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ep59. 두 명의 반인반마. (3)
잘린 팔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리리는 손톱자국이 깊게 난 목을 어루만지며 뒤로 물러났다.
데미이블은 자신의 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팔 하나 잘려 나간 건 반마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육체와 영혼, 죽음과 삶, 그리고 고통을 대하는 자세가 필멸자의 상식과는 전혀 달랐기에, 잘린 팔 따위 데미이블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데미이블은 자신의 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절단면에서 불에 타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이는 단순히 절단상에서 느껴지는 고통과는 그 종류가 달랐다.
불멸을 베는 능력.
자신의 살을 가르고 뼈를 부순 검격에서 그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정체에 대해서, 데미이블은 강선후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데미이블은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검을 들고 있는 강선후가 보였다. 그 흉흉한 검 끝이 자신의 목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그 검을 어디에서 얻었지?”
“아는 친구가 있다니까.”
“……황금의 시대가 만들어 낸 유물…… 지금은 분명 잃어버린 기술일 터인데.”
데미이블은 말했다.
“우리가, 우리가 그 시절의 모든 기술을 없애버렸는데. 단 하나도 남김없이.”
“용이 지키고 있는 성에 있던 걸 없애지는 못했겠지.”
“……용?”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분명 용은 풍화의 시대가 오래 지속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이 세계를 떠났다. 자신들의 고향을 버렸다.
이 역시, 각지의 데미이블들이 의도하여 만들어 낸 사건이었다.
“용이 세상에 남아 있었다고?”
“끝까지 세상에 남아 있던 양반 하나가 있으시거든.”
강선후는 웃었다.
“친구의 부탁 때문에 세상에 남아 있던 양반이.”
“……친구의 부탁?”
그딴 변수 하나 때문에 용이 세상에 남아 있던 거라고?
그 순간, 강선후의 검 끝이 빠르게 데미이블의 목을 향했다. 정확히 급소를 노린 공격이었다. 이 인간이 어째서 악마의 급소를 알고 있는가?
그걸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데미이블은 명계왕의 영혼을 끌어와 검은 방패를 만들었다.
카가가가가각—!
불멸을 베는 검은 명계의 방패로도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그 속도만 늦춰졌을 뿐, 곧 칼날은 데미이블의 목을 꿰뚫었다.
푸욱
데미이블은 쓰러졌다. 리리는 모든 일이 이렇게나 쉽게 끝난다는 사실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대로, 문 앞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던 시체 중 하나가 움직여 손목의 밧줄을 끊어 낸 뒤 땅에 철퍼덕 떨어졌다.
그것은 비척이며 고개를 들었다. 다른 인물이었으나, 강선후는 그 눈빛을 보고 바로 눈치챘다.
“영혼을 옮기는 재주가 있나 보네.”
“죽음의 의미가 너희와 다르다고 했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는 데미이블의 목소리에는 이제 여유가 담겨 있지 않았다.
“용 한 마리가 세상에 남아 있었다고?”
“어허.”
“……?”
“한 마리가 아니라 한 분. 어르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너는 내가 얼마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
그제야 데미이블은 자신이 만들었던 시나리오가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데미이블은 강선후가 솔라에 도착한 뒤부터 그를 감시했다.
그저 작은 변수라고 생각했다. 황금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들이 몸을 비틀어 만들어 낸 작은 변수. 작은 만큼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변수.
하지만 강선후라는 인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변수. 데미이블이 전혀 보지 못했고, 보더라도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변수는 작은 게 아니었다. 잠에 든 맹수처럼, 그저 안전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세계수의 개화, 도시의 거인도 그럼…….”
“내 친구들이지.”
“천 년매는?”
“내 친구…… 아니.”
강선후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리리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강선후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너네 세계에서는 신성모독인가?”
“……집중해.”
리리는 강선후에게 그렇게 말했다. 강선후는 지금, 피를 흘리는 전투 속에서 농담을 내뱉고 있었다. 농담은커녕 이렇게 말이 많은 것도 거의 처음이지 않은가?
이상함을 느꼈다. 전투 중에, 심지어 목숨을 건 전투 중에 강선후가 이렇게 집중을 유지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리리가 강선후란 인간을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면 크게 실망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의도한 건가?
그 순간이었다.
“크르르릉—!”
“……?”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늑대가 데미이블을 덮쳤다. 곰보다도 훨씬 큰 그것은 회색 털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강렬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데미이블은 그 존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기척도, 소리도 완벽하게 숨긴 가장 위대한 습격자. 현세에서는 멸종한 계곡의 늑대, 바람의 추종자.
