸을 붙이다시피 해야만 했다.
빠르게 대악마의 영역에 도달했다. 지금 목표는 대악마의 이목을 끄는 것, 그리고 최대한 이 악마의 특성과 약점을 파악하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유의미한 피해를 주는 것.
『방랑자의 활』
강선후는 왼손으로 활시위를 잡고, 만들어진 화살 위에 세 개의 화합물을 한 번에 매달았다. 두 개는 폭발물, 하나는 산화 촉매.
물과 닿으면 거대하게 팽창하여 폭발성 기체를 만들어 내는 연금술 화합물.
활시위를 당겼다.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화살 끝이 흔들렸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과녁이나 다름없었기에.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대악마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외었다.
“씨르thir.”
“모로스moros.”
“시그마 데 모로스 sigmah de moros.”
순식간에 세 개의 단어를 나열하는 데에 성공했다. 허공에 물이 맺히는가 싶더니 그대로 흩어지지 않고 고정되었고, 곧 화살의 꽁무니를 따라 모양을 유지한 채 날아가기 시작했다.
물의 화살은 그대로 대악마의 왼쪽 관절에 닿았다. 처음에는 병이 깨지는 소리만 들리는가 싶더니.
콰가가강—!
강선후가 있는 곳까지 압력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하게 폭발했다. 제어하기 힘들고 유독성 가스를 발하기에 실내에서는 쓸 수 없었던 조합이었다.
조금은 운이 따라 줬다. 관절 부분으로 정확하게 들어간 화살의 모든 위력은 안쪽으로 파고들었으며, 그 몸이 거체가 살짝 휘청이고 눈에 보일 정도의 손상이 있었다.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치명타는 아니었다. 당연히 결정타는 될 수 없었다.
어쨌거나 대악마의 시선을 이쪽으로 끄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대로 크게 선회하며 최대한으로 속도를 올렸다. 봉인의 여파로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거체지만, 그 몸에 살짝만 닿아도 치명상을 입을 게 뻔했다. 강선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앞으로 굽혔다.
오히려 대악마의 측면에 붙으며 고속으로 선회하는 렐릭시나. 그 둔한 거체가 공격하기 어려운 위치에 도달하자, 대악마는 손을 거두고 입에서 짙은 연기를 뿜어냈다. 토사물처럼 흘러내리던 연기는 바닥에 닿았고, 곧 거대한 폭풍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강선후와 렐릭시나도 거기에 휘말렸다.
순식간에 강선후의 재킷이 조금 녹아내렸다. 미리 입어 둔 천잠사의 망토 덕문에 간신히 버티고 있긴 했지만, 피부 안쪽으로 스며드는 독기를 막아 내지는 못했다. 천잠사의 망토조차 막을 수 없는 악마의 독기. 강선후는 피부에서 느껴지는 격통을 참아 내며 이를 악물었다.
스릉—
품속에서 콜드 포레스트를 뽑아냈다. 이런 단도가 무기로서 쓸모 있을 거라 생각한 탓이 아니었다. 그 손잡이는 버뮤다 숲의 신목으로 되어 있었고, 그건 신체를 급속도로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간신히 독기를 견딜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게 전부였다. 대악마의 관심이 자신에게 오도록 유지하려면 좀 더 유의미한 타격을 입혀야 한다.
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은 길지 않았다.
『연금술사의 시약병』
『악마-선악과』의 검은 영혼이 들어 있는 그 두 번째 병의 뚜껑을 만지작거렸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