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ep57. 목자의 상 (2)
나는 전방을 향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증명이 되었으려나?”
방금 전까지 나를 경계하던 그 지휘자는 벌벌 떨고 있었다. 이 지팡이에 저런 공포심까지 심어 주는 힘은 없었다.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말이다.
“……왕?”
앞에서 나를 경계하는 사람들은 본능 단위에서 느껴지는 어떠한 감정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내 뒤에 서 있던 리리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눈앞에 있는 상황을 조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직전에 내 실없는 농담에 대꾸한 건 여유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사고가 정지 되어 버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서인 모양이었다.
천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경계심이 사라졌다. 그러자 남은 감정은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저들에게 공포를 심어 줄 생각이 없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감정이 담긴다는 건 긍정, 부정을 떠나 꽤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의도치 않게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는 건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하는 것도 사실이니 나는 렐릭시나의 고삐를 잡고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생각해 보니까 불타는 말을 타고 다녔던 거잖아.”
푸른 불꽃을 자랑스레 드러내며 걷는 흑마. 그 위에 타고 있는 나.
경계하지 않으면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었네.
내가 다가가자 유물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이들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의미로 나를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그 감정은 정말이지 순수한 두려움이라서 내가 다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당신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까 말했잖아요. 프리랜서 탐험가라고.”
“…….”
젊은 지휘자가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그 뒤에 서 있던 연륜 있어 보이는 중년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두르고 있는 망토에는 제국의 마탑에서 보았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갑옷을 입고 있는데, 마법사인가?
“왜 서쪽에서 오시는 겁니까?”
“의뢰를 받고 서쪽 사막에 다녀오는 길이라서.”
“서쪽에서 거대한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설 속, 최초의 전쟁을 일으켰던 크로노스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귀인께서는 어떻게 거기에서…….”
“맞아요. 대악마가 봉인되어 있더라고요.”
“……우리는 서쪽으로 출발하기로 했던 정찰대입니다. 서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그 대악마는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대답하기 전 고민은 길지 않았다. 굳이 돌려 말할 필요 있나?
“죽었어요.”
“……악마는 죽지 않습니다.”
“죽던데.”
나는 품속에서 검은 팔면체를 꺼내서 그들에게 내밀었다. 그걸 바라보던 마법사는.
“그르르륽.”
털썩—
…… 기절해 버렸다.
이건 나도 좀 당황한 상황이었다. 이 마법사 뿐만이 아니라 여기 모인 사람들, 그러니까 인간과 노움과 드워프와 엘프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뒷걸음질 치거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아, 악마의 심장…….”
“저주 받은 물건이야.”
“저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들은 모두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데.
잠시 뒤로 밀려났던 지휘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악마를 처치했단 말씀이십니까?”
“이게 그 증거잖아요? 더 필요한가? 현장 답사라도 시켜드려야 하나?”
슬슬 빨리 볼일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살짝 귀찮음이 올라왔다.
“아니, 아닙니다. 하지만, 악마를, 대악마를 직접…….”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경외심을 포함한 각종 부담스러운 감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당장 본성으로 복귀하라! 척후병은 먼저 가서 황실에 보고하라! 외부의 용사께서 대악마를 직접 토벌해 오셨다! 귀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전달해라!”
“아니! 그건! 싫어! 좀! 그냥 좀 지나가면 안 돼?”
“볼 일이 있으십니까?”
“그래!”
“그럼 황실 접견 일정 이후로…….”
“싫다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리리는 내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다가 넌지시 말했다.
“그냥 즐겨보는 건 어때? 당신이 좋아하는 ‘새로운 경험’이 될 텐데.”
“관심 없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나보다 여유롭고 기세등등한 리리의 모습이 왠지 꼽다.
* * *
돌아가는 길은 정말이지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저기요.”
“예! 다들 조용! 귀인님 말씀하신다!”
“아뇨. 귀인 아니고, 조금만 떨어져서 가주실래요? 내가 따라오는 걸로는 뭐라고 안 하겠는데…….”
“의전 대형을 유지해서 좌우로 거리를 벌려라!”
의전 대형은 또 무슨 근본 없는 단어야. 절로 나오는 한숨을 푹 내뱉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기로 했다.
어쨌든 로마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난데 없이 렐릭시나를 타고 훅 도시 안으로 가 버리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적당히 맞춰 주려고 했는데……
이건 너무 부담스러워서 이유 없는 화까지 치미는 느낌이었다.
슬쩍 리리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정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가끔씩은 까먹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귀족의 대우를 받으면서 자라난 애니까. 오히려 나름대로 즐기는 모습마저 보여 주고는 한다.
