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ep59. 두 명의 반인반마. (1)
강선후는 저 밑, 흑백의 풍경 속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형의 존재들을 바라보았다. 리리는 반대로 그런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이형의 존재를은 강선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 시해자.」
「죽은 왕이 기다린 자.」
「명계의 왕을 죽인 자가 오셨다.」
이 말에 담겨 있는 의미보다는 감정이 더 중요했다.
명계의 존재들은 강선후를 적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목소리에는 동경이 담겨 있었다.
명계란 신의 빛이 닿는 모든 존재를 증오하는 공간이다. 그 어떤 이유 없이 원래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가 지금, 강선후를 찬양하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대체 왜?
‘……명계의 왕과 싸워 이겼기 때문에?’
그 역사가 사실이더라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여전히 있었다.
자신들의 왕을 죽였다면, 오히려 더욱 증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강선후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혹시 과거의 일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걸까?
하지만 강선후는 그 부분에 대해서 딱히 말을 꺼내지 않았고, 이런 단순한 결론만 내렸을 뿐이었다.
“명계를 여행하는 게 우리 걱정만큼 위험하진 않을 것 같네. 다행이야.”
강선후는 항상 그랬다. 목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열정이 가득했으나, 그 과정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었다.
강선후는 고개를 돌려 수확자의 눈이 있는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탐험가 연맹의 사람들은 화면을 통해 그 모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숨을 죽이고 강선후의 말을 기다렸다.
「모로스moros를 쓰면 땅에 새겨진 그 화면을 공중으로 들어 마음대로 옮길 수 있을 거예요. 당신들 그 정도 룬을 쓸 줄 알죠? 어렵진 않으니까.」
올리버와 엘리엇은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멜리아는 그 룬을 구사할 줄 알았다.
“모로스moros.”
흙바닥에 그림처럼 새겨져 있었던 화면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제 이 화면을 보기 위해 동굴 안에서 꼼짝없이 박혀 있지 않아도 되었다.
강선후는 말을 이었다.
“데미이블들이 당신네 위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물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겠지만, 언제든지 당신들 본거지를 습격할 수 있을 거예요. 그에 대한 대비는 당신들 몫이에요.”
강선후는 모든 사항에 대해 연맹의 편의를 봐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들의 몫은 자신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 강선후는 연맹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엘리엇과 올리버, 아멜리아는 강선후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럴 생각이었다.
“가죠. 가서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올리버의 말에 엘리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강선후의 모습을 주시하며, 동굴에서 나간 뒤 저택으로 돌아갔다.
아멜리아는 화면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당신한테도 들리나요?”
화면 속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뭘 하실 생각이신가요? 귀인.”
「데미이블을 족쳐야지.」
아멜리아는 속으로 품고 있던 의문을 참지 못하고 꺼냈다.
“대체 그게 당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 거죠. 그냥…… 동료의 복수인가요?”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그건 리리도 가지고 있는 의문이었다. 그냥 신카 가문에 대한 복수를 대신 해 주는 걸까?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지만 묘하게 강선후답지 않은 행동이기도 했다.
강선후는 입을 열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죠. 하지만, 하나가 더 있어요.」
“그게 뭔지 알면 제가 조금 더 명확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 같네요.”
「명계왕의 뿔.」
아멜리아가 몸담았던 방랑자의 가문이 가지고 있었던 보물.
지금은 데미이블에게 약탈당한 바로 그것.
「그걸 돌려받아야지.」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강선후는 이런 말을 했었다.
‘그건 내 거예요.’
자신의 복수를 대신 하기 위해 뛰어든 강선후에게, 아멜리아는 처음부터 그 보물을 맡길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 남자가 과거의 그 탐험가였던 걸까?’
고대에 명계왕을 죽이고 죽음을 극복한 존재. 탐험가 연맹의 시조.
그게 이 인간인 걸까?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왠지 아멜리아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아멜리아가 잠시 엘리엇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리리는 강선후에게 넌지시 물었다.
“왜 명계왕의 뿔에 관심을 보이는 거야? 그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는데.”
“원래 내 것이었으니까.”
“그렇구나…… 뭐?”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원래 내 것이었으니까.’
이건, 과거 명계왕과 싸우던 시절의 기억이 돌아와야 할 수 있는 대답 아닌가?
리리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에, 강선후는 먼저 언덕 밑으로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 *
우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기로 했다. 렐릭시나는 일부러 데리고 오지 않았다.
