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ep.58 변절자들 (6)
또각— 또각—
또다시 밤, 아멜리아의 부츠가 저택 나무 복도 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주택은 탐험가 연맹이 사용하는 곳이었느나 평소에는 공실이었고, 별일이 없는 시기에는 아멜리아만이 묵는 곳이었다.
물론 아멜리아 본인은 이 저택에 혼자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사람의 시선은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 어둠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세상은 흐릿해지고, 자기 자신의 영혼은 또렷해진다. 그 느낌을 좋아하지 않았다.
모험에 집착하고 끝내 연맹에 소속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어쨌거나 운이 좋은 일이었다. 이렇게 큰 저택을 홀로 사용한다는 걸 누가 나쁘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하멜리아 입장에선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이 저택이 그녀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엘리엇 하리파는 그녀의 정체가 방랑자의 상 가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맨 처음 이 말을 전했었다.
‘이 저택, 뮨 시네라 가문에서 후원한 것이야.’
이 저택이 애초에 아멜리아의 것이라는 사실. 아멜리아 역시 엘리엇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멜리아는 이 이야기를 들은 뒤 지금까지, 털어 낼 수 없는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은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미리 저택의 관리를 탐험가 연맹에게 맡긴 걸까?
‘그분들은 내가 탐험가 연맹에 들어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우리 가문이 방랑자의 가문이라서? 고대 떠돌이 엘프에게서 이어졌다는 가문의 피가 내 안에도 흐르고 있어서?
모를 일이었다. 결국 지배자의 상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여동생에게 계승되었으니까.
사실 아멜리아로서는 다 상관없는 일이었다. 지배자의 상 따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사실 가문의 유지를 찾아내는 것 따위 별로 기쁜 일도 아니었다.
정말 간만에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어 준 건.
「아아악—! 살려, 살려 줘! 알고 있는 건 다 말할 테니까!」
강선후가 만들어 낸 데미이블의 비명 뿐이었다.
아멜리아는 지난 밤 들었던 그 비명을 떠올리며 밤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밤에 잠들 수 없는 건 그녀의 고질병이었다. 그저 엘프 특유의 튼튼함으로 피로를 버티고 있었을 뿐.
쿵쾅—!
갑작스럽게 들리는 폭발음에 몸을 움츠렸다. 여기는 외진 곳이지만 근처에 사람이 살 텐데, 항의가 들어오진 않을까?
사소한 걱정을 하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성한 나뭇가지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진 않았는데, 환한 빛이 있는 걸로 보아 뒷마당의 강선후가 최소한 등불은 챙겨 간 모양이었다.
…… 아니면 불이 났거나.
후자의 가능성이 마음에서 떨어지지 않아 계속해서 그곳을 바라보았다. 일렁이는 불빛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 시점에서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보라색?”
나뭇잎 사이로, 그리고 마당을 둘러싼 벽돌벽에 반사된 불꽃의 빛은 노란색이 아니라 보라색, 혹은 파란색에 더 가까웠다. 정상적인 불꽃의 색깔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멜리아는 이미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뭔가 타는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그게 무슨 냄새인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뒷마당에서 피운 불꽃에서 날만한 냄새는 아니었다.
귀인이 뭔가 실수를 한 걸까? 귀인은 저도 잘 모르는 실험을 강행하길 즐기는 성격이었다. 대단한 분이지만 역시 말리지 못하는 모험가의 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크든 작든 사고를 한 번 칠 수밖에 없을 터.
‘내가 너무 긴장감이 없었던 건가?’
그렇게 3층에서 1층까지 내려온 뒤, 급하게 뒷마당 문을 열어젖혔다.
“귀인!”
타닥, 탁, 타다닥—
강선후는 통나무 조각 하나를 의자 삼아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리리도 바닥에 쪼그려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화톳불의 불쏘시개로 쓰기에는 쓰기엔 적합하지 않은 나무 몸통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몸통을 장작삼아 통째로 타들어 가는 불꽃이 있었다.
그 불꽃은 보라색 빛을 내고 있었다.
“……악몽 꿨어요?”
“악몽이요? 어, 아니요? 그냥 뒷마당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길래…… 어, 그러니까…….”
아멜리아는 모닥불 위에 얹어진 고깃덩어리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어, 실험 중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식사…… 중이라는 걸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
강선후는 자습시간에 몰래 매점 갔다가 걸린 학생처럼 멋쩍어하며 턱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당당함을 과시하며 오히려 목청을 높였다.
“……실험 맞는데? 아멜리아도 와서 한입 할래요?”
옆에 쪼그려 앉아 불을 쬐며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리리가 비웃었다.
