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ep58. 변절자들 (5)
탐험가 연맹의 지하실은 익명을 요청한 외부 귀족의 재산이었다. 엘리엇 말고는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연맹의 회계와 행정 전반을 관리하는 올리버조차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연맹의 정체성은 황금이기 이전에 탐험가였고, 연맹원들은 전반적으로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저택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 외진 곳에 있긴 하더라도 어쨌거나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큰 건물인데 이상하리만치 본성의 시선이 닿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황실과 연맹 사이에 줄이 있다는 건 올리버 역시 알고 있었지만, 정치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고 분명 연맹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무리도 있을 터,
그들의 시선이 이 저택에 닿는 게 부담스러운 이유는 저택의 지하실에 있었다.
“……누가 봐도 감옥.”
귀족 개인이 시민을 처벌하는 게 금지된 이후로 이런 시설 자체는 금지되었다. 물론 표면적일 뿐이지만 이 법령은 꽤 단호한 것이어서, 지금 있는 대규모 시설은 종류불문 구금 시설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 저택 빼고는.
올리버는 예민한 성격을 타고났기에 평소에도 이 시설을 아니꼽게 보았다. 연맹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들이 트집 잡기 딱 좋은 명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간혹, 그 시설이 유용하게 쓰이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등불을 들고 지하실을 향하는 올리버의 귀에 미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악——!”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계단과 이어지는 긴 벽돌 통로를 따라 흐르는 비명 소리는 지상에서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복도 한가운데에 누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등불이 그 얼굴을 비췄고, 문 앞에 앉아 있는 아멜리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멜리아는 비명이 들리자 몸을 움츠리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씨…… 장난 아니네.”
“아멜리아.”
“왜 왔어?”
“순찰.”
“진짜로?”
“……그냥 궁금해서.”
아멜리아는 피식 웃었다.
아멜리아는 엘프에게서 볼 수 있는 온화한 성격도 없었고, 수행자다운 면모도, 묘하게 보수적인 태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숲을 포기한 엘프는 오히려 극단적으로 엘프의 삶과 멀어졌다. 올리버는 그게 억압된 감정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게 나쁜가? 올리버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억압된 자유의 해방이었고, 자유란 연맹의 설립 계기가 된 탐험가가 추구하는 가장 고귀한 가치였다.
“왜 여기에 있어?”
“내가 어떻게 자리를 뜨겠어? 저 뒤에서 귀인의 손에 반죽되고 있는 놈이 누군데.”
데미이블.
그 존재에 대한 아멜리아의 분노는 올리버도 알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악마를 증오하는 데에 어떤 이유가 필요한가. 올리버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아아아아악—! 미친놈아!”
“오우야…….”
아멜리아는 다시 몸을 움츠리며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무서우면 위로 올라가 있던가.”
숭한 장면을 보지 않는 척 눈을 가리면서, 실은 손가락 틈으로 엿보는 그런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미이블에게 효과적인 심문이 행해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살려! 살려 줘! 그건! 그것만은! 제발! 살려 주세요!”
“……귀인, 저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할 것 같은 분은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아멜리아가 말했고, 올리버는 동의했다. 시골이나 산골 출신의 순박함만을 엿보이던 사람이었는데, 어느순간 눈빛이 바뀌어 버리고는 했다. 전혀 다른 영혼이 한 몸에 번갈아 들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로열 블러드의 눈으로 보면 뭔가 특별함이 보일까? 그 로열 블러드가 귀인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걸까?
올리버는 그런 잡념에 빠졌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잡념에 몰입했다. 이곳의 빛이라고는 들고 있는 등불 하나뿐이라 그런 상념에 빠져들기 쉬웠다.
그래서.
“콰강—!”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는 그 순간, 올리버는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심장이 떨어져 나간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직접 느껴질 정도였다. 사례가 들려 연심 기침을 하는 동안, 어느새 폴짝 뛰어 뒤쪽으로 빠진 아멜리아는 엉성한 자세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후아…… 어?”
밖으로 나오던 강선후가 꽤 긴 머리를 쓸어 올리다가 아멜리아와 올리버를 마주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여기 있었어요?”
“아, 예.”
“와, 내가 여기서 나는 인기척도 못 느꼈네. 긴장이 많이 풀리긴 했나 봐.”
강선후는 오히려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름대로 반성하고 있는 듯했다. 올리버는 문뜩 정신을 차리고 조금 급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안에 있는 데미이블은 죽었습니까?”
“아뇨. 죽이면 안 되지. 자산인데, 자산.”
“그럼 저렇게 방치해놓으면 곤란해질 수도 있는…….”
강선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서 방 안쪽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아멜리아와 올리버도 다가와서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을 잃었다.
“쟤가 도망칠까요?”
“아뇨.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와.”
올리버는 내부의 풍경을 그저 잊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누군가 거기서 뭘 봤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이 봤던 어떤 끔찍한 의식의 풍경보다도 더 하다는 말 말고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올리버가 귀인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건 이 순간부터였다.
* * *
강선후는 연맹의 사람들을 모았다. 리리는 강선후의 요구에 하루 종일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회의실로 모인 지금 컨디션이 많이 올라온 모습이었다. 새하얀 피부에서는 다시 윤이 났고, 붉은 눈동자는 지난번보다 훨씬 깨끗한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강선후는 이런 상황에서 말을 길게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쪽 단체는 숫자가 많지 않아요. 그 중에서도 데미이블은 훨씬 적고.”
“데미이블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었다. 고문해서 뽑아낸 정보의 신뢰성은 따로 따져 봐야 할 일이었으니까.
리리도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멜리아보다 먼저 질문을 던졌다.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잖아? 놈들의 본거지가 어디냐는 건데.”