어쨌거나 신경을 돌릴 데가 필요했고, 나는 내가 들고 있는 목자의 지팡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황실의 인장이라고 부르는 이 물건의 진짜 이름은 목자의 인장. 그 형태는 지팡이었다. 인장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도장의 역할을 하면 되는 거고, 이 지팡이 역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의 유물이 있다면…….”
처음에는 순수하게 놀라기만 했던 리리도 생각을 하면 할 수록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왕좌가 왜 필요한 거지……?”
리리의 말은 합당하다.
황금의 왕좌를 원한다는 건, 왕의 자격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지팡이만으로 이런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왕좌가 왜 필요한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황금의 왕이 바랐던 왕은 단순히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전방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리리의 눈이 나를 향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조금 복잡해진 듯, 이리저리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살짝 웃음이 났다.
우리는 그대로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인내심도 딱 여기까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도시의 정문이 열리자마자 급하게 나온 듯한 황실의 고위직들을 본 직후였다.
“이분이 그 귀인이신가?”
“그렇습니다!”
“서쪽에서 출몰한 ‘재앙 크로노스’를 토벌했다는…….”
“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악마의 심장을 꺼내보였다. 황실의 인물들은 그걸 보더니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히익!”
“이게 그 악마의 심장이었고요. 보니까 무시무시하죠? 그걸 증거라고 칩시다.”
“그러니까, 잠시 황실의 자격으로 귀인을 모셔서 섭정께 직접 이 사실을…….”
“지금 서쪽에서 일어난 일은 마무리 되었으니까 병력 해산하셔도 되고, 원하면 사람 보내서 조사를 하든말든 그건 그쪽 마음이고요.”
“저기, 우선 천천히 식사부터…….”
“볼일 끝났죠? 나는 이제 내 볼일 볼 거니까 찾으려면 최소 내일부터 연락 주세요! 그럼 이만! 끝! 가자. 리리.”
“응? 어, 응.”
왕국의 법도를 존중하는 건 이쯤하면 할 거 다 한 거잖아?
한 손으로는 파란 불꽃을 숨긴 렐릭시나의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리리의 손목을 잡고 대로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리리는 멀뚱멀뚱 나를 따라 들어오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싫었어? 당신 화 났어?”
“화날 일은 아닌 거 알거든? 근데 슬슬 짜증이 나네. 왜 이러지?”
“물에 빠진 고양이 같아.”
“…….”
리리가 이렇게 방정맞게 웃는 건 처음 본다.
“그렇게 웃기냐?”
“당신은 진짜 특이한 사람이야.”
“악마 뚝배기 터는 것보다 이게 더 특이하게 보이나보네.”
“맞아. 황실의 자격으로 부른다는 걸 거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나는 싫어.”
황실이고 뭐고 관심 없다.
지금 내 손에 황실의 인장이 있다는 사실과, 이 의뢰의 성공으로 인해 다음 행성지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것.
“그거 말고 대체 뭐가 중요한데.”
“그래그래.”
답지 않게 실실 웃는 리리의 말을 일부러 못들은 척하며 바로 탐험가 연맹을 만났던 그 저택으로 향했다.
* * *
검은 태양과 그 숭배자. 그리고 대악마.
황금의 시대가 끝난 직후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서쪽의 사막에서 그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까지 덧붙였다.
탐험가 연맹의 간부인 엘리엇 하리파, 그리고 그 바로 아래 등급 정도 되는 것 같은 아멜리아와 올리버. 약 이주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내 이야기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었다.
대악마의 출몰은 솔라에서마저 목격될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최후에 있었던 강렬한 빛의 기둥이 대악마의 최후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이들은 저도 모르게 서쪽으로 시선을 옮기기까지 했다.
솔라의 방벽 위로도 보이는 드높은 유리 기둥이 여기에서마저 보였다. 저건 대악마의 사망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겠지.
“대악마를…… 직접?”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이야기해 주실 수 있소?”
“오늘 저녁에. 밥 먹고 적당히 술이나 한잔 하죠?”
엘리엇은 그 이야기를 듣고 호탕하게 웃었다.
“탐험을 마친 탐험가에게, 탐험보다 중요한 건 귀환 후 술 한잔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시군!”
여전한 성격이네.
어쨌든 뒷풀이는 미뤘으니, 우선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우리 약속. 안 잊었죠?”
“그렇지. 황금의 왕국으로 가는 길. 그것에 대한 단서. 나는 이 조건을 걸었지.”
이게 중요하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의 목적이었기도 했다.
“황실의 인장에 대한 처분을 끝내고, 오늘 밤 그대와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얘기해 주겠소. 그리고 그걸로는 부족하지. 그 이후 우리가 당신을 지원할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지. 어떻소?”
