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
2화
컵에 담긴 물을 꿀떡 삼켰다. 영상 속 유튜버는 여전히 삽질하고 있었다.
「뛰르! 씨-루! 또르! 아, 씨. 진짜 안 되네.
사실 룬 언어는 이계에서도 극히 일부만 쓰는 언어라거든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언어에 힘이 있다는 거 걍 구라 아냐?
무슨 지팡이라도 있어야 하나? 아니면 정말 마나 같은 게 필요하든가···.」
아닌데.
마나는 몰라도, 언어는 구라 아닌데.
고민이 시작될 무렵 연구원이 다시금 찾아왔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니 귀가하셔도 됩니다. 소지품은 전부 가지고 가셔도 됩니다. 비용은 나라에서 부담하는 특별법이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지금 제가 실종 처리되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행정은 저희 쪽에서 대행했습니다. 관련 절차가 있어서요.”
마치 평소에도 하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연구원. 이후 서류 몇 개에 사인하는 걸 끝으로 시설을 나설 수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오늘이 며칠인지도 몰랐다. 선선한 바람에 가벼운 옷차림들. 이제 막 가을인가 싶었다.
“기자들은 다 돌려보냈어요. 선후 씨 신상이 허락 없이 언론에 나갈 리는 없을 거예요.”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연구원이 다가왔다.
“아, 네. 감사합니다.”
“감회가 색다르시겠어요.”
그 말은 정확했다. 내가 거리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였으니까.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인도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
“이런 것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 안 했거든요.”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다시 한번 정말 다행입니다.”
그 순간 바로 앞에 1톤 트럭 하나가 지나갔다.
<주의: 고위험 이계 물품 호송 중>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 거란 생각도 못 했어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 글쎄요. 오늘도 안 죽은 거에만 감사하면서 몇 년 동안이나 살았더니, 그냥 이렇게 멍 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네요.”
“혹시 같이 일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직업이라.
예전 같았으면 ‘어이쿠 감사합니다!’하고 덥석 물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초연했다.
장기간의 조난 생활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내 마음은 직업, 노후, 지위 이런 것들에서 완벽하게 멀어져 있었다.
“당분간은 쉬려고요. 그냥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좋고, 지금 상태를 최대한 즐기고 싶어요.”
“···사실은 조사부장님이 선후 씨를 만나러 왔어요. 제가 컷 했지만.”
“컷 하셨다고요?’
“그분은 성격이 급하고 계약자를 함부로 다루는 경향이 있거든요. 선후 씨가 밑에서 일하기를 바라셨던 거 같은데, 역시 너무 조급한 거 같아 머리 식힐 시간을 드리자고 했죠.”
왜 이 이야기를 내게 하는 걸까?
연구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생각해보세요. 이계를 연구하는 회사의 부장이 하던 일 다 던져버리고 선후 씨를 만나러 온 거예요.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내 몸값이 제법 비싸다?”
“반쯤 맞추셨네요.”
그러더니, 연구원이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제 번호 드려도 될까요?”
“네? 갑자기요? 저 오해 잘하는 사람인데요?”
“오해하셔도 괜찮아요. 굳이 이유라면···. 나중에라도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나쁠 건 없을 거 같아 핸드폰을 건넸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금 거리를 바라보았다. 뭔가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올라왔다.
밟을 수 있을 거란 기대조차 접었던 인간의 도시.
다 필요 없고 콜라 한 잔이 정말 마시고 싶었다.
***
“하이고···.”
희끗희끗한 새치 머리를 쓸어 넘기는 중년의 남성은 초조하게 회의실을 서성거렸다. 그가 있는 회의실로 강선후를 상대하던 연구원이 들어왔다.
“왜 그렇게 초조해하세요?”
“어, 서연아!”
민간 이계 연구 기업 OWIC의 연구팀 과장 진서연은 뚱한 표정으로 조사부장 장도진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 강··· 뭐시기, 그 뭐냐.”
“강선후요.”
“어, 그래. 강선후. 그 사람 어때 보여?”