“내가 말했잖아. 밤 중에 불 위에 고기 올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당연히 들킨다고.”
“아니, 상관없는데…… 무슨 실험을 하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귀인?”
아멜리아는 불꽃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검은빛을 띠는 불꽃.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간혹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얇은 환상소설책에서나 가끔씩 묘사되는 불꽃.
보통은 불길하게 표현되는 그런 불꽃이지 않은가?
“검은 태양의 불꽃.”
“검은 태양…… 이요?”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무릎 위에는 검은색 머스킷 피스톨이 얹여져 있었다.
검은 태양이 직접 하사했다는 성유물.
그리고 눈앞에서 거대한 목재를 통째로 태우고 있는 건 검은 태양의 불꽃.
“……검은 태양이 없는 시기에 검은 태양의 불꽃을 불러내다니, 이래도 귀인께서 검은 태양의 화신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나요?”
“아니라니까! 어쨌든, 테스트도 맞아요. 대충 화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미리 파악해 놔야 나중에 조절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강선후는 다시 불꽃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태양의 불꽃은 악마들한테 꽤 효과가 좋아 보였거든.”
“아무래도, 신의 힘이니까요.”
“아무리 몰락해도 신은 신이라는 거지. 음.”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기억을 회상하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불꽃 위에서 엉망으로 익어가는 고기를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근데 왜 하필 고기예요?”
그것도 피를 제대로 빼지 않는 고기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고의적으로 피를 머금게 한 고기였을 수도.
강선후는 리리를 가리켰다.
“얘가 피 안먹은 지 좀 됐어요. 사람 식사가 뱃속에서 안받는 건 아닌 모양인데, 아무래도 며칠 못 먹으면 좀 비실대더라고.”
“…….”
리리는 부정하지 않았다. 조금 부끄러운 듯 그 무표정한 얼굴을 살짝 숙였을 뿐. 검은색 머리카락이 불꽃을 반사하며 흔들렸다.
그제야 아멜리아는 자신이 신경 쓰지 못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일반 뱀파이어 가 아니라 로얄 블러드. 피에 대한 욕구, 그리고 실제로 필요한 양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텐데.
오히려 지금까지 흡혈을 참고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내일부터 이 분에게 맞는 식사를 준비하라 일러둘게요. 아니, 피를 준비하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 귀인께서 하신 대로 고기에 손을 써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멜리아가 자리에서 뜨려고 하자, 강선후가 입을 열었다.
“한입 안 할래요? 어차피 온 김에. 배고플 시간 아냐?”
아멜리아는 엉거주춤 일어났다가 다시 앉으며 장난스레웃었다.
“맛있어 보이진 않는데요?”
“생각 달라질 걸? 내가 맨날 탐험할 때마다 들고다니는 게 있거든.”
강선후는 주머니에서 비닐을 뜯은 뒤 내용물 가루를 고기 위에 부었다. 리리는 이미 그게 뭔지 아는 눈치였다.
“향신료 종류인가요?”
“소고기 다시다.”
“네? 뭐요?”
강선후는 그저 불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방랑자의 상이 가지고 있던 보물 중 하나. 데미이블한테 뺏겼나요?”
아멜리아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네?”
“과거 왕이 지배자의 상에게 줬던 선물이 항상 황금의 유물만이었던 건 아닌 모양이더라고요.”
강선후는 안주머니에서 황금 지침을 꺼냈다.
이 역시 열두 지배자에 대응 되는 황금의 유물은 아니었지만, 왕의 시대에 만들어진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이 더 있었죠?”
“보물이라면…….”
“가령, 엘신의 화살이라든가.”
“그건 제 동생이 집안에서 쫓겨 나면서 훔쳐 나갔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보물이면 보물이겠죠.”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다 생각했다.
…… 이 남자가 엘신의 화살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멜리아는 고개를 돌려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언제나와 같은 조금 피곤한 듯 평화로운 표정으로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저 작은 불꽃이 만들어 내는 화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지금 강선후는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멜리아 입장에서도 굳이 그를 속일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지만, 강선후가 궁금해 하니 입을 열기로 했다.
“……명계의 왕.”
리리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고대 탐험가 연맹의 시조가 되었다는 한 탐험가. 그가 명계의 왕을 죽이고 이승으로 올라왔다는 전설이 있어요. 이건 꽤 흔한 전설인데, 혹시 들어 보셨어요?”
“계속 하세요.”
“그가 이승에 가져온 물건이 두 개가 있대요. 이는 원래 이승에 존재할 수 없는 물건이라 둘 다 어떤 힘을 품은 보물이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명계왕의 목숨을 끊었다는 도끼.”