“영혼을 가진 명계 말이 명계로 돌아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직감적으로 위험부담이 느껴졌다. 게다가 명계에서는 애초에 은밀하게 움직일 계획이었으니 말을 탈 수도 없었다.
언덕에서 내려온 뒤, 하얗게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과 바위 사이를 가로질러 이동했다. 온통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그 자체로 신비롭고 음침했다. 나는 특히 리리 눈동자가 회색으로 보이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눈이 빨갛지 않으니까 인상이 더 순하게 보이는구나.
「우우…….」
내가 지나치면, 이리저리 뒤틀린 명계의 존재들이 거리를 벌리거나 바위 뒤로 숨거나, 아니면 네발로 설설 기었다.
“이형의 존재들이 당신을 피하고 있어.”
“…….”
리리는 이 상황에 뭔가 고양감마저 느끼는 듯했다.
이승의 필멸자를 명계의 존재들이 두려워한다.
재밌는 상황이기는 하지.
하지만 조금 더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곳은 안심하고 관광이나 할 정도로 여유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이성을 가진 존재들은 날 피한다고 쳐. 그럼 그러지 않은 존재들은?”
리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자.”
나는 리리의 긴장을 조금 더 올린 후에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헤맬 필요는 없었다. 나는 데미이블 본거지의 좌표를 탈취한 상황이고, 평소에 자주 쓰는 추적 룬을 통해 네비게이션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희미한 빛으로 이루어진 지시선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했고, 데미이블의 본거지가 있는 구역은 다행히 거리가 멀지 않았다.
현실의 시간으로 한나절 정도 이동했을까?
우리는 딱 봐도 심상치 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골짜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거 같은데.”
리리는 나를 슬쩍 바라보다가 다시 골짜기로 눈을 향했다.
명계의 지형지물을 바라보며, 자연적이고 아니고를 구분할 수 있을까? 이곳의 환경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인데, 기존의 상식으로 판단하는 게 어불성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리리 역시 내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아마 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누가 봐도 그랬다.
칼날처럼 높게 치솟은 거대한 산맥.
그 가운데에 쪼개지듯 만들어진 거대한 골짜기는 산맥을 관통해서 저편까지 이어져 있는 듯했다.
그 골짜기는…….
“칼로 베어 낸 것 같아.”
누군가 거대한 도끼로 산맥을 찍어 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우리는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조금 특별하게 생겼고 오금이 저릴 정도의 위엄이 느껴질 뿐, 골짜기 자체에는 어떤 위험도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부로 그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좌우 폭마저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그 골짜기 안쪽 저편.
여기서도 보이는 그 거대한 ‘시체’.
그게 뭔지는 우리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명계의 왕.”
왕관을 쓰고 있는, 팔이 여덟 개가 달린 산맥만큼이나 거대한 신체는…… 거의 뼈만 남은 모습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의 일부를 벽으로 삼아 지어진 흉측한 성채가 있었다.
나는 룬으로 만들어진 네비게이션을 살펴보았다.
빛으로 만들어진 지시선은 정확히 그 성채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뜩 뭔가를 깨달은 리리가 동공을 진하게 물들이며 다시 시체를 바라보았다. 흑백의 풍경이라 제대로 알아볼 순 없지만, 아마도 영혼을 보는 능력을 개방한 듯했다.
그리고.
털썩—
뒤로 주저앉았다. 리리의 몸이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 몸을 지탱한 채 호흡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리리는 의식을 잃은 건 아니었다. 그저 세차게 떨리는 눈동자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동공이 당장이라고 힘이 풀릴 듯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있었다.
“죽음, 죽음의 영혼이…….”
리리는 입을 열었다.
“웃으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 고개를 숙이고, 바로 이 앞에 눈이 있어…… 웃고 있어…….”
리리가 손가락으로 우리의 눈앞, 허공을 가리켰다.
명계왕의 영혼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고?
나는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가 리리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가자.”
리리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각오를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는 게 보였다.
우리는 데미이블 성채로 다가갔다.
성채의 거대한 문 앞에는 수많은 시체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시체들이 악마 교단의 신도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과는 구분되는 네 명의 시체가 있었다. 그들은 어떤 제사의 공양물이 된 듯, 십자가에 못 박힌 채 피범벅이 되어 늘어져 있었다.
“……데미이블들이야.”
나는 그 네 구의 시체가 데미이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신체 부위 일부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뭐지?
“우리 이전에 누가 성채를 습격한 거야? 명계에서 전쟁이 일어났던 건가?”