처음 보는 모습이었으나 리리는 저 늑대의 정체를 바로 깨달았다.
“……존슨?”
강선후의 유령 늑대.
지금은 유령이 아니었다. 늑대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과하게 휘날리는 비단결 같은 털과 그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근육. 그리고 흉흉한 눈빛을 분명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현세에서는 유령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강선후의 친구.
이곳은 그 친구가 원래 살고 있어야 할 공간이었다.
“……? 크윽!”
데미이블은 자신을 덮치는 거대한 힘을 느꼈다. 다시금 등 뒤에서 두 개의 악마의 팔을 뻗어 늑대의 위턱과 아래턱을 부여잡았다.
늑대의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포식당하는 초식동물의 위기감. 데미이블의 마음을 덮치는 건 그것이었다.
데미이블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악마 팔로 찢어발기기는커녕, 그 힘을 막기에도 버거운 존재.
대체 어떻게 이렇게 강대한 존재가.
명계의 존재들은 오래될수록 시간에 비례해서 강해졌다. 명계의 기운을 견디고 계속해서 이성을 부여잡는다면, 이론상 무한히 강해질 수 있었다.
데미이블은 그저 악마의 반쪽짜리 힘을 받아 들임으로서 명계의 자리를 ‘빌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강해질 수는 없었고, 더 이상 강해질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영혼은 달랐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명계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잃지 않은 영혼.
엘더 스피릿(elder spirit).
강선후조차 모르는, 존슨의 정체였다.
데미이블은 이 거대한 존재가 강선후의 명령을 듣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강선후는 이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듯 놀란 표정이었다.
“……쟤가 저렇게 강하다고?”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강선후는 오른손에는 사자의 지팡이, 왼손에는 집행자의 검을 들고 데미이블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악!”
데미이블의 악마의 팔이 물렸다. 거대한 힘이라 엘더 스피릿조차 조금은 버거워했으나, 결국 그 팔을 뜯어냈다.
“으으…… 아아악!”
데미이블은 점점 더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밀릴 게 전혀 없는데, 상황이 너무나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강선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속에 심마(心魔)를 심었다. 어느새 잡념이 넘쳐 나고 있었다.
그저 저 인간을 죽이면 될 일인데, 어느 샌가 저 인간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었다.
세계수니 사막의 도시이니, 현세에 들어 발생한 그 모든 이상 현상에 대해 데미이블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몰랐다.
“그게 전부 네놈이랑 연관된 일이었다고!”
“연관된 일이 아니라…….”
강선후는 늑대를 공격하려는 악마 팔에 검을 꽂았다.
“내가 한 일들이야.”
콰강—!
검의 불멸을 베는 힘이 폭발하며 악마 팔을 절단했다. 늑대가 다리를 잡아 뜯었다.
데미이블은 생각했다.
이 인간은 절대로 작은 변수가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로 황금의 시대 때부터 준비된 마지막 검날일 수도 있다. 이 인간은.
데미이블은 생각했다.
이 인간을 절대로 살려 두면 안 돼.
사실은, 잘 회유하면 데미이블로 만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필멸자의 영혼을 유지한 채 악마를 다루는 모습은 그만큼이나 인상 깊었으니까.
신의 위치에 악(惡)을 올려 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죽여야 했다.
데미이블의 심장에 머물고 있던 영혼이 이 육체를 떠났다. 아직 십자가에는 세 구의 사체가 더 남아 있었으며, 이는 데미이블의 좋은 도구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시체, 더 나아가 명계를 둘러싼 명계왕의 기운.
“……그 모든 게 나의 도구지.”
흐흐흐.
데미이블은 그렇게 웃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며 동공이 열리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
갑자기 영혼이 묶였다.
무언가 거대한 힘이, 영혼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데미이블은 이 힘의 근원을 추적하여 강선후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사자(死者)의 지팡이』
“…….”
대체 이 인간은 뭐란 말인가.
뭐길래, 아직도 내밀 수 있는 숨겨진 발톱이 남아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전부 황금시대의 영광을 담고 있는 물건이란 말인가.
어떻게 필멸자 주제에…….
푸욱—!
떠나지 못한 영혼을 아직 반쯤 담고 있는 육체가 불멸을 베는 검에 꿰뚫렸다.
* * *
“크흐흐, 크흐흐흐흐…….”
심장이 조각난 데미이블은 웃었다. 강선후는 아직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심장이 깨진 악마가 아직도 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악마의 심장이 베어지면, 악마는 죽는다.
