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ep60. 명계왕 (3)
“으…….”
강선후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리리는 서둘러 강선후를 부축했고, 그는 리리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명계의 왕. 그리고 그 앞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인간. 조금은 예를 차리며 자리에 앉아 있는 뱀파이어.
누군가 봤다면 정말이지 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강선후는 리리와 왕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얘기들 나누셨나?”
“……당신 과거에 대한 이야기.”
“내 과거?”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느낌은 진짜 별로야. 뭔가 기억나는데, 정확한 건 안개에 가려져 있는 느낌.”
명계의 왕은 그런 강선후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하늘을 다 가릴 정도의 거대한 해골이 바로 위에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강선후는 물론이고, 리리조차 이제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왕은 강선후를 빤히 바라보다 그 흉흉한 턱을 벌렸다.
「조금이나마 기억을 한다는 게 대단한 거다.」
“로크 벨라 때문인가요?”
리리의 말에 오히려 왕은 의문을 품었다.
「로크 벨라? 그게 뭔데?」
왕은 로크 벨라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즉,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공간이 시대의 종소리에서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의 무의식이 스스로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대처였지.」
그저, 과거의 혹독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의 기억을 통제하고, 조작해 왔던 것.
「나는 알 수 있다. 나는 명계로 온 자들의 격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이 녀석의 정신이 가진 격은 내가 봤던 것 중에서 독보적으로 인상 깊었기 때문이지.」
살아남기 위해.
무의식의 영역은 그 정신마저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통제되고 있었다.
“……대체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무의식이라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강선후는 심드렁하게 대꾸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강렬한 집착. 무의식마저 통제할 집착.
강선후의 격을 여기까지 올린 건 바로 그 삶에 대한 집착이었다.
목숨이 위험한 곳에 끊임 없이 뛰어들면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집착하는 모순적인 태도.
“……당신이 계속해서 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야?”
“이젠 알잖아.”
리리는 곧바로 납득했다.
강선후는 살아가는 걸 사랑하는 남자였다. 살아가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그 세계. 둘 모두를.
그것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싶어 했다. 누구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자였고, 그건 한편으론 무식한 일면이 있었으나 동시에 지혜를 추구하기 위한 움직임들이었다.
이게 리리가 이해한 강선후였다. 물론 정답은 아닐지도 몰랐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 살아 있기를 원하는 거구나.”
“그건 너무 거창한데?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읏차.”
강선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신히 다리에 힘을 준 뒤, 몸에 큰 이상이 없는지 가볍게 점검했다. 그러고는 연금술사의 시약병을 꺼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다시 선악과 악마의 영혼이 갇혀 있었다.
악마를 잠시나마 받아들였던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데미이블과 싸운 상처도 심각했다.
돌아가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강선후는 명계왕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여기로 온 이유는 따로 있거든요?”
「저 데미이블인지 뭔지의 목을 따려고 온 게 아니었나? 아니면, 오랜 친구인 이 왕을 만나려고?」
왕은 그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고, 강선후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찾는 게 있어요.”
강선후는 손가락을 들어 명계왕 뿔의 부러진 부분을 가리켰다.
“그거, 내가 부러뜨린 뿔.”
“내 뿔?”
“내가 승리했다는 증거물.”
「…….」
명계왕은 그런 강선후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하늘의 구름마저 요동치도록 크게 웃었다.
「하긴! 그런 게 또 있어야 밤에 쳐다보면서 실실 웃기도 하고 그러는 거 아니겠냐! 그런데 어쩌냐? 그거, 저놈들이 부숴 먹은 거 같은데.」
명계왕의 눈이 집행자의 검에 박힌 채 땅에 쓰러져 있는 데미이블을 바라보았다.
「뭐 이상한 짓거리 하느라 이것저것 소모하고 부숴 버린 모양인데, 위쪽 세계로 네놈이 가지고 간 그 뿔도 다시 가지고 와서 부숴 먹은 모양이더군. 가만히 누워서 보는데 얼마나 얼탱이가 없던지.」
“음…….”
강선후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강선후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리리는 궁금했지만 우선 잠자코 강선후의 판단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었던 명계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뿔 같은 거, 필요하면 하나 더 주마.」
리리와 강선후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명계왕의 손이 올라가 자신의 뿔을 부여잡았다.
뚝—
쾅—!
뿔이 부러지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세찬 바람에 잠시 얼굴을 가렸다가 고개를 든 강선후도, 리리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부러뜨려도 되는 거예요?”
「마! 죽음의 존재에게 육체의 정갈함이란 허상이나 다를 바 없어! 가져가!」
쿵—
뿔 하나만 해도 고층 빌딩에 필적하는 크기였다.
“이걸 어떻게 가지고 가라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당신 뿔 자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당시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상징이 필요한 건데…….”
「이놈아! 네놈이 그렇게 어리석은 놈이 아닐 텐데?」
왕은 호령했다.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는 여전히 이 대화 자체를 즐거워하고 있었다. 왕에게 친구란 강선후 단 한 명이었기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다.
「네놈이 그때 부러트린 뿔은 그저 상징일 뿐이지 않더냐? 네놈이 승리했다는 본질은 뿔이 사라졌다고 해서 같이 사라지는 게 아니지!」
강선후는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흩어진 짐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쓰러진 데미이블에게 다가가 집행자의 검을 뽑아 냈다.
“……너는 우리를 막지 못해.”
“안 죽었구나?”
명계는 이미 죽은 자들이 오는 곳이다.
