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ep59. 두 명의 반인반마. (2)
수확자의 눈은 명계의 존재들이 만들어 낸 마법이었다.
여러 이유로 생명이 사그라지고 신과 연결고리가 허약해진 필멸자의 영혼을 명계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는 존재 ‘수확자’.
그 존재가 이승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마법인 수확자의 눈은 순수하게 관찰을 위해 존재했다.
수확자의 눈은 악착같이 명계의 장면을 눈에 담았다. 그래서 저택으로 돌아가는 연맹원들은 명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서큐버스의 몽상(夢狀)을 보고 있는 것인가?”
엘리엇은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과장을 섞어서 말하는 걸 즐겼다. 그저 재미 없는 농담일 뿐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멜리아도 올리버도 그 말을 농담으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흑백의 세상.
거대한 명계왕의 시체.
참혹한 공양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성채의 문 앞.
수척한 모습의 데미이블은 마치 강선후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고, 강선후 역시 데미이블이 하는 말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귀인이 황금의 일원…… 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황금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옛날. 그것도 몇천 년이라든가 몇 시대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옛날이었다.
과거 고고학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시절에는 그 시대가 실존했는지조차 일부 논쟁거리였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서 강선후는 완벽하게 인간이었다.
“……인간이 그 시간을 살아남는 게 가능할까?”
아멜리아의 말은 바보 같이 들렸다. 하지만 그런 바보 같은 가능성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멜리아. 넌 엘프잖아.”
“그렇지?”
“필멸자 중에서 가장 장생한다는 엘프조차 로크 벨라를 한 번밖에 듣지 못해. 한 시대 이상 살아가지 못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황금의 시대와 지금은…… 시대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흘렀잖아.”
“……우리 생각만큼 그렇게 오래전이 아니라면?”
다소 혼란스러워 제대로 사고할 수 없는지 아멜리아는 계속해서 터무니없는 가설을 던져 댔다. 이는 탐험가 연맹원들의 도발적인 특징이었으나 올리버는 이런 논쟁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명확히 단정 지었다.
“그럴 리는 없어. 시공간을 넘어 다닐 수 있는 게 아니…….”
잠깐.
올리버는 생각했다.
시공간?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지 않은가?
시공간을 다루는 몰락한 신.
“……검은 태양.”
황금의 시대에 관련된 이 사건에, 혹시 검은 태양이 관여했다면?
아니, 확실히 관여했다. 검은 태양은 황금을 이어 나갈 사람들을 전부 죽이려 들었던 대악마를 막아선 존재가 아니던가? 즉, 관여 자체는 이미 입증된 사실이 아니던가?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엘리엇이 올리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올리버는 자신의 허리 높이 정도를 간신히 오는 이 노움 상사를 바라보았다.
“하리파. 돌아가면 바로 조사해야 할 게 있겠습니다.”
올리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엘리엇은 그 눈빛을 보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었다. 올리버와 엘리엇이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느라 명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지 못한 순간, 열심히 솔라로 발걸음을 옮기던 아멜리아가 우뚝 멈춰 섰다.
올리버와 엘리엇의 눈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아멜리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녹색의 눈동자를 모니터에 고정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그래?”
엘리엇이 고개를 번쩍 들어 낑낑대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올리버도 조용히 아멜리아에게 다가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명계에서, 데미이블이 악마의 팔을 뻗어 강선후를 습격한 참이었다. 막대한 모래 먼지가 치솟았으며, 그 충격은 멀리 떨어져 있는 수확자의 눈에마저 영향을 주었는지 잠시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흔들렸다.
모래 먼지가 걷히고, 연맹원들이 본 건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는 강선후의 모습이었다.
강선후의 등 뒤에서 일어난 검은 괴수의 상채.
그것이 강선후를 보호하듯, 어깨로 그 팔을 막아서고 있었다.
악마였다.
“……귀인께서, 악마를.”
강선후는 데미이블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자신감을 놓지 않았었다. 아멜리아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대악마를 상대했던 건 그 자체로 대단했지만, 결론적으로 검은 태양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하게 필멸자가 데미이블과의 정면 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아멜리아는 강선후가 자신감을 가졌던 이유를 목격했다.
악마.
강선후는 자신의 영혼을 제물로 바치지 않은 채, 순수한 필멸자의 영혼으로 악마를 조종하고 있었다.