“좋아요.”
“고된 탐험에서 이제 막 돌아온 터이니 휴식이 필요하시지 않소. 올리버.”
“네.”
“이 분에게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을 대접해 줘라. 그…… 시쿤 과실주가 아직 남았나?”
“이분을 대접하는데 왜 하리파 님이 좋아하는 술을 찾으십니까? 그거 맛도 없는 거.”
“뭔……! 내가 장담하지! 이 분들에게 최고의 대접이 될 거라는 걸!”
“그러시겠죠.”
그들이 투닥되는 걸 가만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쨌든, 드디어 귀찮은 것들이 끝나고 내 시간이 생겼다는 거지.
그렇다면 나는 할 일이 있었다.
“이거, 황실의 인장. 제가 잠시 챙겨 가도 될까요?”
“응? 상관은 없지만…… 엄한 데에만 사용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면.”
“약속해요. 대신에, 저도 약속 하나를 받아야겠어요.”
엘리엇 하리파는 잠자코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황실의 인장, 당신들 욕심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
“우리의 명예와 황금을 걸고. 약속하오.”
엘리엇의 말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그렇다면…… 황제의 덕을 품은 자가 발견되었을 때, 그러니까 이 물건의 주인이 나왔을 때, 그를 위해서 온 힘을 다해 줄 수 있나요?”
“그건, 우리 연맹의 의무요. 탐험가 연맹은 왕의 조력자를 계승한 집단이니.”
“좋아요.”
나는 리리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리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 찾는 거지?”
“이번에는 눈치가 빨랐네.”
우리가 솔라로 오는 길에 맨 처음 만난, 악마에게 쫓기고 있었던 소년.
엄청나게 거대한 영혼을 품고 있지만, 흐릿해서 그게 뭔지 구분할 수 없었던 소년.
“어디 있는지 알겠어?”
“응.”
거리 한복판에서, 리리는 눈동자를 붉히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영혼은 거대하니까.”
* * *
해리.
「탐험가 길드」라는 이름이 붙은 흥신소에서 푼돈을 받고 일하는 소년.
소년은 언제나처럼 서쪽의 ‘대수림’에서 버섯을 채취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 숲이 자신만을 받아들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해리는 그 사실을 ‘탐험가의 자질’정도로 여기고는 했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미래가 활짝 열려 있다고 믿기 마련이기에.
하지만 해리는 내심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생각보다 재능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저 외면했을 뿐이다.
지난번에 형편 없이 악마에게 쫓겼을 때도 이런 생각이 올라왔지만 애써 지우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기사님은 참 멋있었는데.”
뱀파이어를 동료로 삼아, 흑마를 타고 검을 휘두르며 악마를 죽인 기사님.
그는 이번에 서쪽 사막으로 떠났었다. 그건 탐험이었다. 해리 자신이 너무나 원했던 그런 탐험.
서쪽에서 악마가 발생했고, 계엄령이 떨어졌지만 해리는 지금 몰래 빠져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돈은 벌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사실 기사님을 믿었다.
그가 대악마를 토벌하고, 그 머리를 들고 당당하게 복귀할 거란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기사님은 돌아오시겠지?”
“기사님 아니라니까?”
해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조금 흙투성이의 남자 얼굴이 보였다. 태양을 등진 그의 모습은 그늘져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를 해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기사님!”
기사는 해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그 앞,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철푸덕 주저앉았다.
얼떨결에 해리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않았다.
“이름이 뭐야?”
“해리, 해리라고 해요.”
“성은 없고?”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같은 길거리 출신이 성이 어디 있겠는가.
기사님은 한동안 그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왼손에 쥐고 있었던 동그란 판 같은 무언가를 해리에게 건넸다.
수리 문양이 양각으로 새겨진, 아름다운 황금빛 인장이었다.
“만져 볼래.”
“…….”
해리는 멀뚱멀뚱 기사를 바라보다가, 거기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인장은 지팡이가 되었다.
황금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며, 그 머리쪽에 반투명한 금빛 에너지로 이루어진 독수리의 형상이 뜨는 지팡이.
해리는 화들짝 놀라 그걸 놓쳐버렸다. 다시 인장으로 돌아온 물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기사의 눈치를 한 번 보고는 다시 주워들었다.
다시 지팡이로 변한 그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잔뜩 긴장했는지 해리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게…… 뭔가요?”
기사는 말했다.
“너,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
“……네.”
“내가 좋은 사람들을 소개시켜 줄게.”
강선후는 일어나 바지를 턴 뒤, 해리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