“좀 이상하긴 해요. 이계에서 살아남은 건 그렇다고 쳐도, 돌아오자마자 저렇게 멀쩡한 건 평범하진 않으니까요. 신경 쇠약에 정신병 서너 개 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진짜 이계에서 2년 동안 지낸 게 확실하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니? 뻥카라고?”
“거기서 지낸 기한이 이상하단 뜻이에요.”
진서연은 가죽 조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스캐븐 울프의 가죽 샘플이에요. 강선후가 귀환할 때 입고 있던 옷인데···.”
그 날카로운 눈빛에서 이전의 온화함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두머리급이에요. 낮게 쳐서 러시아 불곰 급이라는 뜻이에요. 인간이 이길 수 없는 게 상식이겠죠?”
“이계인들에게 받았거나 빼앗았을 가능성은?”
진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캐븐 울프는 이계에서 저주를 상징해요. 미신 때문에 그 고기도 먹지 않는다고요. 물론 지역 차가 있겠지만···. 강선후는 이계 사람들과 제대로 말도 못 해보고 쫓겨났다고 했어요.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잖아요?”
“무슨 말인진 알겠다. 그럼 그 강선후라는 양반이 스캐븐 울프 우두머리를 죽였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돌도끼에서 채취한 샘플이요. 가공된 지 7년은 지난 물건이에요.”
‘···그럼, 7년동안 있다 왔다고?”
“최소 7년인 거죠. 그 이상도 가능하고요. 왜 그런진 알 수 없지만···. 시간선이 뒤틀린 곳에서 지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저 양반이 맨몸으로 최소 7년 동안 이계의 야생에서 살아남았다? 아무런 현대 물품 없이?”
잠시 생각에 잠겼던 조사부장은 다시금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스카웃 해야지, 왜 말렸냐! 너 지금 연구본부 소속이라고 조사부서 견제한 거지? 엉? 내가 더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아니, 아냐. 아직 멀리 안 갔을 테니까···.”
“아잇! 진짜 진정 좀 하세요! 상도덕이 있지, 똥 밭에서 몇 년 구르다가 간신히 집에 돌아온 사람이잖아요? 또 등쳐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죠?”
진서연 쪽이 뻔히 부하직원이었음에도, 실제로 사고를 몇 번이나 친 전적 탓에 조사부장 장도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야, 인마, 틀린 말은 아니라 내가 뭐라 할 말은 없는데···. 그렇게 전후좌우 다 따져가면서 피곤하게 어떻게 살라 그래? 내가 다~ 너처럼 살면서 느낀 게 있으니 이러는 거···.”
“느낀 게 있어서 민간 탐험가한테 고소당하셨어요? 제가 그거 뒷처리 하느라 휴가 몇 개를 반납한 지 아세요?”
장도진은 신음을 흘렸다.
“나중에 여유 생기면 제가 한 번 연락해볼게요. 아까운 건 사실이니까.”
“그래. 고맙다.”
연구실로 다시 이동한 진서연은 문을 닫자마자 핸드폰을 양손으로 꼭 쥐어 들었다.
허공을 향하는 그 눈동자는 실로 형언할 수 없는 빛을 담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아예 빛이 없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 있었다.
“···내 거야.”
핸드폰 화면에는 유튜브 채널이 떠 있었다.
과거 강선후가 운영했던 오지 탐험 채널이었다.
***
“으아···!”
콜라 한 모금에 목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나올 거 같은 게 아파서인지 감동적인 단맛 탓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과 마주쳤다. 평일 대낮이니 한창 일을 하는 사람들일 테지.
탐험가의 열정이 가득하던 시절에는 그런 일상이 지겹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는 그때의 나한테 꿀밤 한 대 먹여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탐험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냐고 자문을 던져보면···.
···질리도록 데였는데도 아직 이런 생각을 하다니.
주변을 둘러보자 한적한 길거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낮의 주택가 거리는 한산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몇 대만 눈에 들어올 뿐.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는 일상, 쳇바퀴 같다고 질색하던 그런 일상이 지금은 그 어떤 풍경보다도 멋져 보였다.
“느아아아—.”
플라스틱 의자에 한껏 기대어 늘어졌을 때.
끼이이이익!
들려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가 거칠게 날아가 몇 번이나 굴렀고.
