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ep56. 몰락한 자들의 망치 – 발칸 셀루니아 (7)
바그너는 생각했다.
아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바그너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은빛 갑옷을 본 기억이 돌아왔다. 저건 과거 황금의 유적에서 생산하던 리빙 메탈용 갑주였다.
누군가 입을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
하지만 리빙 메탈이 스스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날아온다는 사실도, 그 완력이 단 한 번의 주먹질만으로 대악마의 신체를 산산조각 낼 수 있다는 사실도.
그 누구도 말해 준 적이 없었고 바그너 스스로도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게 내가 알고 있는 리빙 메탈과는 다르다는 건 알겠다.
그럼 저건 무엇인가?
내 머릿속에서 정의에 대해 말하던 그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옆구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뱀파이어가 미소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당한 보답을 받는 시대.”
리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추구하는 황금이야.”
“……그게 너희들의 황금인가?”
바그너는 말했다.
“우리는 황금을 거부하는 자들이었다. 황금이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내가 너한테 물어볼게.”
바그너와 리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방금 그 목소리는 강선후의 것이었다. 지금 강선후와 바그너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을 거리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또렷했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저 인간이 하는 말인가? 아니면 천공의 기사가 하는 말인가?
“검은 태양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줘.”
“……지금? 여기서?”
바그너는 이 상황에서 저런 질문이나 하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대악마의 비명이 귀를 찢을 기세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소리는 제국의 본성 솔라에까지 닿으리라.
“지금 여유롭게 옛날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때인가?”
“안될 건 뭔데?”
너무 당연한 질문에 오히려 말문이 막혀 버렸다. 대악마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손이 부서진 수십의 팔들로 땅을 지탱하며 엎드렸고, 그 아가리로 강선후를 삼킬 듯 머리를 들이댔다.
바그너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보기만 해도 몸이 떨리는 광경이었고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았다.
“절대로 대악마를 얕보면 안 돼…….”
강선후는 바그너의 말에 반응도 하지 않고 다가오는 대악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머리만 해도 태산과 같았다. 현실감을 느낄 수 없는 크기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강선후는 고개를 치켜들고 빛나는 눈동자로 대악마의 얼굴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운석처럼, 그것은 강선후에게 쇄도했다.
강선후는 그저 몸을 낮추고.
콰아앙—!
대악마의 턱을 후려칠 뿐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사람이었다면 즉사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며 위로 떠올랐다. 증오에 가득 찬 비명은 그대로였지만 그 패기가 무색하도록 무력했다.
“말해 줘.”
“이유가 뭐지? 왜 굳이 지금 들어야 하지?”
“오랜 역사 속에서 비로소 대악마가 사라지는 날이야. 너희들이 준비해 온 일이 결실을 맺는 일이라고.”
강선후는 품속에서 푸른빛을 띠는 보석을 손에 쥐었다. 은빛 글로브를 강하게 움켜쥐자 금속의 마찰음이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 역사 속에 내가 들어갈 테니, 나 역시 그 사실에 대해 알 권리가 있어.”
리리는 저 말을 듣고 그저 강선후가 지금 궁금증을 참지 못할 뿐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지금 한 말은 그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하지만 검은 태양 숭배자에게 굉장히 효과적인 말이었다.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면서까지 숨어서 활동하던 이들이라면,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 줬으면 하는 욕망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건 바그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크 벨라로 인해 잊은 역사를 일부 기억해 낼 만큼 그 욕망은 강렬했다.
대악마는 흔들리는 턱을 방치한 채 강선후를 내려다보았다. 이 순간, 대악마는 눈앞에 있는 하나의 인간을 자신의 숙적으로 인식했다. 그 옛날 거인왕 아틀라스가 그랬던 것처럼.