“나머지 하나는?”
“명계 왕의 뿔이에요.”
“그걸 당신들이 가지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고개를 얕고 빠르게 끄덕였다.
“과거, 첫 번째 방랑자는 탐험가의 발자취를 따라 모험하길 즐겼다고 해요. 그러던 중 탐험가가 이승으로 올라왔다는 자리에 도달하게 됐는데…… 거기에 명계왕의 뿔이 있었다네요. 그건 가문의 가보가 되었고요.”
“……어쩌면 데미이블이 당신네를 습격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우리가 죽었어야 할 이유라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멜리아는 자신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는 금방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강선후는 그저 웃었다.
“고생했네요.”
마치 아멜리아가 아무 짓도 안 했던 것처럼 행동했다. 단순히 그런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애초에 진짜 들리지도 않은 것처럼.
“그럼 이제 슬슬 끝을 봐야겠죠? 만약에 내가 일을 잘 끝내면, 그 뿔은 내가 가져가도 될까요?”
아멜리아는 그 눈빛을 해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 신뢰감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귀인은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그건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요.”
그래서 아멜리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 * *
올리버와 아멜리아, 엘리엇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 날 아침, 강선후가 찾아낸 『명계로 가는 문을 여는 방법』을 듣고 하나같이 난처해 하고 있었다.
“……인신공양이라니.”
명계로 가는 방법이 그게 유일했다. 명계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해선 영혼이 필요하고, 영혼을 얻는 방법은 살아 있는 신의 자손을 죽이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죽어 자유로워진 영혼을 통제하는 것도 문제 아닙니까?”
올리버가 그렇게 말했지만, 강선후가 이제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방법인지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뿐.
그때, 강선후가 하품을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 이제 여기서 사는 것도 꽤 익숙하네요. 슬슬 좀이 쑤시긴 한데.”
그러면서 리리와 함께 자리에 앉는 강선후.
“그래도 이제 슬슬 다시 움직이러 갈 거니까.”
조금 더 직설적인 성격을 가진 엘리엇이 대놓고 물었다.
“인신공양을 하실 생각이오?”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주저함 없이 그렇게 대답하는 건, 모두에게 충격을 주는 게 사실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강선후가 무슨 목적 때문에 명계에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데미이블을 소탕한다는 건 대의를 위해서라도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 하나의 목숨을 바치는 건 어쩌면 해 볼만 한 교환일 수도 있었다.
감정을 와전히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의 자손이고, 신의 자손에게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하자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강선후는 그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그가 누군가의 뒷덜미를 잡고, 의식을 행할 곳으로 향하기 전까지는
* * *
“아악! 아아아아아아!”
데미이블은 자신의 결말을 깨닫고 몸부림쳤다.
강선후는 녀석의 몸을 커다란 동굴의 한가운데로 집어던졌다. 녀석이 땅을 굴렀다. 돌에 부딪치며 피가 여기저기로 흘렀다.
데미이블은 저항할 생각마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선후의 무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앎에도 그랬다.
그의 마음속에 싹튼 공포는 완전히 하나의 인간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살려, 살려 줘!”
데미이블은 무릎 꿇고 빌었다.
“비록 악마에게 영혼이 더럽혀졌지만…… 응? 아직 늦지 않았어. 회계하고, 신에게 용서를 빌면…….”
“뭘 빌어?”
강선후가 말했다. 탐험가 연맹의 세 명과 리리는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나도 인간이야. 응? 우리는 같은 종족이라고! 너는 알잖아! 인간이라서 알잖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번뇌에 빠지고, 얼마나 자주 잘못된 길로 빠지는지. 잘못된 건 바로잡으면 그만…….”
“맞아.”
데미이블은 타는 듯한 통증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있는 은빛의 검날을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잡는 길이야. 네가 제일 가치 있게 쓰이는 길이고.”
검날이 뽑히며, 데미이블의 심장도 같이 뽑혀나왔다.
그건 검은색의 보석, 완전히 악마의 그것이었다.
심장에서 빠져나온 데미이블의 영혼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사람이 볼 수 없었지만, 모두가 지금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사자의 지팡이』
강선후가 손에 들고 있는 보석에서 황금빛 광채가 나며, 남색의 구슬을 가지고 있는 지팡이가 손에서 발현했다.
그건 명계로 도망치려는 악마의 영혼을 완벽하게 포박했다.
아멜리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로 어제, 귀인께서 자신에게 보여 줬던 그 친절함을 떠올려 봤다.
그때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단호함.
전혀 다른 영혼이 저 몸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