이곳에서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영혼이 점점 손상될 뿐.
모든 데미이블과 교도들의 영혼을 한데 모았다가, 오히려 강선후에게 일망타진 되었다. 그들의 영혼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데미이블은 아직까진 의식을 부여잡고 있었다.
“우리의 힘은 내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과업이 끝나는 게 아니다. 네놈이 황금으로 가는 길은 가시와 칼날로 가득한 지옥도가 될 것이다. 그게 싫다면…… 멈추면 된다. 안락한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를 찾아갈 생각까진 없다.”
“알아서 해. 막든가 말든가.”
“……감당할 자신이 있나? 한 번의 승리로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닌가?”
“자만 같은 거 안 해.”
“너 혼자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건가? 그런 물렁한…….”
“혼자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해.”
강선후는 집행자의 검을 보석으로 바꿔서 다시 황금지침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아는 친구가 좀 있거든.”
“…….”
데미이블은 그 말을 듣고,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의식을 잃은 건지 아니면 그저 눈을 감았을 뿐인 건지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강선후는 다시 명계왕과 리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들어올 땐 어디로 들어왔냐?」
“차원 균열이요. 근처에 열려 있어서 돌아가자면 갈 수 있는데…….”
강선후는 거대한 뿔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걸 대체 어떻게 들고 가지.”
리리 역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뜩 명계왕이 끅끅거리며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야.」
리리는 순간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지금 명계왕의 억양이, 사고 치기 직전의 강선후 억양과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웃음기가 섞여 있는 말투.
「너, 예전에 나랑 싸우고 나서 이승으로 올라갈 때, 그때 방법대로 한 번 더 가 볼 생각 없냐.」
강선후도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그러더니.
“……흐흐.”
웃었다. 리리는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흐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이 뒤로 무슨 일이 있을지 전혀 예상 가지 않는데도 그랬다.
「타!」
명계왕은 한 손으로는 자신의 뿔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뚫려 있는 소용돌이 구멍.
그 정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 * *
아멜리와와 올리버, 엘리엇 하리파는 다시 강선후가 있었던 차원 균열로 향했다. 그곳은 한 동굴이었고, 그곳으로 가기 전에는 작은 숲과 작은 평지를 지나쳐야만 했다.
그들이 급하게 균열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강선후가 모든 일을 끝내고 돌아올 기미가 보였으니까.
“……올리버.”
올리버가 아멜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엘프가 저렇게 멍한 눈빛을 할 때는 많지 않았다.
“왜?”
“나 귀인께서 돌아오면…… 사흘만 줘.”
“사흘?”
“내가 귀인을 독점하는 시간을 사흘만…… 줄래?”
셋 모두 보았다.
강선후가 데미이블과 싸우는 모습을. 명계왕이 강선후를 알아보는 모습을. 강선후가 전설 속 부활자, 당사자라는 걸 명계왕이 증언하는 모습을.
그 모든 모습을 본 탐험가 연맹은 한동안 서로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귀인께서 원하신다면.”
올리버는 아멜리아가 너무 흥분해서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재 그녀의 차분함은 그저 폭풍의 전조일 뿐이었다.
그들은 차원 균열 근처 숲에 도착한 뒤,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그 풍경이 이상했다.
명계왕의 손 위에 올라와 있는 리리와 강선후.
강선후는 단단히 리리를 붙잡고 있었고, 리리는.
“넌 미친놈이야. 진짜 미친 새끼. 아니, 그냥 둘 다 미쳤어!”
이미 공포심에 이성을 잃은 듯 아무 말이나 중얼거리고 있다.
“전설 속 부활자가 명계에서 이승으로 올라온 수단이 이거라고요!?”
「뭐 위대한 제사라도 있을 줄 알았냐!」
“아니 저는 명계왕이시니까 뭔가 권능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고요!”
「권능? 그게 뭔데? 그리고 너 말이 많이 편해졌다? 내가 편하니?」
“안 편해요! 전혀요! 으아아아!”
명계왕은 그 반응이 재밌어서 못 참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리고, 공을 던지기 직전의 포즈를 취했다.
「야, 인간.」
이별 직전, 명계왕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바빠 보이고, 그 옆 뱀파이어 짝꿍이 너무 원하는 거 같아서 그냥 올려보내 주는 건데…….」
명계왕은 슬쩍 고개를 돌려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올 때는 영원히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알겠어? 명계도 명계의 법칙이 있는 것이다.」
“왕, 나는 인간이에요. 영원히 살지 못한다고.”
강선후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죽을 때 사후세계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이곳으로 온다고 약속할게요.”
「……흐흐.」
명계왕은 어깨에 힘을 주었다.
「다음에 올 때는 정말로 밥 한 끼인지 뭔지 하는 거다. 그렇지?」
“그렇죠.”
「잘 갔다 와라.」
명계왕은 그대로 리리와 강선후를 던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연맹 일행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선 채 정신없이 모니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수확자의 눈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상승해서 소용돌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강선후를 따라가지 못했다. 강선후의 모습이 사라졌고, 곧이어 힘을 다했는지 수확자의 눈도 작동을 멈췄다.
“…….”
그리고 잠시 뒤.
팍—!
땅에서 모래가 솟아오르며 한 명의 인간과 뱀파이어 가 땅 밑에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콰아아아아아아앙—!
조금 떨어진 평야.
그곳에서 태산과 같은 모래가 솟아올라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먼지 안쪽에 보이는 희미한 실루엣.
그것은 명계왕의 뿔 형태를 하고 있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