콰드득-
손에 쥐고 있었던 캔이 어느새 납작해져 있었다. 절단면에 베인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고통은 없었고 흐르는 피만 미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시야가 좁아졌고, 귀에서 쇳소리가 들리더니 감각의 영역이 수십 배가 확대되었다.
미끄러지는 트럭이 건너편 건물에 부딪힌 건 그 순간이었다.
쿵!
다행히 충돌은 크지 않았다. 안전벨트만 했다면 크게 다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신호도 없는 2차선 직진 차로에서 차가 왜 갑자기 휘청거리는데?
트럭이 미끄러진 경로를 관찰했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으며 만들어진 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타이어 자국 근처에는 거친 상처가 도로에 길게 뻗어 있었다.
마치 짐칸에 실려 있던 것이 트럭의 바닥을 뚫고 땅을 긁어댄 것처럼.
다시 트럭 쪽을 바라보았다.
<주의: 고위험 이계 물품 호송 중>
아스팔트 한가운데에 생긴 거친 상처.
상처 위에 남겨져 있었던 남색 유기물.
비릿한 냄새.
가위 수십 개가 잘그락거리는 듯한 소리.
이건 분명···.
“다들 떨어져요!”
건물에서 나와서 두리번거리던 몇 사람들에게 외쳤다.
물론 그들이 내 말에 재깍 따를 리가 없었다. 그 정도는 생각했다.
그런데도 크게 소리 지른 이유는 ‘저것’의 주의를 이쪽으로 끌기 위해서였다.
저건, 생물의 목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찌르르르르르.
한층 격해진 ‘가위질’ 소리. 흥분했다. 이제 곧 달려든다. 어느새 트럭 바로 앞쪽까지 이동한 나는 양손을 가슴으로 모았다.
금속에 드릴질을 하는 듯한 불쾌한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의 벽이 진동했고, 사람 머리 두 개만 한 구멍이 뚫리며 거대한 지렁이가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테르마tterma.
따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양손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온몸이 진동했다. 치명적이진 않으나 쇼크가 일어나기엔 충분한 전류.
지렁이는 비명을 내지르며 온몸을 경련했다. 그 머리 쪽에 달린 수십 개의 집개가 광적으로 딸각거렸다.
눈이 없으니 다른 감각에 의존하는 이 짐승은 전류에 약했다. 그것이 무력화된 그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괴물이 의식을 잃고 축 쳐진 그 순간.
콰직—!
급소를 부러뜨리고 나서야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게 진짜 싫다니까.”
전류를 생성하는 언어. 처음 멋모르고 내뱉었을 때는 한나절 기절해 있었지. 이제는 요령이 생겼지만 불쾌한 건 여전했다.
그 때, 운전석의 문이 열렸다. 뛰쳐나온 남자는 사색이 된 얼굴로 트레일러를 향해 달려왔고 보조석에서 나온 여자는 핸드폰을 들고 급박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기, 긴급 상황 발생. 파밍 웜이 가사상태에서 풀렸어요. 트레일러에 구멍을 뚫고 탈출한 거 같아요! 지원 요청합니다! 다시 전달합니다. 지원 요청···.”
뒤늦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운전석에서 나온 남자, 그리고 보조석에서 나온 여자. 그리고···.
“···얘 이름이 파밍 웜인가.”
축 늘어진 거대 지렁이를 한 손에 들고 있는 나. 우리는 각자 다른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청 접수되었습니다. 위치 확인 완료. 해당 위치로 파견될 QRT를 소집했습니다. 조기 대처에 최선을 다해주세요.]스피커폰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 핸드폰을 입에 가져다 댄 직원은, 멍한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읇조렸다.
“···상황 종료되었습니다. QRT는 안···보내주셔도 될 거 같은데요.”
[상황 종료? 현장에 요원이 있었나요?]“아뇨, 그···. 민간인, 아니, 그러니까 민간인이···.”
[민간인 피해가 있습니까?]그 표정이 굉장히 난처했다.
아니 그보다, 나는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차소희?”
그 파란색 현장직 유니폼을 보며, 바뀐 세상에 적응하려면 조금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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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귀환자에게 익숙한 세상은 없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