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ep57. 목자의 상 (3)
엘리엇은 강선후가 데리고 온 소년을 보고 당황했다. 열여섯 정도는 되었으려나?
잠시 강선후와 리리가 복귀 정리를 하는 사이에 엘리엇은 아멜리아와 저택의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 아이 말이야.”
아멜리아가 말했다. 그들 앞에 있는 반쯤 열려 있는 방문 안쪽에는 강선후가 데리고 온 소년이 있었다.
“예전에 흥신소랑 일할 때 한 번 본 적 있어. 거기 심부름꾼 같았는데…….”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문 틈으로 슬쩍 아이를 바라봤다.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는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바라보았다가 흠칫 놀랐다. 자기가 상상했던 탐험가의 집단이 아니라서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저 나이에 흥신소에서 일하다니.”
“저기, 저 생각보다 안 어리거든요.”
말소리가 들렸는지, 가만히 눈치 보고 있었던 소년이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들킨 김에, 아멜리아는 그냥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그 금발을 쓸어 올린 뒤 웃은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
“열일곱이에요.”
“어리구만.”
“…….”
탐험가 소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삼켜 버렸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탐험가 연맹을 후원하는 외부 귀족이 제공한 저택. 그 내부 장식이 딱히 화려하진 않았지만, 소년이 보기에는 너무나 웅장한 성채나 다름이 없었다.
“이름이 해리라고 했지?”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멜리아는 해리의 대답에 꽤 과장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을 풀어 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울리는 이름이네.”
올리버는 조금 뒤에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입을 열었다.
“귀인께서 왜 이 아이를 데리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유를 듣고 나면 납득할 수 있겠지.”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올리버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단순한 아멜리아의 호기심일 뿐.
아멜리아는 올리버가 남쪽에서 데리고 온 탐험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건 당연했다. 대악마의 심장을 가지고 온 것 아닌가? 올리버도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이번에 귀인이 보여 준 행보에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따로 자료관에 방문하여 귀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 정도로.
올리버는 다시 아멜리아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이번에는 소년이 엿듣지 못하도록 충분히 거리를 뒀다.
“내가 귀인에 대해서 찾아보고 다닌다는 사실, 연맹 내부에 다 소문나지 않았나?”
“이미 다 났지. 우리 연맹에 비밀이 어디 있어.”
올리버가 이런 식으로 서두를 뗄 때가 언젠지 아멜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를 쫑긋 새우며 말했다. 그 뾰족한 귀가 머리카락 속에서 삐져나올 정도로.
“재밌는 거라도?”
“……기억나? 그분은 포식자의 상이었던 거.”
“응, 응.”
“아는 마법사한테 부탁해서 황실 자료실에서 열둘 지배자에 대한 고대 기록을 찾아냈어. 아마 제국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성안에 있었던 자료 같은데.”
올리버는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 그 자료는 그의 작업실의 금고 안에 들어가 있어 바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중요한 자료였다.
“지배자의 상은 애초에 황금왕께서 말기에 자신을 대신할 존재를 만들기 위해 하사한 영혼인 거 알지? 그중에서 가장 특이한 사건이 있었던 영혼이 포식자의 영혼이었다는 내용인데.”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 있었는데?”
“포식자의 영혼이 스스로 사람을 선택했다는 거야. 왕이 하사한 게 아니라, 영혼이 멋대로.”
“……왕께서도 그걸 통제하지 못했다고? 황금왕께서?”
“기록상으로는 그래. 그 의지가 너무 강력했다고…… 하지만 왕께서도 그 선택을 납득하셨다고 적혀 있었어. 물론 이건 황금 시대의 기록도 아니고, 후대 누군가 멋대로 적은 거라 소설일 가능성도 적진 않지. 그뿐만이 아니야.”
올리버는 생각했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라고.
“포식자의 상은, 지배자의 영혼을 부여받은 뒤 두 번 죽었대.”
“……그게 무슨 소리야?”
아멜리아는 이해하지 못했다.
“두 번 죽었다고? 죽으면 죽은 거고 산 거면 산 거지, 두 번 죽은 건 뭐야?”
“죽음을 매번 극복해 냈다…… 는 뉘앙스였던 것 같았어. 명계에서 항상 지상으로 기어 올라왔다고.”
“…….”
아멜리아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 이야기에 혼란스러워했다.