인간들도 서로 자주 죽이니까, 명계의 존재들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 점에서, 리리의 추측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성채의 문 앞에, 불량하게 앉아 있는 비쩍 마른 남자는 시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어서 와. 시대를 뛰어넘는 내 오랜 방해꾼.”
그는 피범벅이었고, 상처도 딱히 보이지 않았는데도 절뚝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가죽은 뼈에 들러붙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몰골이 앙상했다.
하지만.
까득—
리리는 이를 악 물으며, 칼을 뽑아 자신의 손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손바닥의 상처에는 피가 흘렀으며, 곧 증발하려 붉은 증기가 되었다.
리리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금기된 혈술을 사용했다.
그 정도로 촉박한 상황이었다.
“……저 자식, 영혼이 하나가 아니야.”
리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다섯 개의 악마 영혼, 그리고, 수십 개의 인간 영혼!”
리리의 말을 듣고, 앙상한 남자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네놈을 위해서 준비해 놓은 거야. 어때, 마음에 들어? 이 좆같은 방해꾼 새끼야.”
* * *
데미이블은 여유로웠다.
그는 강선후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더 나아가 일부러 강선후를 유인했다.
그 여유로움 속에서, 강선후는 질문을 던졌다.
“……나 하나 맞이하자고 동료들을 다 죽인 거야? 너희들한테 동료애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하는데, 그걸 떠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거 아닌가?”
데미이블은 대답했다.
“우리에게 죽음이 무슨 의미일 거 같아……? 너희 필멸자들이랑은 조금 다를 거란 생각 안 들어? 우리한테 죽음이란…… 그저 수단이…… 야.”
데미이블은 비틀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앙상한 신체는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았으나, 리리가 보고 있는 그 영혼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은 명계였다.
어쩌면, 육체보다 영혼이 먼저인 공간.
강선후는 다시 물었다.
“내가 그 정도로 너희한테 위협적인가?”
“아주 오래전…… 너는 황금을 일으킨 주동 인물 중 하나니까.”
“……그래?”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가 황금의 시대의 주요 인물 중 하나라고?
아드득, 까드득.
데미이블은 이를 갈며,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중요한 건, 황금의 시대 놈들은 그 시대가 끝나며 전부 사라졌다는 거야. 용은 은둔했고, 거인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묘지기는 제 몫을 포기했지. 그런데, 그런데…… 네놈은 여전히 이 시대에 남아 있어! 대체 어떻게? 인간 놈이 어떻게 그 시대를 뛰어넘고 이 시대에 남아 있는 건데? 대체 왜? 대체 왜? 흐흐흐흐.”
데미이블은 감정을 멋대로 발산했다.
“네놈이, 네놈이 모든 일을 망치려고 하는 게 벌써 두 번째야.”
“마중 나왔다는 건, 내가 여기로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면 왜 방해 안 했어?”
“여기는 나에게 유리한 영역이거든. 멍청한 필멸자 놈들이랑 다르니까.”
데미이블이 악마의 힘을 개방했다. 그 척추에서 검은색 팔 두 개가 뻗어 나와 날개처럼 펼쳐졌다.
“……어머니. 미안.”
강선후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리리의 등에서 박쥐 같은 날개 한 쌍이 뻗어 나왔다. 강선후가 조금 놀라며 리리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날카롭게 일렁이고 있었으며, 코에서는 끊임없이 새까만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물어볼 시간 따위는 없었다. 데미이블의 검은 팔이 순식간에 눈앞까지 쇄도했다. 손톱 사이사이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강—!
눈 한 번 깜빡이기도 부족할 것 같은 시간.
아주 간단한 공격이었으나 충격은 압도적이었다. 땅에 재처럼 가라앉아 있었던 하얀 모래들이 일시에 솟아오르며 폭발에 버금가는 연기를 만들었다.
“네놈이 아무리 규격 외 필멸자라도…… 필멸자가 명계에서 악마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오만도 유분수……?”
모래가 걷혔다.
데미이블의 부정한 손톱은 강선후에게 닿지 않았다.
강선후의 피부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눈은 눈동자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새까맸다.
강선후가 가볍게 내민 손. 그 새하얀 손의 손톱은 검었다.
“……못할 것도 없지 않나?”
강선후의 등 뒤, 위쪽 허공.
원래는 영혼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괴수 형태의 검은 영혼.
그것이 어깨를 거칠게 내밀어, 강선후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데미이블의 팔은 그 강대한 검은 몸통을 뚫지 못했다.
“이미 옛날에 한 번 해 봤던 건데.”
선악과의 악마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저 무력하게, 무기가 되어 휘둘릴 뿐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