데미이블이 가지고 있는 반쪽짜리 악마가 아닌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순수한 악마의 영혼이 강선후에게 통제되고 있었다.
* * *
데미이블도, 강선후도, 리리도. 명계의 한복판에 있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높게 솟아올랐던 모래들이 뒤늦게 떨어지며 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는 마치 비가 내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데미이블의 수척한 얼굴은 강선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강선후의 악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어떻게 악마를? 인간이?
데미이블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가득 떠다녔다.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필멸자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를 수치로 여겼기에 그랬다.
그래서 그저, 다음 공격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불안하지 않았다. 필멸자가 어떻게 악마를 굴복시켰는지는 모르나, 평범한 인간인 저 남자와 데미이블인 자신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으니까.
순식간에 몇 번의 공방이 이어졌다. 데이이블의 악마는 거대한 팔의 형태로 강선후에게 휘둘러졌으며, 강선후의 악마는 전장을 돌파하는 오크나 거인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그 팔들을 막아 내고, 후려치고, 찢어발겼다.
언뜻 인간으로 보이는 둘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지만, 근처의 땅이 움푹 파일 정도의 격렬한 공방이었다.
데미이블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두 팔이 위로 드높이 치솟더니, 손바닥을 쭉 펴 아래로 향했다. 열 개의 손가락이 순식간에 길게 늘어지며, 가시 형태로 쇄도했다. 수많은 송곳들이 땅에 꽂혔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강선후와 리리는 빠르게 좌우로 튕겨지듯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그 모든 손가락이 한 점을 향하는 건 아니었다. 약간 기다리고 있었던 손가락 하나가 리리 쪽으로 쇄도했다.
“크윽……!”
리리는 허리를 격하게 회전시키며 눕다시피 했다. 검은 손가락이 그 위를 스쳐 지나가 바닥을 때렸다. 어깨를 스치자 가죽 재킷이 찢어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단순히 닿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녹이는 맹독이었다. 리리는 격통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날개로 상처를 감싸 안았다.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이제 막 흐른 핏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데미이블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강선후가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자체에는 당황하지 않았으나, 강선후의 눈을 본 그 순간.
“……!”
미세하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흰자위가 보이지 않는, 온통 검은색뿐일 눈, 동공은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맹수의 눈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강선후의 악마가 주먹을 뻗었다. 데미이블의 날개뼈에서 하나의 날개가 돋아나 방패처럼 주먹을 막았다.
주먹은 날개를 뚫어 내지 못했으며, 그 측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궤도가 틀어져 땅에 박혔다.
콰아앙—!
그 순간, 무언가 품 안으로 쑤욱 하고 들어왔다. 악마에게 둘러싸여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던 강선후가 무언가를 찔러 넣었다. 그건 곡선이 드러나는 나이프였다.
데미이블은 뒤로 도약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뭐……?”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려다보니, 검은색 웅덩이가 어느새 발밑에 고인 채 발목을 잡고 있었다. 피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
검은 머리의 뱀파이어가 자신에게 핏발이 가득 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양쪽으로 쭉 뻗은 박쥐 날개, 그리고 손등과 손목의 수많은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증기.
로얄 블러드의 금지된 혈술.
로얄 블러드의 생존자가 아직 있다고?
빠각.
발목이 꺾였다.
깊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푸욱.
손가락 두 마디의 깊이. 정확히 갈비뼈 사이를 파고든 칼날은 무언가에 막혔다. 강선후는 살짝 인상을 썼다. 사람의 신체 구조상, 뼈에 막힐 부위가 아니었다. 데미이블은 급하게 손을 휘둘러 강선후를 움츠러들게 한 뒤, 뒤로 멀리 밀려났다.
상처를 바라보았다. 아물지 않고, 검은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평범한 나이프가 아니었다.
“생명의 기운을 담고 있는 칼날?”
“아는 친구가 있어서 말이야.”
“……친구?”
“버뮤다라고 있어. 나중에 소개시켜 줄게.”
숲의 기운을 담은 칼날을 인간이 다루고 있었다. 유일하게 엘프만이 숲을 설득할 수 있고, 그렇게 만든 무기를 인간에게 넘길 리는 절대로 없을 텐데.
데미이블은 굽은 자세 그대로 눈을 게슴츠레 뜨며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군.”