지평선 너머에서 소리의 속도로 은빛의 갑주가 날아왔다. 강선후의 팔과 다리, 그리고 심장을 감쌌다. 고대 처형인 시절의 상징이었던 수리 문양이 황동의 빛깔로 흉갑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기사의 투구가 날아왔다. 강선후는 그걸 손으로 잡아 잠시 바라보다가 머리에 썼다. 눈앞에 복잡한 룬 언어가 그려지더니, 투구 전체가 투명해지듯 눈앞의 시야가 환하게 펼쳐졌다. 천공의 기사가 보는 세상의 모습이었다.
「나는 너의 방패가 되겠다.」
강선후는 검을 부여잡고, 보폭을 넓이고, 양손을 뺨 옆으로 치켜들었다. 그 손에 쥐고 있던 보석이 황금빛 광채를 발하더니, 수평으로 새워진 모습의 검이 되었다.
「나를 믿고, 예리한 검이 되어라.」
대악마는 그 불경한 철퇴를 내려치고 있었다. 강선후는 검을 치켜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바그너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검은 태양 렌즈는 여전히 자신의 앞에 있었다. 강선후가 이 성물 없이 대악마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강선후는 여전히 자신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그너는 마음속에 오래 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황금의 시대. 왕이 죽고 나서 아홉 신은 우리를 외면했다.”
검은 태양을 숭배하던 이들이 모두 마음속에 품기만 하고, 단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그 이야기를.
“그렇기에 우리는 황금을 잇기를 거부했다.”
* * *
황금의 왕이 사망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수명이 다했을 뿐. 승천도, 신성의 권능도 제 손으로 거부했다. 왕은 그 많은 업적을 발밑에 두고도 끝까지 인간으로 남길 고집했다.
왕이 사망하자 세상에는 수많은 갈등이 일어났다. 국지적인 무력 충돌이 대륙 여기저기에 일어났다.
시대를 가호했던 아홉 신들은 그런 세상에 실망했다. 세상을 지배하다시피 하던 종족인 인간에게 실망했고, 인간이 이렇게 된 이상 시대는 유지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아홉 신은 일시에 인간에게 내렸던 은총을 모두 거둬 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문뜩, 어떤 노인이 깨달았다.
어느 순간 세 번째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홉 번째 신, 이름 없는 태양이 스스로의 권능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신들의 의지를 거부하고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 번째 태양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비로움에 보답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답하자는 거지? 권능을 포기한 신의 가호에 어떤 의미가 있소?”
“……황금을 포기하고, 우리만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검은 태양 숭배자들은 그렇게 주장했다.
“신의 도움 없이, 왕과 영웅 없이도 우리가 시대를 쌓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 시대가 펼쳐져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영광 속에서 사는 길입니다!”
하지만 황금의 주민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황금을 이어 나가고자 했다. 이제까지 쌓아 온 그 영광을 포기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검은 태양 숭배자들은 왕국을 떠났다.
「구오오오오오—」
그 순간 강선후가 대악마의 팔을 베었다. 철퇴가 땅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갈비뼈 사이에서 솟아 나온 다음 팔이 철퇴를 부여잡았다.
눈으로는 그 모습을 바라본 채, 바그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리리가 물었다.
“근데 대체 왜 대악마랑 싸운 거야? 떠났다면 더 이상 너희의 책임이 아니잖아.”
바그너는 여전히 무릎 꿇은 채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대를 위해서.”
“시대가 너희를 버렸는데도?”
바그너는 다시 과거를 회상했다.
대악마가 세상을 휩쓴 시절, 권능을 포기했기에 인간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검은 태양은 숭배자들을 이끌고 최전선에서 악마를 막아 내었다.
하지만 무리였다. 대악마의 힘은 무한했고, 권능을 포기한 신과 그 신도들의 힘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 신도들이 말했다.
“검은 태양이시여!”
“저들을 시공간의 틈새에 봉인하신다면, 그렇다면 악마의 습격에서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검은 태양은 말했다. 그 힘을 위해서라면 희생이 필요하다고.