죽은 자는 명계로 가고, 명계가 어떤 세상인지는 이미 전설 등으로 알려져 있기에 그랬다.
필멸자의 신체에 생명이 사라지면, 그 영혼은 잠시 지상에 남는다.
그리고 그 영혼을 찾아오는 명계의 존재. 최초의 악마 중 하나인 ‘수확자.’
그 수확자가 영혼의 탯줄을 끊어 버리는 순간, 필멸자의 영혼은 더 이상 형태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명계와 현세의 중간에 발을 걸치게 되면 유령이 되고, 완전히 명계로 가 버리면 죽은 자가 된다.
간단한 사후 세계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 법칙에 예외는 있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우주의 법칙이었기에.
그런데…… 포식자의 상은 그 법칙을 깨부쉈다.
그 어떤 능력도 타고나지 못한 인간의 몸인데도.
죽음을 극복한다.
이게 성립할 수 있는 문장인가?
“……그럼 저분이 그 포식자의 후손이라는 거야?”
“거기에 의문이 있어. 포식자는 단 한 번도 자손을 남긴 적이 없어.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게 제일 이상한데.”
올리버는 고개를 들고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금의 시대가 끝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포식자의 상을 다루는 문헌이 없어.”
“단 하나도?”
“황실 자료실도, 베드퍼드 도서관에서도. 정말 단 한 권, 아니 단 한 줄도 없었어.”
“…….”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금의 시대 말기와 현재.
연도로 셀 수조차 없는 그 긴 시간 동안 단 하나의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는다는 건, 노미나 산맥의 가장 높은 산인 ‘하늘 기둥’이나 파도치는 사막의 ‘끝이 없는 나락’에서 숨어 있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오랜 시간이라면, 세상 어디에 있든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기록되기 마련일 테니까.
하지만 명백히 단 하나도 없다.
이건 단순하지만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지금은 많이 변질되었지만 어쨌든 올리버와 에밀리아는 탐험가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차분하게 두는 건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그때, 잠깐 강선후를 만나러 갔었던 엘리엇 하리파가 돌아왔다. 노움의 짧은 다리로 빠르게 다가오는 그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엘리엇, 벌써 얘기 끝나셨…….”
“쟤가 목자의 상이래!”
“…….”
수염에 파묻혀 있는 대머리 얼굴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는 모습은 퍽 희극적이었다.
올리버는 순간 정지된 뇌를 다시 작동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저, 엘리엇.”
“무슨 일인가!”
“그거 비밀이라서 두 분이 따로 이야기 나눈 거 아닙니까?”
“……뭐 어때! 우리끼린데. 으하하!”
엘리엇은 멋쩍을 때 항상 저런 식으로 웃었다.
* * *
목자의 상.
황제의 덕목을 타고나 황실의 인장의 자격을 가진 지배자의 상.
어떻게 보면 ‘지배자’라는 명칭에 가장 어울리는 영혼의 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목자의 상은 해리라는 소년이 가지고 있었다.
서쪽 사막으로 출발하기 전 리리가 알아본 덕분에 추론할 수 있었다. 그토록이나 거대한 영혼의 상을 가진 소년이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으니까.
엘리엇은 오히려 목자의 상의 존재보다도 그 사실을 알아낸 강선후와 리리에게 더 관심이 많았다.
그날 밤, 한자리에 모인 네 명의 사람들은 촛불 몇 개로 밝혀진 방 안에서 간단한 음식과 술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깐 잡담을 하다가 엘리엇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그답지 않게 진지한 눈빛이었다.
“로얄 블러드요? 사실 알고는 있지만, 확답을 받아 보겠소.”
리리는 순간, 지금은 사라져 버린 검은 태양 숭배자인 바그너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 도시에서만큼은 네가 로얄 블러드라는 사실을 숨기는 게 좋을 거다.
그 생각을 읽었는지 엘리엇이 말을 이었다.
“숨기지 않아도 되오. 맹세하지. 탐험가 연맹이 당신에게 내밀 칼은 없어.”
“맞아요.”
“가문은?”
“신카.”
“빌어먹을. 인도자의 가문에 생존자가 있었군……!”