절대적일 거라 생각했던 이 법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왜일까? 강선후는 금방 답을 추측했다. 이곳이 이계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했지? 너를 여기로 부른 이유가 따로 있다고.”
인간이 내민 발톱은 생각보다 날카롭고, 강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곳은 명계.
악마의 본거지.
모든 부정한 존재들의 왕이 있는 곳.
주변에 있는 모든 시체의 가슴이 열리며, 검은 광석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모든 것이 악마의 심장이었다.
리리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영혼이 하나로 묶여 있어. 이 모든 심장이 데미이블의 심장인 거야.”
강선후는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고, 당황하기보다는 대응하기를 택했다.
『기록관의 반지』
반지에 기록한 첫 번째 룬, 명계에서 위험할 때 사용하려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특별한 룬.
강선후는 손바닥을 바닥에 향한 채 유물을 발동시켰다.
이 일대를 모두 둘러싸는 거대한 룬이 새겨졌다. 시공간을 지배하는 밀라milla의 룬이었다.
그러고는 성유물, 검은 태양의 머스킷 피스톨을 꺼내 룬 한가운데에 발사했다.
검은 태양의 빛이 룬을 감싸안고, 그 힘을 매개로 밀라milla가 빛을 발한다.
강선후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땡그랑—
왼손에 들려 있었던 불멸자의 검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탄력 있는 공처럼, 가볍게 부딪치더니 공중으로 올라갔다.
“……?”
리리는 보았다.
마지 바람이 검을 쥐고 있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는 집행자의 검을.
검날이 지나간 경로, 그리고 검날이 날아갈 경로의 공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검에도 룬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검을 조종하는 거야?”
리리가 무슨 판단을 하기도 전에, 높게 날아오른 검이 떠오른 심장들을 베어 내고 있었다.
쾅-! 쾅-! 쾅-!
심장에 담긴 영혼의 고리가 폭발하며, 부정한 기운을 명계의 허공에 뿌려댄다.
심장들은 마치 도망치기라도 하는 듯, 검을 피해 높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게 향한 곳은 명계왕의 가슴이었다.
명계왕의 시체, 그 무수히 많은 갈비뼈 안쪽에 있었던 탁한 심장.
두근—
심장에서.
두근—
맥동이 발하기 시작했다.
“흐흐흐, 하하하하하하—! 왕께서, 왕께서 일어나신다! 몰랐겠지? 왕은 애초에 죽지 않았어! 죽음의 왕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겠느냐! 내가 널 굳이 명계로 부른 이유를 이제 알겠어? 으히히히히히!”
천지가 흔들렸다.
“왕은 네놈의 귀환을 발하셨다. 손수 끝내고 싶으셨던 거겠지! 내 선에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아하하하하!`.”
쿵—!
거대한 뼈가 벽을 짚자, 산맥이 그대로 밀려났다. 거대한 시체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하체를 이루는 뼈는 없었다. 그대로 어깨가 빙글 돌아가며, 상체가 일어났다.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한쪽 뿔이 잘린 그 머리가, 점차 성채에 가까워졌다.
데미이블은 참혹하게 쓰러진 비참한 모습으로 광기에 가득 찬 웃음을 내뱉고 있었고, 하늘을 전부 가릴 정도의 두개골, 그 흉흉하게 뚫린 두 개의 눈이 강선후를 내려다보았다.
강선후는 그저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고, 리리는 한계에 달했는지 탁해지는 눈빛을 어떻게든 부여잡고는, 다시금 혈술의 힘을 끌어 올렸다. 물론 그 각오가 무색하게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명계왕이 입을 열었다.
“…….”
모두가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문뜩 리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강선후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냥 올려다보는 거지?
데미이블은 강선후가 투지를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리리는 그럴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명계왕의 목구멍 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오! 이제야 왔구만. 이 짓궂은 친구.」
“……?”
광기에 가득 찬 웃음소리를 내뱉던 데미이블이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고는, 머리를 들어 올려 강선후와 명계왕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말투, 목소리.
이제까지 상상으로만 들어왔던 명계왕의 위엄과는 전혀 달랐다.
「난 또, 나중에 밥 한 끼 하기로 하고 쌩까는 줄 알았지 뭐냐! 저짝 위쪽 세계에는 그런 의리 없는 놈들이 넘쳐 난다는 걸 알거든! 아하하하!」
리리는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놀라서가 아니었다. 긴장이 풀리는 걸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신, 다, 당신…….”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명계왕과 싸웠던 거, 아니…… 었어?”
그러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싸웠다는 게, 꼭 사이가 안 좋다는 의미만 되는 건가?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