“맞아요. 저는 꽤 오랫동안 녀석들을 추적했었는데…….”
“찾을 수 없었죠? 아마 그럴 거 같은데?”
강선후의 말을 듣고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였다.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인데, 악마 교단의 놈들은 그 꼬리가 백 년이 넘게 늘어졌음에도 밟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선후는 이미 그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다. 혹시 알게 된 사실이 있는 걸까?
그리고 그가 얻은 결론은 아멜리아 입방에선 아찔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명계.”
“…….”
생략이 많았지만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이런 걸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성향의 올리버가 유일하게 침묵을 깨고 되물었다.
“놈들의 본거지가 명계에 있단 말입니까? 그 어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우리 세상이 아니란 말인 거죠?”
이번 질문은 조금 멍청했다. 하지만 그 질문을 질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궁금해서 되물은 게 아니라,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나온 말이었으니까.
* * *
명계, 사계, 오빌리사, 안토니오니카.
주신의 빛은 모든 차원의 모든 공간을 비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빛이 닿지 않은 곳은 부패했고, 곧 현세에도 영향을 주는 부정한 것들의 요람이 되었다.
종족마다, 문화마다, 시대마다 그곳을 부르는 이름은 달랐지만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세와 완전히 분리된 세계, 죽은 자들의 세계, 악마들의 부화장.
그 세계가 가진 이 속성은 그 어느 때라도 달라진 적이 없었으니까.
강선후의 말을 듣고 가장 격정적으로 반응한 건 역시 아멜리아였다.
“푸카puka…….”
이게 이계인들의 욕설이라는 사실은 이제 강선후도 잘 알고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악마놈들한테 붙은 놈들이니까. 그래도 산 영혼을 몸에 담고 있는 놈들이 명계에 들락날락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래도 그런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어요. 그냥 믿기 싫었을 뿐…… 근데, 젠장.”
아멜리아는 어느 정도 자제심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럼 정말 우리한테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거잖아요. 명계로 들어가는 건 아예 불가능해요. 현세의 존재가 명계로 간다는 건 바다가 하늘로 비를 뿌리길 바라는 것과 같으니까요.”
리리는 그 이야기에 공감하다가 문뜩, 강선후를 휙 하고 바라보았다.
리리는 생각했다.
…… 진짜 불가능한가?
리리는 과거, 남부 접경지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엿봤던 강선후의 과거에 대해서 떠올렸다.
언데드 조상에서 분화되어, 영혼과 생을 얻은 종족, 나크샤론.
그 첫 번째 조상이라는 아다마와 하바에 대해서 떠올렸다.
…… 아다마와 하바는 강선후를 이렇게 불렀다.
‘아버지.’
죽은 뒤 명계에 갔음에도, 다시 이승으로 올라왔다는 고대인의 전설.
그 주인공이 만약에 이 남자, 포식자의 상, 강선후가 맞다면.
“……그건 진짜 불가능한 일인가?”
리리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오직 올리버와 아멜리아만이 이 뱀파이어 가 하는 말을 터무니없는 의문일 뿐이라고 여겼다.
강선후가 말했다.
“글쎄. 우선 확실한 건.”
그러면서 허공에 팔을 뻗었다.
그리고 손아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손은 새하얀색깔이었고, 손톱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연금술사의 시약병』
어느새 강선후는 시약병에 담겨 있는 악마의 영혼을 개방하여 자신의 손에 담고 있었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악마의 기운에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우당탕—!
의자가 뒤로 세차게 날아갈 정도였다. 강선후는 신경 쓰지 않고 허공을 부여잡았다.
투명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던, 끔찍한 살점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눈 하나가 그 손에 잡혔다.
“……놈들이 내 미끼를 물었다는 거야.”
“그건…… 수확자의 눈!”
악마와 사신 등, 이계의 존재들이 현세를 염탐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부정한 마법.
“데미이블들이 여길 감시하고 있었다고?”
“일부러 감시하게 둔 거야.”
강선후는 그렇게 말했다. 악마의 영혼을 제어하는데에 온 힘을 쓰는 듯, 식은땀이 비오듯 흘렀고 그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리리는 강선후가 선악과의 영혼의 통제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밀라milla의 힘 없이.”
강선후는 검은 태양의 힘 없이 악마를 통제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으로, 오직 그 자신의 의지력으로.
명계에서 이승으로 기어 올라와 죽음을 극복했다는 전설.
그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강렬한 의지.
강선후가 손에 쥔 눈알 뒤로, 룬 문자가 얼기설기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강선후가 만든 룬이 아니었다.
이곳을 감시하려는 악마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마법들이었다. 악마의 힘이라는 걸 인증이라도 하듯, 그 룬은 불쾌한 검붉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강선후의 손에서 시작된 푸르고 청명한 힘이 그 룬의 부정함을 씻어 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허공에 무질서하게 떠오른 모든 룬 문자들이 푸른색으로 물들었으며, 일시에 정렬되어 강선후의 눈앞으로 모여들었다.
“……그게 뭐야?”
리리가 물었다.
“좌표.”
“……누구의?”
“우리를 감시하고 있던 놈들의 좌표.”
“…….”
언제나 강선후와 함께 다니던 리리마저 처음 보는 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한 거야?”
“우리 세상에서는 해킹이라고 불러. 놈들의 언어를 역설계한 거야. 룬 문자에는 모든 정보가 담겨 있거든. 발동한 위치라든가. 그래서 반대로 이런 식으로도 이용할 수 있겠다 생각해 봤어.”
“……대답이 되지 않잖아. 대체 그걸 어떻게 한 건데.”
강선후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 보니까 되던데.”
언제나처럼 이런 말이나 할 뿐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