엘리엇이 처음으로 욕설을 내뱉으면서까지 반응했다. 아마 처음 보는 엘리엇의 심각한 태도에 강선후도 리리도 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알고 있는 눈치이긴 한데, 확실히 이야기해 두겠소. 솔라 주변, 아니 최대한 어딜 가든지 로얄 블러드라는 사실은 최대한 숨기시오.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대체 이유가 뭐예요?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도시에 왜 로얄 블러드가 한 명도 없죠? 저 소년이 목자의 상이라는 거, 로얄 블러드 한 명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고요. 엄청 거대한 영혼의 상이었으니까.”
“바로 그 이유 때문이오. 귀인.”
엘리엇이 말했다.
“로얄 블러드는 영혼의 상을 볼 수 있기에, 황금왕이 남긴 지배자의 상을 추적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지. 아마 인도자의 가문이 로얄 블러드인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거라 생각하오. 하지만, 모두가 황금의 재림을 바랄까?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소?”
“있어요. 바라지 않는 지배자들도 많이 만나 봤고.”
“바라지 않는 걸 떠나서, 아예 오지 않았으면 하는, 황금을 꺾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해내는 자들이 있다면?”
“…….”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검은 태양 숭배자들의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숭배자들이 그런 누명을 쓰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진짜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이 있으니, 누명을 쓰고 있었을 수도…….”
엘리엇은 강선후의 생각을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나는 그들이 처음에는 검은 태양 숭배자라고 생각했소. 하지만 귀인 덕분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더 얘기해 주세요.”
이런 대화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한 듯, 아멜리아가 미리 준비해 놓은 커다란 문서를 꺼내 놓았다.
마치 강력 범죄를 수사 중인 형사들의 화이트보드 같은 그림들이 무질서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는 문양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강선후는 그 문양을 알아보았다.
“……명계의 왕.”
“아는군. 지금은 영멸당한 명계의 왕을 이어 나가는 자들. 선과 악의 위치가 뒤바뀌기를 원하는 자들. 신들이 땅 아래 처박히고, 악마가 빈자리를 대신하기 바라는 자들.”
검은 태양이 왜 필요 이상의 누명을 썼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진짜로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이 있었고, 그놈들은 현실에 꽤 큰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광신도들이 세상에 있소. 아주 은밀하게 움직이지.”
“……그럼 솔라에 있던 로얄 블러드들은.”
“근 삼십 년 동안 그놈들에게 살해당하거나, 그들이 두려워 떠나 숨었소. 그래서 살아남았는지는 모르지만.”
“……황실은 뭘 하고 있어요? 그런 놈들이 돌아다니는데?”
엘리엇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실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더군. 황제의 부재 탓에 동력을 잃은 건지, 아니면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건지, 입지가 적은 종족이 피해를 입었을 뿐이니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정치적이겠지.”
엘리엇은 리리가 듣고 있음에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필요하다면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강선후는 문뜩 리리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를, 아버지를 죽인 놈들이…….”
“……아마 그놈들일 거요.”
“나는…… 나는 전쟁인 줄 알았어요. 화나고 슬펐지만 납득할 수 있었다고. 정치는 그런 거니까. 그런데…….”
리리가 고개를 들었다.
리리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흘러내릴 것처럼 이글거렸다.
“단순히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그래서 어머니를, 어머니를…….”
결국에는 리리의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강선후는 생각했다. 사실 이제까지 참았던 게 대단했던 거라고. 리리의 마음속 상처는 나은 게 아니라, 외면하고 억눌렀던 것뿐이었다.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많은 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중 무엇 하나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순간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고 이성으로 그걸 억누른다는 것. 강선후는 오히려 그 점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때가 아니다.
강선후는 말했다.
“뭘 입 다물고 있어.”
“…….”
“하고 싶은 말은 해. 내가 그렇게 가르쳤잖아?”
“복수, 복수를…… 하지만 그건 왕좌를 위한 여행에 전혀 도움이…….”
강선후는 엘리엇을 바라보았다.
“그놈들에 대한 정보는?”
“우리 연맹이 아마 유일하게 그놈들을 추적하는 사람들일 거요. 그만큼 가지고 있는 게 없진 않지만…….”
“그놈들의 수장은 영원히 살던 악마들이에요. 필멸자였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판 데미이블. 그들의 힘은 필멸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아멜리아가 뒤에서 그렇게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지금 눈앞의 남자가, 대악마의 심장을 가지고 온 당사자라는 걸 다시금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어쩔 계획이시오?”
“잡는다. 전부 족친다.”
“…….”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지.”
강선후는 돌려 말하는 법을 잘 몰랐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