“날 잘 아는 것처럼 말하더만, 또 그건 아닌가 보네?”
데미이블은 낄낄 웃었다.
“잘 알진 못하지. 잘 알 필요가 없거든.”
“왜?”
“네놈이 수많은 진화의 기회 속에서도, 인간으로 남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
“…….”
강선후는 기분 나쁘게 웃는 데미이블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게 뭐?”
“네놈의 한계가 내 예측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지.”
데미이블은 허리를 쭉 폈다. 두두둑 소리가 강선후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
강선후의 등 뒤, 땅에서 솟아오른 가시. 움직임도 없었다. 강선후가 가지고 있는 초월적인 감각조차 어떤 징조도 감지할 수 없었다. 마치 잘못 찍은 사진 두 장을 이어붙인 것처럼, 어느 순간 가시는 강선후의 등을 관통한다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강선후가 상처를 부여잡으며 무릎 꿇었다. 리리는 이를 깨부술 듯 악물면서도, 데미이블을 견제하기 위해 함부로 기존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가시는 창의 형태였다.
과거, 풍화의 시대 언젠가 벌어졌던 참혹한 전쟁에서 쓰이던 창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굳이 너를 여기까지 불렀는지 벌써 잊었는가?”
데미이블은 팔을 양쪽으로 쭉 피며 말했다.
“명계에서는 필멸자가 악마를 이길 수 없거든. 악마를 다루는 필멸자라 하더라도 말이야.”
데미이블은 생각했다.
악마를 다루는 상상력.
인간 마음속에 있는 원초적인 부정적 감정. 그걸 형상화시키는 건 저런 무른 인간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데미이블은 한때 인간이었기에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변수가 없었다.
데미이블은 말했다. 끝내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은 어리석은 자라면.
“그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셈이지.”
리리는 날개를 펼치고 데미이블에게 달려들었다. 그 손톱에서 피가 살기를 품은 채 뿜어져 나왔다.
참살의 혈, 드워프의 고대 갑옷마저 찢어발긴다는 로얄 블러드의 사냥 기술. 과거, 로얄 블러드가 필멸자를 포식하던 괴물 시절을 상징하기에 이제는 금지된 혈술의 일종.
하지만 악마의 팔을 베어 낼 수는 없었다. 데미이블은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그저 등 뒤의 손으로 리리의 목을 부러트릴 듯 부여잡았다.
“너한텐 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먹이랑 여행을 다니는 느낌은 어때?”
콰강—!
데미이블은 그대로 리리를 땅에 내리꽂았다. 리리는 피를 뱉어 내면서도, 그 눈을 데미이블에게서 떼지 않았다. 몸 여기저기가 부러졌음에도 기세를 늦추지 않고 몸을 일으켜 다시금 손톱을 내밀었다.
심기가 불편해진 데미이블은 그 손목을 그대로 부여잡았다. 그리고 높게 쳐들어, 리리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로얄 블러드답지 않군. 너희들은 계산을 잘 하기로 유명하지 않나? 대체 왜 이러는 거지?”
“…….”
리리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데미이블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잠시 기다렸다. 궁금한 탓이었다.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틀렸어. 등신 새끼.”
로얄 블러드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욕설이었다.
“어떤 위기에서도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은 자라서…….”
리리는 웃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거야.”
문뜩, 데미이블은 고개를 돌려 강선후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강선후가 없었다.
그저, 작은 룬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데미이블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밀라-토리타스milla-toritas.」
“……여기는 검은 태양이 없는데.”
리리를 잡고 있던 팔을 잘라 내는 검날의 예기를 눈치채지 못한 채, 데미이블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강선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데미이블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팔의 절단면에서 불에 타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있을 리 없는 일이었다. 그 어떤 검도, 악마를 베어 낼 수 없는…….
강선후가 들고 있는 은빛 검을 바라보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데미이블은 떨리는 눈동자로 그 검에 시선을 집중했다.
“너, 대체 그 검을 어디서…….”
“아는 친구가 있어서 말이야.”
강선후는 검날을 데미이블의 목에 향한 채, 그렇게 말했다.
“눈치껏 시간 끌어 줬네. 리리.”
“이번엔 꽤, 꽤 도움이 됐지?”
리리는 팔을 어루만지며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