숭배자들은 그 말에 입을 모아 화답했다.
“우리가 희생하겠습니다!”
“우리가 저 악마들과 함께 시공의 틈새에서 영원히 싸우겠습니다.”
검은 태양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숭배자들은 하나의 뜻으로 뭉쳐 있었다.
“시대가 우리와 반목한 건 맞지만, 그럼에도.”
“시대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부심은 우리 약한 자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니, 황금을 잃은 상실감이 시대를 지배하도록 두어서는 안 됩니다.”
대악마를 막아 낸 건 우리가 아니라 이 시대라고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계속 나아가고, 높은 곳으로 오르는 전진을 포기하지 않을 터이니. 조금 더 오랜 시간 자기 자신을 믿을 터이니.
“모두 들어라! 우리는 시대에 자부심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게 우리가 숭배하는 어둠이다! 알겠나!”
숭배자들은 모두 리더의 말에 동조했다.
그들을 모두 검은 태양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은 신이시여. 당신이 만든 세상에 보답하겠습니다.”
이게 우리가 쫓는 빛.
우리의 황금입니다.
검은 태양은 숭배자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수백 년마다 한 번씩 형제들을 밀어내고 세상에 떠올랐다.
무력한 자신을 대신해 숭배자들을 구원할 어둠의 화신을 찾기 위해서.
리리는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했다.
그렇기에 바그너의 힘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증명하고 싶었다. 신에게 버림받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숭고해질 수 있는지.”
하지만.
“이 희생의…… 보상을 원하는 마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불경한 마음을…….”
「불경한 게 아니다.」
“당연한 거야.”
두 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바로 눈앞이었다. 바그너나 고개를 드니 어느새 강선후가 그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투구가 반파되어 있었다. 검이 부러져 있었다. 강선후는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전히 가망이 있는 싸움은 아니었다. 대악마의 힘을 일부 압도할 수 있을지라도 그 힘의 총량은 무한하니 그 심장을 한 번에 부수지 않고서는 안 될 일이었다.
바그너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런 희생이 보답받는 시대가 와야만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어.”
“……그건 허울만 좋은 말이 아니던가.”
“왕이 있을 때는 그게 가능했잖아?”
바그너는 왕에 대해 떠올렸다.
로크 벨라 때문에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았다.
왕이 있던 시대는 그런 시대였는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켜 다시 대악마를 바라보고, 대악마에게 손을 내미는 강선후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인간이 새 시대를 만들어 낸다면,
그 시대는 그런 시대일지도 모른다고.
강선후는 검은 태양 렌즈를 높게 치켜들었다. 대악마와 싸우며, 여전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검은 태양의 빛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 그 마지막 비밀을 풀 수 있었다.
“빛.”
신 역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자진해서 빛을 포기한 신은 빛을 품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저 참아왔을 뿐.
하지만 강선후는 눈에는 그 빛이 보였다.
끝까지 인간을 버리지 않는 그 미약하지만 위대한 빛이.
밀라milla의 마지막 단어는 그것이었다.
빛.
검은 태양 렌즈가 새하얀 빛을 한 점으로 모았다. 그건 천공의 기사 흉갑의 한가운데에 문자를 새겼다.
그리고, 하늘이 흔들렸다.
마땅히 리빙 메탈이 되어야 하는 미약한 금속들은 룬의 명령을 받아 한 자리로 모인다.
그 경로에 하늘이 있든, 대지가 있든, 거대한 악마가 있든 룬의 법칙은 신경 쓰지 않는다.
리빙 메탈의 부품들은 세상을 헤집기 시작하고, 온 우주는 그 절대적인 힘에 저항하지 않고 길을 터준다.
천공의 기사를 이루는 마지막 부품.
몰락한 자들의 망치, 발칸 셀루니아가 본래 있을 곳을 향해 우주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하늘을 찢고 지상을 강타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